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K를 넘어 8K 초고화질(UHD) TV 시대가 도래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QLED 8K TV를 출시한 데 이어 LG전자가 7월 세계 최초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이하 올레드) 8K TV와 LCD 8K TV 등을 출시한 것. 글로벌 대형 TV 시장을 선도하는 두 회사의 치열한 경쟁은 고해상도 TV의 발전 속도를 재촉하고 있지만, 정작 이 TV로 즐겨야 할 8K 영상 콘텐츠나 방송 환경의 변화는 더딘 상황이다.
4K보다 4배 선명…크기는 삼성 화질은 LG
8K의 K는 1000단위를 뜻하는 ‘킬로’(Kilo)를 의미한다. 즉 8K란 화면을 구성하는 화소 수가 가로 한 줄에 약 8000개가 된다는 뜻이다. 화소 수로 표현하는 8K 해상도는 가로 7680개, 세로 4320개(7680×4320)이며 총 화소 수는 3317만 7600개다. 4K(3840×2160) 해상도와 비교하면 가로로 두 배, 평면으로는 네 배 더 많은 화소를 갖추고 있어 더 큰 화면을 더 선명하게 표현할 수 있다. 참고로, 풀(Full) HD인 2K(1920×1080)보다는 16배 더 선명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8K TV는 같은 해상도를 구현하지만 이를 가능하게 하는 주무기는 각각 다르다. 삼성전자는 QLED를, LG전자는 OLED를 주력으로 하며, 각각 장단점이 뚜렷하다.
삼성전자의 QLED는 기존의 LCD에 양자점(퀀텀닷) 필름을 덧붙여 화질을 개선한 것이다. LCD나 QLED 디스플레이에서는 별도의 광원 역할을 하는 백라이트가 필수다. 반면, LG전자의 올레드는 화면을 구성하는 3300만여 개의 소자 각각이 스스로 빛을 발하기 때문에 백라이트가 필요 없다.
QLED는 OLED에 비해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초대형 화면을 구현하기에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백라이트 공간 때문에 일정한 두께보다 얇게 만들 수 없고, 또 백라이트의 빛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으므로 화면상의 블랙을 포함한 어두운 부분을 정확하고 세밀하게 구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아쉬움이 있다.
반면 OLED는 각각의 소자가 빛을 발하므로 블랙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고, 백라이트가 필요 없어서 쉽게 휘거나 둘둘 말 수 있을 정도로 두께를 아주 얇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켜 두면 소자의 발광 성능이 떨어져 전원을 끈 뒤에도 화면에 잔상이 남는 '번인'(burn-in)현상이 일어나기 쉽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비싸며, 화면의 크기를 키우기도 쉽지 않다.
TV가 수입차 가격, 그래도 잘 팔린다
4K TV가 그랬듯, 8K는 TV 시장의 대형화, 고급화를 더욱 부추긴다. 현재 삼성전자의 QLED 8K TV는 최대 98인치(대각선 길이 247cm), LG전자의 올레드 8K TV는 최대 88인치(222cm) 사이즈까지 출시됐다.
가격은 같은 8K TV라도 패널의 종류와 크기에 따라 편차가 크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11월 출시한 8K TV 모델 중 가장 작은 65형은 700만 원대 가격이고, OLED보다 가격이 저렴한 LG전자의 LCD 8K 75형 TV는 출고가 890만 원이다.
하지만 대형 8K TV는 고급 수입차와 맞먹는 가격이다. 삼성전자의 최신 QLED 8K 98형 TV는 7700만 원이고, LG 올레드 8K 중 가장 큰 88형 TV는 5000만 원이다. 이들 TV는 구매 고객에게 65인치 4K TV나 200만 원에 육박하는 고급 가습 공기청정기가 사은품으로 제공되었을 정도다.
가격이 비싸고 방송 환경도 아직 8K 화질에 대응하지 못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지난해 11월 국내 출시된 삼성 QLED 8K TV는 7개월 만인 지난 5월 말 기준 누적 판매량 약 8000대를 기록했는데, 이는 지난 2013년 삼성전자의 4K QLED TV가 출시 후 10개월간 약 6000대가 판매된 것과 비교하면 빠른 성장세다.
