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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바이든"이든 "날리면"이든 윤 대통령 발언이 곤란한 이유 … ‘돈 = 의회 결정’이 美 민주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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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최영태⁄ 2022.09.23 14:07:45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며 피켓을 들고 (사진=연합뉴스)

어제 하루는 이른바 ‘대통령의 비속어 파문’이 한국을 휩쓴 날이었다. 관련 소식이 해외 언론에도 바로 실렸으니 한국 전체가 조롱의 대상이 된 날이기도 했다.

그리고 하루 뒤 김은혜 대통령 홍보수석의 ‘해명’ 논평이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은, MBC와 KBS 등이 보도한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떻게 하나”가 아니고,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 주고 날리면 쪽팔려서 어떻게 하나”라는 게 김 수석의 해명이다.

그러면서 김 수석은 “다시 한 번 들어봐 달라”고 했다. 그래서 다시 들어봤다. 김 수석의 해명처럼 들리기도 한다. “바이든”이란 단어가 들어갔는지 안 들어갔는지는 녹화 테이프가 있으니 앞으로 전문가의 정밀 감식으로 풀 문제다.

 

욕설을 빼도 전체뜻이 '反민주적'? 


하지만 윤 대통령의 발언에서 욕설을 빼고, 그리고 김 수석의 해명대로 들리면 문제가 없는 것일까? 필자는 대통령의 비속어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않겠다. 필자의 의문은 ‘국회에서 승인 안 해주면 쪽팔려서 어쩌나’라는 정치적 발언은 괜찮은가 하는 데 있다.

김은혜 홍보수석의 해명과 이에 대한 민주당의 반박을 보도한 SBS 뉴스 화면.  

김 수석의 해명대로 윤 대통령의 발언을 풀이하면, ‘1억 달러(현재 환율 기준이라면 1400억 원 상당)를 저개발국의 질병 등 퇴치를 위해 기부하겠다고 내가 지금 공언했는데 이걸 한국 국회가 승인 안 해주면 쪽팔려서 어쩌나’가 된다.

예상해보자. 1400억 원을 저개발국의 질병 퇴치를 위해 대통령과 정부가 기부하겠다는데 국회가 이를 거절한다면, 그 후 창피를 당하는 쪽은 대통령일까, 국회일까?

21일 뉴욕에서 바이든 대통령 주재로 열린 ‘글로벌 펀드 7차 재정공약회의’에서 기시다 일본 총리는 10억 달러 지원을 약속했다. 한국의 10배다. 현재 일본의 재정 돈 사정이 한국의 10배만큼 여유 있나? 그렇지 않다. 따라서 기시다 총리의 10억 달러가 일본 의회에서 통과되고, 한국의 1억 달러가 여의도 국회에서 거부된다면, 세계적 비난의 대상은 한국의 국회가 될 것이고, 세계적 쪽팔림의 주체는 이런 못난 국회의원들을 뽑은 한국 국민 몫이 된다.

다시 한 번 풀어서 말해 보자. 여론조사에서 국민 다수가 동의하는데도, 거대 야당이 이런 국민 뜻에 거슬려 1억 달러 예산을 거절한다면 그때는 거대 야당이 비난 받는 게 맞다. 그리고 이런 야당을 심판하라고 4년마다 총선이 열린다.

그러나, 만약 국민 다수의 여론이 “지금 우리 형편에서 1억 달러 지원은 곤란하다”였고, 이에 따라 국회가 1억 달러 예산을 거절한다면, 그 결정엔 의회 민주주의 원칙상 아무 문제가 없다. ‘지독하게 인색한 한국인들’이란 비난은 듣겠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 시간)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여기서 ‘국가 예산, 즉 국민 돈’의 쓰임새를 결정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미국식으로 검토해 보자. 한국 민주주의는 미국식을 이식한 것이므로, 도대체 미국에선 예산(국민 돈)의 쓰임새를 어떻게 결정하는지 알 필요가 있다.

미국 학생들은 필수 과목으로 ‘정부론(Government)’을 듣는다. 정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국민이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정부론 강의에서 한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 예산 결정권은 거의 전적으로 하원이 갖는다. 국민 돈의 쓰임새는 국민이 뽑은 하원의원들이 결정한다는 원칙”이라고 강의했다.

 

워싱턴 DC 차들은 왜 "대의 없는 세금" 문구를?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의 자동차 번호판에는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이란 문구가 적혀 있다. ‘대표 없이 세금’이란 뜻이다. 이 문구에는 워싱턴 주민의 분노가 서려 있다. 미국 헌법은 주 단위로 국회의원을 뽑도록 규정했다. 그런데, 워싱턴DC는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사이의 특구일 뿐 그 어느 주에도 속하지 않는다. 모든 주를 대표하는 연방정부를 세우기 위한 거대 합중국이 고민 끝에 만든 해결책이다. 청와대든, 용산 대통령실이든 ‘서울 소속’인 한국과는 완전히 다르다.

미국 워싱턴 DC의 자동차 번호판. 

