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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인터뷰] ‘화요’ 캘리그라퍼 강병인, "글씨로 만드는 술술 통하는 세상"

화요, 참이슬, 산사춘... 로고 쓴 강병인 "내가 곧 글씨인 줄 알았건만, 나와 글씨는 결국 자연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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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36호 김응구⁄ 2022.11.25 09:46:24

캘리그라퍼 강병인은 초등학교 담임선생님, 정신적인 스승 추사 김정희, 자연, 그리고 콤플렉스, 이 네 가지가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했다. 사진=김응구 기자

작업실 이름이 ‘술통’이다. 당연히 술을 담는 통으로 생각했다. 들어가면서는 언뜻 그의 붓을 거친 술 이름만 대여섯 개를 떠올렸다. 그래서 처음부터 ‘술+통’이 맞는지 묻지도 않았다. 말 주고받길 한 시간쯤, “글씨로 술술 통하는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이유로 그리 지었음을 알았다. 그리고 두 시간 만에 그의 삶이 정말 그렇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쁜 짓을 한 자는 대개 “어릴 적 칭찬해주는 사람이 한 명만 있었어도 이렇게 되진 않았을 것”이라고 중얼거린다. 핑계다. 일종의 ‘회개 공식’이다. 물론, 사람들은 곱게 보지 않는다. 믿지 않는다. 허나, 강병인은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인다. “글씨를 참 잘 쓰는구나.” 외롭던 열세 살 그에게 선생님의 이 한마디는 지금의 대한민국 대표 캘리그라퍼로 만들었으니.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의 칭찬, 지금의 나를 만들어


- 처음부터 조금 무거운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어릴 적, 글씨가 왜 좋았을까요. 지금은 왜 삶의 전부가 돼버렸을까요.
“지금 와 생각해보면 아마도 환경의 영향이었을 거예요. 어렸을 적 시골집(경남 합천) 근처에는 서당이 없었고, 서예는 꿈도 못 꿨죠. 가족이나 친지 중 화가는 고사하고 그림이나 붓글씨를 하는 사람도 없었어요. 그림을 좋아해 초등학교 4·5학년 땐 만화를 그리거나 낙서를 즐겼죠. 그땐 화가의 꿈도 있었어요. 근데 당시에는 그쪽(그림)으로 가면 굶어 죽는다는 인식이 많아서 ‘실현 가능성은 없겠구나’ 생각해 일찍 포기했죠.”

- 그럼 서예, 즉 글씨에 더욱 관심을 가졌겠군요.
“서예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시작했어요. 서예반에서 1년 동안 배우고 공부했죠. 담임선생님은 제게 늘 칭찬을 해주셨어요. 못써도 칭찬해주셨죠. 가난과 가정불화, 당시만 해도 다 겪는 일이었잖아요. 저는 유독 외로웠어요. 누가 내게 칭찬해주는 일은 거의 없었죠. 가정형편상 가족 간에 다독여주고 용기를 북돋워 주고, 그런 경험이 없었던 거예요. 그렇다고 가정형편을 탓하진 않았어요. 담임선생님은 언제나 글자를 쓰는 저를 칭찬해주셨죠. 선생님의 위로와 칭찬, 글씨 쓸 때의 평온함, 그 시간만큼은 오로지 내 시간이었어요. 그래서 글씨를 계속 붙들고 있었죠.”

- 그 이후에는 독학을 했나요?
“서예반 이후로는 독학했죠.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혼자 공부하니 모든 게 부족하잖아요. 왜 ‘콤플렉스가 사람을 키운다’는 말이 있죠? 저는 그게 맞다고 봐요. 남들보다 무언가 더 많이 해야 하고, 더 고민하고, 모자람을 채우기 위해 붓을 더 잡아야 하고. 참 힘들죠. 그래서 지금도 저의 스승이 누구냐고 물어오면 늘 그렇듯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 제 정신적인 스승인 추사 김정희, 산·들·강 같은 자연, 그리고 콤플렉스 이 네 가지를 얘기해요. 어찌 됐든 글씨 쓰는 일이 엄청나게 좋으니 지금까지 즐기며 할 수 있는 거죠. 그래도 ‘글씨를 정말 잘하느냐(쓰느냐)’고 물으면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 같아요.”

