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안산에 사는 A씨(72)는 건물 임대 수익료로 노후 생활비를 충당한다. 소위 말하는 ‘갓물주’(건물주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의미로, 건물주를 신으로 빗대어 표현한 말)지만, 최근 들어 세입자들과의 갈등이 종종 발생한다. 계약 만기로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시점이 주된 갈등 상황 중 하나다. 젊은 임차인들은 모바일뱅킹을 통해 실시간 입금을 원하지만, 비대면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A씨는 창구나 자동화기기(이하ATM)에 방문해야만 금융 거래를 할 수 있어 실시간 입금이 어렵기 때문이다. A씨는 “젊은 임차인들은 모바일뱅킹으로 보증금 돌려달라고 많이 말하지만, 나는 그런 거 모른다. 노인들 대부분 그럴 것”이라며 “문자 보내고 전화하는 것만 겨우 하는데, 핸드폰으로 돈을 거래하는 것은 복잡할 뿐더러 신뢰도 안 간다. 돈 돌려받을 임차인도 애가 타겠지만, 우리도 시간 맞춰서 입금하려면 창구나 ATM에 방문해야 해서 쉽지 않다. 노인들을 위한 금융서비스나 대책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모바일을 빼놓고 논할 수 없는 시대이다 보니 금융계도 비대면이 대세다. 하지만 많은 노인들은 불편함을 호소한다. 스마트뱅킹을 중심으로 실시간 금융 거래 환경이 조성되면서 대면 거래에 익숙한 노인들은 ‘디지털 소외’ 현상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업계는 대책 마련에 고심이지만 노인들이 체감할 정도는 아니다. 고령자 금융 디지털 소외 현황과 해소를 위해 노력하는 금융계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모바일 뱅킹, 노인 10명 중 9명 “이용 안 해”
한국은행이 지난해 10~12월 19세 이상 성인 259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모바일 금융서비스 이용 행태 조사’에 따르면, 모바일뱅킹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노인은 10명 중 1명 이하였다. 70대 이상 응답자 중 일반은행의 모바일뱅킹 서비스를 최근 3개월 이내에 이용했다고 답한 이는 6.3%에 불과했다.
이는 30대 87.2%, 40대 76.2%가 ‘이용했다’고 응답한 것과 크게 대비되는 수치다. 50대까지만 해도 이 비중은 51.0%로 과반을 유지했지만, 60대에선 18.7%로 떨어지는 등 고령으로 갈수록 이용률이 급감했다.
70대 이상 고령층이 모바일 금융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다고 답한 이유는 ‘들어본 적이 없다’(58.8%)는 응답이 가장 많았으며, 복잡한 금융상품 설명(20.0%), 불편한 가입 및 이용절차(10.6%) 등의 이유가 뒤를 이었다.
반면 노인들이 비교적 이용이 쉬운 대면 영업장이나 자동화기기는 갈수록 줄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15년 9월 말 전국에 총 7186개로 정점을 찍었던 국내 은행의 국내 영업점포(지점·출장소 포함)는 올해 6월 말 6743개로 급감했다. ATM 증발 속도는 더 가파르다. 국내 은행의 ATM 개수는 지난 2015년 12월 5만 793개를 기록했으나, 올해 6월 말 4만 1446개로 3년 반 사이 9347개가 사라졌다.
금융권 고령자 맞춤형 개선책 ‘한계’ 분명
고령층 금융 소외의 또 다른 문제점은 모바일 우대가 보편화 되면서 예금 우대금리나 수수료 할인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각종 보험사기 등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에 KEB하나은행은 지난 2017년부터 고령자 전용 ‘행복동행 금융창구’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 8월부터는 ‘문자통역 시범서비스’를 시작했다. 문자통역 태블릿 PC가 은행 직원의 목소리를 실시간으로 문자로 변환해 청력 감퇴로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고객을 돕는다.
관계자는 “현재는 경기도 용인 기흥구 소재 실버타운에 입점한 ‘삼성노블카운티 PB센터’를 테스트 점포로 운영 중이며, 약 3개월간의 시범서비스가 끝나면 고객들의 반응 및 개선사항을 반영해 고령층 손님이 많은 주요 지역 거점 점포로 서비스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우리은행은 지난 2017년 음성인식 기반 AI 뱅킹 ‘소리(SORI)'를 선보였다. 음성명령만으로 송금·이체, 환전, 계좌조회, 공과금 납부 거래 등을 음성명령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복잡한 버튼 없이 목소리만으로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다.
고령층 특화 모바일 앱을 내놓는 경우도 있다. KB국민은행은 시니어 고객을 대상으로 별도의 앱인 ‘골든라이프뱅킹’를 운영 중이다. 고령층을 위해 간편한 화면 구성과 확대된 글씨체 등 맞춤형 모바일 환경을 제공한다.
신한은행은 시니어 고객이 모바일뱅킹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모바일 사용설명서’를 동영상으로 제작·배포했다. ‘모바일뱅킹 쏠(SOL) 설치편’을 비롯해 모바일 뱅킹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송금하기’ 방법, ‘큰 글씨체로 화면 설정 변경하기’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이 같은 개선책이 노인들의 실상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다수의 고령층이 모바일뱅킹 자체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은행업계 관계자는 “스마트뱅킹 위주로 금융 환경이 변화하다 보니, 창구를 늘릴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업계는 고령층 금융교육, 특화점포 및 앱 운영 등으로 개선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고령층 고객을 위한 업계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스마트폰을 소지한 어르신들의 참여와 비대면 거래도 안전하다는 인식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