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1호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2022.09.14 09:57:02
(문화경제 =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더 갤러리 이번 회는 일민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2인전 ‘나를 닮은 사람’에 참여한 권오상, 최하늘 작가와의 인터뷰를 싣는다.
- 2인전 소식을 듣고 기대했다. 두 작가 모두 조각 그 자체를 주제와 형식의 중심에 놓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시각적으로 매우 감각적인 결과물을 내놓는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갖는다. 어떻게 함께 하게 되었는지, 무엇을 기대 혹은 계획했는지 듣고 싶다. 세대가 다른 두 조각가의 연결고리를 보여주는 전시인 만큼 ‘나를 닮은 사람’이라는 제목이 잘 어울린다는 최하늘 작가의 의견에 동의한다.
최하늘 : 일민미술관의 신은진 큐레이터가 권오상 작가와 나의 작업에 닮은 부분이 있다며 함께 전시해보자고 제안해주었다. 한국 조각사에서 아직 2000년대가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권오상 작가를 리서치하게 되었고, 그동안 내가 가졌던 궁금증을 작업에 풀어냈다. 권오상 작가가 ‘테멘공 28개의 개나리’(2013~2022), ‘테멘공 28개의 안개꽃’(2013~2022)에서 꽃송이나 줄기를 하나하나 만들지 않고 덩어리로 만든 것을 발견하고 추상화의 추동이라 느꼈다. 이후 헨리 무어(Henry Moore)의 조각을 바탕으로 한 ‘와상’ 시리즈를 보며 이 분이 추상을 향하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관련된 내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무엇보다 두 작가의 작업을 각각 도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조각에 관한 질문을 주고받으며 만들어진 결과물을 내놓고 싶었다.
권오상 : 작년부터 미술계뿐 아니라 SNS상에서도 조각이 주목받고 있다. 조각에 관한 전시도 많이 열리고 있는 상황에서 조각 전시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다는 의지가 있었다. 내가 그동안 사진조각에서 했던 시도들이나 재료에 대한 고민에 대해 기획자나 후배 조각가가 오늘날 조각 작업의 원류와 같다고 해석해주는 것을 보며 뿌듯하기도 했다. 새로운 세대의 작가가 전 세대의 작가에게 관심을 보이고 그에 근거해 작업을 전개한다는 점도 유의미하게 느껴졌다. 한편 대상을 부분적으로 찍은 사진을 합쳐서 사진조각를 만드는 방식과 3D 스캔이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내 초기 작업은 내부가 텅 비어있는데, 3D 스캔도 내부가 하얗게 빈 결과물이 나온다. 말 그대로 입체물의 표피를 따오는 거다. 스캔한 결과물은 웹상에서 입체로 보이고, 3D 프린터로 출력해 물리적인 입체물을 만들 수도 있다. 물론 표면이 사진조각 같지는 않지만 모든 굴곡을 다 표현하는 입체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다음에 어떤 작업을 할 수 있을지 질문하고 해답을 찾다 보니 추상 조각이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관련해 내 작업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나온 작품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권오상 : 최하늘 작가가 사진조각의 지지대를 다섯 개 만들어서 하나는 본인의 작업에 사용했고 네 개를 내게 보내주었다. 그중 세 개는 사진 조각으로 완성했고, 하나는 추가 작업 없이 추상화된 고양이 사진조각을 올려놓는 받침대로 사용했다. 전시에는 지지대를 받침대로 활용한 작품과 스핑크스 고양이의 피부와 주름이 강조되는 사진, 대리석의 사진을 붙인 사진조각, 세 점만 출품했다. 추상화된 고양이 두상은 이 전시를 준비하기 전에 완성한 작품인데, 고양이 피부의 주름 때문에 표면이 강조되지만 형상은 미니멀한 사진조각과 대구가 될 것 같았다. 대리석 사진은 내가 작업 초기부터 꿈처럼 생각하는 돌조각으로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붙였다. 최하늘 작가에게 받은 지지대가 4개였음에도 처음 받았을 때부터 로댕(Auguste Rodin)의 ‘세 망령들(Les Trois Ombres)’(1880)이 떠올라 작품 제목을 ‘세 망령들’(2022)로 지었다.
