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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인터뷰] ‘독도16도’ 김상훈 오너셰프, "삶의 반을 요리와 조리복에 매달렸다"

서울 청운동 ‘독도16도’ 김상훈 오너셰프가 완성한 '한국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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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30호 김응구⁄ 2022.08.24 11:21:39

김상훈 셰프는 한국적인 것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조리복이나 술잔, 그릇 하나에도 한국적인 느낌을 담아내는 작업을 쉬지 않는다. 사진=김응구 기자

젊은 오너셰프의 생각과 태도는 이미 ‘만렙’의 마스터(master)나 다름없었다. 앳된 열다섯 나이에 요리를 시작한 것도 눈을 커다랗게 만드는데, 그 당시 실용적인 조리복을 만들 꿈까지 꿨다니 입마저 크게 동그래졌다.

김상훈 셰프는 서울 청운동에서 전통주를 취급하는 레스토랑 ‘독도16도’를 운영한다. 그전에는 회기동에서 한상차림 한식당을 운영했다.

독도16도를 뭐라 딱 꼬집어 소개하기 쉽지 않다. 파인다이닝, 비스트로, 아니면 펍까지, 연결 지을 만한 단어가 마땅치 않다. 김상훈 셰프는 ‘한국술집’이라고 소개했다. 좀 낯설다고 하자 “한국의 술집을 뭐라 말할까, 고민했을 때 한국술집이 가장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친절한 해석도 잊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적어도 전통주를 파는 업소라면 전통주 전문점과 한국술집, 이 두 가지 카테고리로 나뉜다고 생각했어요. 전통주 전문점은 ‘이강주(梨薑酒)’처럼 옛날부터 빚어온 전통주를 취급하는 곳, 한국술집은 비교적 현대에 나온 전통주를 취급하는 곳이에요. 한국술집은 좀 더 고급 개념으로 보고 있습니다.”

20분가량을 한국술집 얘기로 주고받다보니 정작 독도16도는 뒷전이 돼버렸다. 그래서 상호의 뜻풀이로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 ‘독도16도’라는 이름이 참 특이합니다. 우리나라의 가장 동쪽에 있는 섬과 뜻을 알 수 없는 숫자를 조합했어요.

“저희 가게가 서촌에서 좀 떨어져 있어요. 경복궁에서도 걸어서 15~20분 정도는 와야 하죠. 버스를 타도 두세 정거장 거리이고요. 더구나 이 동네에 우리 같은 곳은 없어요. 그런 점에서 독도가 연상됐어요. 대한민국 땅이지만 좀 멀리 떨어져 있고, 쉽게 가기 힘든 곳이잖아요.

16도는 말 그대로 16℃, 온도예요.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때,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 걸쳐져 있는 온도가 16도쯤 돼요. 조금 두꺼운 외투를 입기에는 덥고, 그렇다고 외투를 벗으면 쌀쌀한 정도. 그 온도가 좋은 날씨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독도에 16도를 가져다 붙인 거죠.”

- 문 연 지 1년이 조금 넘은 것으로 압니다. 아직도 고민이 많겠죠?
“지난해 5월 오픈했으니까 1년 3개월쯤 됐어요. 지금도 술과 음식의 페어링이나 서비스가 조금씩 바뀌고 있죠. ‘한국술집’이라는 형태가 아직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이에요. 가장 중요한 건 술과 음식이고, 이를 어떤 서비스로 제공할 것인지 아직도 고민하고 있죠.”

“요리 시작하며 눈 뜬 조리복, 어떻게 만들지 고민 또 고민”

- 조리복 만들 생각을 어려서부터 했죠? 결국 그렇게 됐고요. 어떻게 시작했는지 궁금합니다.
“열다섯 살에 요리를 처음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조리복을 만들고 싶었고요. 제가 대구 출신인데, 그때는 큰 서점에도 요리 관련 서적이 별로 없었어요. 서울로 올라가 대형 서점에 가니 해외 유명 셰프들의 레시피 책까지 꽤 많더라고요. 그때 봤던 외국 셰프들의 모습은 정말 제 눈에는 고귀하고 아름답고, 심지어 신부님처럼 보이기까지 했어요.

그러면서 왜 한국에는 외국 셰프들이 입는 조리복 같은 게 없을까, 궁금했어요. 그래서 제가 직접 조리복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일은 요리사로 성공하고 난 다음의 일일 것으로 생각했죠.”

- 요리도 요리지만 조리복에 완전히 푹 빠져있었던 거군요?
“한참 후 군대 휴가를 나왔을 때 누나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러스(DDP)에서 열린 유명 패션업체 전시회에 갔어요. 방마다 콘셉트가 있었죠. 어떤 방은 하얀 조명에 하얀 배경, 거기에 하얀색 드레스가 전시돼 있었고, 또 다른 방은 까만 조명과 배경에 까만색 드레스가 진열돼 있었어요. 그때 제겐 색깔만 하얀색과 까만색이지 모두 조리복으로 보였어요. 그러면서 조리복도 이렇게 전시되고 사람들의 반응이 좋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죠.