- 제가 보기에 ‘강병인의 글씨’는 유독 술 쪽이 많은 듯 보여요.
“그렇죠? 저도 언젠가 이걸 생각해 봤는데, 그렇긴 하더라고요. 술을 좋아하니 술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러는 걸 즐겨요. 게다가 좋은 술은 사람들과의 정을 더욱 돈독히 만들어주잖아요.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제가 술을 좀 좋아해서 그런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 술을 좋아하시는군요. 자주 즐기시나요?
“청탁불문(淸濁不問), 모든 술을 즐깁니다. 많이 마시면 패가망신하지만 적당히 마시면 사람들 간 소통이나 마음이 부드러워지잖아요. 첫 만남 때는 공기를 훨씬 부드럽게 하고요. 소주, 와인 다 즐겨요. 하지만 많이 마시거나 취하려고 하진 않죠. 아무리 즐거워도 대취(大醉)까지는 안 가려고 해요.”

캘리그라퍼 강병인은 초등학교 서예반 이후 독학했다. 남들보다 부족하니 더 많이 고민하고 노력해야 했고, 모자람 채우기 위해 붓을 더 잡아야 했다. 사진=김응구 기자

- 요즘 증류식소주가 인기 끌면서 더욱 환영받는 ‘화요’를 얘기해볼까 합니다. 이 글씨 역시 선생님의 대표 작품이잖아요.
“화요라는 글자를 쓸 때도 앞서 얘기한 생각들이 많이 들어갔죠. 좋은 사람과 좋은 술을 마시면 우리 삶에, 우리 가슴에 꽃 한 송이가 피지 않겠냐는 그런 생각 말이죠. 화요를 처음 봤을 때 용기부터 패키지까지 전체적으로 아주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디자인을 만난 건, 어떻게 보면 저에겐 행운이었어요.”

- 좀 더 자세하게 풀어서 설명해주면 좋겠어요.
“화요는 ‘불 화(火)’자에 ‘요나라 요(堯)’자를 쓰죠. 처음에 (알코올도수) 41도가 먼저 출시됐잖아요. 마시면 불처럼 일어나는, 그러나 곧 평화로워지는, 아주 좋은 술이죠. 그렇지만 한글로 갔을(썼을) 때는 글자를 불이 나는 모양으로 만들 순 없잖아요.(화요라는 이름은 처음 한자로 돼 있었다. 그걸 쓴 사람은 소주 ‘처음처럼’으로 유명한 신영복 선생이다) 좋은 술과 좋은 사람이 만나서 술 한잔하는 것은 인생의 즐거움이에요. 자연으로 보면 꽃 한 송이를 피우는 것과 같아요. 한글 ‘화’자는 ‘호’자로 시작하죠. 그 호는 실제로 매화 한 송이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럼 '요’자는 어떻게 할 것이냐. 신선들이 바둑둘 때 한 동자(童子)가 웅크린 채 술 따라주는 모습을 상상한 거예요.”

- 음, 그럴듯합니다.
“재밌는 일도 있었어요. 오래전 한 식당에 들어갔는데, 손님 중에 화요를 무척 좋아하는 분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저와 똑같은 해석을 해요. 혹시 제 인터뷰를 봤냐고 했더니, 제가 누군지도 몰라요. 그분 역시 화요라는 글씨만 보고 그런 해석을 한 겁니다. 옆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놀라서 서로 얼굴만 바라봤어요.”

- 충북 청주의 ‘풍정사계’라는 전통주 브랜드도 직접 쓰셨어요.
“풍정(楓井)이라는 마을, 그 이름에서 따온 술이잖아요. 봄·여름·가을·겨울마다 술을 달리하겠다는 생각에 실제로도 계절마다 탁주, 약주, 소주를 만들어요. 사실 풍정은 단풍나무, 우물, 이런 걸 표현하기 쉽지 않은 글이죠. 그래서 생각한 게 풍정만의 고유한 색깔이었습니다. 그 지역의 물이라든지 지세(地勢)라든지 만든 사람의 정성이라든지, 오로지 풍정사계만의 것 말이죠. 그래서 글씨도 그렇게 해야겠구나, 흔히 볼 수 없는 서체로 가야겠구나, 싶었어요. 자연의 풍광이되 모두가 아는 그것이 아니다, 술맛도 그럴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만들었습니다.”

