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2호 이윤수⁄ 2023.02.08 09:22:46
한미약품은 2002년 4월 문화예술의 대중화를 목적으로 공익문화예술재단 가현문화재단을 설립했다. 이후 사진 분야를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한미사진미술관을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본사 사옥에 개관했다.
2003년 한미미술관 개관 당시 사진작가를 대상으로 창작과 전시 활동을 지원하는 전문 기관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미사진미술관은 한국 문화예술 발전과 사진예술의 대중화를 위해 한국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을 설립했고, 전시와 소장품 수집, 작가 지원사업, 출판 및 교육사업 등을 펼치며 한국 사진계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힘써왔다.
2009년에는 학술연구기관인 한국사진문화연구소를 설립했다. 한국의 사진 도입 초기부터 1900년대에 이르는 시기의 자료수집과 연구, 증언 확보에 노력을 기울였다. 2012년에는 사진 인구의 저변 확대와 대중의 사진예술 향유를 목적으로 한미사진아카데미를 개원했다. 그 결과 한미사진미술관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했다.
한미사진미술관이 그동안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사진예술의 확장과 다가가는 미술관’이라는 목표하에 '뮤지엄한미'로 새롭게 태어났다.
뮤지엄한미 삼청은 신축 개관전을 맞아 우리의 사진 역사를 새롭게 되짚는 개관전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를 기획했다. 삼청동 끝자락 삼청동청사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새롭게 지어진 뮤지엄한미를 만난다.
뮤지엄한미 한국사진문화연구소 심지애 교육연구원은 “신축 개관전인 이번 전시는 한국 사진사 54년의 역사를 주요하게 보여주기 위해 기획됐다. 뮤지엄 한미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총 42명의 작가 207점의 작품으로 구성됐으며, 특히 뮤지엄한미가 주안점을 둔 포인트는 바로 빈티지 프린트로만 작품을 구성하고자 했다는 점이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
1929년은 사진사적으로 굉장히 의미가 있는 시기다.
그 이유는 작가 정해창이 사진을 예술 매체로 자신의 미학적 역량을 개인전이라는 현대 근대화적인 매체로 소개했던 최초의 연도이기 때문이다. 정해창 작가는 근현대 미술의 사회적 형식을 선보인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가였다. 특히 한국 사진사에 있어 본격적인 예술은 정해창의 ‘예술사진 개인전람회’(1929년 3월 29일~31일)와 더불어 비로소 시작됐다고 한다.
심지애 교육연구원은 “사실 이 당시에 아마추어 작가들은 개인 활동을 하지 않았다. 보통 그룹에 속하거나 단체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정해창 작가는 4번의 개인전을 진행할 정도로 자신의 역량을 보여준 인물이다”라고 설명했다. 심 교육원구원은 특히 “그가 개인전을 진행할 때마다 많은 신문사에 보도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오롯이 ‘회화주의’ 사진만이 식민지 시대 사진계를 지배했을까? 그건 아니다. 유럽 모더니즘 사진의 별칭인 ‘신흥사진’도 조선 사진가들의 참고 대상이자 선망의 대상이었다. '신흥사진'의 영향은 임응식 작가의 사진뿐만 아니라 정해창의 정물 시리즈에서도 선명히 나타난다.
한국식 ’Salongism사진’은 회화주의 사진은 물론이고, 1920년대 유럽의 뉴비전과 1950년대를 전후로 한 독일의 ‘주관적 사진’과 애환 기법, 스타일까지 두루 아울렀다.
심지애 교육연구원은 “'신흥사진'이라는 용어가 굉장히 생소할 수 있지만 쉽게 설명하면 20세기 초 독일에서 시작된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사진이다”라며 “옛날 사진이라고 전혀 느낌이 들지 않는 굉장히 현대적인 사진이며, 모더니즘이 잘 드러난 시대의 사진이다”라고 설명했다.
1950년대에는 리얼리즘의 시대였다. 사진을 있는 그대로 현실을 담고자 했다. 리얼리스트 작가인 구왕삼(1909-1977), 임응식, 이명동(1920-2019)으로 대변되는 리얼리스트들은 리얼리즘을 통해 한국 사진계 전체를 일신하고자 했다
또 리얼리즘을 주제로 뛰어난 사진을 보여준 작가는 바로 임석재 작가다. 임성재 작가는 1948년 동화백화점 화랑에서 개최한 ‘제1회 임석제 예술사진 개인전’을 통해 목가적인 농촌의 풍경을 역동적인 노동 현장으로 대체했다. 임 작가는 정적인 회화주의의 특색적인 구도를 내려놓고, 농업 사회 노동자들의 모습에 더욱 초점을 맞춰 사진을 찍었다.
또 한국전쟁 시대는 '르포르타주'로 물든 시기다. 극으로 치닫는 이념대결과 저널리즘의 확장, 회화주의에 대한 리얼리즘의 승리를 당연한 것으로 만들었다. 기획하고 미학적 사진과는 달리 객관적 기록을 모토로 부조리한 현실의 우발성을 포착하는 르포르타주가 격동의 시기에 걸맞은 사진 분야로 부상했다.
이 시대의 사진작가였던 '호남신문’의 이경모(1926-2001)는 1948년 10월 여순사건, 국방부 정훈국 사진대장이었던 임인식(1920-1998) 중위는 6·25 전투 현장을 찍기위해 사진기를 리얼리즘으로 무장했다.
