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4호 윤지원⁄ 2020.09.21 09:14:21
스마트폰은 지난 10년 사이 세계인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꿨다. 하지만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여서 삼성, 애플의 프리미엄급 신형 스마트폰들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에 새로운 미래 먹거리 발굴이 절실해진 국내외 ICT 대기업들은 스마트폰을 이을 다음 세대의 혁신 제품으로 AR(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 글래스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구글이 첫 구글글래스를 세상에 내놓은 지 7년이 된 지금, 차원 높은 새로운 스마트 안경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마침 5G 네트워크 기술의 상용화, 클라우드의 확산, 디지털카메라 및 이미지 프로세싱 기술의 빠른 발전과 함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언택트(untact, 비대면) 시대가 도래하면서 AR글래스의 상용화와 대중화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예컨대 최근에 나온 스마트폰은 대부분 2개 이상의 고성능 카메라를 탑재하는데, 이를 통해 공간과 사물을 입체적으로 인식하여 AR을 구현할 수 있고, 이러한 AR 데이터는 5G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용량 전송 및 구현이 용이해졌다.
또 AR글래스는 스마트폰의 기존 OS 원리와 앱 생태계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업계의 시장 진출이 촉진되는 배경이라 할 수 있다.
특히, AR글래스가 지금 각광 받는 이유는 디스플레이(시각)와 스피커(청각)를 탑재할 수 있는 형태로, 스마트폰을 대체할 플랫폼 기기로 유력해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페이스북, 구글 등 미국의 혁신 기업들을 비롯해 삼성전자, LG전자, LG유플러스 등 세계적인 국내 기업들도 AR글래스 출시 일정을 밝히거나 서비스 고도화에 나서면서 상용화를 앞당기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DC는 전 세계 AR글래스 출하량이 지난해 20만 대에서 2024년 4110만 대에 달하며, 2019~2024년 사이 191.1%의 연평균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지난 1월 전망했다. IDC는 AR글래스 시장을 ▲탑재형 AR글래스(Screenless Viewers) ▲독립형 AR글래스(Standalone HMD) ▲연결형 AR글래스(Tethered HMD)로 분류하고, 별도 기기의 연결 없이 작동 가능한 ‘독립형 AR글래스’와 스마트폰 등 거점 기기와 연결해서 사용하는 ‘연결형 AR글래스’가 시장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시장조사기관 Statista는 올해 AR글래스가 1079만 대 출시되고, 내년에는 1666만 대, 2022년에는 2280만 대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하고, 2025년에는 AR글래스 시장이 약 1982억 달러(약 240조 8000억 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애플, AR글래스 출시 기대감 높아져
업계에서는 애플이 늦어도 내년에는 AR글래스를 출시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데, 이미 애플워치, 에어팟 등 혁신적인 하드웨어(HW) 디자인으로 웨어러블 스마트기기 시장 공략에 성공한 애플이기에 더욱 시장의 기대를 높이고 있다.
팀 쿡 애플 CEO가 “하루 세 끼 식사를 하듯 AR 경험은 일상의 일부가 될 것”이라며 지속적으로 AR의 잠재력을 언급해왔다는 점에서도 애플이 AR 글래스와 같은 본격적인 AR 기기 및 생태계 개발에 집중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애플은 2017년 아이폰에 AR 기능을 집어넣는 등 일찌감치 AR 플랫폼을 구축해 왔다. 올해 새로 출시한 아이패드 프로에는 AR 기능을 지원하는 라이다(LiDAR) 센서가 탑재됐다. 또 지난 5월에는 공연, 스포츠 등의 이벤트 영상을 AR,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 콘텐츠로 제작하는 스타트업 ‘넥스트VR’의 인수 과정을 마무리하여 새로운 AR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음을 알린 바 있다.
애플이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진 AR글래스는 ‘애플글래스’라는 이름으로 출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애플글래스는 아이폰을 연동해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으며 무선충전 기능을 탑재할 전망이다. 렌즈에는 도수를 넣어 가공할 수 있으며, 사생활 침해 문제가 야기될 수 있는 카메라는 빠지고, 대신 라이다 센서가 탑재될 것으로 보인다.
애플 분석 전문가인 밍치 궈(Ming-Chi Kuo)는 또 애플글래스에 4K급 고해상도 디스플레이와 풍부한 음향 효과를 제공하는 스피커, 전용 리얼타임 OS 등이 탑재될 것으로 전망했다.
