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정의식 기자)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 실적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가운데 SK건설이 최근 연이어 매머드급 해외공사를 발주해 주목된다. 지난 1분기에 UAE에서 대형 철도공사를 따낸데 이어, 2분기에는 영국에서 대형 터널 공사, 벨기에 PDH 플랜트 공사를 성사시켜 하반기 반전을 예고하고 있다. 중동 등 해외건설사업에서 잔뼈가 굵은 안재현 SK건설 사장의 해외 드라이브 전략이 성과를 거둘지 업계의 시선이 쏠린다.
저유가로 인해 중동 지역의 건설공사가 침체되고, 미국과 중국의 글로벌 무역전쟁 여파까지 겹치며 상반기 해외 건설 수주는 지난해보다 부진한 상태로 마감됐다.
해외건설협회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말까지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 수주 실적은 119억29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75억3000만달러보다 32%나 줄었다. 특히 1분기의 경우 지난해 같은 기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해 건설업계에서는 연말까지 가도 지난해의 수준을 회복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SK건설도 우울한 상반기를 보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SK건설은 올해 상반기에 1건의 해외 수주밖에 기록하지 못했으며, 계약액은 3889만달러에 불과하다.
특기할만한 건 이 1건의 해외 수주가 계약금액 1억7780만달러에 달하는 대형 수주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상반기 계약금액이 이보다 부족한 수치로 집계된 건 기존에 진행하던 다른 프로젝트에서 계약금액의 변경이 이뤄진 탓으로 분석됐다.
어쨌든 SK건설은 상반기에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건설업계 전문가들은 하반기 SK건설의 상승세를 점치고 있다. 특히 해외건설 부문에서 긍정적 신호가 많이 감지됐다는 것.
중동·유럽 잇단 수주 비결은?
첫 번째 긍정적 신호는 올 상반기 유일하게 수주한 수주한 UAE(아랍에미리트연합) 철도망 건설 공사 계약으로 중동 지역 수주가 회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SK건설은 지난 3월 UAE의 에티하드 레일(Etihad Rail)이 발주한 2단계 철도망 건설사업 중 구웨이파트(Ghweifat)~루와이스(Ruwais) 구간에 대한 공사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국내 건설사 최초로 사우디, 쿠웨이트 등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의 철도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이어서 관심의 초점이 됐다.
SK건설은 중국건축공정총공사(CSCEC)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사를 수주했는데, 총 공사금액은 4억2000만달러(약 4800억원)이며, SK건설 지분은 42.5%로 1억7780만달러(약 2100억원)이다. SK건설은 EPC(설계·조달·시공)를 일괄 수행하며, 공사기간은 착공 후 46개월로 2023년 준공 예정이다.
에티하드 레일 2단계 철도망은 총 연장이 605㎞이고 최고설계속도는 시속 200㎞로 서쪽 사우디 국경인 구웨이파트로부터 동쪽 후자이라(Fujairah)까지 UAE 전역에 걸쳐 연결된다. SK건설이 맡은 프로젝트는 사우디 국경과 인접한 UAE 서부 구웨이파트(Ghweifat)에서 루와이스(Ruwais)까지 총 연장 139㎞의 철도노선을 신설하는 공사로, 에티하드 레일 2단계 철도망 중 첫 번째 구간이다.
SK건설은 “향후 발주되는 세 개의 구간도 수주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선점했다”며 “UAE 에티하드 철도의 기타 노선과 아부다비 지하철 등에서도 추가 사업기회를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지난해 UAE에서 총 공사비 12억달러 규모의 초대형 지하 원유비축기지 건설공사를 진행 중인 SK건설이 이번 에티하드 철도공사 수주까지 성공함으로써 UAE에서 SK건설의 입지가 한층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두 번째 긍정적 신호는 그간 한국 해외건설의 ‘불모지’로 여겨졌던 서유럽에서도 성과를 보이고 있는 점이다.
실버타운 터널 건설…영국서 최초 민간협력사업
SK건설은 지난 6월 10일 런던교통공사(TfL)가 발주한 실버타운 터널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데 이어 일주일 후인 18일에는 글로벌 화학기업 이네오스(INEOS)가 발주한 벨기에 앤트워프 석유화학단지에 PDH(Propane Dehydrogenation) 플랜트 건설을 위한 FEED(Front End Engineering Design, 기본설계) 장기플랜에 참여하는 등 서유럽 지역에서 의미있는 행보를 이어갔다.