그런데, 이렇게 되고 보니 워싱턴 주민들은 연방 세금을 꼬박꼬박 내되, ‘돈 문제를 결정하는’ 하원에 자신들의 대표를 보내지 못하는 고약한 처지가 돼버렸다. 워싱턴 주민들은 끊임없이 불만을 제기했고 급기야 워싱턴 DC 자동차 국(D.C. Department of Motor Vehicles)은 2000년도부터 자동차 번호판에 이 문구를 새겨 놓고 있다.

현재 바이든 대통령의 전용차 번호판에도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이 새겨져 있다. 백악관의 행정 구역은 워싱턴 DC이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대통령 전용차의 번호판에는 이 문구가 있었지만,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이 문구를 지워버렸었다. 뒤를 이은 오바마 전 대통령은 2기 취임 때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 문구를 원래로 돌려놓았다. 바이든 취임 때도 워싱턴 DC 주민들은 대통령 차 번호판을 유심히 지켜봤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날 CNN 화면. 대통령 전용차의 새 번호판에 전통의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 문구가 새겨진 것을 클로즈업해 보여줬다. 숫자 46은 '46대 대통령'을 뜻한다. 

‘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의회 참정권 안 주면 세금 못 내)은 비단 워싱턴 DC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건국의 구호였다. 영국에 대한 미국 독립전쟁(1775~1783년)은, 영국이 식민지 아메리카에서 꼬박꼬박 세금은 받아가면서도 국회의원 뽑을 권리(참정권)를 주지 않자, “참정권 안 주는데 세금을 왜 내냐”는 불만이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 1773년)을 계기로 터져나오면서 시작됐다.

보스톤 차 사건 당시 참정권 없이 세금만 걷어가는 세리(세무 공무원)에게 린치를 가하는 미국 애국자들의 모습을 그린 풍자화. 

예산 문제 얘기하며 국회 욕해도 괜찮다?

 

윤 대통령의 발언과 이에 대한 김은혜 홍보수석의 해명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정부가 결정하는 예산을 국회가 칼질하는’ 현실에 대한 강한 부정이다.

김 수석의 논평에는 분노가 섞여 있다. “예산 심의권을 장악하고 있는 거대 야당이 이 같은 기조(자유와 연대를 위한 국제 사회의 책임을 이행하고자 하는 정부의 기조)를 꺾고 국제사회를 향한 최소한의 책임 이행을 거부하면 나라의 면이 서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라는 문구가 있고, 논평의 끝부분은 더욱 그렇다.

“어제 대한민국은 하루아침에 70년 가까이 함께한 동맹 국가를 조롱하는 나라로 전락했습니다. 순방 외교는 국익을 위해서 상대국과 총칼 없는 전쟁을 치르는 곳입니다. 그러나 한발 더 내딛기도 전에 짜깁기와 왜곡으로 발목을 꺾습니다. 대통령과 국정 운영에 대한 비판은 언제든지 수용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외교 활동을 왜곡하고 거짓으로 동맹을 이간하는 것이야말로 국익 자해 행위입니다. 여쭙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입니까? 정파의 이익을 위해서 국익을 희생시킬 수는 없습니다. 누구보다 국민이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로 논평은 끝난다.

윤 대통령과 김 홍보수석에게 묻고 싶다. “국제사회를 향한 최소한의 책임 이행을 (거대 야당이) 거부하면, 또는 정파의 이익을 위해 국익을 희생시키면, 쪽팔려야 하는 건 국회지, 왜 대통령과 정부가 쪽팔림을 느껴야 하지요?”라고.

이렇게도 한 번 묻고 싶다. 윤 대통령의 발언에서 비속어를 뺀 문장을 만약 바이든 대통령이 했다면, 미국의 반응은 어땠을까? 하는 질문이다.

‘글로벌 펀드 7차 재정공약회의’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왼쪽부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한 사람 건너 윤석열 대통령,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모두 거액 지원을 이날 약속한 정상들이다. (사진=연합뉴스 )

바이든은 21일 같은 무대에서 무려 60억 달러의 지원금을 약속했다. 만약 바이든이 연설 뒤 TV 카메라가 돌아가는 앞에서 보좌진에게 “의회가 승인 안 해 주고 날리면 쪽팔려서 어쩌지?”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아니다. 욕설을 섞지 않더라도 이런 발언은 큰 문제가 될 것 같다.

미국 대통령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돈 문제 결정을 거의 전적으로 장악한’ 하원 의원들을 설득하는 일이다. 그래서 미국 대통령은 소속 당 의원은 물론 야당 의원들과도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이번 사태에서 대통령의 비속어 사용도 큰 문제지만, 대통령과 홍보수석이 국회의 예산 심의권을 내려다보는 자세 역시 큰 문제다. 미국에선 하원의 예산 결정권(미국의 예산은 거의 전적으로 의회 예산국이 결정한다)을 대통령이 올려볼지언정 내려다보면 안 된다. 국민 돈은 그렇게 쓰여지는 게 민주주의다. 현재의 한국처럼 ‘슈퍼-울트라-막강 부처’인 기재부가 거의 전적으로 예산안을 결정하고, 또 기재부 관료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는 막강 권한의 사람이 ‘숨겨진 예산’을 짜도록 할 수 있다면, 그건 국민 돈에 대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관련태그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  미국독립전쟁  보스톤 차 사건  워싱턴DC  의회예산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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