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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공간, 허산 작가의 내면 담은 ‘월문’이 되다

갤러리 퍼플서 개인전 ‘Wall Moon 월문 月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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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 2023.02.22 15:32:06

허산 작가의 작품이 설치된 전시장 전경. 사진=갤러리퍼플

갤러리퍼플이 2월 10일부터 3월 25일까지 허산 작가의 개인전 ‘Wall Moon 월문 月門’을 연다.

작가는 실제처럼 보이는 기둥이나 벽을 만들고, 그에 균열을 가해서 위태로운 장면을 연출하거나, 그 안에서 백자나 악기와 같은 예상치 못한 사물을 발견하게 하는 설치작업을 진행해왔다. 또, 청테이프, 종이컵, 마스크 등 일상의 사물을 브론즈 조각으로 재현해 그 물성을 반전시키고, 사물과 예술작품의 경계에 대해 질문한다. 브론즈로 만든 농구공을 석탑에 끼워 넣는 등 현대적 오브제와 전통적 오브제를 결합시키는 실험을 하기도 한다.

이런 그의 작업은 다른 맥락과 시간성을 한 자리에 만나게 하고, 익숙한 공간과 사물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게 한다. 이로써 전시 공간 자체를 예술작품으로 변모시킨다.

 

이번 전시에서 전시공간은 작가의 내면의 공간이자 심리적인 공간으로 은유되며, 전시는 그 공간을 탐색하고 발견해가는 과정으로 제시된다. ‘조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작가의 연구와 새로운 실험들을 담은 건축적 설치, 오브제 작업, 드로잉도 소개된다.

허산, '잠자는 부처(Sleeping Buddha)'. 채색브론즈, 금박, 11x8x8cm. 2023. 사진=갤러리퍼플

전시 제목이자 작품 제목인 ‘월문’은 다중적 의미를 가지는 언어유희다. 갤러리퍼플 측은 “월문은 달 모양의 문(月門)이기도 하고 벽에 있는 달(Wall Moon)이기도 하며, 전시공간인 갤러리퍼플이 위치한 ‘월문리’를 뜻하기도 한다”며 “달, 특히 보름달은 동양문화권에서 조화로움, 풍요와 평화, 행복을 의미하며, 전통건축에서는 달의 형상을 본떠 둥근 형태의 문을 만들기도 했다. 허산 작가 역시 달의 형상을 모티브로 해 내면의 공간으로 향하는 문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설치작업 ‘월문’에서 전시장의 벽면은 원형으로 뚫려져 벽 너머의 공간을 노출시킨다. 벽이나 기둥을 깨는 이전 작업들에서 드릴로 파쇄한 듯한 불규칙적 형태와 시멘트 파편, 현재진행형인 파괴의 제스처가 나타난다면, ‘월문’에서 벽은 담담하고 부드럽게 도려져 나와 있다. 그로 인해 파괴의 행위보다는 비어있는 원형의 형태가 강조된다.

 

이 문은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벽이 제거돼 드러난 빈 공간이다. 있을 때에도 없는 것으로 간주됐던 무색무취의 흰 벽은 제거됨으로써 비로소 존재를 드러낸다. 그래서 작가의 작업은 존재가 없는 추상적 공간을 실재하는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시도이기도 하다. 이렇게 벽(wall)은 비워짐으로써 달(moon)이 되고 달(月)은 새로운 공간으로 열린 ‘문(門)’이 된다.

문 너머로 이어지는 공간은 내면의 공간에 비유되는 심리적이고 개인적인 공간이다. 작가가 “조각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몸으로 본다는 것”이라고 하듯, 그의 작품에서 관람자의 신체적 참여는 중요한 요소다. 관람자는 작품을 시각적으로 관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몸을 움직여 문을 통과하고 공간을 탐색하는 신체적 행위를 통해 경험한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 안에서 또다른 작품들과 마주친다.

허산, '유년의 끝(End of Youth Age)'. 브론즈, 21x25x15cm. 2023. 사진=갤러리퍼플

‘유년의 끝’은 작가의 아들이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인형을 브론즈로 캐스팅한 작업이다. 유년을 거쳐 어른이 된 작가와 또한 그 모습을 닮아가며 어른이 되어가는 아들을 떠올리며 돌고 도는 인간의 삶을 생각하게 한다.

‘부처의 반창고’는 이전 작업인 ‘테이프’의 연장이다. 반창고는 브론즈로 섬세하게 캐스팅되고 채색돼 역사적 유물인 부처의 두상에 붙어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오브제와 현대적인 오브제가 만나면서 중첩된 시간성을 드러낸다. 작가는 이 작업을 현재의 우리가 과거의 누적된 시간 위에 있다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선 난장이’ 우화를 생각하면서 만들었다고 한다. 또, 반창고를 붙이는 제스쳐를 통해 치유의 메세지를 전달한다.

‘장자의 혼돈’은 장자에 나오는 신화에 기반한 브론즈 조각이다. 이 신화에서 ‘혼돈’이라는 이름을 가진 신에게는 이목구비가 없었는데, 이웃의 다른 신들이 그의 얼굴에 일곱 개의 구멍을 뚫어 이목구비를 만들어주자 죽고 만다. 자연의 상태에 있던 그에게 분화된 감각이 주어지고 정체성과 질서가 부여되면서 결국 생명을 잃게 된 것이다. 이 작업은 세상이 만들어지고 인식되는 과정과 예술을 하는 태도에 대해 질문한다.

그 외의 작은 조각적 단상들은 작가의 최근 생각들의 흔적들이다. 작가는 “새로운 조각적 시도로서 소소한 말하기의 즐거움을 조각으로 형상화하는 태도로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갤러리 퍼플 측은 “이번 전시를 통해 심리적 공간을 탐색하는 과정에 동참하고 자신만의 내면의 공간을 발견해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허산, '황금 나사못 No.1 visd'or No.1'. 레진, 금박, 5x7x36cm. 2023. 사진=갤러리퍼플

한편, 작가 허산(1980년 출생)은 서울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런던대학교 미술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공든탑’(2020, 영은미술관), ‘일상의 특이점들’(2018, 가나아트한남), ‘벽을 깨다’(2015, 선화일주갤러리), ‘더 도어 인 더 월(The Door in the Wall)’(2015, 가젤리 미술관, 런던) 등 국내외에서 총 8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주요 단체전으로는 ‘나도 잘 지냅니다’(2021, 광주시립미술관), ‘뜨악’(2020, 자하미술관), ‘반향들’(2019, 가나아트센터),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2017, 금호미술관)가 있다. ‘김세중 청년조각상’(2021), ‘영국 왕립 조각가 소사이어티 신진작가상’(2013), ‘디 오픈 웨스트(The Open West)’ 대상(2011), ‘브라이튼대 미술상’(2007) 등을 수상했으며 작품의 주요 소장처로는 영은미술관, 서울대학교 미술관, 영국정부 예술 컬렉션(GAC)이 있다.

영은미술관, 금호미술관에서 입주작가로 참여한 바 있으며 현재 갤러리퍼플 스튜디오에 입주해 작업 중이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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