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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임근혜 아르코미술관 관장 “미술관 이노베이션 시대 온다”

소수자· 환경·이동성 등 첨예한 사회적 담론 담은 전시와 프로그램 지속...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의 문화적 상징, 아르코미술관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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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28호 안용호⁄ 2022.07.19 15:02:32

 '올 어바웃 러브' 전시에서 만난 장세진 작가의 '어머니 산신 기관'은 2017년에 시작해 현재까지 진행 중인 작업으로, 국제 입양과 관련한 연구 자료와 실제 입양으로 아이를 잃은 어머니들의 인터뷰, 드로잉과 텍스트로 구성된 대형 설치 작업이다. 사진=아르코미술관 제공

대학로의 상징, 붉은 벽돌 건물의 아르코미술관에서 관객들은 최근 특별한 전시를 만났다.

기획초대전 ‘올 어바웃 러브: 곽영준& 장세진’(5월 19일~7월 17일)은 국제무대에서 주목받는 한국계 미국인 곽영준 작가와 한국계 네덜란드인 장세진 작가를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했다. 이들 작업의 공통점은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이분법적 정의, 서구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 기록 방식, 가부장적 권위 등을 해체한다는 데 있다.

곽영준 작가의 조각과 영상 작품은 가부장적인 시선과 타자화하는 폭력성에 온몸으로 맞서는 퀴어적인 몸짓을 포착한다. 작업에서 나타나는 신체는 일반적인 사회 통념에 의해 정의될 수 없으며 각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을 담는 일종의 그릇인 동시에 개인의 정체성과 외부의 통념이 충돌하는 극도로 정치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그는 이를 통해 이성애적 관점을 넘어서 퀴어와 트랜스젠더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연대에 대해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한다.

 

장세진 작가는 다른 인종 간의 국제 입양 이면에 있는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적 관습을 드러내고 이에 저항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아이를 해외로 입양시켜야 했던 두 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왜 입양 국가는 아이가 어머니로부터 분리되고 모국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을 막지 못했는지”를 질문한다. 그의 작업은 인권을 무시하는 폭력적인 국제 입양 과정에서 상실된 인간성을 치유하는 실천으로 이어진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아르코미술관의 운영 방향은 포용·유용·협업·공유이다. 미술관의 방향성이라고 하기에는 생소한 언어들이다. 48년 역사의 공공미술관 아르코는 어디를 바라보고 있을까? 임근혜 관장을 만나 궁금증을 풀었다.

지난 5일 아르코미술관에서 만난 임근혜 관장. 사진=문화경제 

왜 포용·유용·협업·공유인가

-‘올 어바웃 러브’ 전시에서 다룬 성소수자, 국제입양이라는 주제가 매우 낯설고 충격적이었다.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나?

“젠더 이슈라던가, 국제 입양 같은 부분에 대한 작가들의 트라우마와 치열한 고민을 예술이라는 언어로 표현한 것에 대해 관객들의 공감이 컸습니다. 그동안 제도권에서는 쉽게 드러낼 수 없었던 부분이었죠. 이번 전시를 통해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 그리고 공동체 문제를 다루고자 했습니다.

이민자 수가 증가하고 다문화로 변해 가는데, 우리 사회는 아직도 문화적 포용성에 대해서는 반성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개인·사회적인 차별로 고통받으며 먼 외국에서 삶을 살아가고 활동하고 있는 두 작가의 경험과 작품을 통해 이 문제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작가들처럼 입양의 경험이 있거나 성소수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어떤 소외감, 소수성을 내포할 수 있거든요. 관객들의 경우 이번 전시를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에 투영하며 어떤 관객은 충격을, 또 다른 관객은 감동하며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아르코미술관의 미션 중 하나가 ‘포용’이다. 전시와 프로그램을 통해 어떻게 구현되나?

“‘포용’은 ‘다양성’과 같이 가는 개념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보아도 문화가 가장 번성했던 시기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했던 시기죠. 문화적 다양성은 여러 층위에서 있을 수 있는데 미술관 운영 영역에 있어서 다양성은 창조적 영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요소들을 통해 받는 자극, 새로운 것에 반응하는 태도,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인식을 바꾸는 것 자체가 예술의 힘이죠. 저희가 표방한 포용은 어떤 변화를 수용하는 의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르코의 전시를 통해, 인간중심주의에서 배제되었던 비인간 사물을 조명한 적이 있어요. 사물을 인간 중심으로 보지 않고 인간과 비인간을 동등한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도 일종의 포용입니다. 주류의 시각에서 벗어나 유연한 접근을 의도하는 것, 다양한 시각을 열어주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라고 생각해요.”

