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8호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2021.09.30 14:42:59
(문화경제 =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최하늘 작가와의 대화
-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의 기획전시장 언더그라운드 인 스페이스에서 진행 중인 개인전 ‘벌키(Bulky)’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이전부터 느꼈던 건데 최하늘의 작업은 시각적인 부분만으로도 흥미롭다.
흙을 붙여나가면서 양감을 키워 작품을 만드는 대표적인 조각 방법론인 소조와 자신의 몸을 키우고 싶어 하는 게이 남성의 욕망 구조가 비슷해 그 둘을 중심축으로 놓고 이번 전시를 꾸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퀴어 아트(Queer art)에 살을 붙여나가려는 내 작업의 방향도 담겼다.
- 조각과 퀴어를 비주류로 나란히 놓은 이유를 듣고 싶다. 조각 그 자체를 탐구하는 작가인 만큼 비물질의 영역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시대의 조각에 대한 고민이 작품에 담겨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시장에서는 물리적인 결과물을 갖는 작품도 많이 볼 수 있다. 따라서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는 최하늘이 생각하는 조각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해줘야 할 것 같다.
내가 작가로 활동하며 느끼기에 한국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미술 시장의 힘이 강한 것 같지 않다. 한국은 국공립미술관 위주로 미술의 담론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미술 현장이 뉴 미디어 아트(New media art)를 중심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미술 시장이 회화와 조각을 그만큼 육성하지 못하고 있어 일반적인 미술의 역사에서 생각해볼 때 조각이 과거와 다르게 구식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한국은 현대미술이 왕성하게 전개된 나라이지만 상대적으로 회화와 조각의 현대적인 담론이 많이 생산되고 있지 않다.
나는 언제나 조각과 설치를 엄격하게 분리한다. 물리적인 지지체를 사용할 뿐 조각 그 자체에 관한 논의를 하지 않는 작품은 조각이라 말할 수 없다. 내가 조각이라고 느낄 수 있는 작업, 내가 생각할 때 조각의 정의 안에 존재하는 작업이 많이 전시되지 않는 것 같아 조각을 비주류라고 말했다.
- 이번 전시의 포스터+리플릿에서 특히 신경을 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포스터나 리플릿도 전시의 중요한 부분이다. 디자이너 신신(신해옥, 신동혁)과 작업했다. 디자이너가 나에게 이번 전시를 상상할 때 어떤 색이 떠오르냐고 물었다. 아직 작품이 완성되기 전이었는데도 나는 바로 사람의 피부색, 살구색이라고 답했다. 출품작 중에 피부색이 들어간 것은 없지만 살아 있는 사람의 움직임을 표현한 작품들이 많아 그와 같은 색의 느낌이라 생각했다. 또한 웹상에서 전시 포스터를 보면 글자가 점점 더 살이 쪄 커진다. 폰트 자체가 두꺼워지는 것을 이용해서 디자이너도 벌키한 글씨체를 보여주었다.
- 작가가 일상과 대중문화에서 발견한 퀴어적 요소들을 담아내는 작품들을 제작했다. 실내자전거를 타거나 주짓수를 하고 도수치료 받을 때의 상황과 만화 ‘드래곤볼(Dragon Ball)’에 등장하는, 두 사람이 하나로 합체하는 기술인 퓨전(fusion) 등이 작업으로 이어졌다. 이제 최하늘의 작품은 전시되어 작가 혹은 관객의 일상에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작가가 추구하는 ‘예술과 일상에 퀴어를 덧씌워 오염시키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렇다. 예를 들어 ‘드래곤볼’이라는 만화에서 남자 캐릭터와 남자 캐릭터가 몸을 합쳐 새로운 남자 캐릭터 한 명으로 나타나는 게 나에게는 퀴어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게 너무 익숙하고 오래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거기에서 퀴어성을 찾아내기 어렵다. 나 역시 최근에 와서 발견한 부분이다. 일상, 삶 전반에서 그런 부분들을 찾아낼 수 있도록 오염시키는 작업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 이번 전시에서 ‘씨름(Bulky_fusion 1)’(2021), ‘합신 용자합체(最強合体)(Bulky_fusion 2)’(2021) 등이 발표되었다. 퓨전은 최하늘의 작업에 잘 어울리는 단어이다. 조각을 탐구하지만, 전통적인 조각의 담론을 해체하면서 최하늘만의 조각적 담론을 만들어내는 작업은 퓨전적이다. 또한 삶의 중심이 나에서 타인으로 이동하고 견고한 나의 독립성이 약해져 내가 아닌 누군가를 통해 행복을 느끼는 것이 사랑이라면, 이 역시 퓨전적이다. 최하늘의 작업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도 되는가?
퓨전은 퀴어처럼 한국에서 사용되면서 그 자체가 갖는 의미 이상으로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게 된 단어이다. ‘드래곤볼’에서 남자와 남자가 합쳐져 새로운 남자 하나가 되는 상황에서 나는 성적인 결합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그런데 어떤 은유적인 차원에서는 질문에서처럼 독해할 수도 있겠다. 사랑에 빠져 나 자신이 사라지는 것 같은 경험을 하면서도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봐도 좋을 것 같다.
- 이번 전시에서 특히 육체성과 섹슈얼리티가 강조되었다.