정말로 요리사들이 사람들에게 좋아 보였으면 싶었거든요. 그래서 요리사들이 나쁘지 않은 대우를 받았으면 했어요. 그러려면 옷부터 똑바로 입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러고 나니 조리복을 빨리 만들어야겠다는 조바심이 생겼어요. 준비를 많이 했죠. 그리곤 마침내 조리복 만드는 회사, 그러니까 셰프 웨어 컴퍼니를 설립한 건 4년 전의 일입니다.”

- 요리만 신경 써도 충분히 바쁠 텐데, 조리복을 만드는 것까지 덤비기에는 좀 무리가 있어 보여요.
“어려서 요리할 때 계속 신경 쓰였던 게 있었어요. 보통 조리복이 와이셔츠 형식으로 돼 있잖아요. 요리하다 보면 소매 부분이 작업대에 자꾸 닿아요. 도마나 요리 재료에도 닿고요. 그릇에도 닿고. 그럼 소매를 위로 몇 마디 걷어 올려야 하는데, 바쁠 땐 쉽지 않아요. 주방이라는 공간이 항상 불이 있는 곳이어서 델 위험도 있고요. 가장 중요한 건, 주방은 깨끗한 것이 생명인데, 위생적으로 이게 맞는 건지 내 자신에게 자꾸 물었어요.

생각을 많이 했죠. 그러다 해법을 찾았어요. 한복에서 힌트를 얻었죠. 소매 끝부분부터 팔꿈치 가까이까지 긴 시옷(ㅅ)자 모양으로 트는 거예요. 팔을 내리고 있을 땐 소매가 손목 끝 선에 위치하지만, 팔을 올리면 자연스럽게 안쪽으로 말리면서 벌어져요. 그러니 소매가 도마나 재료 같은 곳에 잘 닿지 않죠. 이걸 고안하고 만드는 데만 2~3년은 걸린 듯해요. 학교 수업이 끝나면 동대문 원단시장을 찾는 게 일이었어요. 원하는 모델을 찾을 때까지 9~10개월을 헤맸죠.”

 

김상훈 셰프가 직접 만드는 조리복은 소매가 특이하다. 시옷(ㅅ)자 모양으로 길게 트여 있다. 그 때문에 작업대나 도마, 식재료에 소매가 닿지 않는다. 사진=루아뒤보 홈페이지

“탁주와 약주는 산미감 있는 것, 소주는 개성 있는지 보고 선택”

- 테이블이 두 개입니다. 덕분에 예약이 꽉 차죠?
“일단, 큰 규모로 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고요. 앞서 회기동에서 했을 때 두 명이 네다섯 테이블을 했었거든요. 그럼 혼자선 두 테이블이면 되겠다 싶기도 했고요. 3개월, 6개월 예약이 꽉 차다 보니 최근에는 바(bar)까지 해서 세 테이블로 운영하고 있어요.”

- 독도16도에 준비돼있는 전통주는 대략 몇 종이나 될까요.
“40여 종이에요. 우선, 감미료가 들어 있는 술은 거의 취급하지 않아요. 탁주, 약주, 소주도 결국 음식과 함께해야 하는 거니까 신경을 많이 쓰죠. 탁주는 가볍거나 탄산감이 많은 건 없고 농도감이나 산미감이 있는 걸 취급해요. 약주도 단맛이 강하지 않고 산미가 있는 것을 선택합니다. 소주는 결국 고급제품을 취급할 수밖에 없어요. 알코올도수 40도가 넘는 만큼 그 특징이 분명한지, 양조장의 특색이 잘 녹아있는지, 이런 걸 봐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탁주나 약주나 소주나 개성이 확실한 술인가, 가격을 떠나 실제로 맛이 있는가를 꼼꼼히 살피죠. 그리고 ‘꼭 이 음식엔 이 술’만을 고집하진 않아요. 왜 이 술과 이 음식을 매칭해야 하냐고 물었을 때 명확한 이유가 없다면 다른 술로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하죠. 하나의 음식에도 다양한 술을 매칭해보고, 그랬을 때의 반응을 살펴요. 저도 일일이 먹고 마시면서 잘 어울리는 걸 찾고요.”

- 음식 얘기를 빠뜨릴 수 없죠. 독도16도의 주재료는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해산물을 많이 사용해요. 계절감을 나타낼 수 있는 아주 좋은 재료죠. 요리하는 사람은 재료가 상당히 중요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횟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어요. 요리사가 살아있는 생선을 못 잡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당시에는 요리사가 생선이나 고기를 잡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들었어요. 학생이어서 일할 기회가 마땅치 않았고, 생선 잡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듯해서 아르바이트를 결심했죠. 생선을 많이 잡는 곳이 어딜까, 생각했더니 횟집이더라고요. 그래서 무작정 찾아가 일을 배웠죠.

