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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림의 현대사진산책+] 검은, 아프리카의 떠도는 빛들: 최원준×엘 아나추이

학고재갤러리·바라캇 컨템포러리서 아프리카 현대미술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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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39호 천수림(사진비평)⁄ 2023.01.02 14:12:11

(왼쪽부터) 최원준, '나이지리아에서 온 넬슨과 엠마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난 자녀들, 동두천'. 피그먼트 프린트, 138x168cm. 2021. / 엘 아나추이, '제너레이션 커밍(Generation Coming)'. 알루미늄, 구리선, 300x400cm. 2022. 사진=학고재갤러리, 바라캇 컨템포러리

회화, 조각, 설치, 퍼포먼스, 사진, 영화 등 장르를 넘나들며 작업하는 아프리카 현대미술가들은 줄곧 아프리카의 식민지 역사와 세계화, 불평등, 노동이주, 다국적 기업의 약탈 등을 주제로 한 작업으로 현대미술계에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컴퓨터와 휴대폰 제작에 구리와 콜탄 등이 가장 필요한 자재이지만,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서 채굴됐는지 모르는 것처럼. 그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낯선 그들이 우리 사회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전시 ‘캐피탈 블랙(CAPITAL BLACK)’과 ‘엘 아나추이(El Anatsui): 부유하는 빛(Day after Night)’이 나란히 열렸다.

최원준, 캐피탈 블랙

최원준 작가의 작품이 설치된 전시장 전경. 사진=학고재갤러리

학고재에서 열린 최원준의 개인전 ‘캐피탈 블랙’(2022년 11월 30일~12월 31일)에서 그는 조국의 문화를 지키며 서로 간의 결속을 다지는 이들, 새로운 곳에 정착하고 인연을 만나 다문화 가정을 이룬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을 다뤘다. 아프리카인의 삶을 지속적으로 포착해 온 최원준은 사진 작업을 위해 서울에서 동두천으로 거처와 작업실을 옮겼다.

이번 전시엔 모델이 된 아프리카인 이주 노동자들의 집과 직장 등을 배경으로 한 사진작업과 영상작업을 선보였다. 아프리카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반이다. 그들은 미군부대가 위치했던 서울시 용산구, 동두천, 제조업 공장지대가 모여 있는 파주(가나인 타운), 동두천(나이지리아 국적 이보Igbo인 타운), 평택(카메룬 타운)에 정착하며 자신들만의 타운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최원준, '저의 장례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단채널 4K 영상(컬러), 7분 50초. 2022. 사진=학고재갤러리

그가 이 주제를 처음 구상했을 때, 아프리카인들의 모습을 촬영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아프리카인과 한국인으로 구성된 다문화 가정 수가 많지 않은 데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이다. 수소문 끝에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는 한 다문화 가족, 레건과 선미를 시작으로 한국에 정착한 아프리카인들의 일상을 사진이라는 사실적인 매체로 보여줄 수 있게 됐다.

한국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아프리카 노동자들은 주말에 자신과 같은 나라에서 온 이들과 교민회를 가지며 여가를 보낸다. 낯선 타지에서 주간과 야간 근무를 번갈아 하는 불규칙적이고 불안정한 생활은 한국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최원준, '보산동 아프리카 타운과 마약판매상이 감옥에서 그린 보산동 아프리카타운 지도'. 피그먼트 프린트, 55x185cm. 2022. 사진=학고재갤러리

최원준은 낯선 아프리카인의 사진을 ‘외국인 노동자가 아닌 민중의 초상’으로 담길 원했다. 그는 고립된 아프리카인의 삶을 보고, 기록하며 이들이 현재 처해있는 문화적 고립을 타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시명으로 사용한 캐피탈 블랙은 작가가 만든 조어로, ‘수도, 자본금, 자금, 최고, 멋지다’를 뜻하는 캐피탈(Capital)과 ‘흑인, 검은색, 검은, 어둠’을 뜻하는 블랙(Black)을 조합했다. 캐피탈 블랙이라는 조어에는 16세기 이후 대서양 노예무역을 통한 강제 이주에서 1990년대 이후 한국으로의 노동이주까지의 긴 역사가 담겨 있다.

