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5호 윤지원⁄ 2019.07.15 17:11:17
현대자동차가 상반기 내수 판매량의 꾸준한 증가세를 보인 데 이어 하반기에도 베뉴(VENUE) 등의 출시로 기세를 이어간다. 그런 가운데 일본의 대 한국 수출 규제로 심화된 반일 감정이 일본차 불매운동을 촉발했다. 올해 수입차 시장에서 잘 나가던 일본차 판매량이 이번 불매운동으로 뚜렷한 영향을 받을 경우, 그 반사이익의 상당 부분이 현대자동차에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올 1~6월 내수 시장에서 35만 4381대를 판매했다.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8.4% 증가한 성적이다. 상반기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모델인 그랜저와 2달 연속 베스트셀링 카에 등극한 신형 쏘나타 등 세단의 전통적인 인기와 신차효과가 고루 어우러진 결과다.
여기에 최근 현대차에게 긍정적인 변수가 하나 더해졌다. 일본 정부의 대 한국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한 반발로 일본산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확산되면서, 최근 수입차 시장에서 잘 나가던 일본차의 앞길에도 빨간 불이 켜진 것이다. 그리고 그 반사이익이 독일산 수입차보다 국산차에 돌아갈 것으로 전망되며 상승세의 현대자동차가 최대 수혜자로 지목되고 있다.
잘 나가던 일본차, 급제동 불가피
한국수입자동차협회가 집계한 올해 1~6월 수입승용차 판매 실적을 보면 토요타(렉서스 포함), 혼다 등 일본 브랜드는 지난해 상반기보다 10.3%(2197대) 증가한 2만 3482대 팔려 전체 3~5위를 차지했다. 수입차 전체 판매량이 22.0%(3만 795대)나 줄어들고, 특히 독일차(-34.2%)의 감소세가 두드러진 가운데 이룬 성적이어서 더 눈에 띈다.
3위 렉서스는 33.4% 증가했고, 도요타는 24.3% 감소했으나 4위를 유지했으며, 혼다는 지난해 상반기보다 94.4%나 판매량이 증가했다.
일본차의 상승세는 디젤 수입차 점유율이 49% 줄어든 가운데 일본차의 주종인 가솔린과 하이브리드의 판매가 늘어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미세먼지 이슈로 친환경차에 대한 관심이 늘며 하이브리드차의 수입차 시장 점유율이 전년 동기 대비 36.1%(4392대) 증가한 1만 6561대로 15.1%를 기록했다. 모델별로는 3위에 오른 렉서스 ES300h가 4915대 팔려 하이브리드차로는 유일하게 10위권에 들었다.
일본산 불매운동, 효과 있다, 없다?
그런데 이처럼 솟구치던 일본차의 상승세에 제동이 걸렸다.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으로 국내에서 일본산 불매운동이 불거지면서, 일본차에 대한 불매운동도 장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업계 관계자 및 언론은 일본차 불매운동이 판매량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기도 한다.
자동차는 일반 소비재와 달리 안전과 품질 등을 따져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르는 고가 제품이기 때문에 불매운동의 영향이 적은 품목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일본차는 국산차에 비해 품질 및 가성비에서 뚜렷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특히 하이브리드 자동차 부문에서 뛰어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이러한 전망의 근거다.
또한, 과거에도 역사 인식과 관련한 반일감정이 높아지면서 불매운동이 일어난 적이 몇 차례 있었지만, 판매량에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난 적은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
일본 브랜드 1위인 토요타 측도 이번 불매운동의 영향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는 반대로 이번 일본차 불매운동은 그 영향력이 미미했던 예전 사례들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분위기도 감지된다.
최근 국내 최대의 인터넷 자동차 커뮤니티인 보배드림 게시판에는 사전 예약했던 일본차를 취소하고 국산차를 구매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의 게시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특히 자신을 자동차 리스 영업인이라고 소개한 한 누리꾼은 일본차를 구매하려던 고객이 제네시스로 마음을 바꾼 사례를 소개하면서, 자신도 "(일본차) 비중이 없는 편도 아니고 안 팔면 매출이 떨어지는 것도 맞고 해서" 고민을 했으나 "일본차량 광고 전부내리고 문의가 와도 판매하지 않는 작은 소신을 보이려 한다"고 결심했다고 밝혀 눈길을 끈다.