미공보원의 촉탁 사진가로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던 임응식은 9·28 서울 수복을, 이명동은 보병7사단의 전황을 기록하기 위해 폐허의 현시을 직시했다. 한국전쟁 당시 '살롱사진'은 상황 논리의 의해 현실 속에서 패퇴했다.
심지애 교육연구원은 “현실을 사실 그대로 담다라는 의미인 르포르타주는 문학 영어 문화에서 유래된 말이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한국 전쟁의 아픔을 담은 사진들이 많이 나타나게 되는데, 미학적인 사진을 많이 찍었던 작가들도 이 시기에는 잔혹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1950~1960년대 이 시기는 전통에 대한 민족주의적 인식은 한국 사진계에 내향성(내적 충실을 기하려는 경향)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서구 열강과의 빈번한 접촉과 선진국에 대한 콤플렉스는 한국 사진계의 외향성을 부르기도 했다.
특히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에 국한됐던 공모가 휴전협정 이후 미국, 프랑스, 영국 등 확산하는 양상을 보여줬다. 아울러 국내 공모전의 불신으로 더더욱 해외 공모전에 대한 열정을 확산시켰고, 이에 많은 사진가가 국제 공모전에 응모하는 현상을 보였다. 이 시기 가장 활발했던 최민식 작가는 해외 공모전에 200회 이상 작품을 출품했으며, 국내에서도 다수의 작품으로 개인전까지 진행했다.
1960~1970년대에는 공보부가 주최한 공모전 '신인 예술상'과 한국 사진계의 숙원사업이었던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가입이 이뤄진 해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는 한국 사진계는 흔히 생각하듯이 리얼리즘이 승리하고 '생활주의 사진'이 주도권을 쥔 시대가 아니었다. 회화주의가 거의 숨을 거두는 자리에서 서구의 모더니즘이 개척한 사진의 여러 길을 모색했다.
스냅 사진은 물론, 새로운 비전과 주관적 사진의 파격적 구도와 극적인 명암의 대비를 탐구한 시기였다. 또 미국의 순수사진이 길을 연 추상적 사진 곁에서 회화적 사진의 새로운 가능성도 조금씩 엿보인 시대였다.
당시 공보부가 주최하고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가 주관한 '신인 예술상'은 1968년까지 개최됐다. 아울러 '대한민국미술전람회' 가입은 상업적 기술, 아마추어의 도락이라는 모욕을 떨쳐버리고, 사진이 순수한 예술정신의 산물로 인정받는 계기로 받아들여졌다.
심지애 교육연구원은 "'신인 예술상' 같은 경우에는 공보부라는 곳에서 개입해서 신인들을 발굴했던 공모전이며, '국전'이 가장 현대 사진계를 형성했던 중요한 공모전이라고 기억하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이번 사진전의 마지막 연도는 1982년도다. 이 시기는 사진 예술에 있어 아주 굉장히 중요한 시기다. 그 이유는 1982년 국립 현대미술관에서 임응식 작가의 회고전이 진행되었는데, 이 전시 이후 사진 예술이 순수미술로서 인정받기 시작한 계기가 됐다.
특히 임응식 작가는 현대 미술사에서 있어 유명한 서양 화가의 사진을 찍기로 유명했다. 아울러 예전 인물 사진들에 있어 스튜디오에서 찍는 딱딱한 사진만이 아닌 임응식 작가는 개인의 직업적 성격이 드러날 수 있도록 사진을 찍었다.
관련해 심지애 교육연구원은 "임응식 작가 같은 경우 사진을 예술의 한 분야로서 인정받았으며, 자신의 회고전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었다. 또한 스튜디오 사진도 예술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작가다"라고 설명했다.
뮤지엄한미, 전통적 사진예술 가치를 위한 수장고 구축
이번 전시와 함께 뮤지엄한미의 전통적 사진예술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도 엿볼 수 있다.
뮤지엄한미는 21세기 디지털 이미지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바뀐 사진 매체를 수용한다. 지난 20년간 수집한 2만여 점에 달하는 사진 소장품의 보존을 위해 국내 최초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저온 수장고와 냉장 수장고를 구축했다. 15°C에 상대습도 35%의 저온 수장고와 5°C에 상대습도 35%의 냉장 수장고 항온항습시스템은 ‘역사적’ 사진 소장품 수명을 500년은 보장한다.
수장고에는 이번 개관전시와 연계해 1929년 이전의 우리나라 초기 사진들을 선보였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사진을 도입한 황철이 촬영한 1880년대 사진부터, 고종의 초상사진, 흥선대원군의 초상 사진 원본을 전시한다. 더불어, 조선 황실의 마지막 황실 사진가였던 해강 김규진이 1907년 서울에 문을 연 천연당 사진관 작품들과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사진가로 알려진 경성사진관 이홍경이 촬영한 여인의 초상도 전시한다.
이처럼 개방 수장고 영역은 역사적인 소장품을 일 반 대중의 시선이 닿을 수 없는 미술관의 수장고에 유폐하기보다는 대중에게 한 발 더 다가가려는 뮤지엄한미를 보여주는 상징적 전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심지애 교육연구원은 "2013년,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수집한 이 자료체(corpus)에 의거해 한국 사진사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았으며, 이 자료체의 빈자리들을 수년에 걸쳐 메워 나갔다. 이렇게 조성된 지형도를 바탕으로 한국 사진의 역사를 새롭게 고찰하려는 본 기획전의 성과를 사진계는 물론이고 한국의 예술계가 공유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 문화경제 이윤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