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도기천 기자) 국회 정무위 법안소위에서 ‘P2P 금융법’ 제정안이 통과되면서 개인 간 금융거래 시대가 활짝 열리게 됐다. 이 제도는 박근혜 정부 시절 청년벤처 자금지원책의 일환으로 추진됐지만 여러 곡절을 겪으면서 수년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법 통과 직후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이 ‘만세’를 부를 정도로 재계의 숙원이었다. P2P는 금융시장에 어떤 파란을 몰고 올까.
국회 정무위는 지난 14일 법안심사1소위원회에서 ‘P2P법’을 의결했다. 조만간 법사위 의결을 거쳐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2017년 7월 처음 법안이 발의된 이후 모두 5개의 관련 법안이 올라와 있었는데 이날 병합 심사를 거쳐 1개의 단일안(통합안)이 통과된 것. 금융당국이 처리가 시급하다고 꼽은 8개 금융 법안 중 하나인 만큼 본회의 통과가 확실시되고 있다.
개인 대 개인 간 거래를 뜻하는 P2P(Peer to peer)는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대출을 받거나 투자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대표적인 형태는 ‘대출형 크라우드펀딩(crowd funding)’이다.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해 중소사업자나 개인이 다수의 소액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가령, A기업이 기존보다 성능이 우수한 태양열 집열판을 개발했는데 생산자금이 부족하다고 치자. 이럴 때 온라인에 새로운 집열판의 성장 가능성을 소개하고 개인들로부터 투자금을 받는다. 투자자에 대한 수익배분은 주식배당, 생산수익에 따른 이익배분, 단순 금리제공 등 다양한 형태가 제시될 수 있다. 투자자 또한 몇십만원에서 몇천만원까지 다양한 단위로 베팅이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플랫폼 운영자는 일종의 중개인 역할을 한다. 기업 실사를 통해 재무상태, 미래가능성 등을 공개하고 사이트 이용권한을 부여한다. 물론 기업과 투자자 모두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다.
주먹구구 P2P에 사라진 ‘청년희망’
P2P는 국회 논의가 있기 전부터 음으로양으로 발전해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5년말 27개에 불과하던 P2P 업체는 지난해 9월 기준 205개로 무려 659%나 급성장했다. 같은기간 수백억원대에 불과했던 대출액 규모도 4조원(누적기준)을 넘어섰으며, 개인 투자자도 25만명을 웃돈다.
특히 P2P는 박근혜 정부 때 ‘청년희망펀드’와 접목되며 크게 주목받은 바 있다. 당시 정부는 청년들이 제안하는 사업을 크라우드펀딩 방식으로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투자금을 필요로 하는 청년사업가가 관련정보를 사이트에 올리면 불특정 다수의 개인이나 기업이 다양한 금액을 투자하는 시스템이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이에 상당한 애착을 가졌다. 2016년 신년 정부 업무보고에서 “크라우드펀딩이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빈틈없이 지원해 달라”고 주문하는가 하면, 같은해 6월 국회 개원 연설에서는 “크라우드펀딩은 창업 기업의 자금 원천”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를 주도할 ‘청년희망재단’ 출범 때는 후원금 기부가 줄을 이었다. 박 대통령의 일시금 2000만원 기부를 시작으로, 유명인들의 후원이 봇물을 이뤘다.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 황우여 당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김상열 광주상의 회장(호반건설 회장) 등 정·재계 인사들의 기부행렬이 이어졌고, KB국민, 신한, 우리, 농협은행에 기부금 모집 창구가 개설됐다.
기업인들이 낸 자금은 수백억원에 달했으며, 박 대통령은 매달 월급의 20%를 떼어 후원했다. 2016년 1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 출범한 후 6개월 동안 64건(전체건수의 48%)이 펀딩에 성공하는 등 실제 성과도 나쁘지 않았다.
당시 여권에 몸담았던 한 정치권 인사는 CNB에 “중소·벤처 기업이 은행권 도움 없이 투자자를 상대로 직접 프로젝트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창조경제의 마중물로 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박용만 회장 환호 “왜”
하지만 P2P는 횡령이나 사기 등에 취약해 부작용이 더 컸다. 행정지도에 불과한 가이드라인과 대부업법을 통한 간접적인 규제가 전부다 보니 투자자들에 대한 보호책은 사실상 전무했다. 투자금 미회수율(연체율)도 7%대를 넘어 금융피해가 급증했다.
