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경제 =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어린 시절에는 질문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집 안에서든, 집 밖에서든 궁금한 것투성이였다. 부모님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에게 끝없이 물어보고 답을 듣고, 또 물어보기를 반복하며 세상을 알아갔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세상을 향한 나의 시선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질문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모든 것의 답을 다 알게 되어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삶이 바빠서일 수도 있고, 나를 둘러싼 일상에 익숙해져 호기심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
민예은의 작품 앞에 서면 그동안 잠시 묻어 두었던 세상을 향한 질문들이 되살아난다. 익숙했던 것들이 작가에 의해 낯설게 변하자 고정관념을 벗어난 상상력이 발동한다. 인간과 인간의 삶, 인간이 머무르는 시간과 공간을 작업의 중심에 놓고 끝없이 질문하기를 반복하는 작가는 말로는 다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를 작품에 담기 위해 노력한다. 작가의 작품 앞에 선 우리가 만나게 되는 질문의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개인들은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만의 답 혹은 또 다른 질문을 찾아내면 된다. 세상을 조금만 새롭게 바라볼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 민예은 작가는 ‘노지암(Nosiam)’(2012), ‘방’(2013), ‘집(들)’(2017), ‘라비하마하마hyun추추happyj33아토마우스에뽄쑤기제트블랙병뚱껑...’(2019)처럼 집과 같은 건축적 구조물의 안과 밖을 뒤집고 위와 아래를 역전하는 작업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작업을 처음 시작하게 된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이러한 작업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을 부탁한다.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구축되는 시스템과 공간(장소)을 이동하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시스템, 서로 다른 두 개의 시스템이 내 안에서 만나면서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모든 것에 대해 명확한 확신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이는 모든 상황을 의심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전제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태도가 만들어진 거다. 안과 밖의 공간뿐 아니라 위아래가 뒤엉켜진 상태나 행위를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보여주면서 ‘이렇게 역전되고 도치된 상태인데 이것이 집의 역할을 지속할 수 있을까?’ 혹은 ‘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라는 질문들을 작품에 담았다.
작업의 전개를 보면, 처음에는 바닥, 벽, 천장이 모두 나타났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다른 천장들이 만나 하나의 육면체를 이루게 되었다. 공간이 생기면서 발생한 위계(hierarchie)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위해 수직적 관계를 벗어나 바닥, 벽, 천장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뒤엉키는 수평 혹은 무중력 상태로 구성되는 관계를 만들었다. 내 작업에 등장하는 물건이나 재료들은 모두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와 혹은 관객과 만난다. 나를 거쳐 형성되는 구조이지만 나 역시 그들의 관계를 만들어주는 중간 매개자일 뿐 그들의 위치나 정체성을 정의하는 절대자는 아니다. 안과 밖을 뒤집는다는 것은 마치 고무장갑을 뒤집듯이 매우 단순한 행위인데, 그런 행위가 예측할 수 없는 결과와 새로운 의미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주 단순한 행위를 통해 이뤄진, 명확히 정의할 수 없는 결과물들을 보여주려 했다.
- 공간을 다루는 건축적인 작업이기 때문에 그에 필요한 준비과정이 있을 것 같다. 이론이나 실질적인 기술과 관련된 준비 및 진행 과정이 궁금하다.
미술을 전공했지만 건축학과를 가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건축에 관심이 많았다. 건축을 정식으로 공부한 것은 아니라 작업 초반에는 건축을 전공한 친구와 대화하면서 이론적인 부분이나 기술적이고 표현적인 부분을 보완해 공간을 구현했다. 작품 제작을 위해서는 실제 건물을 짓기 위해 필요한 과정들을 똑같이 거쳐야 한다. 특히 ‘가구오두막’(2013~현재)은 실제로 사람이 머물며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건축가나 시공업을 하는 분들과 건축물의 구조나 안전과 관련된 많은 부분을 상의하며 진행했다.
- 민예은의 작업을 설명할 때 문화와 문화의 섞임과 공존, 속함과 분리됨 등이 이야기된다. 정주와 이주 등을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노마디즘(nomadism)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실제로 프랑스에서 꽤 오래 머물기도 했다. 본인은 노마드(nomad)적인 삶을 지향하는 사람인가?
물리적 노마드와 정신적 노마드를 나눈다면, 나는 후자를 지향하는 사람인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노마드의 삶은 어떤 곳에도 정착하지 않고 이동하며, 새로운 것을 만나고 기존의 체계와 질서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것이다. 나는 끝없이 변화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스스로 만들어낸 시스템조차도 언제든지 변화시킬 수 있는 유기적인 삶을 지향한다.