 

캘리그라피를 만드는 건 ‘문방육우(文房六友)’


- 캘리그라피 의뢰가 들어올 땐 이러이러한 식으로 표현해달라거나 혹은 알아서 해달라거나 하는 식인가요?
“패키지 디자인의 방향성, 용기 디자인, 주요 타깃층, 만든 시간, 보통은 기본적인 정보가 오죠. 기업 입장에서 그 제품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잖아요. 글씨 역시 그래요.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어야 해요. 그래서 독창적이고 차별화가 중요하죠. 오로지 그 제품만의 글씨여야 합니다. 물론 기업이나 디자인회사도 원하는 방향이 있죠. 그런 건 서로 조율해야 합니다. 제품에 대한 제 개인적인 해석, 이름의 뜻, 이런 걸 나름대로 분석해 글씨를 써서 보내지만, 기업이나 디자인회사, 특히 그 제품을 직접 만든 당사자의 생각도 중요하니까 항상 조율합니다.”

그의 붓들. 하나하나 얼마나 많은 시간을 그와 함께했을까. 사진=김응구 기자

-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입니다.
“문제는 시각차이죠. 가끔 그 차이를 줄이는 게 어려울 때가 있어요. 글씨를 의뢰할 땐 어느 정도까지 나왔으면 좋겠다는 나름의 상상을 하잖아요. 제가 그 상상의 안으로까지 들어가 볼 순 없으니까 제 나름대로 해석해서 보내면 ‘어, 이건 우리가 생각했던 게 아닌데’ 하는 반응을 보일 때가 있죠. 그러면 굉장히 당황스러워요. 결국은 말 한마디, 소통이 무척 중요한 거죠.”

- 글씨 이전에 브랜드라는 것을 마냥 쉽게 볼 일이 아니군요.
“브랜드의 요건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 먼저 제품이 있어야 하고 그다음엔 이름이, 그리고 그 이름에 걸맞은 로고가 있어야 해요. 더불어 패키지, 용기, 마케팅 전략, 시장, 소비자가 있죠. 제품 만드는 분들은 좀 섭섭할 수 있지만, 소비자가 제품과 만날 때 가장 먼저 보는 건 이름과 글씨예요. 사람의 얼굴과 똑같다고 봐요. 소비자가 처음 대면하는 얼굴이죠. 그것에서 제품의 성격, 맛, 만드는 사람의 정성, 시간, 심지어 가격까지 보여요. 글씨 만드는 방법은 손글씨, 서예, 레터링이라고 하는 컴퓨터 그래픽 작업 등 여러 가지가 있죠.”

- 평생 붓을 잡으셨는데 캘리그라피 작업엔 컴퓨터 작업이 필수라고 하니 뭔가 아이러니입니다.
“저는 문방사우(文房四友)가 아니라 ‘문방육우(文房六友)’라고 표현해요. 순수서예는 화선지에 글을 쓰고 낙관 찍고 액자로 만들면 그걸로 가치가 생기죠. 그것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글씨는 디지털 과정을 거쳐야 해요. 그래서 컴퓨터가 중요합니다. 스캐닝(scanning)해야 하고 수정 과정도 필요하죠. 글씨를 쓸 때는 엄청 많이 써요. 예를 들어 ‘풍정’이라는 글씨를 쓴다고 해요. 여러 번 썼는데, ‘풍’은 마음에 들지만 ‘정’이 좀 이상해요. 다시 쓰죠. 이번에는 반대로 ‘풍’이 이상하고 ‘정’은 좋아요. 순수서예에선 일필휘지(一筆揮之)라 한번 쓰면 더는 건드릴 수 없어요.”

- 디지털 작업에선 앞의 ‘풍’과 뒤의 ‘정’을 합치면 되겠군요?
“그렇죠. 그럴 수 있는 거죠. 하지만 그 작업은 디자이너에게 맡길 수 없어요. 글씨를 쓴 제가 직접 스캐닝해서 서로 조합해봐야 해요. 그래도 안 맞으면 다시 써야 하고요. 거기까지의 과정은 글씨 쓴 자와 컴퓨터의 몫이고, 그다음에는 디자이너한테 달린 거죠. 더 잘 만들어질 수 있도록 디자이너의 감각, 경험, 역량이 다시 한번 힘을 발휘합니다.”

