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시장에서 NC소프트의 리니지 형제를 이기는 것은 한동안 거의 어려울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런데 리니지의 장기 집권 기록을 깨고 들어온 게임이 있었다. 리니지보다 더 오래된 이름을 갖고 있는 게임, 넥슨의 MMORPG(대규모 다중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바람의 나라 연’이었다.
그동안 소위 ‘리니지’ 형제의 구글플레이 매출 순위 기준 상위 집권은 넘볼 수 없는 장벽으로 여겨졌다. 지난해 12월 이후 리니지 형제 외에 1, 2위 안에 들어온 게임은 없었다. 업계에서는 “매출 기준 최고 순위는 3위”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그런데 넥슨이 7월 15일 출시한 ‘바람의 나라 연’이 ‘리니지2M’을 누르고 7월 22일부터 8월 1일까지 2위에 오르면서 파란을 일으켰다.
20년 전 도트 그래픽 게임, 왜 시장에 먹혔을까
바람의 나라 연은 1996년작 PC MMORPG ‘바람의 나라’를 모바일 환경과 최신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한 게임이다. 첫 공개 직전까지는 과거 바람의 나라 이용자의 향수를 자극하는 수준의 게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실제로 그래픽은 과거를 떠올리는 '2D 도트 그래픽'(‘DOT’는 점을 뜻한다. 즉 일부러 해상도를 낮아 보이도록 디자인 한 그래픽 환경을 뜻한다)을 연출해 최신 트렌드와 역행하는 듯 했다.
하지만 출시 이후 바람의 나라 연에 몰리는 유저들은 업계의 전망을 추월했고, 출시 하루만에 다운로드 수 100만 건을 돌파했고, 12일 만에 누적 다운로드 260만 건를 돌파했다. 이후 구글플레이에서 매출 2위에 올랐고, 애플 앱스토어와 원스토어에서 매출 1위를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이같은 성과를 두고 업계에서는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의 ‘초격차’ 전략을 언급하는 이들이 많다. 이 대표가 지난 1월 신년사에서 “올해는 우리가 가진 라이브 서비스 역량에 더 투자해 ‘초격차’를 만들어 내보려 한다”고 말한 데서 온 것으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소수의 게임을 확실하게 다른 게임들과 차이가 나도록 만들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실제로 넥슨은 PC 온라인게임 ‘아스텔리아’ 서비스를 종료했고, 모바일 게임 ‘야생의 땅: 듀랑고’ 등 다수의 게임들을 잇달아 접었다. ‘드래곤하운드’ 등 신규 게임 개발 프로젝트 5개도 중단했다. 대신 확실한 소수의 게임에 확실하게 집중하며 모험 대신 완성도 높은 게임을 만들어내는데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꼼꼼히 뜯어보면 단순히 잘 만든 게임이어서만이 아니라 리니지 형제와는 다른 계층을 노리는 영리한 포지션, 그리고 선을 넘지 않는 과금 정책이 인기를 뒷받침 하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리니지와는 타깃이 다르다?
우선 기존 인기 게임들과는 다른 수요층을 공략하는 영리함이 두드러지고 있다. 예를 들어 리니지의 경우 소위 ‘린저씨’라고 불리는 30~40대 남성층이 주 고객이다. 이들 린저씨는 구매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데다,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지갑을 여는데 인색하지 않은 계층으로 꼽힌다.
반면 바람의 나라 연의 경우 오히려 20~30대에 어필하고 있으며, 여성 게이머들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바람의 나라 연의 전체 이용자 중 20대 비중이 무려 43%에 이르며, 특히 20대 여성(12.8%)의 경우, 30대 남성(10.2%)보다 오히려 더 강한 선호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단순히 과거 IP를 잘 활용, 올드 게이머들을 끌어 들였다기 보다는 과거에 성공한 사례를 끌어들이되, 최근 조류에 잘 영합한 게임들을 내세운 것이 넥슨의 성공 비결로 꼽히고 있다.
실제로 넥슨 관계자는 바람의 나라 연이 인기를 끄는 비결에 대해 “가장 큰 요인은 아무래도 25년 이상 서비스해온 넥슨 최장수 인기 온라인RPG ‘바람의나라’ IP(지적재산권)를 꼽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최근 뉴트로 유행에 부합하는 아기자기한 도트 스타일 그래픽을 활용한 모바일 MMORPG가 시장에 없었다는 점 또한 IP적인 매력을 제외하고도 '바람의나라: 연'의 인기 요소로 작용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고 답했다.
영리한 과금 정책, ‘무과금’도 할 만 하게
과금 모델의 차이점도 주목할 만 하다. 바람의 나라 연의 경우 언뜻 보기엔 과금 모델이 다른 게임들에 비해 더욱 과격해 보인다. 특히 초기에는 14일간 사용할 수 있는 유료 패키지 아이템 구성에 대한 비난이 나왔다. 최근 게임들이 1달을 기준으로 유료 아이템을 판매하고 있다는 점에 비춰보면 유저들의 부담이 커보였던 것이다.
