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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현장] 노숙자 드러눕고, 바닥 뚫고, 비둘기 정모의 장 된 파격의 미술관

리움미술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국내 첫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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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42호 김금영⁄ 2023.02.20 09:39:31

리움미술관 입구와 로비에 누워 있는 노숙자 조각. 사진=김금영 기자

“저기요, 여기 누워 있으면 입 돌아가요.”

누군가 흔들어 깨워야 할 것 같다. 영하로 기온이 뚝 떨어져 바람이 유독 차게 느껴지던 어느 날, 리움미술관 문 앞에 떡하니 노숙자가 누워 있었다. 미술관 밖뿐 아니라 로비에도 노숙자 한 명이 기대어 앉아 있었다. 이들의 이름은 ‘동훈’과 ‘준호’. 미술관을 찾은 사람들은 이들의 옆에 앉아 사진을 찍기도 했다.

리움미술관을 찾은 방문객 사이 노숙자 조각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마치 진짜 사람 같은 동훈, 준호는 이탈리아 출신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손에서 탄생한 조각 작품이다. 솔직히 작품을 보는 순간 매우 놀라긴 했다. 일반적으로 미술관에서 볼 수 없을 법한 뜻밖의 미친 존재감도 그렇지만, 2017년 대기업들과 정부 권력의 횡포를 비판한 예술가들이 광화문 광장에 텐트를 치고 농성했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이들은 스스로를 노숙자로 칭하기도 했다.

리움미술관은 미술계 권위의 상징과도 같았는데, 고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여사는 같은 해 3월 관장에서 갑작스럽게 사퇴했다.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되는 등 그룹의 위기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미술계를 들썩이게 한 '코미디언'. 이 바나나 하나가 설치되고 먹히는 과정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다. 사진=김금영 기자

그때를 연상케 하는 조각이 떡하니 미술관에 등장해 있으니, ‘이건 노이즈 마케팅인가’ 싶으면서도 흥미로웠다. ‘엄근진(엄격·근엄·진지)’이었던 리움미술관이 권위를 내려놓고, 보다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서고 있는 그간의 과정을 함축한 장면 같이 보이기도 했다.

홍 전 관장 사퇴 이후 4년 간 리움미술관은 기획전 없이 상설전으로 운영됐는데, 국내 미술계에서 리움미술관이 차지한 위치가 컸기에 부재를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후 2021년 10월 재개관한 리움미술관은 문을 보다 활짝 열었다. 상설전과 기획전을 무료로 진행했고, 과거 세계 거장 작가의 묵직한 전시작을 주로 선보였다면, 애니메이션 영상만으로도 기획전을 꾸리고, 지난해 하반기엔 기획전을 비롯해 상설 기획전, 특별 프로젝트까지 전시 6개를 한꺼번에 공개하는 등 보다 다양성을 갖췄다.

전시장 2층 바닥엔 귀빈을 모실 때 사용하는 레드카펫이 쫙 깔렸는데, 이 위에 천으로 덮은 시신 모습을 한 아홉 개의 조각 '모두'가 누워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이번엔 일반적인 상식의 선을 훨씬 뛰어넘는 파격적인 작업들로 ‘현대미술계의 가장 논쟁적인 작가’로 불리는 카텔란의 국내 첫 개인전을 마련했다. 이번 기획전 또한 무료로, 사전 예약을 받아 운영된다.

카텔란은 유독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대면 인터뷰도 잘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작품에 대해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것도 선호하지 않아 이번 전시 간담회 때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보는 사람이 제각각 느끼는 것 자체가 예술이라 여기는 그다.

그렇기에 노숙자 조각 하나에서도 여러 생각들이 파생되고 있다. 기자는 2017년 광화문을 떠올렸지만, 어떤 이는 단순 재미있게 보기도 하고, 혹자는 미술계에 대한 비판 의식이 느껴진다고 하기도 했다. 정작 카텔란은 노숙자 연작을 ‘안드레아스와 마띠아’라는 이름의 첫 작품으로 1996년 첫 발표 이래 장소에 따라 이름을 바꾸며 선보여 왔다. 위스콘신 대학 캠퍼스에 ‘케네스’라는 이름으로 노숙자 모형이 전시됐을 땐 누군가 대학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 팻말을 더해줘 작가도 모르는 사이 투쟁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정해진 정답은 없다.

