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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자문 제도 놓고 논란 왜?

“보험사·병원 담합” 등 시비 … 할 수도 안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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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56호 이성호 기자⁄ 2019.11.04 09:35:12

보험사들이 행하고 있는 ‘의료자문’에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이성호 기자) 과잉청구나 보험사기를 막기 위해 도입된 의료자문제도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보험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료자문이란 생명·손해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피보험자(소비자)의 질환에 대해 전문의의 소견을 묻는 것을 말한다.

보험계약자(보험수익자)가 질병 또는 사고 시 진단서 등을 첨부해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보험금 지급사유에 해당되는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 보험사는 자체 비용으로 위촉한 전문의사(자문의사)에게 의료자문을 구한다.

이러한 절차가 존재하는 건 기본적으로 과잉청구나 보험사기를 막기 위함이지만 문제는 부작용이다. 보험소비자가 제출한 진단서 등에 대해 객관적인 반증자료 없이 보험사 자문의 소견만으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삭감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실제로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흥국생명, 신한생명, 농협생명, 현대라이프, KDB생명, ABL생명, 오렌지라이프, AIA생명, 라이나생명, 미래에셋, DGB생명, DB생명, 푸르덴셜, 메트라이프, 동양생명, 처브라이프, 하나생명, BNP파리바, KB생명, 교보라이프 등 생보사가 보험금 지급 심사를 위해 의료기관에 자문을 의뢰한 10건 중 6건 이상은 자문 결과를 근거로 청구보험금 일부 또는 전부를 주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태규 의원(바른미래당)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생명보험회사별 의료자문 결과 현황’에 의하면 지난해 생보사의 의료자문 의뢰 건수는 총 2만94건인데 이 중 부지급건이 1만2510건에 달했다.

또한 삼성화재, 현대해상, 한화손보, KB손보, 롯데손보, 메리츠화재, 흥국화재, DB손보, 에이스손보, 악사손보, 더케이손보, 농협손보, AIG손보, MG손보, BNP파리바 등 손해보험회사의 지난해 의료자문 의뢰 건수는 총 6만7373건이었으며, 부지급 건수는 1만8871건(28%)에 달했다.

보험사 한 관계자는 CNB에 “보험계약자가 청구한 건에 대해 과잉청구 및 약관에 따른 지급 대상인지 판단하기 어렵거나, 질병인지 상해인지 불명확할 경우 등에 대해 의료자문을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질병보다는 상해의 보험금 규모가 큰데, 예를 들어 운전 중 사고가 났다면 상해로 처리해 보험금을 지급해야하지만 의료자문 결과 원인이 질병인 심장마비였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손해율을 낮출 수 있다.
 

팔이 안으로 굽나

물론 보험사들이 의료자문을 통해 심사한 결과, 지급사유에 해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수만은 없는 정황들이 포착되고 있다.

특정병원 쏠림 현상이다. 2014년~2018년까지 생보사의 의료자문 의뢰 건수 1위는 인제대상계백병원으로 1만2105건으로 집계됐다. 이어 고려대 안암병원 1만839건, 서울의료원 9162건, 한양대병원 6749건, 여의도성모병원 6607건 순이었다.

손보사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기간 의료자문 의뢰 상위 5개 병원의 의료자문건수를 보면 한양대병원 1만9972건, 이대목동병원 1만8952건, 인제대상계백병원 1만7816건, 중앙대병원 1만2180건, 강남세브란스병원 1만1792건으로 특정 의료기관에 집중됐다.

전재수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금융감독원과 손해보험협회로부터 제출 받은 보험사별 의료자문 현황 자료에서도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난다.

A의사는 2018년 한 해에만 보험사로부터 총 1815건의 의료자문을 요청받아 약 3억5093만원의 의료자문 수수료를 받았고, 같은 기간 B의사는 보험사 1곳으로부터 총 618건의 의료자문에 대한 1억1662만원의 자문수수료를 수령했다. C의사 또한 특정 보험사로부터 566건의 의료자문에 대해 1억1355만원의 수수료를 챙겼다.

진찰 등 환자와 대면하지도 않고 자료만으로 작성된 이 같은 자문의사 소견서에는 자문병원과 자문의 정보 등이 공개되지 않아 보험계약자들은 일방적인 결과를 통보받게 된다.

