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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현장] 공간 전체가 작품 전시장이 된 리움미술관…“한계 깨부순다”

기획전 ‘구름산책자’ 비롯해 상설 기획전시·특별 프로젝트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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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32호 김금영⁄ 2022.09.05 16:47:32

지하 1층에서 진행 중인 '구름산책자'전 전경. 사진=김금영 기자

‘엄근진(엄격·근엄·진지)’이었던 리움미술관이 더 가까워졌다. 기획전 제목은 ‘구름산책자’인데, 오히려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유영하던 두 발이 대지로 내려온 느낌이다. 낯설고 어색하기보다는 새로운 변화가 흥미를 끈다.

리움미술관이 하반기 기획전을 비롯해 상설 기획전시, 특별 프로젝트까지 6개의 전시를 한꺼번에 공개했다. 과거 기획전 하나에 힘을 주던 것과는 다른 모양새다. 그래서 다소 산만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또 다르게 보면 다양해졌다.

 

이런 변화는 올해 초 기획전에서도 엿보였다. 4년 동안 휴관하다 지난해 10월 다시 문을 연 리움미술관은 미국 작가 이안 쳉의 아시아 첫 개인전을 선보였다. 리움미술관은 과거 ‘세계 거장 작가들의 성지’라고 불릴 정도로 묵직한 전시작을 주로 선보여왔는데, 이 기획전에서는 애니메이션 영상만으로 기획전을 꾸려 눈길을 끌었다.

당시 전시를 담당한 태현선 학예연구실장은 “애니메이션, 디지털 매체는 동시대 중요한 화두로, 인간과 더불어 기계와 과학이 공존하는 사회의 모습이 어떤지 생각하고, 탐구하는 것도 우리의 숙제”라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지역과 국가의 경계 자유롭게 넘나드는 ‘구름산책자’

 

전시장 초입에 설치된 쿠마 켄고의 거대한 조각 설치 ‘숨(SU:M)’은 공기 오염을 흡수하는 기능을 가진 신소재 패브릭을 사용했다. 사진=김금영 기자

동시대의 이슈에 주목하는 기조는 이번에도 이어진다. 특히 아시아 예술과 사회에 주목했다. 개관 이래 리움미술관이 아시아를 테마로 한 전시를 기획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구름산책자’전은 미술·건축·디자인·음악·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 24명/팀과 작품 45점을 내년 1월 8일까지 선보인다.

그간 아시아를 전시 주제로 내세운 전시는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위치, 유구한 역사 속 세계 강대국 사이 짓눌렸던 아시아의 역사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기획전은 여기서 벗어나 보다 확장된 시각으로 지속 가능한 미래의 가능성을 가늠해 보겠다는 의도를 지녔다. 여기서 지역과 국가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문화적 연대의 필요성도 강조한다.

'구름산책자' 전시를 담당한 곽준영 리움미술관 수석 큐레이터가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전시를 담당한 곽준영 리움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는 “현재 우리는 펜데믹, 전쟁 등 큰 이슈들을 겪으며 문명이 전환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며 “이 시점에서 좀 더 사려 깊게 미래를 고민해보는 문화적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전시는 ‘한계를 깨부수고 확장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이는 전시 제목 속 ‘구름/클라우드’에서도 엿보인다. 현시대에서 구름/클라우드는 한 가지 의미로 해석되지 않는다. 기후적으로도, 공상적으로도, 디지털 시대 여러 파일을 저장하는 공간으로도 의미를 두루 가졌다. 즉, 한 가지로만 한계를 지을 수 없는, 거대한 확장성을 함축한다.

 

이에 대해 곽준영 큐레이터는 “구름/클라우드는 21세기의 새로운 사회문화적 환경에 대한 은유이자, 지정학적 경계를 넘나드는 가상의 플랫폼”이라며 “전시는 이런 클라우드 세계를 자유롭게 거닐며 동시대와 미래사회 문제를 새롭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산책자, 실천가, 공상가들을 조명한다”고 설명했다.

