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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양조장에 건축과 철학 덧대니 브루어리의 문이 활짝 열렸다

박공지붕, 조적벽돌, 투어 동선… 충북 음성 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로 보는 양조장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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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34호 김응구⁄ 2022.10.25 17:48:37

 

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에는 양조 공간, 맥주와 음식을 즐기는 공간, 손님을 맞는 공간, 함께 즐기는 공간, 뛰어놀고 춤추는 공간이 모두 있다. 사진=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

충북 음성의 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KCB)는 양조장도 충분히 건축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KCB의 로고는 단순하다. 건물의 아웃라인(outline)만 그대로 땄다. 처마도 없는 박공(牔栱)지붕 세 개를 건물 측면 외벽과 그대로 이었다. 실제 생긴 모습 그대로다. 책을 엎어놓은 모습의 세 지붕은 흔히 보는 산(山) 그림을 떠올리게도 한다.

KCB와 건축가는 깊은 생각을 오래도록 나눴던 듯싶다.

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의 전체 모습. 세 박공지붕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사진=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

양조장은 시간이 쌓이는 공간… 조적벽돌로 건물 올려

생각 끝에 술의 본질부터 파헤치기로 했다. 양조를 알아야 비로소 건축이 보일 것 같았다. 단순했다.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것에 집중했다. 그러면서 하나둘 힌트를 얻었다. 이곳은 맥주양조장이다. 흔히 브루어리(brewery)라고 한다. 맥주의 원료는 무엇인지, 어떤 공정을 거치는지 가르쳐주고 배웠다. 설비도 알아야 했다.

시공사, 설계사, 양조팀은 한 몸이 되기로 했다. 틈나는 대로 미팅하고 또 미팅했다. 양조장을 먼저 짓고 거기에 각종 설비를 넣을 순 없었다. 원하는 그림이 아니었다. 그러니 처음이 중요했다. 이 설비는 어디에 어떻게 들어가 있어야 하고, 저 컨베이어는 어디에 위치해야 하며, 숙성·발효 탱크들은 ‘ㄷ’자 모양으로 놓을지 ‘ㅡ’자로 나열할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설계는 그렇게 완성됐다. 오히려 시공은 짧았다. 7개월 만에 끝냈다.

설계와 시공과 양조가 하나 되니 브루어리는 그저 딱딱한 건물, 맥주를 만드는 공장으로만 보이진 않았다. 눈을 더 크게 뜨고 보니 ‘시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양조(釀造)이기 때문이다. 음료는 하루 만에도 만들 수 있지만 술은 절대로 그럴 수 없다.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 시간이 쌓이는 공간이 바로 양조장이라고 봤다. 그리고 조적(組積)벽돌을 사용했다. 시간을 의미하는 재료다. 그렇게 차곡차곡 건물을 올렸다. 커다란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로비 내부도 조적벽돌로 마감했다. 바깥에서 마주하는 느낌과 감정을 그대로 안으로까지 가지고 들어와야 한다고 믿었다. 단절된 느낌인 콘크리트는 머릿속에서 아예 지웠다. 물론, 시간과 비용은 생각 이상으로 플러스됐다. 절대 후회는 없다. 그 덕분에 밖과 안의 공간감이 하나가 됐다.

디테일에도 공을 많이 들였다. 관람객을 맞이하는 첫 관문인 브루어리 입구 철제(鐵製) 대문 손잡이는 술을 숙성할 때 사용하는 오크(oak)로 마감했다. 오크통에서 천천히 술이 익어가듯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흔적을 조금씩 기록하고 있다.

발효조 탱크가 보기 좋게 자리하고 있다. 사진=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

로비 한가운데 서면 한쪽 면의 거대한 창문들 넘어로 대규모 브루잉(brewing) 설비들이 보인다. 고개를 들면 맥주 거품을 형상화한 샹들리에도 눈에 들어온다. 한쪽 벽면 높은 곳엔 KCB의 철학을 잘 나타내는 위트 있는 문구가 눈에 띈다. ‘We don’t brew beers that we don’t like to drink!(우리는 마시기 싫은 맥주를 양조하지 않는다!)’ 진심 ‘맥덕’들 답다.

KCB 건물은 로고의 모습처럼 크게 세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각각 ‘드라이 존’, ‘핫 존’, ‘콜드 존’이다. 맥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렇게 표현했다.

곡물(맥아)을 분쇄하는 공정이 첫 번째, 그 가공된 곡물을 물과 섞어 달콤한 맥즙(麥汁·보리즙)으로 만드는 과정이 두 번째, 맥즙에 효모를 넣어 발효·숙성 단계를 거치는 세 번째. 이렇게 세 단계를 건물로, 혹은 로고로 보여주는 것이다. 건물의 기능적인 면을 디자인에 그대로 녹여냈다.