코로나19가 드러낸 환경·이동성 이슈

지난해 7월 1일부터 8월 29일까지 아르코미술관에서는 기획초대전 ‘정재철: 사랑과 평화’가 개최됐다. 이 전시는 작가가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사물 자체에 내재한 힘과 생기에 대한 인식, 나아가 생태에 대한 사유를 엿보게 했다. 또한 작가는 해류를 통한 쓰레기들의 이주를 드러내는 ‘블루오션 프로젝트’를 통해 인류에게 간섭하고 사건을 촉진시키는 비인간 사물들의 연결망을 보여주었다.

한편 지난 1월 16일부터 2월 6일까지 진행된 아르코 스크리닝 프로그램 ‘직면하는 이동성: 횡단/침투/정지하기’는 ‘이동성(Mobility)’에 대한 개념을 공유하고, 동시대 예술 안에서의 다양한 양태로서의 모빌리티를 통해 우리가 세계를 마주하는 방식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자리였다. 상영 작품들은 각각 이동적 세계 내에서 ‘횡단-침투-정지하기’라는 재현 방식을 마주하게 하면서 관객들에게 비판적 사유와 성찰을 촉발했다.

펜데믹 시대를 겪고, 팬데믹 이후를 상상하는 우리에게 ‘이동성(Mobility)’은 다양한 양태로 발생한다. 코로나 위기가 세계적으로 서로 연결된 경제 및 사회 시스템을 멈추게 하면서, 역설적으로 그 시스템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지를 여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아르코의 주제기획전 ‘투 유: 당신의 방향’(지난 2월 24일~4월 24일 개최)도 ‘이동성’에 관한 전시다. 이는 이동 수단으로서의 모빌리티의 미래와 그 기술의 가능성을 논하려는 전시가 아니었다. 전시는 주체적인 행위라고 믿었던 나의 이동이 코로나19를 통해 통제될 수 있음을 확인하며 이에 따라 변화한 사회와 그 경험의 단면을 들여다보고 이동의 구조가 과연 모두에게 평등한가를 물었다.

임근혜 관장은 미술관의 기능을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과 사회의 역사를 재현(Represent)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사진=문화경제

-올해 초 진행한 이동성에 관한 전시와 프로그램은 어떻게 시작됐나?

“새로운 전시 의제를 끄집어내고 그것을 미술 언어로 만들어 담론화하는 과정을 거치며 저희도 많은 것을 배웁니다. 내부 큐레이터들이 이슈가 되는 용어와 개념에 관한 레퍼런스를 찾아 공부하면서 이를 예술적인 맥락과 접목하는 노력을 부단히 하고 있습니다. 이동성에 관한 프로그램은 그 과정에서 나온 산물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이동이 제한되고 여행도 할 수 없게 되면서 이동이라는 것이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동은 인간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쟁취해야 하는 권리라는 사회적 인식도 생겨났죠. 이 문제를 미술계 차원의 담론으로 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동성을 주제로 하는 프로그램을 과연 미술계나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고민도 있었지만 의외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이번 ‘올 어바웃 러브’ 전시도 어떻게 보면 이동성, 경계에 대한 문제를 다룬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작가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무관하게 임의로 정해진 국적이나 성 정체성에 대한 경계를 넘나들면서 스스로 지형도를 바꾸고 있으니까…. 예술가를 스스로 경계에 선 사람, 의식이나 문화의 어떤 지형을 바꾸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기도 하잖아요.”

-이동성이라는 인문학·사회학적 문제를 전시로 구현하는 작업이 어렵지 않았나?

“지난 전시와 프로그램을 통해 이동성이 인문학적으로 연구되고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작가들의 경우 이동에 대한 자신의 체험과 경험을 예술적으로 녹이고 있는 분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전시를 위해 건국대학교 모빌리티 인문학 연구원(이하 연구원)과 손을 잡았는데요. 전시는 아르코가, 연계 학술행사는 아르코와 연구원이 공동으로 기획했습니다. 이를 통해 장애인 이동권, 도시화와 함께 일어나는 이주 현상, 재개발·재건축으로 인해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는 서민들의 문제 등을 콘텐츠로 다뤘는데요. 이 과정에서 저희 아르코는 이 담론을 예술과 전시의 층위로 번안하는 작업을 맡은 셈이죠.”
 

48년 역사를 자랑하는 아르코미술관은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의 문화적 상징이다. 사진=아르코미술관

미술관의 역할에 대한 재정의 필요

-미술관 운영 방향이 전통적인 미술관과 많이 다르다. 대안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인데…

“최근 미술관을 포함한 박물관의 역할에 대해 재정의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계몽주의 시대부터 내려오던 박물관의 역할은 과거를 보존하고 그것을 미래의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일종의 역사적·예술적 필터링 작업이죠.