- 글을 쓰는 자와 디자이너의 호흡도 굉장히 중요하겠어요.
“물론이죠. 언젠가 충남 논산의 양촌양조장이 글씨를 의뢰한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 양조장의 디자이너를 만났죠. 그분이 시각디자이너였어요. 배상면주가의 ‘산사춘’ 패키지도 디자인했고요. 그래서 제가 제안을 하나 했죠. 글씨는 최대한 정성 들여 쓸 테니 패키지 디자인을 진짜 멋지게 만들어보자고요. 그런 점이 통했는지 그곳 막걸리 디자인이 막걸리업계 최초로 ‘레드닷’을 수상했어요. 디자이너와의 호흡은 그만큼 중요해요. 서로를 믿으면 그만큼의 시너지가 생기죠.”(양촌막걸리는 2014년 세계 3대 디자인상 중 하나인 독일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디자인상을 받았다.)

증류식소주 ‘화요’의 글씨는 그의 작품이다. ‘화’의 ‘호’는 매화 한 송이가 피어오르는 모습이고, ‘요’는 신선들이 바둑둘 때 한 동자가 웅크린 채 술을 따르는 모습이다. 사진=화요

-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술 쪽 글씨를 쓸 때 그 술을 직접 마셔보고 쓰나요?
“꼭 마셔보고 씁니다. ‘적송자’라는 술이 있어요. 되게 비싸죠. 알코올도수가 72도나 돼요. 의뢰받고 일단 쓰긴 썼는데, 글씨 모양이 잘 안 나와요. 몇 날 며칠을 고생했죠. 계속 고민하다가 디자인회사에 전화했어요. 그 술 좀 보내 달라고. 간절한 건 제 쪽이니 아주 떼를 썼죠. 근데 술이 없다는 거예요. 평소 아주 소량만 생산한다네요. 나오는 족족 팔리니 없는 거죠. 그래서 두 달 만에 받았어요. 근데 술을 마시니 생각이 더 많아져요. 마지막에는 ‘좋은 술은 오히려 우리 몸을 좋게 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했어요. 72도인데도 목 넘김이 좋고, 묵직한 데다 힘이 있고, 솔처럼 굵직한 느낌도 들고…. 결국 글씨를 완성했고, 오케이를 받았죠.”

- 시안은 보통 몇 개를 준비하시나요.
“보통 ‘A안’이라고 하죠. 세 가지 정도를 준비해요. 너무 많이 보여주는 건 무책임한 거예요. 알아서 고르라는 뜻이잖아요. 많이 요구하는 것도 무리지만 많이 보내는 것도 무책임한 겁니다. 어떨 땐 제가 욕심이 나서 더 보낼 때도 있긴 해요. 그래도 세 개 이상은 안 좋습니다. 그리고는 제품 콘셉트에 딱 맞는 정말 좋은 글씨 하나를 추천하죠. 근데 그게 선택 안 될 때도 있어요. 디자인회사와 의뢰 기업은 여러 사람의 의견을 종합해서 판단하잖아요. 그럴 땐 가능하면 그 의견을 존중합니다.”

 

한글의 초성·중성·종성은 곧 하늘·사람·땅


- 만남을 준비하면서 여태 쓰셨던 글씨들을 쭉 봤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한 글자를 쓸 때, 그러니까 솔, 숲, 비, 춤 같은, 이들을 잘 보면 그 자체가 바로 그 모양인 듯 보였어요. 솔이면 진짜 솔인 것처럼 보이고, 숲이면 진짜 숲처럼 보여요. 이게 맞다면 그런 건 자연에서 영감을 얻나요?
“맞아요. 좀 더 정확히는 자연과 사람이에요. 궁극적으로 예술이란 결국 자연과 사람이 바탕이 되는 거죠. 사람은 나고 죽고, 자연도 나고 죽고를 반복하잖아요. 미술가들은 그런 것을 끌어와서 작품을 하는 거예요. 자기 형식대로 만들고.”