8K TV 시장은 동북아 4개국이 주도하고 있다. 이제는 대만 회사가 된 샤프(SHARP)가 2017년 70인치 8K LCD TV를 먼저 출시했다. 그리고 지난해 삼성전자에 이어 올해 일본의 소니와 LG전자가 차례로 합류했다. 올해 1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8K TV를 선보였던 중국의 TCL과 화웨이, 하이센스 등도 연내 8K TV를 출시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시장조사 기관 IHS마킷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에서의 8K TV 판매량은 올해 21만 5000대, 2020년 142만 8000대, 2022년 500만대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콘텐츠는 그대로인데 TV만 커졌나?
문제는 아직 제대로 된 8K 콘텐츠가 턱없이 부족하고, 8K 생태계도 미비하다는 데 있다. 한마디로 소비자가 8K TV로 볼만한 영상이 아주 드물다는 얘기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콘텐츠 부족을 감안해 기존의 4K 또는 2K 화질의 원본 콘텐츠를 업스케일링하고 좀 더 8K에 가깝게 즐길 수 있도록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화질 최적화 프로세스를 TV에 탑재했다. 삼성전자의 ‘퀀텀 프로세서 8K’와 LG전자의 ‘알파9 8K’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는 8K TV의 성능을 온전히 즐기기 위한 근본적인 방법이라 할 수는 없으니, 제대로 된 8K 콘텐츠는 여전히 아쉬운 상황.
영화계 한 관계자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돈을 들여 제작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도 아직은 주로 3K~4K 화질의 디지털 시네마 카메라로 촬영되며,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하는 극소수의 영화를 제외하면 8K 이상의 카메라로 촬영되는 영화는 드물다. 대부분의 극장이 여전히 2K~4K 프로젝터로 영화를 상영하는 환경이기 때문이며, TV 시장도 이제야 4K TV가 대중화되는 추세이기 때문이라는 것.
이는 방송 환경에서도 마찬가지로, 국내 지상파 3사가 UHD 본방송을 개시한 것은 2017년 5월 31일로 불과 2년 전이며, 아직도 4K UHD로 제작되는 방송은 아직도 KBS의 일부 교양프로그램(다큐멘터리)에 국한되다시피 하다. 그러니 8K 방송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업계는 2020년 도쿄 올림픽 생중계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8K 콘텐츠 확대가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8K로 생중계한다는 계획하에 NHK가 지난해 12월 위성방송을 통해 세계 최초로 8K 시범방송을 시작했다. 중국도 2022년 2월 개막하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맞춰 8K 방송을 선보일 계획이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와 KT스카이라이프가 지난 7월 26일 8K 위성방송 시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KT스카이라이프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천리안 위성을 이용해 송출한 8K영상을 안테나에서 수신, 디코딩한 후 삼성 QLED TV로 실시간 전송하는 방식의 시범방송에 성공한 것이다.
8K 생태계 확립이 우선…“모두 머리 맞대야”
8K 콘텐츠는 늘어난 화소수 만큼 전송되는 콘텐츠의 용량도 크기 때문에 영상의 압축 및 전송에 관여되는 모든 단계에서 기존보다 높은 효율이 요구된다. 이에 이번 8K 위성방송 시범방송에서는 초당 100Mbps급의 방송 송수신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광대역 데이터 전송에 용이한 고주파 대역(20~30GHz)에서 고효율 영상 압축방식인 H.265 표준 기반으로 이루어졌고 HDMI 규격 또한 이에 대응하는 최신 규격을 사용했다.
8K TV는 이처럼 전과 다른 새로운 생태계를 필요로 하므로, 제조사끼리 경쟁한다고 해서 시장이 확대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 삼성전자는 올해 초 파나소닉, 하이센스, TCL, AUO 등 TV 제조사를 중심으로 8K 협의체를 출범하고, 새로운 기술개발 및 표준화 등 8K 생태계 확장을 위한 기술 협력과 콘텐츠 확보 등의 공동 추진에 나섰다.
출범 이후 약 반년이 지난 현재 더욱 다양한 업체들이 이 협의체에 참여하고 있으며, 7월 본격적으로 8K TV를 출시한 LG전자도 8K 콘텐츠 표준 규격 등이 만들어진 이후 협의체 참가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