단, 애플이 첫 모델부터 아직 완성되지 않은 많은 기능을 넣기보다는 몇 가지 핵심 기능을 만들어 스타일을 강조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애플워치가 처음에는 GPS 및 폰 연결기능도 없었지만 세련된 스타일의 ‘훌륭한 시계’라는 이미지를 내세운 전략이 성공했던 것처럼 애플글래스도 세련된 프레임의 처방 안경에 AR 기능이 추가된 제품으로 대중을 공략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밍치 궈는 애플글래스가 2022년 출시될 것으로 예상한 반면, 애플의 연구원 존 프로서는 올해 하반기 또는 내년 2분기에 애플글래스를 발표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16일(한국 시간) 온라인으로 진행된 신제품 발표 이벤트에서는 애플워치와 아이패드 제품군만 소개됐다.
페이스북·구글·MS도 도전 이어가는 중
애플의 신제품 발표회가 열리기 전날, 페이스북은 첫 AR글래스 개발 프로젝트 ‘아리아’를 소개했다. 특히 레이밴, 오클리 등의 유명한 안경, 선글라스 명품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이탈리아 기업 룩소티카(Luxottica)와 손잡고 아리아를 제작하고 있어, 스타일 면에서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페이스북 아리아 프로젝트는 단순한 개인용 AR글래스 기기를 넘어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 가능한 스마트글래스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아리아를 이용한 3D 세계지도를 구축하고 있고, 청각장애인 및 난청 환자도 일상 소음 속에서 상대의 대화를 또렷이 알아들을 수 있는 오디오 기술도 연구 중이다.
2013년 첫 구글 글래스를 내놓았던 구글은 당시 비싼 가격과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 등으로 판매를 중단하며 실패한 바 있다. 하지만 2017년 B2B용 구글 글래스 에디션1을 출시해 제조, 의료, 물류 분야에서 활용하고 있고, 지난해 2월에는 산업용 ‘구글 글래스 엔터프라이즈 에디션2’(구글 글래스 에디션2)의 일반 판매를 개시했다.
구글 글래스 에디션2는 퀄컴 스냅드래곤 XR1 플랫폼에서 작동해 배터리 수명이 길어졌으며, 안드로이드OS 채택으로 이용자 편의성도 높아졌다. 또한, 기존 제품보다 외형도 훨씬 세련되어졌다는 평가다.
MS는 2015년에 산업용 AR글래스 ‘홀로렌즈’(Hololens)를 내놓았고, 지난해 초에는 홀로렌즈2를 출시했다. 단 홀로렌즈는 가격이 400만 원대로 높을 뿐 아니라 헤드셋 역시 무겁고 부피가 커 일반 소비자가 일상에서 사용할 만한 제품이 아니다.
시중에는 구글과 MS의 AR글래스 외에도 매직 리프의 ‘매직리프원’(Magic Leap One), 중국의 스타트업 엔리얼(Nreal)의 ‘엔리얼 라이트’(Nreal Light) 등이 나와 있다.
매직리프는 소비자용 글래스 시장에 진출했다. 안경 형태가 아닌 HMD(Head Mounted Display) 스타일이긴 하지만 배터리를 따로 착용해 MS의 홀로렌즈보다는 크기가 작다. 매직리프는 2019년 월트 디즈니 산하 루카스필름과 스타워즈 IP를 기반으로 한 체험 앱을 출시했으며 개발자 지원 프로그램 '퍼즐AR: 월드 투어'를 공개했다. 매직리프는 2018년 '와이어드'와의 인터뷰에서 "매직리프 전용 앱을 만들기 용이하도록 모든 노력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내비게이션 용 AR글래스 특허 출원
삼성전자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할 수 있는 AR 글래스 시스템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다.
미국 IT 전문 매체 씨넷(Cnet) 등 다수 글로벌 매체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미국 특허청과 대한민국특허청에 출원한 ‘증강현실 제어 장치, 이를 이용한 증강현실 구현방법 및 이를 포함하는 증강현실 구현 시스템’이라는 특허가 지난 5월 공개됐다.
공개된 특허 문서에 따르면 이 AR글래스는 차량의 카메라와 연동되어 운행 중인 도로 위에 내비게이션 관련 정보를 보여준다. 실제 도로 위에 진행해야 할 방향을 화살표로 표시하고, 운전 중 보이는 주유소를 응시하면 해당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유종과 가격 정보를 보여주는 식이다.