여기에 환수 뽑기도 비난의 대상이 됐다. 게임 중 환수는 크게 3가지로 구분되는데, 가장 인기있는 변신 환수가 가장 인기가 높고, 탑승 환수는 인기가 다소 떨어진다. 하지만 환수 뽑기는 3가지가 묶여 있다. 즉, 원하는 환수를 뽑을 수 있는 확률이 매우 낮다. 여기에 장비 강화도 과금 요소가 부담되는데, 일정 이상의 강화는 실패 시 단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유저들은 과금요소의 부담을 덜 느끼게 됐다. 이유는 랭킹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빠른 성장속도를 포기한다면 과금을 하지 않더라도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있어서다.
과금의 부담을 덜어주는 요소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돈이 많이 들어가는 환수나 장비 강화에 매달리지 않아도 도감 등을 통해 게임 진행이 가능한데다, 퀘스트를 잘만 따라가면 레벨업은 비교적 쉽다는 점이다. 두번째 요소는 파티플레이다. 혼자서는 막혔던 부분도 파티플레이로 해결 가능하다는 것이 바로 바람의 나라 연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기존 MMORPG의 경우 일정 이상 레벨이 오르면 과금 없이 게임을 진행하기 어려워진다는 문제점이 있었는데, 이 부분을 어느 정도 해소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즉, 이제까지의 게임이 소수 유저들의 과금에 매달리는 점이 컷 면, 넥슨의 다수 유저들을 확보하면서 무과금 유저와 과금 유저들이 어느정도 어우러지면서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한 점이 오히려 매출 상위권에 안착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할 수 있다.
넥슨 관계자는 바람의 나라 연의 특징으로 “MMORPG의 가장 중요한 콘텐츠 중 하나인 그룹사냥의 묘미를 강조했다. 원활한 파티 매칭을 위한 UI와 유저 간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하기 위한 오픈채팅, 그룹 채팅 등 커뮤니티 요소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솔로 플레이로 돌파하기 어려운 구간을 그룹 사냥을 통해 원활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 밸런스도 그룹 사냥의 매력을 한층 더해주는 요소”라며 위와 같은 요소가 어느정도 기획된 것임을 밝혔다.
이어 과금 요소에 대해 “성장을 목표로 하는 RPG에서 시간이 부족한 분들이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많으신 분들과 함께 즐겁게 게임을 즐기실 수 있도록 다양한 구성의 패키지를 제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바람의 나라 연’ 성공, 우연이 아니다
이같은 넥슨의 전략이 우연히 들어맞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넥슨은 5월 12일 출시한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로 MMORPG가 아닌, 캐쥬얼 게임으로서 유일하게 10위권 안에 진입하고 있는데, 바람의 나라 연과 비슷한 전략으로 유저들에게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이 게임은 여성 이용자의 비율이 남성 이용자보다 높으며, 특히 3040 여성이용자의 비중은 전체의 무려 2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과금 요소도 과금 유저와 무과금 유저의 격차를 그리 크게 두지 않는 선으로 유지하고 있다. 유저들 사이에서는 실력이 게임의 승패를 가르는 비중이 약 80 대 20 정도로 여겨질 정도다. 물론 최상급 카트는 과금을 해야 얻을 수 있는 카트가 차지하고 있지만, 현재 기준으로 ‘제노’, ‘솔라’, ‘펜더카트’ 등 쓸 만한 카트가 많다.
넥슨이 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아직도 많다. 조만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는 게임으로는 ‘던전 앤 파이터’의 모바일 버전이 있다. 원작인 PC온라인 게임 ‘던전 앤 파이터’가 중국에서만 연간 1조원 이상의 매출을 거두는 등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다, 모바일 사전예약자 수가 6000만 명에 달하고 있어 게임의 완성도만 높다면 PC판 이상의 흥행을 이끌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여기에 바람의 나라와 함께 클래식 RPG로 꼽히는 ‘어둠의 전설’, ‘일랜시아’, ‘아스가르드’, ‘테일즈위버’가 있으며, ‘마비노기’, ‘서든어택’, ‘카운터 스트라이크 온라인’, ‘크레이지아케이드’, ‘테일즈 러너’, ‘프리스타일’ 등 보유하고 있는 IP가 상당히 많다.
특히 마비노기는 과거 충성도가 높은 여성 이용자의 비율이 높았기 때문에 모바일 버전을 기대하는 유저들이 적지 않아 ‘던전 앤 파이터’ 이후 모바일 버전이 출시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2018 지스타에서는 시연 버전을 선보이기도 했고, 지난 2월에는 제작사인 데브캣(마비노기를 개발한 넥슨 산하 스튜디오) 공식 SNS에 “앞으로 마비노기 모바일의 소식을 전하겠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한 바 있다.
넥슨 측은 최근 보도자료에서 “원작 온라인 ‘테일즈위버’의 탄탄한 스토리와 핵심 콘텐츠를 앞세운 ‘테일즈위버M’, 판타지 세계에서 캠프파이어, 채집, 아르바이트, 사냥, 연주 등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마비노기 모바일’ 등 넥슨의 내로라하는 IP들이 모바일게임으로 재탄생을 앞두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코로나19 확산 이후 게임업계 전체 매출이 크게 성장하는 분위기지만, 특히 넥슨의 경우 세계 최대 게임 시장인 중국에서의 성과까지 더해진다면 올해 매출 3조 원을 넘어 4조 원 돌파도 가능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참고로 지난해 바람의 나라 연과 카트라이더 러쉬 플러스가 출시 전인 넥슨의 연간매출은 2조 6840억 원, 영업이익은 1조 208억 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