실제 1세대 P2P 선두주자였던 한국금융플랫폼은 2016년 9월 회사창립 10년 만에 문을 닫았다. 당시 자회사인 오퍼튠과 머니옥션에 돈을 맡긴 개인투자자들은 수천명에 달했다. 투자금을 돌려주지 않고 회사 관계자들이 잠적하면서 크라우드펀딩 시장은 큰 충격에 빠졌다.
지난 3월에는 투자자 6800여명으로부터 162억원을 가로챈 P2P 대출업체 대표가 검찰에 구속기소되기도 했다. 수년간 대출상품의 담보를 확보한 것처럼 속이거나 허위대출 상품을 게시해 투자자를 현혹한 혐의(사기,횡령 등)를 받고 있다.
이에 재계는 투자자 보호와 관련산업 발전을 위해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꾸준히 주장해 왔다. 2017년 7월 처음 관련 법안이 발의되긴 했지만 당시는 문재인 정부가 촛불시위를 통해 막 집권한 떼였다. 과거 정권의 잘못을 청산하던 시기다 보니 박근혜정권이 밀어붙였던 클라우드펀딩 관련법안은 여권의 관심 밖이었다.
이런 가운데 2년이 지나 이번에 법안소위를 통과했기에 재계는 고무된 분위기다.
법안에는 중개업체(플랫폼사업자)의 자격요건을 자기자본 5억원 이상으로 하고 법적 지위를 부여했으며, 투자자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금융사 투자를 대출 한 건당 최대 40%까지 받을 수 있도록 했으며, 개인투자한도도 현재보다 높였다. 한마디로 사각지대에 놓인 사금융을 공적 영역으로 끌어낸 것이다.
법안 통과 직후 ‘만세’를 불렀다는 박용만 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민병두 국회 정무위원장을 비롯한 정무위 소속 의원들을 한명한명 언급하면서 “업어드리겠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박 회장은 여러번 국회를 찾아 P2P법 통과를 촉구한 바 있다. 그는 “젊은이들(청년사업가)을 볼 때 조금 덜 미안해도 되고 희망을 얘기할 수 있게 됐다”고 감격스러워했다.
하지만 금융시장에서는 1,2금융권 간에 미묘한 온도차가 감지된다.
제1금융권에 속하는 시중은행(KEB하나은행·KB국민은행·NH농협은행·IBK기업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SC제일은행·한국씨티은행·수협은행 등)은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다. 크라우드펀딩은 은행 문턱을 넘기 힘든 이들이 이용하는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사업영역이 겹치지 않기 때문.
이제 ‘첫발’…갈길 험난
시중은행 관계자는 CNB에 “여신 분야가 다른데다 금융시장의 판이 커진다는 점에서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벤처·소호 기업들이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은 자금을 활용해 성장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1금융권을 이용할 것이고 그리되면 은행과 기업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산업 전반에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저축은행·대부업계는 내심 경계하는 분위기다. P2P를 통해 2금융권보다 싼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고객을 뺏기는 셈이 되기 때문.
정세현 금융컨설턴트(인하대 겸임교수)는 CNB에 “차입자들이 7~10% 정도의 금리로 자금을 유치할 수 있어 평균 10%를 훌쩍 넘는 저축은행·대부업을 이용할 필요가 없게 된다”며 “2금융권이 타격을 입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말했다.
이처럼 표정이 엇갈리는 가운데 금융시장에 안착하려면 상당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신중론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CNB에 “주요선진국의 P2P금융은 모두 정부의 철저한 관리감독 하에 발전해왔다. 미국, 영국 등은 투자자 모집 시 관련법에 따라 당국의 승인을 받은 뒤 수수료와 이자율 등을 공시하게 돼 있다”며 “우리는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데다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법령이 미비한 점이 많고, 과거 부정적인 사례들 때문에 국민인식이 좋지 않아 (제도가) 안착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