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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현장] 새까만 어둠을 밝히는 조선백자들의 향연

리움미술관, 도자기 주제 첫 특별전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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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43호 김금영⁄ 2023.03.06 14:11:49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전이 열리는 전시장 전경. 사진=김금영 기자

새까만 어둠 속 마치 배우처럼 하나하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주인공은 백자다. 대개 백자라 하면 티 없이 깨끗한 달항아리의 이미지가 친숙하지만, 전시는 그간 백자에 씌워졌던 프레임을 깬다. 각각의 백자는 변화무쌍한 색과 더불어 꽃, 동물 등 화려한 무늬까지 다채로운 매력을 드러내 눈길을 끈다.

리움미술관이 조선백자 명품을 한자리에 선보이는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전을 5월 28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연다. 2004년 개관 이래 다양한 전시를 선보여 온 리움미술관이 도자기만을 주제로 기획한 첫 특별전이다.

1부 전시장엔 국가지정문화재 31점과 그에 준하는 국내 백자 3점, 해외 소장 백자 8점 등 명품 42점이 모였다. 사진=김금영 기자

규모도 크다. 국가지정문화재 59점(국보 18점, 보물 41점) 중 절반이 넘는 31점(국보 10점, 보물 21점)과 일본에 소재한 수준급 백자 34점을 포함해 총 185점을 선보인다. 이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국내 8개 기관과 도쿄국립박물관을 비롯한 일본 6개 기관과 협업했다. 특히 우수한 한국 도자 컬렉션을 보유한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은 이번 전시에 특별 협력 기관으로 참여했다.

 

그간 조선백자 전시는 장식기법이나 주요 기종에 맞춰 소개된 사례가 많았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백자들 또한 일부만 전시해도 그 자체로 훌륭하고, 할 이야기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전시는 방대한 조선백자를 총괄해 소개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 방대한 서사를 엮는 건 백자에 투영된 조선의 역사와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정신세계다.

'백자청화 운룡문 호'가 전시된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구체적으로 ‘청화백자’에서는 품격과 자기 수양의 의지를, ‘철화·동화백자’에서 곤궁함 속에서도 잃지 않는 굳센 마음을, ‘순백자’에서 바름과 선함을 찾아, 조선백자 안에 조선사람들이 이상적 인간상으로 여기던 ‘군자’의 풍모가 담겼다는 해석을 더했다.

전시를 담당한 이준광 리움미술관 책임연구원은 “조선백자의 최고 명품부터 수수한 서민의 그릇까지 백자의 다양한 면모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라며 “아름다운 문양과 같은 외적인 형식과, 의식을 반영한 형태와 같은 내적인 본질이 잘 조화된 조선백자의 진정한 매력을 군자의 덕목과 연결시켜 새롭게 감상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고 말했다.

국내외 14개 박물관과 미술관 동참해 총 185점 전시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전은 2004년 개관 이래 다양한 전시를 선보여 온 리움미술관이 도자기만을 주제로 기획한 첫 특별전이다. 사진=김금영 기자

전시는 총 4부로 구성됐다. 전시의 시작을 여는 1부는 몰입감이 상당하다. 약 200평 규모의 전시장은 밀폐된 블랙박스 형태로,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둠이 깔렸다. 이곳에 쇼케이스 형태로 국가지정문화재 31점과 그에 준하는 국내 백자 3점, 해외 소장 백자 8점 등 명품 42점이 모였는데 그야말로 자체발광이다. 전시장 한켠엔 계단도 마련돼 이곳에 올라가 공간 전체를 훑어볼 수도 있다.

이 책임연구원은 “이 공간은 ‘챔피언스 리그’라 일컬어질 정도로 한 작품마다 가치가 높다. 고미술품을 한자리에 군집하면 의외의 화려함이 돋보인다”며 “또, 일반적으로 백자 전시는 진열장에 전시돼 앞부분만 감상할 수 있는 제한적 형태가 많았는데, 쇼케이스 형태로 구성해 백자 뒷면까지 세세히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대개 백자라 하면 티 없이 깨끗한 달항아리의 이미지가 친숙하지만, 전시는 그간 백자에 씌워졌던 프레임을 깬다. 사진=김금영 기자

이 공간에서는 조선 초기 청화백자 중에서도 당당한 형태와 화려한 그림 장식으로 널리 알려진 ‘백자청화 매죽문 호’(국보), 고려의 매병(아가리가 좁고 어깨는 넓으며 밑이 홀쭉하게 생긴 병)에서 조선의 호(달항아리)로 변해가는 과도기적 특징을 보여주는 ‘백자청화 홍치명 송죽문 호’(국보), 특유의 강렬한 색과 묵직한 힘으로 독자적인 아름다움을 선보이는 ‘백자철화 포도문 호’(국보) 등을 볼 수 있다.