바나나 하나가 미술계에 불러온 코미디

아돌프 히틀러의 얼굴을 한 작품이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있다. 표정은 공손해보이지 않는다. 사진=김금영 기자

카텔란은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다양한 직군을 경험한 뒤 가구 디자이너로 일하며 비로소 미술계에 몸담았다. 변곡점이 많은 그의 인생사는 전형적인 미술가 유형을 벗어나 스스로를 ‘미술계의 침입자’로 정체화 하고, 제도의 경계를 넘나들며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데 기여했다.

이런 그의 작업 특성이 잘 드러나면서 세계에 널리 알려진 대표작이 ‘코미디언’이다. 2019년 12월 아트바젤 마이애미에 첫 등장한 작품으로, 무려 12만 달러에 팔려 화제가 됐다. 그 정체는 슈퍼나 마트에서 살 수 있는 흔하디흔한 바나나를 벽에 붙인 것이었다.

요한 바오르 2세는 운석에 맞아 쓰러진 모습으로 전시장에 등장했다. 단지 짓궂은 농담에 불과할지, 권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일지 여러 논쟁을 낳은 작품이다. 사진=김금영 기자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당시 전시 도중 한 작가가 “퍼포먼스의 일환”이라며 갤러리의 동의 없이 바나나를 떼어서 먹어 버렸고, 갤러리는 어쩔 수 없이 바나나를 새 것으로 교체해야 했다. 그런데 이 사건에 오히려 흥미를 느낀 인파가 몰려 전시는 중단 사태까지 맞았다. 작품명처럼 그야말로 웃긴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썩어 문드러질 바나나 하나를 두고 미술계가 들썩인 이 상황은 '예술이란 무엇인지', '그 가치는 누가 정하는 것인지' 현대미술계가 지닌 여러 모순과 생각할 거리를 던졌다. 이 바나나는 세계 각국을 돌다 이번엔 리움미술관 벽에 붙었다. 아주 큰 벽 하나에 자그마한 바나나 하나가 달랑 붙어 있는데도 유독 사람들이 많이 몰린 모습은 여전히 이 작품이 뜨거운 감자임을 느끼게 해준다.

작품 보존을 위해 사진 촬영이 금지된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이 축소 제작된 형태로 전시장에 등장했다. 사진=김금영 기자

누군가 먹어 버렸던 바나나와 비슷한 에피소드가 리움미술관에 생기기도 했다. 전시 초반 미술관 관계자들도 모르게 누군가 노숙자 조각 옆에 작은 바구니를 하나 놓고 가 사람들이 여기에 동전을 넣고 가는 해프닝이 있었다는 것. 현재는 바구니가 치워진 상태다.

아트바젤에서 바나나를 먹어버렸던 당사자는 자신의 행동을 ‘행위예술’로 칭했다는데, 리움미술관에서도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 스스로가 행위예술가처럼 카텔란의 작품에 끼어들어 새로운 이야기를 생성한 것이다. 카텔란이 이를 알면 흥미로워하지 않을까.

마우리치오 카텔란을 빼닮은 작품이 전시장 바닥을 뚫고 나와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코미디언’ 못지않게 주목받는 작업이 ‘모두’다. 전시장 2층 바닥엔 귀빈을 모실 때 사용하는 레드카펫이 쫙 깔렸는데, 이 위에 천으로 덮은 시신 모습을 한 아홉 개의 조각이 누웠다. 빨간 바닥과 흰색 조각상의 대비가 돋보이고, 그래서 더 참혹함이 극대화된다.

리움미술관이 위치한 이태원엔 지난 핼러윈 때 안타까운 참사가 발생했다. 이에 이 작품들을 보고 당시의 참혹함과 아픔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정작 카텔란은 이태원 핼러윈 참사 전 작품 전시 결정을 이미 내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즉, 보는 이에 따라 떠올리는 상황은 다르지만, 비극을 기억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모두’의 마음은 동일선상에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다.