최하늘 : 나는 일단 가벼운 조각에 관한 질문으로 스폰지 조각인 ‘버젓이(Go to open)’(2022)와 ‘뻔뻔하게(Become a kenta)’(2022)를 제작했다. 권오상 작가의 작품을 레퍼런스로 하면서 3D 기술을 사용해 대응하는 작업인 ‘펼쳐진(Spread)’(2022)은 권오상 작가의 ‘흉상(BK)’(2022)을 3D 스캔한 뒤 전개도화했고, ‘선’(2022)에서는 ‘더 스컬프쳐 2(The Sculpture 2)’(2005)를 철판에 프린트한 뒤 우그러뜨려서 새로운 형태를 만들었다. 또 권오상 작가의 ‘흉상(WA)’(2022)을 3D 스캔해 표면의 사진 이미지를 다 지우고 두 점을 3D 프린터로 출력한 뒤 하나는 그대로, 다른 하나는 반을 잘라 내부가 비어있음을 보여줬다. 이는 권 작가의 초기 작업이 내부가 비어있어 형태의 왜곡(추상화)이 일어남에 영감을 받은 것이다. 사진이 제거된 덩어리만 남으니 조각성이 강조되는 동시에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권오상 작가의 사진조각을 보면서 표면에 덮인 사진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 그의 작품과 작업 방식이 전통적인 조각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실제로 작업하는 과정을 보니 돌조각을 만드는 것과 같았다. 나는 그것을 전시에 온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이제는 그가 추상 조각을 구현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한편 다섯 개의 지지대 중 권 작가에게 보내지 않은 하나에는 코팅을 하고 철 페인트를 발라 부식시킨 뒤 ‘낡은(Old)?’(2022)이란 제목을 붙여주었다. 작품에 대한 정보가 없는 사람들은 금속처럼 보여 무겁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가벼운 조각이다. 권오상 작가와 내가 조각에 관한 질문에 대응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 나 역시 권 작가의 조각에서 추상화가 시도되고 있다는 부분에 주목하고 있었다. 특히 마티스(Henri Matisse)의 연작 ‘쟈네트 I~V(Jeannette I~V)’(1910~1913)를 염두에 둔 ‘흉상’(2016~2018)이나 헨리 무어(Henry Moore)의 조각에 기반한 ‘와상’(2020~2021) 등은 의도적으로 추상을 향해 나간다. 이번에 발표되는 ‘세 조각으로 구성된 와상’(2022)도 연장선상의 작품으로 보인다.
권오상 : 그렇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신작들도 추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초기의 사진조각들은 ‘140장으로 구성된 증명의 강요’(1998)처럼 내부에 알루미늄 스틱만 있어서 사진이 함몰되며 붙다 보니 결과적으로 추상화된 얼굴이 만들어졌다. 거기에서 나오는 강렬함과 자유로움 혹은 사진조각을 할 때의 첫 태도에 대한 동경일 수도 있다. 또 앞에서 말했던 3D 스캔하는 앱과는 다른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게 3D 스캐너에 오류가 생기면 추상화되기도 한다. 한편 배우 유아인을 모델로 한 다섯 점의 ‘흉상’ 시리즈는 ‘와상’의 시작과 같은 역할을 했다. ‘흉상’ 시리즈를 만들 때 내 인스타그램에 ‘140장으로 구성된 증명의 강요’를 비교하며 포스팅하기도 했다. 최하늘 작가는 내 작품과 작품의 형식(양식)을 전시의 주인공을 삼았다면, 나는 조각가 최하늘을 이 전시의 주인공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최하늘 : 전시를 준비하면서 ‘140장으로 구성된 증명의 강요’와 같은 초기작은 아이소핑크로 지지체를 만들지 않아 추상적인 형태로 가게 되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이때의 작품들은 이후의 사진조각과 달리 사실적인 모습을 벗어나 있다. 이후 권오상 작가가 지지체를 통해 단단한 조각을 만들게 된 데에는 조각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 권오상의 ‘흉상(WA)’은 동유럽 무명 조각가의 작품 도판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 도판을 선택한 남다른 이유가 있는가?
권오상 : 추상적인 조각을 검색했을 때 따라 나온 핀터레스트(Pinterest) 카테고리의 이미지인데, 해당 도판에 등장하는 작품은 온라인에서도 추가적인 이미지를 얻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직 단층면 사진 한 장을 바탕으로 그 작가의 작품을 추적하면서 조각을 만들었다. 헨리 무어가 활동하던 당시 유럽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그와 같은 조각이 유행이었다. 헨리 무어만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진행했었는데 작업을 위해 리서치를 할수록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를 비롯한 당시 작가들의 조각이 가진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추상 조각 위에 사진을 붙이면 더 자유롭게 붙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작업했다.
최하늘 : ‘흉상(WA)’은 내가 어떤 레퍼런스도 없는 지지체를 만들어 권오상 작가에게 제공하게 만든 작품이다. 사진의 뒷면을 보지 못한 채 앞면만 보고 입체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라면 무명 조각가의 작품을 인용하지 않고 그냥 만들었을 것 같은데 왜 그처럼 작업했는지 궁금했다. 권오상 작가가 미술 교육을 받았던 때는 모각을 많이 했기 때문인 것 같다는 추측도 해봤다.