패딩으로 쌓은 탑·오염 흡수하는 거대 설치물

 

베트남 작가 돈 탄 하의 ‘물 위의 대나무집’. 지구온난화로 인한 빠른 해수면 상승으로 베트남 남부 저소득층 주민의 터전이 위협받는 가운데, 작가는 수상 가옥을 제안했다. 사진=김금영 기자

전시에선 동시대 이슈에서 빠질 수 없는 ‘지속가능한 공존’ 그리고 여기서 항상 언급되는 ‘환경’에 대한 접근이 특히 돋보인다.

전시장 초입에 설치된 쿠마 켄고의 거대한 조각 설치 ‘숨(SU:M)’은 공기 오염을 흡수하는 기능을 가진 신소재 패브릭을 사용했다. 미술관의 내외부를 연결하는 넓은 유리창과 거대하고 육중한 콘크리트 사이 공간을 유려하게 가로지르는 이 작품은 사람, 건축, 환경의 관계를 새롭게 연결한다.

 

베트남 작가 돈 탄 하의 ‘물 위의 대나무집’도 눈길을 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빠른 해수면 상승으로 베트남 남부 저소득층 주민의 터전이 위협받는 가운데, 작가는 수상 가옥을 제안했다. 경제성과 현실성을 고려해 지붕과 벽은 가벼운 재료인 구오트(guot)풀을 엮어 덮었고,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통을 한가득 매달았다.

루 양 작가의 첨단 디지털 영상 ‘도쿠 – 헬로우 월드’가 상영되고 있는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어찌 보면 투박하고, 원시적으로 느껴지는 거대 설치물 안엔 첨단 디지털 영상 ‘도쿠 – 헬로우 월드’가 상영되고 있다. 상반된 느낌의 작품들이 이루는 뜻밖의 조화다.

 

이 영상은 중국의 포스트인터넷 세대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루 양의 작품으로, 영상 속 계속 춤을 추는 도쿠는 작가의 아바타다. 작업에 사용된 첨단기술은 굉장히 현대적이지만, 영상 속 춤은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인도네시아 발리의 전통에서 비롯됐다는 점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어 흥미롭다.

디자이너 연진영이 쌓아 올린 ‘패딩 기둥’은 미술관 바닥부터 천장까지 닿아있는 존재감이 압도적이다. 사진=김금영 기자

디자이너 연진영이 쌓아 올린 ‘패딩 기둥’은 미술관 바닥부터 천장까지 닿아있는 존재감이 압도적이다.

 

연진영은 버려지는 것들, 효용 가치를 상실한 재료들을 재활용해 다양한 가구 등을 만들어 왔는데, 이번엔 소각 위기에 처한 대량의 재고 패딩들을 연결해 탑을 쌓았다. 전시 이후 작품에 쓰인 패딩은 기부돼 인도적인 목적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한계 없애고 특별한 공감각의 세계 제안

 

A.A.무라카미의 로보틱 설치작품 ‘영원의 집 문턱에서’, 아지아오의 ‘카레산스이’, 트로마라마의 영상 작품 ‘솔라리스’가 한데 어우러진 풍경. 사진=김금영 기자

이뿐 아니라 전시는 인간과 기계, 인공과 자연, 물질과 데이터가 뒤섞인 풍경을 통해 한계를 없애버리고, 이를 통해 특별한 공감각의 세계 또한 제안한다. 깜깜한 어둠 속 안개 고리가 계속 뿜어져 나오고, 바닥엔 뿔 같은 모양이 삐죽 솟아 있으며, 그 뒤론 화려한 영상이 조화를 이뤄 보는 순간 탄성을 자아낸다.

A.A.무라카미의 로보틱 설치작품 ‘영원의 집 문턱에서’, 아지아오의 ‘카레산스이’, 트로마라마의 영상 작품 ‘솔라리스’가 한데 어우러진 풍경이다.

