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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단 겨우 외운 고교 자퇴생, '수학계 노벨상' 필즈상 수상 쾌거

창의적 시인 꿈꾸던 고교 자퇴생, 수학 난제를 독창적으로 해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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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예은⁄ 2022.07.06 14:24:39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교수가 5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학교에서 열린 국제수학연맹(IMU) 필즈상 시상식에서 필즈상을 수상한 뒤 메달과 함께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한국계 수학자인 허준이(39. June Huh)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교수가 5일(현지시간) 한국계 수학자로는 처음으로 '수학계 노벨상'인 필즈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학창 시절 '수학을 포기한 학생'이었던 고등학교 자퇴생이 20년 뒤 전세계 수학계를 놀라게 한 반전을 일으킨 것이다.

허 교수가 수상한 필즈상은 1936년부터 세계 수학계에서 탁월한 공적을 인정받은 40세 미만의 생존 학자에게 4년에 한 번씩 수여되는 상이다. 필즈상은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릴 정도로 권위가 높지만, 아무리 뛰어난 성과가 있다 하더라도 40세가 되면 상을 받지 못하는 나이 제한으로 노벨상보다 한층 엄격한 기준을 갖는다. 늦어도 30대 초중반에는 세계적 성과를 올려야만 수상의 영예를 안을 수 있는 것이다.

 

이로인해 수학자가 평생 이룬 업적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수학계의 또 다른 노벨상인 아벨상과 달리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수학자를 위한 상'으로 평가받는다. 350년 동안 풀리지 않았던 수학계의 난제인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고 2016년 아벨상을 수상한 앤드루 와일스도 필즈상은 받지 못했다.

엄격한 나이기준으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수학 영재를 위한 상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허 교수는 '수포자'가 될 뻔한 늦깎이 수학 천재라는 점에 있어서 필즈상 수상의 의미가 남다르다. 허교수는 미국 출생으로 미국 국적자이지만 두 살 때 부모를 따라 한국에 들어온 뒤 초중고 및 대학교를 모두 한국에서 다녔다. 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교수와 이인영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명예교수 슬하의 외아들인 허 교수는 학자 집안의 아들이었으나 다른 의미로 남달랐다.

 

허 교수는 초등학교 2학년 끝무렵까지 구구단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고, 아버지인 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교수가 낸 수학문제집 풀이 숙제에서 답지를 베꼈다가 혼쭐이 나던 학생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알파벳을 가르치다가 두 손을 들었다. 서울 상문고 재학시절 허 교수는 '창조적 표현을 하는 시인'을 꿈꾸며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5일 수상 직후 동아사이언스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허 교수는 "자퇴 이후 전업 작가로서 능력에 한계를 느끼고 좋아하는 과학 과목을 더 공부해 과학 분야에서 글쓰기를 이어갈 목표로 검정고시로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진학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교 때도 여전히 학업보다는 다른 곳에 관심이 많아 F 학점이 수두룩했고 그 탓에 대학을 6년이나 다녔다.

허 교수는 학부시절 10대 시절부터 좋아하던 글쓰기를 지속적으로 탐닉하며, 세계적인 과학자들을 만나는 과학 기자를 희망 직업으로 삼게 된다. 그리고 이 과학 기자의 꿈을 통해 허 교수 인생의 대전환이 찾아온다. 학부 졸업을 앞두고 기자가 되면 '일본의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91) 하버드대 명예교수'를 첫 번째로 인터뷰이로 삼겠다는 다짐으로 그의 강의를 듣게 된 것이다.

 

지난 5일 매일경제 보도에 따르면, 서울대학교에 노벨상급 석학초청 사업으로 초빙된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의 강의는 첫 날 200명 넘는 학생으로 붐볐으나, 극악의 난도로 마지막 강의에 5명만이 남았다. 그 5명 중 1명이 허준이 교수였다. 허준이 교수 역시 히로나카 교수의 강의를 이해하진 못했지만 미래에 히로나카 교수를 첫번째 인터뷰이로 삼겠다는 다짐 하나로 꾸준히 강의를 들었다고 술회했다.

 

그리고 이 강의를 계기로 허 교수는 수학으로 전공을 전환해 서울대 수학과 석사과정에 진학하게 된다. 히로나카 교수의 강의를 통해 '날것'의 수학을 만나게 되고, 글쓰기를 통해 창조적 표현을 하는 시인과 기자를 꿈꾸던 허 교수는 수학의 언어를 통해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깨닫게 된 것이다.

 

5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학교에서 열린 필즈상 시상식에서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 관련 영상이 나오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의 강의는 허 교수의 인문학적 소양과 창의적 능력이 수학과 만나며 수학의 난제를 독창적인 방식으로 해석하는 길라잡이가 됐다.

 

수학 전공으로 전환한 석사 과정 이후 미국 유학길에 오른 허 교수는 박사과정 1학년 때인 2012년 리드(Read) 추측을 시작으로 강한 메이슨(strong Mason) 추측, 다우링-윌슨(Dowling-Wilson) 추측 등 난제를 하나씩 증명해내며 수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또한 지난 2017년 다른 두 명의 수학자와 함께 로타 추측을 증명하는 데 성공하며 '수학계의 정점에 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의 수학·과학 전문 매체인 콴타매거진은 허 교수같이 늦게 출발한 학자가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이런 성과까지 얻은 것에 대해 "18세에 처음 테니스 라켓을 잡은 선수가 20세에 윔블던에서 우승한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새로운 발견을 위해 길게는 수십 년간 연구해야 하는 수학 분야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을 법한 '뜻밖의 여정'이라는 것이다.

 

5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허 교수는 중학교 3학년 한 때 수학 경시대회에 나가볼까 라는 생각을 한적도 있었지만 포기했었다. 선생님이 "지금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말한 것이다. 지금의 허 교수는 “어떤 일이라도 시작하기에 늦은 일은 없다”고 말한다.

허 교수는 시와 수학은 여러 면에서 닮아있다고 평가한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아이디어를 종이 위에 고체화 시킨다는 점에서다. 단지 그 언어가 수학의 기호적 소통으로 변환되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수학을 관통해 인문학과 인류를 바라보는 통찰로 허 교수는 수학의 언어로 인류에 대한 지속적인 물음을 던지며 창조와 발견의 기쁨을 이어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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