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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 평론가의 더 갤러리 (71) 최정은 작가] 뇌를 없애버리는 멍게를 신으로 삼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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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03호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2021.07.13 13:37:56

(문화경제 =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 ‘An Abiotic Organism’(2016), ‘선의 샤워’(2020)를 비롯해 ‘상체와 무릎의 굴곡’ 시리즈(2020)까지 꽤 많은 작업의 주조색이 빨강이다.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입주작가 결과보고전 ‘최정은_멍게신 후손의 부흥회’(2021)에서는 무교(巫敎)가 떠오르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빨강은 삶과 죽음, 사랑과 증오, 열정, 폭력 등 다양한 의미를 전달하는 색으로 여겨져 왔다. 본인의 작업에서 붉은색은 어떤 의미인가?

우리 눈은 빛의 상황과 같은 조건에 따라 똑같은 색도 다르게 감각한다. 모든 생명체가 사람과 동일하게 색을 보는 것도 아니다. 또 특정한 색을 보면 유독 떠오르는 상징이나 감정이 있다. 나는 색이 사물이 가진 본질이라기보다 인간이 설정한 일종의 편견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내 작업을 통해 사람들이 원초적인 감흥을 받으며 인체와 관련된 무언가를 상기하길 원했는데 붉은색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또한 작품에 색이 첨가되면 한 덩어리로 보여 집중효과를 높여준다. 하나의 색조를 사용하면 개별 작품들을 전체로 묶어 내가 전하고자 하는 분위기와 생각 등을 강하게 보여줄 수 있다.

- ‘Archive desk’(2019)와 ‘상체와 무릎의 굴곡’(2020) 등에서 모피를 사용한 것 역시 육체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인가?

그렇다. 예를 들어, 내 작업 중에 모터로 작동되는 것들이 있는데 움직이는 기계를 그대로 보여주면 관객들은 그저 기계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데 그 위에 촉각성이 강조되는 모피나 부드러운 물체가 놓이면 생물처럼 느끼게 된다.
 

‘아름다운 고행’, 아크릴 수족관, 멍게, 커튼, LED 및 혼합재료, 가변설치, 2021 ⓒ최정은
‘아름다운 고행’, 아크릴 수족관, 멍게, 커튼, LED 및 혼합재료, 가변설치, 2021 ⓒ최정은

- ‘멍게신 후손의 부흥회’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전시에서는 멍게를 신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멍게는 ‘Sea squirt, sea cucumber, sea anemone’(2015)에서부터 등장했다. 남다른 계기나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아버지가 일식집을 운영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생선이나 해산물들을 자주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런데 멍게나 해삼 등은 살아있는데도 움직이지 않았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혼동하게 하는 생명체였다. 그러다 한 10년 전쯤에 멍게를 설명해 놓은 과학 서적을 읽게 되었고, 흥미로워 멍게에 대해 본격적으로 조사하게 되었다. 어린 멍게는 바다 밑을 돌아다니는데, 자신이 안전하게 살만한 환경을 발견하면 그 장소에 뿌리를 내리고 더 이상 움직이지도, 판단하지도 않는다. 오직 물을 먹고 뱉기만 하면서 생명을 유지한다. 그리고 스스로 뇌를 없앤다. 뇌가 온몸으로 퍼지는 것과 같은 작용인데 내가 읽은 책에서는 자신의 뇌를 스스로 먹는다고 표현했다. 그 사실이 너무 흥미로웠다. 뇌가 사라졌으니 인간 관점에서는 퇴화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편안한 생존을 위한 변화이니 멍게의 입장에서는 진화일 수도 있다. ‘Sea squirt, sea cucumber, sea anemone’에서 멍게를 자르고 만지는 행위는 멍게의 뇌를 내 몸으로 직접 느끼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관객의 대부분이 신체의 특정 부위를 애무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이처럼 다르게 해석되는 부분도 재미있었다.

- 왜 멍게와 신을 연결하게 된 것인가?

현재의 내가 확실히 믿는 것은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부모님뿐이다. 유전자(과학)적으로 증명이 가능한 인과관계만 믿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의 부모님, 또 그 위의 부모님으로 거슬러 올라갔고 결국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과 생명체를 바라보게 되었다. 인간에서 유인원, 원숭이, 파충류, 물고기 등을 거슬러 올라가면 인간과 가까운 태초의 개체가 멍게이다. 최근 과학계에서는 인간을 비롯한 척추동물과 멍게 등의 척삭동물이 5억 년 전에 갈라졌음에도 불구하고 혈액을 만드는 멍게의 유전자는 인간과 많은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연구에 따르면, 과거에 뇌가 사라지는 멍게와 뇌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동하는 멍게가 있었는데 뇌가 사라지는 멍게는 지금 우리가 보는 멍게이고, 뇌가 안 사라지는 멍게는 물고기가 되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인간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물론 과학도 완벽하지 않고 인간이 만들어낸 가설에 불과할 수 있지만, 나에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탐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결국 내가 어려서부터 관심을 가졌던 대상과 내가 어디에서 왔을까에 대한 탐구의 결과가 만나는 지점이 멍게였다.