 

A.A.무라카미는 지구 행성의 기원을 연상시키는 신비로운 풍경을 연출하고,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아지아오는 자연과 데이터, 인공이 경계 없이 스며드는 미래의 풍경을 예고한다. 여기에 인도네이사의 멀티미디어 콜렉티브 그룹 트로마라마는 독특한 생태 환경이 기후변화와 해양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한다.

삼손 영은 ‘가능한 음악 #2’를 통해 자신의 상상과 디지털 영역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매우 특별하고 이상한 악기와, 그 악기가 만들어내는 간헐적이며 변칙적인 소리를 들려준다. 사진=김금영 기자

앞선 세 작가(팀)의 작업들이 시각과 촉각을 한껏 자극했다면, 그 옆엔 청각을 자극하는 작품이 설치됐다.

 

삼손 영은 ‘가능한 음악 #2’를 통해 자신의 상상과 디지털 영역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매우 특별하고 이상한 악기와, 그 악기가 만들어내는 간헐적이며 변칙적인 소리를 들려준다.

상설전 채운 현대 공예 도예 작품들

 

 ‘여월지향: 박영숙 백자’전은 조선시대 실용기였던 ‘달항아리’를 통해 현대 도예와 미술 매체로서 백자의 가능성을 탐색한 박영숙 작가의 작품세계를 조명한다. 사진=김금영 기자

이밖에 고미술 상설전(M1)과 현대미술 상설전(M2) 공간은 각각 현대 공예와 도예 작품을 다루는 기획전시를 마련했다.

 

M2 2층에서 11월 20일까지 열리는 ‘여월지향: 박영숙 백자’전은 조선시대 실용기였던 ‘달항아리’를 통해 현대 도예와 미술 매체로서 백자의 가능성을 탐색한 박영숙 작가의 작품세계를 조명한다.

M1 각 층별엔 ‘공예 지금’전이 내년 1월 29일까지 열린다. 전통을 기반으로 한 공예작가의 작품, 디자이너와 전통 장인이 협업한 작품을 소개한다.

 ‘칼레이도스코프 아이즈’는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해 뜻밖의 장소에서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다. 사진은 니나 샤넬 애브니 작가의 '상상 친구' 작품 관련 이미지. 사진=리움미술관

미술관 곳곳에서는 새로운 시도와 해석이 돋보이는 특별 프로젝트 3개도 전개된다. 가상현실(AR) 기술, 전시 공간으로 확장된 미디어 월, 사운드와 건축의 협업 작업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칼레이도스코프 아이즈’는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해 뜻밖의 장소에서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다.

 

영국 어큐트 아트의 예술감독 다니엘 번바움과 협력해 이불, 구정아, 차오 페이, 올라퍼 엘리아슨 등 작가 16명의 증강현실 작품 38점을 리움미술관 로비와 야외 호암미술관 야외 정원 등 실내외 공간에서 11월 27일까지 선보인다.

강당 라운지에서 펼쳐지는 사운드 전시 ‘장영규: 추종자’는 미술관 휴게공간에서도 예술 작품을 즐길 수 있게 한다. 사진=김금영 기자

각 전시장을 오갈 때 마주하는 미술관 로비조차도 전시장으로 변모했다. 강당 라운지에서 펼쳐지는 사운드 전시 ‘장영규: 추종자’는 미술관 휴게공간에서도 예술 작품을 즐길 수 있게 한다.

 

장영규가 제작한 판소리 전수과정을 담은 아카이브 음원을 푸하하하프렌즈 건축사무소가 디자인한 의자에 앉아 들어볼 수 있다.

리움미술관은 이처럼 미술관 전 공간을 활용해 관람객과의 소통을 더 넓힌다는 방침이다. 곽준영 큐레이터는 “리움미술관은 재개관 이후 과거 구축됐던 기획전, 상설전 공간의 틀을 깨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며 “공간 전체에 기획전을 선보이기도 하고, 기존 상설전시가 이뤄졌던 M1, M2에서도 다양한 전시를 활발히 선보일 계획이다. 리움미술관의 소장품도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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