보험사로부터 자문료를 받는 이상 의료자문은 보험계약자가 아닌 보험사에 유리한 판단을 하기 쉬운 구조임에도, 소비자들에게 불신을 해소할 수준의 정보가 제공되는 것도 아니어서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개선책이 오히려 개악?

이처럼 보험소비자보다 보험회사에 편향돼 불공정성에 휘말린 ‘의료자문제도’. 개선책은 없을까.

일단 금융위원회는 소비자 알 권리 보호가 미흡하다는 판단으로 설명의무에 초점을 둔 ‘보험업감독규정’을 이달 초 개정했고, 내년 1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의료자문을 받을 때 그 사유 등을 안내하고, 자문결과를 보험사가 인용해 보험금을 감액 또는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경우에는 자문결과 등에 대해 설명토록 강제화했다.

하지만 방안을 내놓자마자 오히려 역풍을 맞고 있다.

장병완 의원(대안정치연대)은 “이 같은 조치는 문제의 근본을 개선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보험사가 의료자문제도를 보험금 감액근거로 삼도록 양성화한 개악”이라며 “핵심은 법적 효력이 있는 의사 진단서를 무시하고 단순 참고자료인 의료자문으로 피보험자의 보험료를 삭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료자문제도를 양성화해 외려 보험가입자 피해가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장 의원은 “제대로 된 개선은 ‘의료자문으로 보험금 지급을 삭감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명확히 규정한 보험감독규정으로 재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금융당국은 이같은 지적에 대해 당황하며, 소비자 보호라는 본래 취지에 맞도록 재손질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혀 추이는 지켜볼 일이다.

 

한편, 국회에서도 의료자문제도와 관련한 법안이 계류돼 있다.

이태규 의원이 지난해 10월 대표발의한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의료자문 시 보험계약자에게 심사 기관의 명칭, 심사의 상세 내용 및 그 결과를 설명토록 했다.

특히 의료자문 결과에 따라 보험금의 감액 또는 지급 거절을 하려는 경우에 해당 의료자문 기관이 피보험자를 직접 면담해 심사토록 명시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에 의하면 자문의의 면담 의무화는 민원 발생 우려 등으로 인한 의료자문 기피, 직접 면담에 따른 보험금 지급절차의 지연, 피보험자의 거동 불편·면담 거부 등으로 인한 실시 곤란 등 실무상 어려움이 야기될 수 있다.

생명보험협회·손해보험협회에서는 자문기관 명칭 등의 공개로 인한 자문의의 개인정보 노출 위험 및 이로 인한 의료자문 기피 가능성이 높다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또한 다른 의료자문제도와의 형평성 문제, 의료자문제도 운영의 어려움, 대면심사의 실효성 문제 등을 이유로 대면심사 의무화에 반대하고 있다.

금융위는 의료자문 관련 면담의무는 국민건강보험의 요양급여비용 심사, 국민연금의 장애연금 심사, 산업재해보상보험의 장해등급 결정 등 공보험의 경우 자문의의 면담을 의무화하고 있지 않다는 점, 실무상 의료자문제도의 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보험업계 및 의료계의 충분한 의견 수렴을 통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분쟁조정 적극 나서야”

이밖에도 국회에는 의료자문에 응한 사람의 성명과 소속기관 및 의료자문의 결과를 해당 피보험자 또는 보험금을 취득할 자에게 서면으로 알리도록 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전재수 의원 2019년 8월 대표발의)’도 제출돼 있다.

한편, 이처럼 제시되고 있는 여러 방안들이 근본적인 개선책이 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오중근 재해보상지원센터 본부장은 CNB에 “과거 금융당국에서는 보험사들의 자문의 소견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차차 관행적으로 통용되고 있다”며 “설명의무, 면담, 실명제 등 도입은 외려 보험사의 일방적인 의료자문을 정당화·합법화시키는 수단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보험소비자 권익보호’는 커녕, 사실 보험사만 웃게 될 것이라고 평가절하한 것.

오 본부장은 “누구나 보험을 가입하면 과소·과대지급 없이 필요할 때 적정한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개혁”이라며 “금융당국에서 손보려는 의지가 있다면 의료자문 회신자료를 전수 조사해 타당성 등 문제가 없는지 통제만 해도 악용 사례는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보험계약자가 제출한 진단서와 보험사 측의 자문 소견이 다를 경우 금융당국에서는 제3의 병원에서 감정을 받을 수 있다고 뒷짐만 지고 있을 게 아니라, 중립적인 ‘의료자문분쟁조정원’을 설치해 그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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