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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현장] 이건희가 사랑한 작가 이중섭… 엽서와 담뱃갑 종이에 그린 그리움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내년 4월 23일까지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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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30호 김금영⁄ 2022.08.18 12:07:36

국립현대미술관이 ‘MMCA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을 내년 4월 23일까지 서울관에서 연다. 사진은 전시장에 작품이 진열된 모습. 사진 = 김금영 기자

“당신이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 이 아고리는 머리가 점점 더 맑아지고 눈은 더욱더 밝아져서, 너무도 자신감이 넘치고 또 흘러넘쳐 번득이는 머리와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리고 또 그리고 표현하고 또 표현하고 있어요. (중략)

나는 우리 가족과 선량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진실로 새로운 표현을, 위대한 표현을 계속할 것이라오. 내 사랑하는 아내 남덕 천사 만세 만세.”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절절한 문구. 이 글과 함께 얼싸안고 웃는 가족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 조화를 이룬다. 근현대미술 거장으로 꼽히는 이중섭 작가가 부인에게 보낸 편지화 중 일부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에게 처음 공개되는 이중섭의 ‘닭과 병아리’. 사진=김금영 기자

국립현대미술관이 ‘MMCA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을 내년 4월 23일까지 서울관에서 연다. 앞서 선보인 ‘MMCA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 시즌 1에 이은 두 번째 특별전이다.

 

지난해 7월 개막해 올해 6월 막을 내린 이건희 컬렉션 시즌 1은 누적 관객 수 24만 8704명을 기록하며 이건희 컬렉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입증했다.

이번엔 이중섭 작가가 주인공이다. 그는 ‘이건희가 사랑한 작가’로도 알려졌다. 본래 국립현대미술관엔 이중섭 작품이 11점밖에 없었지만, 지난해 삼성가 유족들이 이건희 컬렉션을 기증하면서 115점으로 훌쩍 늘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이건희 컬렉션 중에서도 이중섭 작품은 국내외 작가를 통틀어 유영국, 피카소에 이어 가장 많다”며 “작품 수로는 세 번째지만, 판화와 도자기가 대다수인 두 작가에 비해 이중섭은 회화, 드로잉이 월등히 많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1488점 중 이중섭의 작품 80여 점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기존 소장하고 있던 작품 중 10점으로 구성, 총 90여 점의 이중섭 작품을 선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이건희 컬렉션을 통해 소장하게 된 작품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 사진=김금영 기자

전시를 기획한 우현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는 기증 미술품을 활용해 양질의, 희소가치 높은 작품 관람 기회를 관람객에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도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중섭은 ‘황소’ 작품으로 유명하지만, 이번 전시는 1940년대 이중섭이 일본 유학 시기부터 원산에 머무를 당시 작업한 엽서화(36점), 1950년대 제주도, 통영, 서울, 대구에서 그린 전성기의 작품 및 은지화(27점) 등을 중점적으로 볼 수 있게 구성됐다.

윤범모 관장은 “이중섭이 1950년 한국전쟁을 피해 급히 월남하면서 전쟁 이전의 작품을 거의 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이 가운데 1950년대 이전 그린 엽서화가 남아 있는데, 그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라며 “특히 엽서화에서는 이중섭이 여러 매체 실험을 한 흔적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이어 “담배를 포장하던 종이에 그려진 은지화는 손바닥만 한 크기로 작지만, 구성적으로 짜임새 있는 연출이 돋보인다. 또 이중섭의 진정성과 순수성을 보여주는, 이중섭 예술의 시초를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작품들”이라고 설명했다.

사랑하는 부인에게 보내는 절절한 러브레터

 

‘MMCA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에 작품이 설치돼 있다. 사진 = 김금영 기자

이처럼 전시엔 커다란 그림 대신 자그마한 크기의 그림들이 가득하다. 그만큼 세세히 들여다봐야 하는 매력이 있다.

출품작 중 ‘닭과 병아리’(1950년대 전반), ‘물놀이 하는 아이들’(1950년대 전반)은 이건희 컬렉션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품들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이건희 컬렉션을 통해 소장하게 된 작품으로는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가 있는데, 이 모든 작품들의 공통된 특징은 가족에 대한 이중섭의 따뜻한 애정과 그리움이다.

이는 찢어지는 가난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생이별해야 했던 이중섭의 삶에서 비롯됐다. 그는 1916년 평안남도 평원군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넘어가 공부할 때 훗날의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한국이름 이남덕)를 만났다.

 

이중섭의 다양한 은지화를 전시해 놓은 공간. 사진 = 김금영 기자

둘은 행복을 꿈꾸며 결혼했지만,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부산, 제주도 등에서 가혹한 피난 생활을 이어갔고, 결국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내야 했다. 가족과 헤어진 직후부터 1955년까지 이중섭은 새, 닭, 물고기, 게, 아이들, 여인의 모습을 화면에 담으며 가족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사랑을 표현했다.