- 말씀을 들으니 상형문자인 한자(漢字)도 떠오릅니다.
“흔히 그렇게 얘기하죠. ‘호랑이 호(唬)’나 ‘수풀 림(林)’처럼 한자는 상형문자니까 그렇게 보인다고. 한글이라고 안 되는 게 아녜요. 한글도 그렇게 쓰면 돼요. 처음엔 제게 ‘그게 그림이지 글씨야?’라고 했어요. 소나무의 솔, ‘ㄹ’은 뿌리가 되고 모음(ㅗ)은 가지가 되고, 가지 위에는 솔나무잎이 있는 겁니다. 얼마든지 돼요.”

- 훈민정음 해례본 연구를 그래서 하신 거군요.
“그 안에 다 들어있어요. 자연의 변화, 나무가 땅에서 자라 봄이 되면 싹이 나고 가지가 나고, 이파리나 꽃이 피어요. ‘꽃’이 그렇게 돼 있잖아요. ‘ㅊ’은 종성(終聲), 그러니까 땅에 해당해요. 실제 뿌리처럼 생겼잖아요. 초성(初聲)은 하늘, 중성(中聲)은 사람, 종성은 땅을 뜻해요. 초성, 중성, 종성, 우린 소리를 하늘, 사람, 땅으로 나눴어요. 소리와 문자는 자연에서 비롯된 겁니다. 나고 자라고, 여름 되면 풍성해지고 가을 되면 떨어지고, 겨우 내내 땅속에 있고, 다시 봄이 되면 살아나고. 한글이 그겁니다. 한글은 소리와 문자가 다르지 않아요.”

캘리그라퍼 강병인의 작업실. 2층 작업실에는 그가 쓴 화선지들로 가득하다. 사진=김응구 기자

- 뭔가 깨우침을 얻은 듯합니다.
“‘솔’자의 모음 ‘ㅗ’를 세로형만 길게 하면 소나무의 시간이 보여요. 짧으면 10년, 점점 길어지면 50년, 100년 막 올라가죠. 뿌리(ㄹ)도 그만큼 자랍니다. 모음이 참 중요해요. ‘ㅓ’는 들어오는 기운, ‘ㅏ’는 뻗어 나가는 기운, ‘ㅗ’는 올라가는 기운, ‘ㅜ’는 내려가는 기운. 돋다, 솟다, 높다, 다 올라가죠? 굽다, 눕다, 춥다, 다 내려가고요. ‘ㅓ’와 ‘ㅜ’는 음성모음, ‘ㅗ’와 ‘ㅏ’는 양성모음이에요. 음성모음은 기운으로 보면 들어오는 것과 내려가는 것이죠.”

- 캘리그라피, 아무나 할 순 없겠네요.
“한글 캘리그라피는 기본적으로 전통 서예를 바탕으로 해야 해요. 그러면서 그 글자가 가지고 있는 뜻을 적극적으로 형상화한다, 이렇게 보면 돼요. 제품과의 소통, 저는 이걸 ‘다정다감한 소통’이라고 하는데, 이게 꼭 필요합니다. 제품이어도 일방적인 소통이 돼서는 안 돼요. 브랜드 로고나 광고, 제품의 속성, 시간, 정성, 이름에 담긴 뜻, 거기에서 한글의 독특한 조형성(造形性)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독창적인 것이 되죠. 제품은 차별화가 꼭 필요해요. 똑같은 제품군이어도 A와 B의 제품이 구별돼야죠. 막걸리라 해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다 다르잖아요. 그러니 로고도 달라야 하고, 그 제품만의 온전함이 있어야 하죠.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 작업실 이름이 ‘술통’이에요. 개인적으로도 술이 특별한가 봐요.
“사람들이 술을 담는 통으로 해석하는데, 그런 뜻은 아녜요. 처음에는 글씨로 술술 통하는 세상을 만들어보자, 해서 술통으로 지었어요. 근데 저도 술이 좋고 그러니 아무렴 뭐 어떻겠어요.”

강병인의 아호는 ‘영묵(永墨)’이다. 오래도록 먹을 가까이 두겠다는 뜻이다. 그 이름처럼 그는 평생 붓과 먹을 곁에 두었다. 그러면서 사람을 만나고 제품을 만났으며 그만의 글씨를 만들어냈다. 그가 쓴 ‘참이슬’ 글자를 보면 내 젊음의 희로애락이 보인다. 그가 쓴 ‘미생’ 글자를 보면 나와 닮은 장그래의 얼굴이 보인다. 이것이 글씨의 힘이다. 글씨는 이토록 우리를 울리고 웃긴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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