금융업계에 ‘통합’ 바람이 분다. 그동안 계열사로 분화됐던 업무를 지주사 중심으로 일원화하거나, 조직 통합을 단행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이 업계 ‘컨트롤 타워’를 살펴본다.
KB·신한금융 ‘퇴직연금 컨트롤 타워’ 구축 … 190조 퇴직연금 시장 선점 목표
지주사를 중심으로 통합 조직을 설치하는 금융사들이 늘고 있다. 그룹 차원의 조직을 강화하는 동시에 효율적인 업무 처리를 위해서다. KB·신한·하나·우리금융이 컨트롤 타워 구축에 뛰어들었다.
KB금융그룹과 신한금융그룹은 ‘퇴직연금’을 두고 맞불을 놓았다. 190조 원에 달하는 퇴직연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지난 4월 금융감독원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연금 적립 규모는 전년(168조 4000억 원) 대비 21조 6000억 원(12.8%) 증가했다.
KB금융지주는 지난 28일 지주 자산관리(WM) 부문 산하에 ‘연금본부’와 ‘연금기획부’를 신설했다. 두 부서는 이 회사 연금 컨트롤타워다.
연금본부는 그룹 전체 연금 고객에 대한 사후관리, 은퇴·노후 서비스, 각종 부가서비스 강화를 수행한다. 연금기획부는 KB금융지주와 KB국민은행, KB증권, KB손해보험 4개사를 겸직하면서 연금제도 서비스 기획, 연금고객 사후관리 업무 등을 함께 진행한다.
이 회사가 조직 개편을 통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고객 수익률 제고’다. 그룹 내 IB부문과 증권, 손해보험 등 계열사 간 협업을 통해 특화상품을 개발하고, 운용역량을 강화해 미래 연금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해 국민은행에서 추진하고 있는 ‘퇴직연금 디지털 전환’을 그룹으로 확대해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케이봇 쌤(연금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제공하고, 비대면채널을 개편해 ‘그룹 통합 퇴직연금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했다.
신한금융그룹은 KB금융그룹에 앞서 퇴직연금 사업 부문에 매스를 들었다. 지난 4월 그룹 계열사의 공통된 사업을 하나로 묶는 ‘매트릭스 조직’을 퇴직연금 부문에 도입한다고 발표했고, 이번 달 공식 출범했다.
신한은행·신한금융투자·신한생명이 참여했고, 지주 사업부문장이 계열사 3곳의 퇴직연금 그룹 수장을 겸임한다. 즉 4개 사에서 개별적으로 운영하던 퇴직연금 사업을 그룹 차원으로 통합한 것.
먼저 신한금융은 퇴직연금의 수수료를 합리화했다. 퇴직연금은 입사에서 퇴직까지 장기적으로 운용해야 하는 상품이다. 따라서 합리적인 수수료는 안정적인 수익률과 더불어 해당 상품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은행·금융투자·생명의 상품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퇴직연금 솔루션’을 만들고, 사회초년생 고객을 대상으로는 ‘생애주기펀드 2050’을 출시한다.
또한 비대면 플랫폼인 ‘신한플러스’에 ‘스마트연금마당’을 구축해 고객 편의성을 강화한다. 비대면 상담고객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고객 관리를 체계화한다는 설명이다.
하나금융 ‘벤처·창업’, 우리금융 ‘IB’ 분야 통합
하나금융그룹은 지난 10일 그룹 차원의 창업·벤처기업 금융 지원을 위한 ‘혁신금융협의회’를 출범했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이 의장을 맡고, 관계사 사장 및 그룹의 주요 임원 17명이 위원으로 참여해 그룹의 혁신금융 컨트롤타워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혁신금융협의회 산하에 ‘기업여신시스템개선협의회’와 ‘창업벤처투자협의회’ 2개의 분과협의회를 운영한다. ‘기업여신시스템개선협의회’는 기업여신시스템 혁신 및 관련 대출 지원을 담당하고, ‘창업벤처투자협의회’는 직간접투자 및 펀드조성 등 모험자본 공급 확대를 맡는다.
원활한 추진을 위해 하나금융그룹은 혁신금융 지원규모를 3년간(2018년~2020년) 15조 원에서 향후 3년간(2019년~2021년) 20조 원으로 대폭 상향해 주목받기도 했다.
우리금융그룹은 기업금융(IB)을 강화한다. 우리은행과 우리종합금융의 IB부문 조직을 합치면서다. 이 회사는 은행 IB와 종합금융 IB 인력을 합친 기업금융투자(CIB) 조직을 출범시킬 예정이다.
은행 인력 80명과 종금 인력 20명으로, 총 100여 명의 규모다. 업계에 따르면 이들은 이미 같은 공간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계열사 시너지↑ 고객편의↑ 기대
‘조직 통합’이 금융업계 대세로 떠오른 이유가 뭘까.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꼽는다.
한 업계 관계자는 “컨트롤타워가 생기면 계열사 간의 역량과 강점·장점 등이 공유될 수 있다”며 “이에 따라 시너지 효과가 기대되며, 또 컨트롤타워를 중심으로 방향을 설정하고 나면 나머지 계열사들이 방향을 따라갈 수 있어 효율적인 업무 처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조직통합의 또 다른 공통점은 각 회사의 새로운 전략과 맞물린다는 점이다.
연금 사업을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KB금융과 신한금융은 공통적으로 ‘연금 대표 금융그룹’을 목표로 하고 있다. KB금융그룹의 경우 윤종규 회장이 지속적으로 ‘고객 중심’ 경영을 강조하며 디지털 혁신부문 등을 통합한 바 있다. ‘원 신한’을 강조해온 신한금융그룹 역시 조직차원의 협업을 강화해왔다.
하나금융그룹은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이 직접 컨트롤타워 의장으로 나섰고, IB 강화를 선포한 우리금융그룹의 경우 손태승 회장은 올해 경영전략으로 투자금융 육성을 꼽은 바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전에는 계열사마다 특징을 살리는 분위기였지만, 최근에는 조직 통합이 이어지는 추세”라며 “컨트롤타워·매트릭스 조직 등은 사내 여러 조직 출신이 머리를 맞대는 것이기 때문에 고객들에게 더욱 좋은 상품을 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