그런데 그 역할에 대한 정의가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국제박물관협회(International Council of Museums)가 몇 년에 한 번씩 박물관의 개념을 재정의하고 있는데, 최근 민주적·다성적 공간으로서의 박물관의 개념이 논의되었다고 합니다. 사회적 전환기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사회적 변화를 이끄는 역할을 미술관을 포함한 박물관이 해야 한다는 새로운 도전이 일어나는 겁니다.

제가 영국에서 공부할 때 지도교수님이 뮤지엄 이노베이션(Museum Innovation) 분야의 전문가이셨는데요. 미술관·박물관이 기술적인 이노베이션과 함께 새로운 윤리 의식, 다양성 등 사회 변화에 중요한 기능을 하는 사례 연구와 관련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하셨습니다. 저도 그 영향을 받은 게 사실이고요.

어떻게 보면 미술관·박물관은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과 사회의 역사를 재현(Represent)하는 공간입니다. 그 역할이 없으면 미술관과 사회 사이에 균열이 생긴다고 봐요. 아르코의 전시와 프로그램이 대안적으로 보인다면, 타 미술관과 다른 차별성과 정체성이 자라고 있다는 의미이니 좋은 일 아닐까요?”

 

- 공공미술관으로서 아르코미술관의 존재 의미는 무얼까?

“진행형으로 내부에서 논의가 계속되는 부분이긴 합니다. 서울에는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이 있고 또 사립미술관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미술관들의 기능이 중복된다면 존재 의미가 퇴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르코는 미술계에 기여할 수 있는 또 다른 역할을 찾아가며 우리만의 정체성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저희는 상대적으로 컬렉션이 적습니다. 작품을 구입할 예산도 부족하고요. 또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서울시립미술관처럼 블록버스터 전시를 할 수 있는 여력도 안 되고 규모도 작습니다. 그래서 이들 미술관과는 다른 각을 잡아보자는 거죠. 동시대의 중요한 의제를 중심으로 미술계나 사회가 관심을 가질 만한 첨예한 이슈들을 전시 의제로 뽑아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미술 담론화해 확산하는 것이 바로 저희의 방향성입니다.

지난 5월 18일 '올 어바웃 러브' 기자 간담회에 장세진(사라 반 데어 헤이드, 왼쪽) 작가와 곽영준 작가가 참석해 삶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아르코미술관 제공

이번 아르코의 ‘올 어바웃 러브’ 전시도 성소수자나 국제입양자의 문제를 소수자 내부가 아니라 밖으로 끄집어내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함께 나눴는데요. 이런 전시와 프로그램을 지속하고 쌓아나가며 공공미술관으로서 아르코의 정체성을 더 분명히 그려내려 합니다.

다행히 이슈 파이팅, 기획력 중심의 미술관 활동에 대해 생각보다 반응이 좋습니다. 오랫동안 동시대 미술관의 주요 관람객은 20~30대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요. 저희 같은 경우 사회적 이슈나 변화를 예술적 언어로 표현하는 데 관심이 많은 젊은 층이 관람객으로 오고 또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특성화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죠.”

-뮤지엄 이노베이션의 연장선상에서 미래의 미술관은 어떤 모습이 될 거라고 보나?

“미술관의 역할에 대한 재정의와 함께 기술적인 이노베이션도 병행되고 있습니다. 디지털라이징을 통해 소장품의 온라인 서비스가 가능해지고, 오디언스의 층이 변하며 접근성이 좋아집니다. 특히 장애인, 노령자, 지방 거주자들처럼 그동안 미술관에 대한 물리적 접근이 어려웠던 분들일수록 온라인을 통해 더욱 쉽게 미술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오디언스층의 변화는 다양성·포용성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만듭니다. 미술관은 이 다양한 요구에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술적·사회적 의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개인적이고 내밀하면서도, 모든 사람이 공감하거나 또는 서로 이견이 있을 수 있는 이슈를 열린 환경에서 얘기할 수 있는 공간, 미래의 미술관을 그려본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요.”

지난 2020년 부임한 임근혜 관장은 미술관의 새 방향성과 정체성을 정립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문화경제

 

임근혜 관장은


한국과 영국에서 예술학, 큐레이터쉽, 미술관학을 전공하고 서울시립미술관 전시과장(2013–17)과 국립현대미술관 전시2팀장(2017–19)을 거쳐, 현재 아르코미술관 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동시대 미술과 제도의 역학, 미술관의 사회적 역할, 뮤지움 이노베이션에 대한 주제로 꾸준히 연구와 강의·저술을 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창조의 제국: 영국현대미술의 센세이션 그리고 그후’(2009, 2019)가 있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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