최원준, '나이지리아에서 온 치도제, 동두천'. 피그먼트 프린트, 55x73cm. 2021. 사진=학고재갤러리

전시장 안쪽 신발 모양의 거대한 기념비에 설치된 최원준의 뮤직비디오 영상 ‘저의 장례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2022)는 붉은 색 숲속에 한 켤레의 거대한 신발과 누군지 모를 인물이 누워있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작가가 미국에서 개조한 적외선 카메라를 통해 푸른색의 숲은 변하지만, 등장하는 흑인 배우의 피부색은 변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최원준이 지난해 코로나로 인해 사망한 외국인 이주 노동자를 고향인 나이지리아로 송환하는 과정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영상 안에는 신발모양의 관 속에 눈을 감고 누워있는 사람의 모습이 등장한다.

최원준, '나이지리아에서 온 이구웨(왕) 찰스와 호프 그리고 한국에서 자녀들, 동두천'. 피그먼트 프린트, 120x145cm. 2021. 사진=학고재갤러리

이는 살아생전에 좋아했던 물품으로 관을 짜는 가나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 영상 속에서 한국인과 다양한 피부색을 지닌 다국적 노동자들이 음악에 맞춰 동료의 관을 들고 도시 이곳저곳을 다니며 위로한다. 이들이 입은 현란한 빛깔의 옷은 작가가 프랑스에 갔을 때 직접 구해온 직물로 만든 옷이다.

이 특이한 색깔과 패턴의 의상을 보면 콩고민주공화국 예술가 미셸 에케바가 떠오른다. ‘콩고의 우주인(Kongo Astronauts)’이라는 예술단체(2013년, 민주콩고, 킨샤사)를 설립했던 그는, 수도 킨샤사에서 깜짝 퍼포먼스를 선보이곤 했다. 예술가들은 우주복 차림으로 도시 킨샤사를 방황하는데 이들이 입은 우주복은 민주콩고에서 폐가전제품, 구리, 콜탄폐회로 등으로 제작된 것이다.

최원준, '파티들, 동두천'. 피그먼트 프린트, 177x667cm. 2022. 사진=학고재갤러리

특히 콜탄은 휴대폰과 컴퓨터에 들어가는 금속으로, 민주콩고가 세계 매장량의 90%를 보유하고 있다. 아티스트들은 금, 은색 우주복을 입고, 술집이나 길거리 등 킨샤사의 일상 공간으로 스며들어, 이곳이 여전히 폭력이 난무하며 서구의 쓰레기 처리장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나이지리아에서 영국 런던에서 자란 잉카 쇼니바레 MBE는 ‘더블 더치’(1994)라는 작업에서 더치 왁스(Dutch wax fabric)라는 직물 프린트를 선보였다. 이 천은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유럽을 순환한 경로를 따라가게 만든다. 영국 맨체스터의 섬유공장에서 인도네시아 바틱(batic)천을 제작 생산해 아프리카 시장을 겨냥한 디자인을 개발한 후 유행시켰다. 1960년대 아프리카에서 이 왁스천은 반식민주의의 상징이 됐다.

최원준, '가나에서 온 레건과 선미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난 아들, 서울'. 피그먼트 프린트, 91x71cm. 2021. 사진=학고재갤러리

최원준이 ‘저의 장례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영상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아프리카인의 현란한 패턴을 입힌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가나에서 온 레건과 선미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난 아들, 서울’(2021)과 ‘나이지리아에서 온 넬슨과 엄마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난 자녀들, 동두천’(2021)에서는 한복, 그리고 ‘나이지리아에서 온 로렌스와 은고지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난 자녀들, 동두천’(2021), ‘나이지리아에서 온 제니퍼와 존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난 자녀들, 동두천’(2021), ‘나이지리아에서 온 이구웨(왕) 찰스와 호프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난 자녀들, 동두천’(2021) 사진에서는 이보족의 전통의상을 볼 수 있다. 멀리 있던 그들이, 이토록 가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최원준의 작업을 통해 현미경처럼 들여다보게 된다.