앞서 마트, 편의점 등 유통업계가 자발적으로 일본산 제품을 매장에 진열하지 않고 반품하는 방식으로 보이콧을 선언했다는 언론 보도 내용을 연상시키며 수입차 시장에서 이 같은 움직임이 확산될 가능성을 전망하게 했다.
"일본차 타면 미움 받을라" 걱정도
또한, 이들 자동차 고객들의 변심이 본인의 의지만은 아니라는 점이 주목된다. 일본차를 탄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의 대상이 될까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나아가 비난이 무분별한 폭력으로 확대되는 것과 그 피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렉서스 김치 테러나 일본차 주차금지를 선언한 아파트 등의 이슈는 오해나 조작에 의한 가짜뉴스임이 드러났지만, 최근 심화된 반일감정을 짐작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사안들이었다. 실제 일부 극단적인 누리꾼들은 자기 주변의 일본차들을 향한 반달리즘(긁기, 파손, 오물투척 등)을 예고하고 있어 무분별한 혐오 범죄가 실제로 증가할 가능성도 우려된다.
일본차를 소유한 운전자들은 이런 변화를 이미 체감하고 있다고 밝힌다. 보배드림 게시판에서 이들은 최근 들어서 차선 변경을 시도할 때 이를 집요하게 방해하는 차들이나 이유 없이 뒤에서 경고용 상향등을 켜대며 위협하는 차들이 늘었다며 불안감을 드러냈다.
이러한 불안감에 의한 구매 심리 위축은 자발적인 불매운동과 병행되어 일본차 판매량 감소를 가속화 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2012년 중국과 일본 사이에 센카쿠열도 영유권 분쟁이 일어났을 때, 중국 내 반일 감정이 격화되어 일본차와 일본차 운전자를 향한 도를 넘은 혐오 범죄와 폭력 사태가 빈번하게 벌어졌고, 결국 중국 내 일본차 판매량 감소와 일부 공장 가동 중단으로 이어진 전례가 있다.
일부 일본차 브랜드에서는 국내 소비자들의 반일 정서를 거스를 필요가 없다는 판단으로 신차 출시 행사를 취소하고 마케팅을 축소하는 등 몸을 사리는 모습도 뚜렷했다.
한국닛산은 주력 차종인 알티마의 6년 만의 풀 체인지 신형 6세대 모델을 출시하면서 16일로 예정됐던 미디어 시승 행사를 취소했다. 앞서 지상파 드라마에 해당 모델을 노출시키는 등 대대적인 마케팅을 진행하는 분위기였지만 행사를 닷새 앞두고 기자들에게 “내부 사정으로 취소되었다”는 안내 메일을 보냈다. 한국닛산은 행사 취소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길 꺼리고 있지만, 최근의 반일 정서가 반영된 대응으로 분석된다.
또한, 토요타와 렉서스는 9일~10일 기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토요타 스페셜리스트 하이브리드 아카데미’ 행사를 예정대로 진행한 대신 기자들에게 보도를 가능한 한 자제해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이는 실제로 이 두 브랜드의 내부 사정 때문이라기보다 일본산 제품을 국내 판매하는 업체들의 전반적인 분위기인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 앞서 소니코리아는 지난 11일 무선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 신제품을 소개하기 위한 기자간담회 행사를 준비했으나 행사 사흘 전 내부 사정을 이유로 들며 취소한 바 있고, 일본 담배 메비우스를 판매하는 업체인 JTI코리아 역시 같은 날로 예정됐던 신제품 발표회를 취소했다.
반사이익은 어디로?
일본차 판매량이 실제로 감소한다면, 그 반사이익을 챙기는 건 누구일까? 업계 일부는 타 수입차 브랜드, 그중에서도 특히 독일차를 먼저 꼽는다.
일본차 구매를 고려할 정도의 구매력을 갖춘 소비자라면 반일 여론 때문에 일본차를 포기하더라도 굳이 가격대를 낮추는 대신 추가 비용에 대한 고민 없이 상품성과 브랜드가치를 따져 전통적 수입차 강자인 벤츠, BMW 등 독일차로 시선을 돌리지 않겠느냐는 주장이다.