- 집의 안과 밖, 위아래가 바뀐 상황은 시간의 역행이나 차원의 이동 등을 떠오르게 한다. ‘단일슬릿’(2019)에서는 찰나와 영원을 다루었다. 시간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작업이다. 작가 민예은에게 시간이란 무엇인가?
현재 내가 바라보는 시간은 점 조직과 같다. 나는 시간을 시계 초침이 흘러가듯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것으로만 보지 않는다. 흘러가는 시간도 있고, 무엇을 하는 동안처럼 기간으로서의 시간도 있다. 또 찰나처럼 순간을 말하는 시간도 있다. 나는 이 모든 ‘시간들’이 굉장히 많이 뒤엉켜져 공존하고 있다고 느낀다. 또한 하나로 연결되기보다 개개인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다 보면 시간이 하나의 선이 아니라 부피감으로 다가온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시공간을 시간과 공간으로 나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로 공존하며 생성, 소멸하는 ‘시간들’을 공간을 통해 다양하게 표현하는 작품들을 시도하게 되었다.
- 프랑스어 ‘masion’(집)을 뒤집어 ‘노지암(Nosiam)’, ‘ascenseur’(엘리베이터)를 거꾸로 적어 ‘크넥사로(Rue-cnecsa)’(2020)라는 제목을 만들어냈다. 언어유희를 즐기는 것 같다. 언어는 한 사회의 사회적 규범과 문화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다. 제목을 짓는 본인만의 방식이 있는가?
제목 짓기가 실제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을 정도로 제목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라 작품을 구상하는 것만큼 많은 시간을 쏟는다. 나는 완성된 작품과 제목이 일대일로 완벽히 대응되지 않고 미묘하게 어긋나는 지점을 만들어내길 원한다. 그것이 작품 해석을 더 다양하게 만들고 의미의 폭을 확장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마음 정류장’(2016)에서는 참여자를 충분히 가려주기도 하고, 가려주지 못하기도 하는 불안정한 풍선 벽을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작품이다. 풍선 벽은 심리적인 이유 때문이든, 현실적인 요인 때문이든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자 하는 꿈을 이루지 못하는 현대인의 상황을 은유하는 것 같다. 또한 인간 존재(주체)의 정체성 혹은 내적 경계가 불확정적임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메시지를 동시에 담아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건축물을 보여주지 않는데도 집과 같은 건축물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내가 이 작업을 시작했을 당시 사회적으로 현대인들이 자신만의 시공간을 온전히 갖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논의가 사회적으로 주목받았다. 지금도 여전히 그와 같은 논의가 그 형태를 조금씩 바꾸며 진행 중이라 생각한다. 나는 사람들이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내는 공간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도, 감추는 것도 관객(참여자) 본인의 선택으로 결정할 수 있게 했다. 사용된 재료는 10시간이면 가라앉는 헬륨 풍선이었는데 약한 바람에도 잘 날아갈 수 있었다. 나는 투명한 풍선을 작고 투명한 구슬에 묶어 아슬아슬하게 지탱되도록 설치했다. 투명한 것들이 겹쳐져서 만들어내는 공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투명한 재료들이 겹쳐지면서 투명하지 않은, 무언가를 감추게 되는 상황도 흥미로웠다.
- 현재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 입주 작가이다. 인천아트플랫폼만의 특징을 이야기해주길 바란다.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하다.
주변 작가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기 때문에 인천아트플랫폼의 입주작가로 선정되었을 때 많은 기대를 했다. 특히 오픈스튜디오나 전시 등의 행사 때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메리트(merit)라 생각했다. 현실적으로 작가와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서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인천아트플랫폼 전시장을 비롯한 근대 건축물들, 차이나타운, 항구 도시라는 인천의 특수성 등도 매력적이었다. 나의 작품과 이어지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했다.
코로나19 탓에 입주해서 진행하려고 계획했던 작업들이 모두 원점으로 돌아갔다. 모두 다 다시 계획하고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쉽지 않다. 더욱이 나의 작업은 그 규모 면에서나 작업 방법적인 면에서 단독으로 진행하기보다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진행하는 데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레지던시 내부의 작가들과 만나 교류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많은 부분이 안타깝고 슬프다. 기대를 많이 해서 더 그런 것 같다. 이런 상황에도 작가들에게 어떻게 하면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의지가 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 인천아트플랫폼은 미술가뿐 아니라 공연예술가도 입주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시각을 서로 나눌 수 있을 텐데, 상황이 나아져 함께 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