KCB 김우진 이사는 “건축 당시 돈을 너무 많이 들인 것 아니냐는 얘기가 많았을 정도로 건축에 정말 신경을 많이 썼다”며 “그러나 지금까지 사람들이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브루어리라는 걸 생각하면 충분히 가치 있는 투자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투어 동선을 따라 걷다 보면 1층의 설비들이 한눈에 보인다. 사진=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

드라이·핫·콜드 존… 양조 순서이자 투어 동선인 세 공간

해외의 와이너리와 브루어리에선 배울 점이 많다. 동네 브루어리가 많은 것도 신기한데 일반인에게 쉽게 오픈하는 모습은 더 놀랍다. 목요일이나 금요일, 주말 저녁이면 브루어리 앞뜰에서 드럼통 하나 가져다 놓고 지역주민끼리 맥주 마시며 즐기는 모습은 부러움 이상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Napa Valley)의 와인투어는 충격적일 정도로 신선하다. “와이너리, 그러니까 포도밭을 관광한다고?” 일본의 지비루(地ビール·지역특산맥주)는 또 어떤가. “지방·지역마다 맥주가 따로 있어?” 마시는 게 전부인 줄 알았던 술이 해외에선 ‘문화’다. 모든 게 새롭고 가슴 벅차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제 만든 상품만 파는 건 한계가 있다.” “실제 양조장을 지어 운영하면서, 여기에 ‘투어’라는 무형의 가치를 끼워 넣어야겠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는 없는 모델이자 앞으로도 쉽게 볼 수 없는 문화라 자신했고, 그런 만큼 독보적인 이미지와 가치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물론, 무모한 자신감은 아니었다. 경험으로 터득한 결론이었다. KCB는 양조장을 짓기 전 와인과 맥주 수입을 먼저 경험하며 나름대로 시장과 음주 트렌드를 분석하는 힘이 생겼다. 미식문화는 계속 발전하고 음식의 다양성도 적잖게 확대될 것으로 봤다. 사람들은 그만큼 먹는 문화에 관심이 많고 그에 대한 지출 욕구도 크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KCB는 애초 건축을 구상할 때 관람객에게 보여주는 공간을 머릿속에 넣었다. 어마어마한 규모가 아니니 양조 공정 순으로 투어 동선(動線)을 짰다. 그 시작은 맥아를 분쇄하는 밀링(milling)이다. 이후 각 공정에 맞춰 차례로 이동한다.

사실, 계단을 타고 올라가 2층 복도를 쭉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공정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건물 가운데를 툭 터놔서 1층의 설비들은 모두 볼 수 있고, 밀링실과 숙성실은 물론 패키징(packaging)실까지도 창을 내 2층에서 안을 들여다보도록 했다. 그런데도 구조가 엉성하지 않다. 각 설비는 있어야 할 제자리에 잘 놓여있고 배치 역시 나무랄 데 없다. 이게 바로 설계의 힘이다.

코로나 전 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 로비에서 열렸던 소규모 콘서트 모습. 사진=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

맥주 투어, 콘서트… 문화 프로그램 내년에 재개

KCB의 투어 프로그램은 두 가지다. ‘클래식 투어’와 ‘마스터 투어’다. 둘 다 늘 예약이 꽉 찬다. 지금은 신종 감염병으로 잠시 중단한 상태지만 내년엔 운영을 재개한다.

프로그램에선 맥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거나 체험해볼 수 있고, 갓 뽑은 생맥주 한 잔도 무료로 마실 수 있다. 참가자들에겐 기념품도 제공한다. 클래식 투어는 30~40분 정도 진행하며, 마스터 투어는 여기에 양조사가 한 시간가량 더 얘기하며 관람객과 소통한다. 일정은 그때그때 홈페이지에 공지한다.

코로나 전에는 서울과 KCB를 왕복하는 셔틀버스와 클래식 투어를 묶은 패키지 ‘유 드링크, 위 드라이브(You Drink, We Drive)’를 운영해 교통 부담을 덜어줬다. 투어 프로그램을 재개하면 이 역시 진행할 계획이다.

투어가 끝나면 브루어리 내 탭룸(taproom)으로 안내받는다. 이곳에선 KCB의 대표 맥주 ‘아크(Ark)’와 음성의 특산물로 만든 피자 등을 맛볼 수 있다.

KCB의 로비와 앞마당은 그냥 놀리기 아까운 공간이다. 보고 마시고 먹는 것만이 아니라 더 즐거울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바로 콘서트다. 마침 셔틀버스를 이용한 투어가 있으니 이와 묶어 아예 콘서트 티켓을 만들었다. 반응은 무척 좋았다. 소규모 공연이니 관람객들과도 쉽게 친해졌다. 콘서트가 끝나도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계속 머물며 음성의 저녁을 더욱 만끽했다. 코로나 전까지는 여덟 차례 정도 진행했다. 투어가 시작되면 콘서트도 다시 열린다. 이를 위한 손님맞이 단장을 곧 시작한다.

위트에일 어퍼디퍼. 사진=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

KCB는 지난 6월 서울 성수동 팝업스토어에서 아크의 리브랜딩 제품 세 가지를 선보였다. ‘어퍼디퍼’는 위트에일, ‘낙낙’은 골든에일, ‘피터패트’는 인디아페일에일(IPA)이다.

KCB의 크래프트맥주는 지역이나 대한민국 유산을 브랜드명으로 선택해 한창 이목을 끌었다. 편의점 쇼케이스(주류냉장고) 안에서 종종 보이는 ‘광화문’이나 ‘해운대’는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고, 엠버에일 병맥주 ‘여수’는 지금도 여전히 여수에서 사랑받고 있다. 최근에는 네이버 ‘라인 프렌즈’의 대표 캐릭터인 ‘브라운’과 함께 아크 페일에일과 아크 라거를 연이어 선보였다.

“모든 술은 특유의 정서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어요. 크래프트맥주는 특유의 즐거움이 있죠. 문화적인 요소도 있고요. 양조장을 짓는다는 건 단순히 맥주 양조가 이뤄지는 공간으로써의 기능보다 크래프트맥주가 지닌 이야기를 풀어내는 복합적인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우진 이사의 말에 동의한다. 과거의 우리는 마셨다. 이제는 즐긴다. 그 차이는 꽤 크다. 이제 웬만한 브루어리는 보여주는 것에 인색하지 않다. 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가 자신 있게 보여준 덕분이라 생각한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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