그때쯤 소나 돼지를 해체하는 작업도 배웠어요. 요리사가 그 역시 할 줄 모른다는 게 너무 웃긴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학교 끝나면 정육점에 가서 배웠어요. 그러다 보니 관련 자격증이 있다는 걸 알았고, 그것도 땄어요.”

 

‘독도16도’에는 테이블이 두 개다. 그래도 3개월, 6개월 예약이 꽉 찬다. 최근에는 바(bar)까지 활용해 세 테이블로 운영한다. 사진=김응구

“술잔, 식기, 쟁반 등은 공예편집매장에서 구매”

- 지금 보니 술잔이나 식기, 쟁반 하나하나 무척 고급스러워 보여요.
“와인에는 와인잔이 있고 사케에도 사케잔이 있죠. 위스키잔도 따로 있고요. 그럼 한국의 술잔은요? 있어도 얼마 되지 않는다고 봐요. 저흰 그 얼마 되지 않은 잔들을 여기에 모아놨어요. 모두 공예작가들이 만든 잔이에요. 지금 탁주, 약주, 소주가 막 쏟아져 나오는데 이들을 하나의 잔으로만 마시는 게 이해되지 않아요. 음식을 담는 그릇도 가장 한국적인 재질이 무엇일까를 고민했을 때 저는 유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하나하나 준비하면서 채워놓았죠. 모두 공예편집매장에서 구매하고요.”

- 에피소드가 빠질 수 없죠. 특이한 경험을 해본 적 없나요?
“어떤 손님은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전통주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듯 말씀하시더라고요. 지금까지 마셔본 전통주 중에서 내 마음에 들었던 게 하나도 없었다는 거예요.”

- (웃음) 보통 분은 아닌 듯 보이는데, 무척 조심스러웠겠어요.
“우선 ‘아, 그러세요’라고 말씀드리고 음식을 준비했죠. 그때가 요리 열두 가지에 전통주 일곱 잔을 서비스할 때였는데, 다행히 그 일곱 잔 모두 맘에 들어 했어요. 보람됐죠. 그런데 한참 후 의문 하나는 들더라고요. 대략 1000종이 넘는 우리나라의 전통주를 모두 마셔보고 그런 얘길 했을까? 무엇보다 마셨던 술도 그에 맞는 공간과 잔과 음식, 식기, 서비스와 함께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 지금까지 혼자의 힘으로 꿋꿋하게 걸어왔지만, 그 과정에서 생각나는 사람들도 적지 않죠?
“생각해보면 고마운 분들이 늘 곁에 있어 주었어요. 조리복을 처음 만들 때 거기에 글씨 하나 새기려고 자수(刺繡)로 유명한 선생님을 찾아갔을 때였죠. 주문 건수가 고작 한두 벌이라 부탁하기 민망했는데, 어쨌든 새기고 나서 보니 글씨를 조금 수정해야 했어요. 그런 분들은 정말 깐깐하거든요. 다시 찾아가서는 우물쭈물하다가 ‘오늘 식당에서 힘들게 일해 번 돈이다, 좀 고쳐달라’고 말하는데 마구 눈물이 나는 거예요. 미리 겁먹은 거죠. 그때 그 선생님이 정말 따뜻하게 대해주셨어요. 그걸 아직 잊지 못해요.

횟집에서 일할 때 사장님은 무섭게 생긴 데다 성격이 괴팍했거든요. 그런데도 저에게는 한없이 자상하셨어요. 잘 가르쳐주셨고요. 안타깝게도 지금은 세상에 안 계셔요. 경동시장의 채소가게 사장님은 지금도 저를 볼 때마다 ‘착한 사람이니 돈 많이 벌어야 해, 잘 돼야 해’라는 응원의 말씀을 해주세요.

저도 그분들처럼 되고 싶어요. 대개 30년에서 50년 동안 돈을 엄청 많이 벌진 못했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해 오신 거잖아요. 그러면서 나도 이분들처럼 40~50년 동안 계속 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섞인 생각도 종종 해요. 어쨌거나 저도 늙었을 땐 제가 고마워한 ‘선생님’들의 모습이었으면 좋겠어요.”

세 시간가량의 대화를 나누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김상훈 오너셰프는 요리사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하고 싶은 거였다. 그가 만든 조리복을 입으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그가 선택한 술과 그가 만든 음식을 공예작가가 만든 그릇과 잔에 담고, 마지막으로 그만의 서비스를 손님에게 제공하는 것. 모두 다른 영역이지만 그걸 ‘하나’로 만드는 일, 그것이 바로 열다섯 살부터 김상훈 오너셰프가 그토록 바라던 요리의 완성이었다. 그게 ‘한국술집’이었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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