영상 작업인 ‘훈련 또 훈련, 정진 또 정진(Rigorous self-discipline)’(2021)의 인상이 강하기도 하고, 작품 대부분이 덩어리와 덩어리가 합쳐져 하나의 덩어리로 결합하는 과정을 담기 때문에 성적이고 에로틱한 이미지가 연상될 것 같기는 하다. 나 역시 어느 정도는 그런 부분들을 의식하며 만들었다. 실제로 내가 일상에서 운동하거나 치료를 받을 때 느꼈던 감각들이 작업의 출발이 되었다. 일상에 존재하는 성적인 부분들을 발견하고 작품에 담았으니 관객들도 그것을 감상하고 자신의 일상을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 이번 전시 ‘벌키’에서는 퀴어에 더 집중한 인상이다. 전시된 작품들이 전체적으로 이전보다 직설적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과거 ‘리포에틱’과의 인터뷰에서 퀴어적인 것을 직접적인 메시지로 전하기보다 형식에 녹여내겠다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년에 P21에서 열렸던 개인전 ‘샴(Siamese)’에서도 퀴어를 직접적, 집중적으로 보여주긴 했다. 다만 그 전시에서 중요한 주체는 조각가 김종영이었다. 이번 전시는 비슷한 방법론을 발전시킨 버전인데 달라진 점은 주체가 최하늘이라는 것이다. ‘샴’은 김종영의 조각을 작업의 재료로 사용했기 때문에 은유적으로 보였을 수 있고, 실제로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이번에는 레퍼런스 없이 나를 중심에 놓고 만든 조각이기 때문에 더 직접적이라 느껴졌을 것이다.
- ‘이차돈과 혁거세(Two eggs(not balls))’(2021)에서는 어떻게 퀴어 코드가 덧입혀졌는가?
잘린 목에서 하얀 젖이 솟구치고 인간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말이 전혀 안 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여서 이차돈과 박혁거세를 선택했다. 너무 이상하다는 느낌이었다. 그것을 불면 나라의 걱정과 근심이 사라졌다는 만파식적(萬波息笛)도 기이하다. 또한 ‘이차돈순교비’나 이차돈의 목에서 흰색의 폭포수가 솟구치는 장면을 그린 회화를 보면 나뿐만 아니라 많은 게이가 퀴어적이라 느낄 것이다.
- ‘벌키(Bulky)’(2021)와 관련해 ‘게이들이 육체를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관리한다’고 말했는데 관련해 조금 더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한다.
과거 게이 신(scene)에서 유명했던 논쟁을 들어 설명하자면, 퀴어 퍼레이드에서 퀴어들이 노출을 감행하고 사람들에게 괴이한 차림새를 보이는 것에 찬성하는 입장과 그와 같은 과감한 노출을 하지 말고 이성애자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입장이 공존했다. 옛날의 나는 후자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게이로 살아가다 보니 게이들에게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하는 게 개인주의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 역시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가타부타 이야기하지 않는 상태가 되길 원하는데, 그러려면 노출을 하면서 싸울 필요도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와 같은 이미지 혹은 다른 이미지들도 널리 각인시켜 다양한 어떤 이미지든 아무것도 아닌 것,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이 되어야 좋은 사회일 것이다. 게이 신에서 몸을 가꾸고 외형에 신경을 쓰는 것도 그와 같은 운동 전략, 해방에 가까워지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생각한다.
- 이번 전시와 관련해 누구도 질문을 해주지 않아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면?
그런 것은 딱히 없다. 나는 어떤 장치를 작품에 숨겨놓고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봐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부분은 매우 잘 보이게 하고, 사람들이 몰랐으면 싶은 부분은 일절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양함을 편견없이 받아들이는 게 예술”
장연우 큐레이터와의 대화
- 최하늘 작가의 개인전 ‘벌키’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그리고 전시를 감상할 관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
아라리오뮤지엄의 기획전 공간인 언더그라운드 인 스페이스는 공간사옥에서 운영하던 소극장 공간사랑 자리에 위치한다. 공간사옥의 공간화랑과 소극장 공간사랑은 1970~1980년대 젊은 예술가들에게 전시 및 공연 기회를 많이 주었고 새로운 시도를 굉장히 환영하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언더그라운드 인 스페이스도 그와 같은 선상에서 운영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젊은 작가나 실험적인 작가들에게 개인전 기회를 제공하는 장소가 되었다. 또한 아라리오뮤지엄은 조각 친화적인 미술관이다. 컬렉터인 김창일 회장님의 취향도 영향을 주었고, 전시 공간의 구조나 색채가 회화보다는 조각을 더 돋보이게 한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조각가들을 조사, 연구하고 있다.
최하늘은 퀴어 아트와 조각에 대한 실험적이고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는 작가로, 합정지구에서의 개인전 ‘No Shadow Saber’(2017)로 알게 되었고 이후 활동을 주목해왔다. 그는 자신이 표현하길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고 그것을 시각적으로 설득력 있게 구현해내는 작가이다. 최하늘은 일상에서 ‘퀴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퀴어가 가시화되긴 했지만, 아직 낯설고 멀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자주 사용하고 시각화하다 보면 퀴어가 평범해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이번에 전시된 최하늘의 작품들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이나 대중문화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퀴어한 지점들이 담겨 있다. 퀴어가 평범함과 엮이니 퀴어한 것이 더 이상 퀴어하지 않은 것, 어디에서나 가까이 볼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관객들도 거리감을 좁혀 편견 없이 봐주고 즐겨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예술이란 다양함과 여러 문화를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