먼저, 실버타운 터널사업은 SK건설이 국내 건설사 최초로 서유럽 지역에서 최초로 따낸 인프라 민관협력사업(PPP, Public Private Partnership)이다.
영국 런던의 실버타운 지역과 그리니치 지역을 연결하기 위해 템스강 하부를 통과하는 총 연장 1.4㎞, 직경 12.4m의 편도 2차선 도로터널 2개소를 신설하는 사업으로, 공사비는 약 10억파운드(약 1조5000억원) 규모다.
SK건설은 맥쿼리(호주), 신트라(스페인), 애버딘(영국), 밤(네덜란드) 등 4개 회사와 투자 컨소시엄 리버링스(RiverLinx)를 구성해 사업에 참여했다. SK건설의 리버링스 투자지분은 10%다. 또, SK건설은 페로비알 아그로망(스페인), 밤 누탈(영국)과 함께 시공 컨소시엄을 구성해 EPC(설계·조달·시공)를 담당한다. SK건설의 지분은 20%다.
실시협약 및 금융약정 체결은 올해 하반기에 이뤄질 예정이며, 이후 착공에 돌입해 공사가 완료되는 2025년부터 리버링스가 25년간 운영하게 된다.
안재현 SK건설 사장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진입장벽이 높았던 선진 유럽시장에 첫 진출하게 돼 기쁘다”며 “앞으로도 SK건설의 강점인 도로, 터널 및 지하공간 등 건설 기술력과 개발형사업 역량을 살려 세계적인 건설사 및 금융투자사 등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다양한 추가 사업기회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벨기에 FEED, 10억달러 계약 전초전
벨기에 PDH 플랜트 FEED 수주 역시 국내 건설업계 최초의 쾌거다.
PDH는 프로판가스에서 수소를 제거해 프로필렌을 생산하는 공정으로, 프로필렌은 에틸렌과 함께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 원료다.
SK건설은 벨기에 앤트워프 석유화학단지에 연산 75만톤 PDH 플랜트의 FEED(기본설계)를 수행하게 됐다. 계약기간은 약 12개월이며, 수주 금액은 1420만달러(약 170억원) 규모다. SK건설은 추가 발주되는 본공사(EPC)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상태라 약 10억달러(약 1조1800억원)로 예상되는 초대형 프로젝트의 수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이네오스는 이미 올해 1월 서유럽 지역에 PDH 공장을 포함해 총 30억유로(약 4조원) 규모의 초대형 신규 설비 투자를 공식 발표했고, 벨기에 앤트워프 석유화학단지에 신규 공장을 건설하기로 최종 결정한 상태다.
안재현 SK건설 사장은 “이번 PDH 플랜트 FEED 계약이 SK가 서유럽 플랜트 시장에 진출하는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번 PDH FEED 계약을 시작으로 글로벌 탑티어(Top-Tier) 화학 기업인 이네오스와 향후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SK건설의 해외 수주가 본진인 중동은 물론 유럽까지 확산되는 기세를 보이자 업계에서는 SK건설의 해외사업이 반전의 계기를 잡았으며, 이 실적이 올해 안에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 기업공개(IPO)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보는 분위기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UAE에 이어 영국과 벨기에에서 수주 계약에 성공할 경우 SK건설은 상당한 규모의 해외 수주잔고를 확보하게 된다”면서 “이렇게 되면 지난해의 부진을 만회하는 건 물론 올 하반기 IPO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앞날에 ‘장밋빛 청사진’만 있는 건 아니다. SK건설이 여타 건설사에 비해 해외사업에 활기를 띄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글로벌 해외사업이 소위 ‘규모의 경제’로 불리는 만큼 전반적인 글로벌 건설경기 침체는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또 국내주택 시장이 각종 부동산 규제로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 점도 실적에 부담을 주고 있다. 특히 정부가 민간건설 분야에도 ‘분양가상한제’를 예고한 상태라 그만큼 분양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