삼성전자의 AR글래스는 디자인 관련 특허도 출원됐다. 해외 매체에 보도된 특허 이미지에 따르면 삼성전자 AR글래스는 일반적인 금속 테 안경처럼 착용감을 위한 코받침과 각진 다리 등의 디자인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안경 테 윗부분에 듀얼 전먼 카메라와 일반 센서가 장착될 수 있고, 두꺼운 프레임에 프로세서, 램, 통신장치 등이 탑재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이미 VR 사업을 축소하고 AR로 방향을 선회하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2016년 출시한 VR 영상 플랫폼인 ‘삼성 XR’ 서비스는 이달 말까지만 운영하고 모든 콘텐츠를 삭제한다. 앞서 지난 4월에는 오큘러스와 협업으로 내놓았던 헤드셋 ‘기어VR’에 대한 앱 지원도 중단했다.
대신 삼성전자는 갤럭시S20 카메라에 심도 카메라인 ToF(비행시간거리측정) 센서를 탑재하는 등 AR로 무게추를 옮기고 있다.
LG유플러스, 소비자용 5G AR글래스 “세계 최초” 출시
국내 기업 중에서는 LG유플러스가 큰 걸음으로 앞서 나갔다. 지난달 21일 LG유플러스는 세계 최초로 5G AR글래스를 출시했다.
LG유플러스에 따르면 B2C향 5G AR 글래스를 시중에서 판매하는 건 글로벌 시장을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다.
‘U+리얼글래스’로 이름 붙은 이 AR 글래스는 중국의 스타트업 엔리얼(Nreal)의 초경량 AR글래스 ‘엔리얼 라이트’(Nreal light)와 LG유플러스의 5G 서비스 및 콘텐츠를 합친 방식이다.
현재 U+리얼글래스의 가장 뚜렷한 장점은 88g에 불과한 가벼운 무게와 69만 9천 원의 합리적인 가격대다. MS 홀로렌즈가 0.5kg이 넘고, 매직 리프 원도 헤드셋만 345g에 본체가 415g인 점, 그러면서도 가격은 각각 3500달러와 2295달러로 높게 형성되어 있는 점에 비하면 U+리얼글래스는 현실적인 가격대와 경량화된 무게로 소비자에게 더욱 쉽게 다가갈 수 있다.
LG유플러스는 6월부터 전국 24개 매장에서 AR글래스 체험존을 운영하면서 소비자 호응을 조사했고, 그 목소리를 서비스에 반영해 리얼글래스의 상용화를 시작했다. 출시 이후에도 다양한 소비자 경험이 더해져, 향후 경쟁사들보다 빨리 기술 고도화를 이룰 가능성도 높다.
U+리얼글래스는 착용시 눈앞 가상 공간에 스마트폰 화면을 띄워주는 서비스다. 스마트폰과 U+리얼글래스를 USB선으로 연결해 콘트롤하며, 익숙한 안드로이드 OS를 통해 콘텐츠를 사용한다.
화면 사이즈는 최대 100인치 이상 확장이 가능해 영화나 공연 감상 시 몰입하기 좋고, 야구 중계를 보면서 콘텐츠 옆 빈 공간에 선수 정보와 같은 다른 콘텐츠를 넣는 것도 가능하다.
특히 현실과 차단하는 VR 헤드셋과 달리 안경 형태 디바이스로 언제나 정면 상황을 살필 수 있어서 스마트폰만 바라보며 고개를 숙인 채 좀비처럼 걷는 이른바 ‘스몸비’(Smombie)의 위험성을 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양손을 자유롭게 쓰면서 콘텐츠를 활용할 수도 있고, 고개를 모니터나 폰 디스플레이에 고정할 필요 없이 내가 시선을 두는 곳에 자유롭게 화면을 띄울 수 있어서 목과 어깨 등의 건강에도 부담이 덜 하다.
구매 고객에게는 다양한 액세서리가 제공되어 사용 편의성을 더욱 높였다. 시력이 나쁜 소비자를 위해 도수 있는 렌즈를 부착할 수 있는 프레임이 제공되고, 영화 감상을 위해 전방 시야를 차단할 수 있는 렌즈 커버도 제공된다.
공식 출시 후 한 달 가량이 지났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아직 판매량 집계를 공개할만한 시점은 아니”라면서도 “기대했던 것 이상의 판매 추이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송대원 LG유플러스 미래디바이스담당(상무)은 “15년간 폰-태블릿-워치로 이어진 시장에서 ‘넥스트’ 스마트 기기의 첫발을 뗐다”며 “앞으로의 세대는 5인치 스마트폰에서 고개를 들어 100인치 AR 화면을 바라보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