우현정 학예연구사는 “‘닭과 병아리’는 어미 닭과 병아리 두 마리를 활달한 선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마치 가족의 모습처럼 보이는 구상이 눈길을 끈다”며 “그간 ‘이중섭’ 하면 ‘황소’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전시는 이처럼 가족을 그린 인간 이중섭의 또 다른 면모에 접근한다”고 말했다.

특히 ‘부인에게 보낸 편지’는 이중섭의 로맨티스트적인 모습이 극대화된 작품이다. 가족과 떨어진 이중섭은 아내에게 그림을 곁들인 편지를 보냈다. 편지 가장자리의 아내와 아이들을 그리는 이중섭의 모습, 네 가족이 얼굴을 맞대고 부둥켜안은 모습이 눈길을 끈다.

 

이중섭의 은지화엔 서로를 얼싸안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중섭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사진 = 김금영 기자

편지는 아내에게 보내는 사적인 메시지였는 만큼 아고리, 발가락 등 애정 어린 말들이 등장한다. 아고리는 일본 문화학원 재학 당시 교수가 턱이 긴 이중섭을 보고 붙여준 별명이고, 발가락은 아내를 지칭하는 말로, 연애 시절 아내가 발가락을 다쳤을 때 이중섭이 간호했던 때의 기억에서 파생된 것이다.

이처럼 ‘부인에게 보낸 편지’는 달콤하지만, 전시장 말미에 자리한 ‘정릉 풍경’에서는 씁쓸함이 묻어난다. 이중섭이 심신이 쇠약해진 생의 말년에 그린 작품으로, 이 작품을 제작할 무렵 이중섭은 거식증으로 인한 영양실조와 간염 등을 앓았다.

 

이번 전시에선 사랑하는 가족과 서로 얼싸안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그린 작품들이 눈에 띈다. 사진 = 김금영 기자

이 화면에서 과거 즐겨 그리던 물고기, 게, 아이들, 여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다만 정적만이 가득한 풍경이 이중섭이 느꼈을 외로움의 깊이를 짐작하게 한다. 그토록 그리던 가족을 끝내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이중섭은 1956년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번 전시는 ‘대가’로 알려진 이중섭 이면의 인간 이중섭에게 다가가는 측면이 크다. 윤범모 관장은 “전쟁이라는 불우한 시기 중 탄생한 이중섭의 작품들은, 현재 코로나19 펜데믹을 겪는 우리에게 치유의 개념으로도 다가온다”며 “이번 전시가 이중섭의 삶과 그의 예술을 함께 느끼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삼성 ‘이건희 컬렉션’ 기증에 이어지는 대중의 관심

 

이중섭의 ‘부인에게 보낸 편지’. 가족과의 재회를 희망하는 이중섭의 간절함과 기대감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 김금영 기자

한편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부인 홍라희 여사와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차녀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유족은, ▲국가경제 기여 ▲인간 존중 ▲기부문화 확산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역설한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한 취지 아래 지난해 4월 미술품 기증으로 사회 환원을 실천했다.

고 이건희 회장은 평소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 사회가 우리에게 기대하고 있는 이상으로 봉사와 헌신을 적극 전개할 것, 인류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기업의 사명,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은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시대적 의무”라고 강조하며 사회와의 ‘공존공영’ 의지를 담아 삼성의 각종 사회공헌 사업을 주도한 바 있다.

 

이중섭의 말년작에 속하는 ‘정릉 풍경’. 따뜻한 대기 속 쓸쓸한 풍경은 이중섭이 느꼈을 쓸쓸함을 짐작하게 한다. 사진 = 김금영 기자

국보 등 지정문화재가 다수 포함된 고 이건희 회장 소유의 고미술품과 세계적 서양화 작품, 국내 유명작가 근대미술 작품 등 총 1만 1000여 건, 2만 3000여 점이 국립기관 등에 기증됐다.

구체적으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보물 1393호), 고려 불화 ‘천수관음 보살도’(보물 2015호) 등 지정문화재 60건(국보 14건, 보물 46건)을 비롯해 국내에 유일한 문화재 또는 최고(最古) 유물과 고서, 고지도 등 개인 소장 고미술품 2만 1600여 점은 국립박물관에 기증했다.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이중섭의 ‘황소’, 장욱진의 ‘소녀/나룻배’ 등 한국 근대 미술 대표작가들의 미술품 1600여 점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했다.

 

12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막한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을 찾은 시민들이 현장예매를 위해 줄을 서 있다. 사진 = 연합뉴스

한국 근대 미술에 큰 족적을 남긴 작가들의 작품 중 일부는 광주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등 작가 연고지의 지자체 미술관과 이중섭미술관, 박수근미술관 등 작가 미술관에 기증했다.

국내에서도 서양 미술의 수작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국립현대미술관에는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호안 미로의 ‘구성’,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 및 샤갈, 피카소, 르누아르, 고갱, 피사로 등의 작품이 기증했다.

지정문화재 등이 대규모로 국가에 기증된 전례가 없어 당시 국내 미술계를 비롯해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기증 후 지난해 7월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과 딸인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해 이건희 컬렉션을 관람하기도 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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