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0호 김금영⁄ 2022.08.11 16:01:25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 유족이 국가에 기증한 문화재와 미술품인 ‘이건희 컬렉션’을 이르면 2025년부터 해외에서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또, 국내에서는 순회 전시를 이어가고, 온라인으로도 기증품 관련 정보를 찾아볼 수 있게 된다.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 신임 관장은 취임 후 11일 가진 첫 기자간담회에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건희 컬렉션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연내에 각 기증품을 유물 관리 전산 시스템에 입력하는 ‘등록’ 절차를 마치고, 2025년부터는 국외 전시를 추진하기 위해 몇몇 기관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은 이건희 회장의 기증품 가운데 93%에 해당하는 2만 1613점을 관리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를 토대로 ‘어느 수집가의 초대 – 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을 열고 있다. 윤 관장에 따르면 이달 말까지 열리는 이 전시에 현재까지 약 18만 7000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며 흥행하고 있다.
서울 전시가 끝난 뒤엔 순회 전시를 연다. 윤 관장은 “유물의 보존·관리 문제로 서울을 비롯해 호남권과 영남권·충청권 이렇게 4곳에서 특별전을 연다”고 설명했다.
하반기 국립광주박물관 전시(10월 4일~2023년 1월 29일)를 필두로, 내년엔 국립대구박물관(2023년 4월 11일~7월 9일), 국립청주박물관(2023년 7월 25일~10월 29일)에서도 선보인다.
소속박물관의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과는 내용을 달리해 기증품의 전반적인 소개와 해당 지역의 특성이 반영되도록 전시를 구성해 차별성을 갖출 계획이다.
또, 언제 어느 지역을 방문하더라도 이건희 기증품을 만나볼 수 있도록 특별전뿐 아니라 소속박물관 상설전시에도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윤 관장은 “지역의 역사‧문화적 배경과 소속박물관의 브랜드 주제에 맞는 기증품을 상설전시에 활용함으로써 소속박물관의 전시효과 제고와 기증의 가치 확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등록 절차에도 박차를 가한다. 윤 관장은 “2만여 점에 이르는 이건희 컬렉션을 어떻게 하면 하루빨리 국민에게 공개할지가 관건”이라며 “올해 말까지 관련 내용을 분석한 분야별 보고서(목록집) 9권, 2025년까지 20여 권을 발간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과 13개 소속박물관의 학예연구직이 참여하고 있다. 보고서를 발간하면 국민이 이건희 기증품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건희 컬렉션 기증 작품 전체에 대한 등록이 마무리되면 국민이 이를 어디서든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게 할 방침”이라며 “내년부터 e뮤지엄 등 온라인을 통해 순차적으로 공개되며, 기증품의 학술적 의미와 가치를 파악하는 조사·연구를 지속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건희 컬렉션을 선보인다. 윤 관장은 “해외 몇몇 박물관이 이건희 컬렉션 전시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그간 해외 작품을 국내에 들여와 선보이는 작업은 활발했지만, 반대로 우리 문화를 외국에 소개하는 데 다소 부족했던 면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 함께 자리한 윤상덕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과장은 “미국 시카고박물관은 2026년 초 정도에 대규모 전시를 열고자 준비 중”이라며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시카고박물관보다는 작은 규모로, 2025년 한국실에서 전시를 꾸미려 한다. 구체적인 전시 내용은 아직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장애인·취약계층 접근성 높이고 MZ세대 유입할 것”
윤 관장은 하반기 주요 업무 계획도 발표했다. 대표적으로 ▲장애인과 취약계층의 접근성 향상 ▲MZ세대 관람객 유입 ▲청자실·기증관 전면 개편 ▲세계 문화와 한국문화를 연결하는 창의 역할을 내세웠다.
먼저 소외 계층 포용에 대해 윤 관장은 “그동안 박물관이 많은 변화를 거쳤다. 과거처럼 전시만 하는 게 아니라 여러 다양한 공연, 교육 등을 아우르며 많은 요구에 발맞추고 있다”며 “하지만 진정 모든 국민에게 다가갔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많은 사람이 박물관을 찾았지만, 장애인과 취약계층의 접근성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장애인을 위한 특화된 교육 공간을 연내 만들어서 오픈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장애인 등의 전시 관람을 돕기 위해 수어통역 및 수어전시해설 인력을 배치했고, 상설전시관에 점자 전시자료 및 안내판, 촉각전시품을 확대할 예정이다.
또, 지난해 11월 문을 연 ‘사유의 방’ 브랜드 스토리를 토대로 국보 반가사유상 점자감각책(멀티미디어형 점자책)을 발간해 전국의 맹학교와 점자도서관에 배포할 계획이다.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한 서비스도 개발한다. 양방향 소통 기능을 탑재한 전시안내 무인안내기와 연동 모바일 시스템을 개발해, 장애 유형별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현재 운영 중인 안내 로봇 ‘큐아이’에 수어 해설 콘텐츠도 확대된다. 오는 11월엔 장애인 특화 교육공간인 ‘장애인 스마트 강의실’도 마련한다.
