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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부동산 망친 ‘그 놈’ 잡느라 ‘그 시스템’ 그냥 놔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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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95호 최영태 편집국장⁄ 2021.03.16 13:58:36

(문화경제 = 최영태 편집국장) ‘LH 직원들의 내부정보 이용 땅 투기’(이하 부동산 문제 B)로 전국과 정국(政局)이 시끌시끌하다. 반면 지난달 말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아파트 실거래 최고가 신고 뒤 취소’(부동산 문제 A) 뉴스는 뒤로 쏙 들어간 모양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수사기관이 총력을 기울여 문제 B를 일으킨 악당들, 즉 공공기관에 있으므로 신도시 등 부동산 관련 정보를 초기에 취득해 거대 이익을 편취한 자들을 단죄하는 데 몰두한 태세다.

여기서 관심은 뒤늦게 발생한 문제 B가, 앞서 발생한 문제 A를 뒤덮을 것인가 말 건가, 즉 ‘뉴스가 뉴스를 덮는’ 사태가 발생할지 여부다.

여기서 한 번 생각해보자. 경제에는 ‘배가 고픈’ 문제가 있고, ‘배가 아픈’ 문제가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직장에서 잘리면 배가 고프다. 아픈 건 고약하지만 배가 아프다고, 즉 사촌이 땅을 산다고 내게 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다. 오히려 사촌의 땅값이 오르면, 혹시 아나?, 친척인 나에게 작은 고물이 떨어질지? 그러나 배가 고픈 문제는 내가 죽을 수 있기에 더 무섭다. 그래서 정부나 국민은 배 고픈 문제에 더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정치적 싸움에는 배 아픈 문제가 훨 좋다. 배고픈 사태가 터지면 경제와 정국이 얼어붙으면서 평소엔 절대 불가능했던 일들이 일어난다. 1930년대 독일에서, 즉 당시 세계에서 가장 똑똑하고 개명됐다는 국민들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조% 단위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일어나자 정치적 싸움이고 뭐고 다 증발해버리면서 히틀러라는 미치광이가 나라를 접수한다. 그 결과는 전세계인 수천만 명이 죽는 大학살극이었다. 이렇게 배 고픈 문제는 무섭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들이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실련에서 문재인 정부 4년 서울 아파트 시세변동 분석결과 기자회견을 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반면 배 아픈 경제 문제는 정치에 불을 지른다. 내가 못 번 돈을 쟤가 벌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부아에 불이 붙고 울화통이 터지면서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그래서 배 아픈 문제는, 정치적으로 이용하기에 최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부동산 문제 A와 B를 비교해보자. LH 직원이 내부 정보를 큰 이익을 본다는 소식은 환장할 만하다. 엄벌에 처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 말대로 “발본색원하고 공직자의 이해 충돌에 관한 법을 만들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 B 탓에 화가 너무 난 나머지 문제 A를 잊으면 안 된다. LH 직원들의 땅투기는 내게 직접적-금전적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며 그들이 번 돈 탓에 나라 경제가 망가지는 문제도 아니다.

반대로, 부동산 투기 세력들과 일부 부동산 중개업소가 짜고 신고가 거래를 신고해 놓고는 나중에 취소함으로써 아파트 가격을 계속 올리는 수법은 하나의 시스템으로서, 이를 방치하면 정확하게 나라가 망한다.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전에 필자는 미국에서 살면서 LA의 집값이 몇 배씩 오르는 현장을 지켜봤고, 그 끝은 미국과 세계 경제의 폭망이었다.

미국의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은 주식시장에 한정된 사태인지라 피해가 주로 미국 안에만 미쳤고, 그나마 곧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미국 은행의 부실로 이어져 일부 대형 은행을 사라지게 만들었고, 그 악영향은 13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지구촌 경제를 과거엔 본 적 없는 대폭망으로 연결시킬 수도 있다고 대부분 경제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저금리-양적완화 등의 비상수단은 모두 2008년 금융위기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9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LH 과천의왕사업본부 앞에서 과천지구 원주민들이 규탄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한국의 ‘이른바 보수’들이 좋아라 하는 싸움터

그동안 한국의 ‘이른바 보수(실제론 상업)’ 언론들은 부동산 값이 오른다고(실제론 “올라야만 산다”는 듯이) 난리를 쳐대면서 부동산 값을 천정부지로 올려놓더니(즉 공포심리를 조장해 가계부채 大폭증을 이끌더니) 이제는 LH 사태를 ‘부도덕한 정권의 비리’로 몰아치면서 다가온 선거에서 부동산 쟁점을 이용해 정권을 바꾸려고 하고 있다. 한국의 ‘이른바 보수’가 정말로 나라를 걱정한다면, LH 사태 비난에 들이는 정성의 최소한 절반만큼이라도 ‘신고가 신고 뒤 취소’ 작전세력을 처벌하는 데 동원해줘야 한다.

이들 부동산 작전세력을 잡는 일은, 민간의 범죄를 단죄하는 차원인지라, 즉 정권 공격용이 아니기에 정권 탈취에 별 도움이 안 된다. 반면 LH 등 공무원을 때려잡는 일은 정권 탈취에 엄청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앞에서도 얘기했듯 이들 공무원을 때려잡는다고 경제 전체가 좋아지는 수량적 의미는 거의 없다.

미국에 이런 말이 있다. 부자와 백인을 지지기반으로 삼는 공화당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양극화 같은 경제-사회 문제가 화두가 되는 것이란다. 공화당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핏대 올리며 싸우기에 딱 좋은 낙태 문제, 동성애 문제 등이다.

부동산 문제 B(이득을 편취한 개인 잡기)가 A(집값 올리는 시스템 잡기)를 덮는다면, 서울 강남의 으슥한 뒷방들에선 낄낄 웃음소리들이 흘러나올 듯하다. “이런 정치 몰빵싸움 딱 좋아. 우리가 아파트 값 올려서 전국 아파트 소유자들이 좋아라 하는데 우리가 잘못한 게 뭐 그리 크다고 난리야?”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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