아프리카의 거대한 빛, 엘 아나추이

엘 아나추이, '뉴 월드 심포니(New World Symphony)'. 알루미늄, 구리선, 600x800cm. 2022. 사진=바라캇 컨템포러리

최원준의 개인전이 열린 학고재에서 몇 걸음만 걸으면 닿는 바라캇컨템포러리 1, 2전시장에서는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가나 태생의 세계적인 미술작가 엘 아나추이의 한국 두 번째 개인전 ‘엘 아나추이: 부유하는 빛’(2022년 11월 29일~2023년 1월 29일) 전시가 진행 중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빨강, 검정, 노랑, 금, 은색의 작은 병뚜껑들을 한 땀 한 땀 연결한 거대한 조각 작품을 만난다. 멀리서 보면 마치 거대한 직물처럼 보이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면 아프리카 일상에서 마시는 술병의 작은 금속 병뚜껑들이다.

아나추이의 스튜디오 작업자들에 의해 일일이 평평하게 펴지고, 잘리고, 비틀리고, 말리고, 압착한 후 구리로 실처럼 꿰매 비로소 색깔이 있는 ‘블록’으로 만들어진다. 그 블록들은 다시 배열되고 조립된다. 보잘 것 없고, 일상적이며 평범한 오브제는 비로소 역사적 내용을 지닌 오브제로 재탄생된다. 멀리서 바라보면, 병뚜껑 조각 작품들은 아프리카 전통의 켄테(Kente) 패턴을 상기시킨다.

보석처럼 빛나는 병뚜껑은 아프리카의 숨겨진 역사를 은유한 오브제다. 뉴잉글랜드에서 만든 럼주가 서아프리카 해안으로 선적되어 노예와 물물교환되었던 기록이 남아 있다. 노예선은 서인도 제도를 여행했으며 그곳에서 아프리카 남성과 여성은 당밀과 설탕으로 거래됐다.

엘 아나추이의 조각은 마치 직물처럼 부드럽고 물결, 파도, 봉우리, 계곡처럼 자연의 형태를 담고 있으며, 때때로 아프리카의 지도를 연상케 한다. 흥미롭게도 멀리서 보면 절대 알 수 없는 이 아름다움은 빛처럼 부유한다. 한발 한발 다가가야만, 비로소 물질을 확인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까이 다가가면 거대한 형태는 미끄러져 나간다. 어쩌면 우리는 아프리카의 진정한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작가 소개>

최원준(1979년 서울 출생)은 2001년 독립예술제(서울)를 시작으로, 국내외 유수 기관에서 전시를 선보이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인사미술공간(2007, 2009), 일우 스페이스(2011), 신도문화공간(2015), 더레퍼런스(2021) 등에서 개인전, 서울시립미술관(2021), 짐 톰슨 아트센터(2021, 태국), 국립현대미술관(2019), 텔 아비브 미술관(2016, 이스라엘), 팔레 드 도쿄(2012, 파리) 등에서 단체전을 가졌다. 주요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로는 타이페이 비엔날레(2008, 타이페이), 세마(SeMA) 비엔날레(2014), 뉴뮤지엄 트리엔날레(2015, 뉴욕), 부산비엔날레(2018), 루붐바시 비엔날레(2019, 콩고), 자카르타 비엔날레(2021, 인도네시아) 등이 있다.

 

일우사진상(2010)을 수상하고,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후보(2011)에 올랐다. 2012년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국립 케브랑리미술관 사진상을 받았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과천), 서울시립미술관(서울), 경기도미술관(안산), 국립 케브랑리미술관(파리) 등 국내외 주요 미술 기관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엘 아나추이는 아프리카 가나와 서구권, 양자의 시각전통과 동시대적 삶에 대한 보편적 문제의식을 반영하는 작업을 이어 왔다. 조각에 대한 전통적인 관습과 정의를 거부하는 예술적 실험들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고, 지난 40년간 조각가이자 교수로 활동하며 정치적, 역사적 입장을 표방해 온 사회 참여적 예술가이기도 하다.

 

엘 아나추이의 작품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MOMA), 샌프란시스코 드 영 미술관, 워싱턴 스미스 소니언 박물관, 런던 대영박물관, 테이트 모던, 파리 퐁피두 센터, 구겐하임, 뒤셀도르프의 쿤스트팔라스트 박물관 등 세계 유수의 박물관과 기관들에 소장돼 있다. 또한 그의 작품은 1990/2007 베니스 비엔날레, 2012 파리 트리에니얼 등 다양한 국제 전시 행사에서 소개돼 왔다. 또한 그는 2015년 평생의 공로로 베니스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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