또, 상대적으로 박물관을 찾는 비율이 낮았던 젊은 층을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도 기울인다.
윤 관장은 “박물관에 연간 3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이중 상대적으로 20~30대 MZ세대의 방문율이 취약하다”며 “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특성을 갖추기 위해 외부 전문기관 및 MZ세대 대학생들과 협업 과정을 거친 박물관 홍보 콘텐츠를 다음달부터 선보일 예정이다. MZ세대가 박물관에 많이 유입돼 새로운 관람객층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상설전시·기증관 전면 개편으로 감동 더하는 공간 만들 것”
박물관의 기본인 상설전시와 기증관 개편에도 나선다. 낙후된 청자실의 전시 환경을 개선해 도자공예실 개편 사업을 마무리하고, 대표 소장품인 고려청자 전시공간을 한국문화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기증관의 경우 2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개편에 나선다. 올해는 1단계로 기증 오리엔테이션 공간을 조성한다. 개편되는 기증관의 도입부로 기증자의 삶과 수집 사연을 풀어내 인간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다.
윤 관장은 “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건 보존, 관리도 있지만 직접 볼 수 있는 상설전시가 매우 중요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4분의 1 비중을 도자가 차지하는데, 그중 우리 문화를 대표하는 수준 높은 청자를 많이 갖고 있다. 이 작품들을 새로 전시해서 박물관의 명소로 만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상설전시관 중 기증관이 한 층을 차지하는데, 기증의 숭고한 가치가 담긴 의미 있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방문하려 예정하고 오는 관람객이 불과 1~2%에 불과하다”며 “기존 전시실 명칭이 기증자 이름으로 돼 있어 어떤 전시품이 있는지 알 수 없고, 종류별로 단조롭게 배열된 전시구성이 관심을 떨어뜨린다는 맹점이 있었다. 이를 전면 바꿔 좀 더 기증의 뜻을 알리고, 감동을 더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세계로 나아가는 박물관 될 것”
또, 국립중앙박물관은 세계 문화와 한국 문화가 서로 만날 수 있도록 외부와 연결하는 창의 역할을 강화한다.
윤 관장은 “국립중앙박물관은 용산으로 이전한 뒤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를 꾸준히 이어왔다”며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외국박물관 한국실 지원사업 또한 지속해왔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상반기에 문을 연 멕시코 아스테카 문명을 소개하는 특별전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에 이어, 하반기에는 한국-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빈미술사박물관 특별전’을 연다.
윤 관장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실로 오랫동안 유럽을 대표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역할과 영향력을 중심으로 오스트리아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본다”며 “전시품은 16~20세기 합스부르크 왕가가 수집한 르네상스, 바로크 시기 회화, 공예품 외에도 고종 황제가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선물한 조선의 투구와 갑옷이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상설전시관 3층 세계문화관에는 이집트실에 이어 메소포타미아실을 새롭게 선보였고, 내년 상반기에 세계도자실의 후속으로 만나게 될 그리스‧로마실을 준비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올해부터 기존 지원사업에 더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던 한국실 지원 사업을 이관받았다. 이로써 세계 주요 박물관에 한국실 신규 설치, 한국실 공간 개선, 전시품 차용, 특별전 개최, 전담 인력 채용 지원 등 체계적인 지원을 확대할 수 있게 됐다.
올해는 미국 시카고 박물관을 비롯해 북미·유럽권 및 동남아시아의 주요 박물관 6개관을 신규 지원할 예정이다. 특히 동남아시아 국가인 태국에 한국실을 마련함으로써 한국실 지역 편중을 해소하고 IT 기술을 접목한 콘텐츠를 활용해 전시품 및 콘텐츠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윤 관장은 “한류 열풍 등 한국문화에 대한 세계의 관심에 부응하고 수준 높은 한국 문화를 해외에 소개할 수 있도록 체계적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며 “세계 주요 거점 박물관을 지원해 양질의 한국문화를 소개함으로써 한류가 전통문화로 확산되는 계기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박물관이 차별 없이 누구나 다 관람할 수 있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장소가 됐으면 한다”며 “‘국민 속으로 다가가는, 누구나 함께 하는 모두를 위한 박물관’, ‘사람과 이야기가 있는, 감동을 주는 박물관’, ‘세계와 함께 하는, 세계로 나아가는 박물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윤 관장은 경북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사학 박사를 수료했다. 1997년 대구박물관 학예연구사로 공직을 시작했다. 국립청주박물관장, 국립민속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등을 거쳐 지난달 15일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취임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