- 조각의 뒷면을 알 수 없는 사진을 바탕으로 사진조각을 만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권오상의 상상이 더해지고 작가적 개입이 일어났음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권오상이 앞선 시대의 조각이나 스테빌(Stabile)의 구성을 차용한 작품들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조연1’(2022)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최하늘 : ‘조연1’은 조각가 류인의 ‘지각의 주’(1988)를 오마주한 작품이다. 권오상 작가에게 어떤 작품을 가장 좋아하는지 질문하니 오토바이를 라돌(La Doll)로 재현한 ‘토르소(더 스컬프처)(Torso(The Sculpture))’ 시리즈라 답해 주었다. 이전부터 권오상 작가는 오토바이와 자동차를 현대적인 조각을 만드는 것에 비유해 왔다. 순간 내가 오토바이는 타지 않음에도 라이더 재킷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라이더 재킷은 가죽도 빳빳하고 보호대도 내장되어 있어 마치 조각이 그렇듯 혼자서도 설 수 있다. ‘토르소(더 스컬프처)’와 라이더 재킷이 우리가 생각하는 조각은 같은 방향을 보지만 그것을 향해 걸어가는 길이 조금씩 다름을 은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권오상 : 물론 나는 내 모든 작업을 다 좋아한다. 다만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업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토르소(더 스컬프처)’를 꼽는다. 이 시리즈는 내가 소유했던 오토바이나 내가 갖고 싶었던 오토바이를 실제 크기로 조각화한 것이라 나의 취미와도 연결된다. 또한 지점토로 만든 입체물에 색이 칠해져 누가 봐도 조각가의 조각이다. 당시 반론없는 조각 작품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인체(토르소)를 닮은 조각이기도 하다.
- 최하늘은 ‘주인공(Booger)’(2002)에 대해 정면이 없는 작품이라 설명했다. 조각은 입체이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작품을 보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중심이 되는 지점이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주로 앞면이라 여겨지는 지점이 중요하게 보일 것이다. 그에 관한 질문도 있었던 것인가?
최하늘 :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주인공(Booger)’은 이번 전시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작품이다. 말 그대로 정면이 없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풀 수 없는 문제일 것 같은데, 조각에는 정면이 없다는 명제를 거절하고 정면이 있는 조각을 만들 것인지, 아니면 정면이 없다는 조각의 신화를 조금 더 연구할지 고민하는 지점에 있는 것 같다. 지금 상황이라면 나는 전자로 가게 될 것 같다.
이 작품의 경우 3D 스캔을 해서 AR 필터를 만들었다. 전시장에서 사람들이 AR 필터를 구동하면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 알 수 없는 현란한 상황이 벌어진다. 나는 조각에서 물질을 덜어내는 방식으로 가려 하고 있다. 특정한 개인이나 기관이 소장하는 게 아니라 누구든 경험할 수 있어 민주적이며, 비물질이라 이동이 쉽다. 또한 인스타그램 필터를 사용하면 미술관에 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미술을 경험하게 하는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나는 앞으로도 이런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싶다. 그래서 P21과 갤러리2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개인전에서도 이 AR 필터를 등장시켰다. 조각을 만들 때 나오는 쓰레기에 대한 문제의식, 기후 문제에 대한 인식도 영향을 주었다. 여러 이유로 조각이 이제는 물질을 내려놓을 수 있는 방식을 찾아봐야 하지 않나 고민하고 있다.
- 비물질을 추구하면 결국 이미지가 되는 건데, 누군가는 조각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최하늘 : 조각이냐, 아니냐에 관한 질문은 조각의 자장 안에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논쟁은 유의미하다. 물론 인스타그램 필터의 지속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 QR 코드가 훼손되었을 때는 어떻게 복구를 할 것인지 등의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어도비(Adobe)라는 회사가 없어지거나 포토샵(Photoshop), 일러스트레이터(Illustrator) 프로그램이 사라졌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디지털 조각과 아날로그 조각으로 분리될지, 둘 다 조각적 범주로 묶일지, 조금 더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3D 기술이 조각가와 조각을 위협하는 존재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기술은 더 발전할 테니 이것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게 낫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 두 명의 작가가 조각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생각하는 전시이다. 마지막으로 2인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소회나 생각을 들려주면 좋겠다.
권오상 : 어떤 의미에서 내가 작가로서 걸어왔던 행적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는 점이 의미 있었다. 나의 조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유추할 수 있는 마케트(maquette)가 다수 전시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하늘 : 권오상 작가의 작업이 가벼운 조각에서 시작해 여러 과정을 거쳐 추상을 향해 가는 것이라면, 나는 권 작가가 조각에 던진 질문인 가벼운 조각에서 시작해 조각의 비물질(이라는 새로운 형식)에 관한 고민을 보여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