이번 전시는 종교란 삶을 편하게 살기 위해, 사회적으로 필요해서 만들어낸 하나의 이야기이자 믿음이란 가설에서 시작했고 내가 믿을 수 있는 근원은 멍게여서 멍게를 신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아름다운 고행>(2021)에선 진짜 멍게를 수족관에 넣어두었다. 현세의 사람들은 신을 볼 수 없고 미지의 존재로 숭상하는데 나는 멍게를 신이라고 억지로 설정해 놓은 상태에서 멍게신을 실제로 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는 ‘인간은 왜 보이지 않은 대상을 향해 그와 같은 믿음을 가지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기도 하다.
 

‘기쁜 소식’, 은사 천 위 프린트와 자수, 센서, 모터 및 혼합재료, 가변설치, 2021 ⓒ최정은
‘기쁜 소식’, 은사 천 위 프린트와 자수, 센서, 모터 및 혼합재료, 가변설치, 2021 ⓒ최정은

- 종교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풍자하는 것처럼 보인다.

종교에 주목하게 된 것은 인간의 행위를 관찰하면서부터이다. 나는 사람들의 행동과 그것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에 관심이 많다. 인간은 자신이 자유의지로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팬데믹 상황도 영향을 주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과 대면하지 않고 혼자 오롯이 있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명상이나 사색 등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종교적 믿음으로 자신과 타인의 생명이나 안전을 무시하는 광기 어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의 기저엔 무엇이 있는지도 궁금해졌다.

- 그렇다면 작업의 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관심이 있는 것인가?

그렇다. 관심이 없다면 이와 같은 작업을 기획조차 하지 않았을 거다. 존재에 대한 궁금증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행하시는 말씀’, 오락기, 아크릴 거울, 커튼, 카메라 및 혼합재료, 가변설치, 2021 ⓒ최정은
‘행하시는 말씀’, 오락기, 아크릴 거울, 커튼, 카메라 및 혼합재료, 가변설치, 2021 ⓒ최정은

- 멍게신을 설정한 이유, 또 팬데믹의 상황에서 영감을 받은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런데 작품에 여러 종교적 요소들이 뒤섞여 있다.

특정한 하나의 종교가 두드러지도록 설정하지 않았다. 종교적 믿음이 없는 나는 특정한 종교에 집중하지 않는다. 일상에서 여러 종교가 동시다발적으로 들어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전시 초대 엽서는 길에서 기독교를 포교하는 분들이 배포하는 전단지에서 착안했다. 나에게는 텍스트와 이미지들이 하나의 매우 흥미로운 작업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받으면 꼼꼼히 읽는 편이다. 또 불교 서적이나 다른 종교적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한다. ‘기쁜 소식’(2021)에 가득 찬 글에는 종교 전단지, 불교 경전 그리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 1883)’에 나오는 미친 광인의 말투가 섞여 있다. 앞서 말했듯 나는 신, 영혼, 귀신 등이 있다고 설득되지 않은 상태여서 증거 자료가 있는 과학적인 자료들을 더 신뢰한다. 종교는 아직 나에게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나는 교회나 절에 가면 긴장하고 얼어붙어 행동까지 바뀌게 되는 상황이 신기하다. 사람들은 종교적 공간에 들어서면 멈칫한다. 내 작업 앞에서 불편한 사람도 있을 테고 호기심을 갖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내 작업 앞에서 자신이 믿는 종교적 공간에 갔을 때의 경험이나 감정의 변화와 비슷한 무언가를 경험할 수 있길 기대한다. 관련해 ‘행하시는 말씀’(2021)에서는 멍게신이 점을 봐주는 어두운 빨간 방을 만들었다. 방문객의 본질을 알려주는 기계가 있어 이곳에 500원을 넣고 레버를 돌리면 운세가 적혀 있는 캡슐이 나온다. 기계를 낮게 설치해 캡슐을 받으려면 종교적 공간에서 무릎을 꿇는 것처럼 공손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실시간 행하시는 말씀’, 모니터, 털, 진주 및 혼합재료, 가변설치, 2021 ⓒ최정은

- ‘인간과 가까운 태초의 개체가 멍게’라고 해서 반드시 멍게가 신으로 제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근원을 탐구하는 방법은 종교 말고도 많다.

내가 멍게신을 설정하고 보여준다고 해서 멍게신에게 무한한 영적인 힘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멍게신은 상상과 허구의 존재이다. 그보다는 ‘누구나 신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만약 내가 신을 만든다면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은 나의 유전학적 뿌리이니 멍게를 신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정도이다. 멍게가 신이라 주장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신과 믿음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 시각적인 면에서, 그리고 내용적인 면에서도 무속신앙이 떠오른다.

계획적인 것은 아니었으니 일정 부분에서 우연의 일치인 것 같다. 물론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영향을 받은 것도 있을 것이다. 시각적인 표현에서 한국의 전통적인 이미지들을 참고한 것도 있다. 종교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았고, 문화적으로 체득한 것 중 관심 가는 것만을 집중적으로 보고 다루다 보니 나의 일상 속 경험이 담길 수밖에 없다. 자생적으로 발생해서 전개되었든, 다른 나라의 종교가 토착화되었든 한국적인 종교를 더 많이 접했을 테니 내가 체화한 것들이 자연스레 발화되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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