한국수입차협회 통계에 따르면 소득 수준이 높은 서울 강남 일대 4구(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강동구)에서 팔린 수입차들 가운데 벤츠와 렉서스는 각각 서울시 전체 판매량의 46%, 44%를 차지했고, BMW와 토요타는 각각 34%, 35%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나 일본차와 독일차의 고객층이 상당 부분 겹쳐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벤츠와 BMW는 최근 친환경차 라인업을 눈에 띄게 강화한 만큼 일본차의 대체재로 충분히 어필할 수 있다는 평가다.
이와는 달리 현대자동차를 위시한 국산차가 직접적인 수혜자가 될 것으로 보는 분석도 있다.
이는 이번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주요 반도체 소재의 국산화 이슈를 소환한 것을 비롯해,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No Japan’을 넘어 ‘Yes Korea’라는 모토를 내세우고 있는 것처럼, 현 상황을 둘러싼 대중 심리에 맹목적인 애국심이 아닌 “우리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경제적 긍지가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하나의 근거로 제시될 수 있다.
또한, 상반기 수입차 전체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22%나 감소하고, 특히 독일차 판매량은 34.2%나 감소한 가운데 현대자동차가 내수 시장에서 뚜렷한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는 현상도 주목할 만하다.
2010년대 내내 국내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며 기세등등하던 독일차는 최근 아우디, 폭스바겐, BMW 등의 디젤게이트 및 연이은 화재 논란으로 신뢰도가 낮아지며 판매량 감소로 이어졌다.
독일차가 주춤하는 사이 일본차의 상승세가 뒤따랐는데, 현대차 역시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내수 회복의 기회로 삼았다.
현대차는 2010년대 중반 이후 적극적인 소통 전략과 공격적인 신차 전략을 펼쳤으며 코나, 신형 싼타페, 팰리세이드, 신형 쏘나타 등을 연이어 선보였다. 그 결과 현대차는 올해 상반기 신차 점유율에서 최근 10년 중 최고 수준인 50.9%를 기록했다.
약점으로 지목되던 부족한 SUV 라인업은 지난해 대형 SUV 팰리세이드 출시에 이어 7월 소형 SUV 베뉴 출시로 짜임새를 높였고, 하반기에는 제네시스 최초의 SUV GV80의 출시를 필두로 3종의 SUV가 차례로 공개되며 역대 최대 내수 판매 기록을 견인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함께 현대차는 내수에서의 입지를 더욱 탄탄히 다지기 위해 15일부로 국내영업본부의 명칭을 국내사업본부로 변경했다. 국내사업본부는 기존의 세일즈 기능 외에 국내에서의 미래 사업 부문을 포함한 국내와 관련된 모든 사업을 총괄하게 된다.
일본차가 지금처럼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지 못하고 불매운동에 의한 판매량 위축으로 이어지게 되면 현대차의 전방위적인 내수 확대 전략은 더욱 큰 효과를 거둘 전망이다.
신형 쏘나타, 하이브리드 시장 이어받을까?
특히 현대차는 일본차가 강세를 보이는 하이브리드차 시장에서 큰 반사이익을 누릴 가능성이 높다.
올해 상반기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은 5만 1141대에 달한다. 연간 판매량 10만 대를 처음으로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중 국산 하이브리드차는 3만 4580대가 팔렸는데 현대차의 그랜저 하이브리드가 1만 6008대로 판매량 1위를 기록했고, 기아자동차의 니로 하이브리드 및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은 1만 대 이상 팔리며 2위를 기록했다.
일본차 중에서는 렉서스의 ES 300h가 4951대가 팔리며 국산·수입 하이브리드차를 통틀어 3위에 해당하는 성적을 올렸다. 특히 지난달 국내 판매된 하이브리드차 상위 10개 모델 가운데 7개 모델이 토요타(렉서스 포함) 브랜드였다.
이런 가운데 현대차는 8세대 쏘나타의 하이브리드 차량을 이달 내 출시하기로 하고 최근 공인연비를 재인증받았다. 또한, 연간 생산 계획은 기존 4만 8000대보다 약 8.33% 늘어난 5만 2000대로 설정했다.
신형 쏘나타는 출시 이후 호평과 함께 높은 판매량을 유지하고 있어 하이브리드차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상태다. 여기에 때마침 불거진 일본차 불매운동으로 일본 하이브리드차를 바라보던 수요의 상당수를 끌어올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