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태⁄ 2020.09.22 15:54:09
21일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형제끼리 라면을 끓어 먹으려다가 일어난 화재로 중화상을 입은 인천 미추홀구 초등학생 사건과 관련해 당부 말씀을 했다고 청와대 강민석 대변인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아동이 가정에서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사례가 드러나 모든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조사 인력을 늘려 학대 사례를 폭넓게 파악하는 등의 각별한 대책을 세워 달라. 하지만 거기서 대책에 멈춰서는 안 된다. 드러나는 사례를 보면 아동이 학대받거나 방치되는 것을 보고 이웃이 신고하더라도 부모의 뜻을 따르다 보니 가정에 맡겨두다가 비극적 결과로 나타나고는 한다. 학대 아동, 또는 돌봄 방치 아동의 경우 상황이 해소될 때까지 강제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조치까지 포함해서 제도화할 필요가 없는지 적절한 방안을 찾아서 보완해 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발언 중 가장 핵심되는 부분은 “신고하더라도 부모의 뜻을 따르다 보니”로 필자에게는 보인다.
‘부모의 뜻’이 1차적 고려 요인 되는 이상한 나라
1990년대에 초등 4학년, 6학년 두 아들을 데리고 미국 땅에 도착한 필자에게 현지의 친지가 가장 먼저 신신당부한 사항 중 하나는 “아이들끼리만 집안에 뒀다가는 경찰에 치도곤을 치리는 수가 있으니 부모 둘 중에 한 사람은 반드시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 하고, 둘 다 바쁘면 주변 한인들에게 부탁해 반드시 아이들을 봐달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13세 이하 아동을 집안에 보호자 없이 방치했다가는 자칫 바로 이웃이 경찰에 신고하고, 그러면 고생문이 좌악 열린다.
대통령 말마따나 한국에선 “신고하더라도 부모의 뜻에 따라” 조치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부모로부터 가정 폭력을 당한 아이를 경찰에서 보호하다가도 부모가 “집으로 데려 가겠다”고 우기면 부모의 뜻에 따라 매맞은 아이를, 때린 부모 손에 들려 집으로 보내는 사례가 수없이 일어나고 있는 나라이니 정말 할 말이 없다.
한국 경찰의 이러한 태도에서 ‘자식은 부모의 것’이라는 전근대적 상식이 아직도 통용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선 이렇지 않다. 한국에선 주먹다툼 싸움 정도는 범죄로 치지도 않는 듯 하지만, 미국에선 폭력(violence)은 중범죄(felony)로 강력처벌되고, 폭력 죄 중 최고 으뜸, 악질은 가정 폭력(domestic violence)으로 친다. 길거리에서 낯선 사람한테 매 맞는 것도 무섭지만 폭력 행사자가 한 집안에 있다는 것, 24시간 내내 폭력이 가해질 가능성은 얼마나 무서운가. 그런데도 한국 경찰은 ‘부모의 뜻’이 1차적 판단 근거인 모양이니 정말 무섭다.
전화기만 들면 천하무적이 되는 미국 어린이들
미국에서 가정 폭력이 발생해 경찰에 뜨면, 때린 부모와 맞은 아이는 당장 그 순간부터 완전 격리되며, 때린 부모는 철창신세를 각오해야 한다. 그리고 자녀는 다른 법적 보호가정으로 보내져 부모와의 만남이 원천 차단된다. 아이한테 잘못 손을 댔다가는 때린 부모의 인생이 망가지는 것은 물론, 가정이 풍비박산 나는 갈림길이 되기도 한다.
미국 초등학교에선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부모가 폭력을 행사할 거 같으면 무조건 전화기를 들고 911 경찰신고 전화번호(한국의 112에 해당) 중 앞 두 자리(9와 1)를 치고 ‘다가오면 마지막 1을 누른다’고 부모에게 선언하라”고. 그래서 집안에서 자녀들을 혼내주려 하다가도 자녀가 전화기를 집어드는 순간 화난 부모는 급제동을 걸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이런 우스갯소리가 한인 사회에서 유행하겠는가. “말 안 듣는 아들은 아빠가 참고 참다가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먼지 나게 때려줬다”는 우스갯소리가.
제발 이제는 경찰이 더 이상은 “부모의 뜻은요?”를 묻지 말고 아동들에 대한 폭력과 방치, 학대 문제를 다룰 때가 됐다. 대통령이 당부한 △조사 인력의 확대 △상황이 해소될 때까지 강제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조치가 과연 이번에는 마련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지 ‘신체발부수지부모’를 국가이념으로 하는 유교 국가가 더 이상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