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가 쏘아 올린 ‘일본산 불매 운동’이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 아베 정부의 경제도발로 촉발된 불매 운동 초반, 일본 브랜드를 구매하지 않는 것에서 현재는 일본산 ‘원료’까지 꺼리는 소비자들이 늘어났다. 국내 화장품업계 역시 ‘반일’ 불똥이 튈까 걱정하는 모양새지만, 일각에선 오히려 일본 의존도를 낮추고 100% 국내산 화장품으로 ‘전화위복’할 기회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고조되는 불매, 화장품도 예외 없다
소비자들 “日산 안 쓸래요”
# 2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불거진 반일 운동에 적극적이다. 직접 반일 시위에 나서거나 과격한 행위는 하지 않지만, 생활 속 반일 실천에 집중한다. 그의 무기는 단연 SNS와 인터넷이다. 인터넷을 통해 일본 브랜드 혹은 일본산 원료를 사용한 제품 정보를 공유하고, ‘반일’과 관련된 정보는 SNS 해시태그로 기록한다.
A씨는 “일본 브랜드 특유의 담백한 감성을 좋아해서, 의류 브랜드나 생활용품 브랜드를 애용했었지만 최근 ‘손절’했다. 물론 영원히 불매하겠다는 것은 아니나, 일본의 부당한 조치에 맞서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나아가 일본 원료가 사용됐는지도 확인하고 구매 여부를 가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장기전으로 접어들면서, 화장품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 일본 화장품 매출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주요 백화점 3사에서 SK-Ⅱ, 시세이도, 슈에무라 등 일본 화장품 매출이 20% 감소했고, 올리브영·랄라블라·롭스 등 헬스앤드뷰티(H&B) 스토어에서도 한 자릿수 감소했다.
A백화점의 지난달 1~25일 SK-Ⅱ, 시세이도 등 일본 화장품 매출은 작년 동기 대비 20%가량 줄었다. B백화점도 같은 기간 SK-Ⅱ는 23%, 시세이도는 21%, 슈에무라는 15% 매출이 감소했다. C백화점 역시 일본 화장품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20%가량 떨어졌다.
韓, 일본 원료 수입 24% 달해
화장품 업계 “불똥튈까 염려”
일본산 브랜드 피해에 반사이익을 보는 국내 기업 사례도 있지만, 화장품 회사들은 ‘불똥 튈까’ 비상이다. 생산을 한국에서 할지라도, 일본 원료를 쓰는 경우가 많아서다.
자외선 차단제에 들어가는 이산화티타늄, 세안제에 사용되는 부틴렐글라이콜, 마스크팩 시트 는 일본산에 의존하는 대표적인 원료다. 이 가운데 이산화티타늄은 국내 대체 원료가 없어 대부분 일본산을 사용한다.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이 일본에서 수입한 화장품 원료는 1억 3489만 달러(약 1636억 원)로, 전체 수입 물량 중 23.5%를 차지했다. 이마저도 지난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소비자들의 원료 불안감이 커지면서 의존도가 크게 낮아진 수치다.
불매 운동, 오히려 반등 기회?
국내업체들·정부까지 ‘원료 국산화’ 집중
뷰티 업계의 일본산 원료 수입 비중은 더욱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화장품 회사들의 원료 연구와 더불어 정부까지 나섰기 때문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일본 원료 대체에 적극적이다.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을 통해 알부틴을 대신할 미백 기능성 소재를 개발, 제품에 적용하고 있다.
이 회사가 개발한 미백 원료는 멜라솔브, 닥나무추출물, 유용성감초추출물, 셀레티노이드, 흰감국추출물, 삼백초추출물, 백화사설초추출물 등이다. 닥나무추출물과 흰감국추출물은 한국 토종 식물 닥나무와 감국(약용 국화)에서 발견했다.
LG생활건강 측은 “일본, 미국, 중국 등에 현지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므로 선크림 등 화장품의 국내외 공급 및 사업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연구·개발 생산 전문업체 코스맥스는 자체 연구소를 통해 화장품 핵심 소재를 개발, 일본 원료 비중을 전체 10%까지 낮췄다. 자외선 차단제 제조에 필요한 기술을 확보했고, 국내에서 사용되는 일본 원료 대부분이 계면활성제라는 점에 주목, 신규 계면활성제를 개발했다.
최근 물의를 일으켰던 제조생산 업체 한국콜마도 일본 SK-Ⅱ 피테라 에센스에 들어가는 곡물 발효 성분과 이산화티타늄 분말을 대체할 수 있는 징크옥사이드를 자체 개발한 바 있다.
한편 정부는 지난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11차 사회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교육·사회 분야의 일본 수출규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참석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약품과 화장품 원료의 상당한 부분을 일본에서 수입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의약품안전공급협의체를 구성하고 상황별 매뉴얼을 만드는 등 안정적 공급을 위해 면밀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