도발적인 익살꾼 카텔란, 전시장 종횡무진

후드를 쓴 소년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유년시절 기억 일부를 비춘 것이기도 하다. 앞선 아돌프 히틀러와 같이 이 소년 또한 앞모습에서 주는 반전의 충격이 어마어마하다. 사진=김금영 기자

전시는 민감한 정치와 종교 이슈도 거침없이 건드린다. 멀리서 보면 교복을 입은 어린 학생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는 것 같은 작품의 얼굴을 앞에서 확인하면 아돌프 히틀러라는 걸 발견한다. 카텔란은 이처럼 언급조차 금기시되는 인물을 되살려 무릎을 꿇리고 질문하고, 토론하도록 이끈다.

작품 제작 당시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르 2세는 운석에 맞아 쓰러진 모습으로 전시장에 등장했다. 단지 짓궂은 농담에 불과할지, 권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일지 여러 논쟁을 낳은 이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도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작품 보존을 위해 사진 촬영이 금지된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도 축소 제작해 전시장에 들여놓았다. 실제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는 종교적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 육안으로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곳에 있지만, 카텔란은 이를 사람들의 시선이 닿을 수 있는 복제품으로 끌어 왔다. 예술이 만나는 일이 흔해진 오늘날, 원본성에 대한 의문까지 제기하는 작품이다.

'아름다운 나라'가 바닥에 설치된 모습. 얼룩진 카펫을 통해 이탈리아가 지닌 아름다운 나라라는 환상적인 이미지와 실제로 겪고 있는 정치경제적 갈등 사이의 간극을 파고든 작품이다. 사진=김금영 기자

작가 자신이 작품으로서 전시에 등장하기도 한다. 카텔란을 꼭 빼닮은 조각이 전시장 바닥을 뚫고 머리만 살짝 내밀고 있기도, 벽 옷걸이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기도 하다. 후드를 쓰고 앉아 있는 소년의 모습은 카텔란의 유년시절 기억 일부를 비춘 것이기도 하다. 앞선 아돌프 히틀러와 같이 이 소년 또한 앞모습에서 주는 반전의 충격이 어마어마하다.

또, 이번 전시는 형식을 탈피한 작품 설치 방식도 눈길을 끈다. 이번 전시는 카텔란의 당부로 각각의 작품에 ‘가까이 다가서지 말라’는 경계선 표시가 없다. 그래서 1층 바닥에 설치된 카펫을 작품인지 모르고 밟을 뻔한 사람들이 은근 많다.

 

작품명은 ‘아름다운 나라’로, 다른 국가에서는 관람객이 그대로 밟고 지나가도록 전시한 경우도 있었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 훼손 방지를 위해 이를 금했다. 얼룩진 카펫을 통해 이탈리아가 지닌 아름다운 나라라는 환상적인 이미지와 실제로 겪고 있는 정치· 경제적 갈등 사이의 간극을 파고든 작품이다.

비둘기 정모의 장이 펼쳐진 곳은 다름아닌 전시장과 미술관 로비 곳곳이다. 사진=김금영 기자

작품 설치는 벽과 바닥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시장 바닥을 비롯해 미술관 로비 등엔 박제 비둘기가 가득해 작품명처럼 마치 전시장의 ‘유령’을 보는 듯하다. 전시장 높은 곳에 위태롭게 걸터앉은 소년 작품은 갑자기 시끄럽게 드럼을 쳐 전시를 보던 사람들의 눈길을 한순간에 사로잡기도 한다.

 

일정 시간이 되면, 조용해야 할 미술관에 ‘찰리’라는 소년이 세발자전거를 타고 작품 사이를 종횡 무진한다. 이처럼 일반적 전시의 통념을 깨는 카텔란의 유쾌하면서도 도발적인 시도가 전시장 곳곳에 가득하다.

자신을 빼닮은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 마우리치오 카텔란. 사진=리움미술관

직관적이면서도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 전시엔 오픈런이 이어지고 있다. 이미 몇 달 뒤까지 전시 예약이 꽉 찬 상태다. 근래 국립중앙박물관의 ‘합스부르크’ 전시도 호황을 이루며 전시 기간을 연장했는데, 리움미술관도 사람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카텔란은 유머의 힘으로 진지하고도 심각한 소재들을 자유자재로 비틀며 신선한 자극을 던져 온 작가”라며 “이번 전시에서는 도발적인 익살꾼인 카텔란의 채플린적 희극 장치가 적재적소에 작동되는 작품들을 마주하며 공감, 열띤 토론 그리고 연대가 펼쳐지는 무대를 경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7월 16일까지.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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