조선의 절제된 화려함과 창의적이고 진보적인 조형감각이 빚어낸 수작인 ‘백자청화철재동채 초충난국문 병’(국보), 조선초기 백자가 가진 순백의 아름다움과 품격 높은 기형을 두루 갖춘 ‘백자 개호’(국보), 생활의 미를 추구하며 티 없이 깨끗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백자 달항아리’(보물) 등도 마련됐다.

백자는 변화무쌍한 색과 더불어 꽃, 동물 등 화려한 무늬까지 다채로운 매력을 드러내 눈길을 끈다. 사진=김금영 기자

지하 1층 전시장에 마련된 2부는 하얀 바탕에 푸른색 안료로 장식된 청화백자에 나타나는 문양의 변화를 통해 위엄과 품격, 그리고 새로운 영향에 의해 변모해가는 혁신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 책임연구원은 “조선 유교사회 땐 본인이 군자가 되기 위한 인격 수양이 활발하게 이뤄졌는데 이 과정이 생활에도 의식, 또는 무의식적으로 도자기에도 반영됐다”며 “매화, 대나무 등이 그려진 백자에서 선비의 기개를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높이 60cm가 넘는 크기로 현존하는 용이 그려진 항아리 중 가장 큰 크기인 ‘백자청화 운룡문 호’, 상상의 꽃인 보상화를 백자의 형태와 장식 공간에 맞춰 적절히 변형한 ‘백자청화 보상화당초문 잔받침’, 소나무와 매화의 세부적인 표현과 안료의 농담 활용이 뛰어난 ‘백자청화 송매문 호’ 등이 전시된다.

 

청화를 바탕으로 동 안료를 더한 ‘백자청화동채 모란문 호’는 화려함 속에서도 품격을 읽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민화의 대표적인 소재인 ‘까치와 호랑이’가 등장하는 ‘백자청화 송하호작문 호’, 각진 병을 차례로 포갠 듯한 특이한 형태의 ‘백자청화 서수문 각병’ 등을 통해서는 새로운 문양 소재와 형태가 도입되는 변화를 소개한다.

조선백자가 지닌 기품·친근함·해학

다리가 달린 물고기, 마치 야자수같이 생긴 국화 등 독특한 그림이 새겨진 도자에선 개성과 해학이 묻어난다. 사진=김금영 기자

이어지는 3부는 조선 중기에 일본, 중국과의 큰 전란으로 청화 안료의 수급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등장한 철화백자 특유의 강렬함과 변화무쌍한 색 변화를 통해 독특한 미의 세계를 선보인다. 단정한 모습의 백자 이미지를 깨는 공간이다.

일본, 중국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모습도 발견된다. 중국에서 복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박쥐의 모습이 담긴 도자가 조선에 전해지고, 화려함을 요구하는 수요층을 대상으로 총천연색 도자가 만들어진 과정을 엿볼 수 있다. 다리가 달린 물고기, 마치 야자수같이 생긴 국화 등 독특한 그림이 새겨진 도자에선 개성과 해학이 묻어난다.

 

이 책임연구원은 “조선은 쇄국정책에 보수적 유교사회였지만, 그 속에서도 일본, 중국과의 문화 교류가 활발했다”며 “특히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수집의 역사는 오래됐는데, 고려청자의 경우 생활용기로 쓰여 예술품으로서의 발견이 늦어 1930~1940년대 당시의 거래에 의해 일본에 많이 넘어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방에서 만들어진 백자는 생활용기를 중심으로 제작된 경우가 많았다. 사진=김금영 기자

현재까지 전해지는 중앙에서 만든 ‘백자철화 운룡문 호’ 중 최대 크기로 힘찬 용의 표현과 박력 있는 구름이 인상적인 도자, 꽃 모양을 빙글빙글 돌아가는 선으로 그리고 뒷면에 가지와 너른 잎들을 여백을 두고 표현해 인상적인 ‘백자철화 초화문 호’ 등은 청화백자와는 또 다른 품격을 선보인다.

지방에서 제작된 철화백자와 동화백자엔 정겨우면서도 소박한 정취가 담겼다. 아이들의 그림처럼 우스운 모습으로 용이 그려진 또다른 백자철화 운룡문 호는 중앙에서 만든 위엄 있는 용 그림의 항아리와 비교돼 재미를 더한다. 지방의 동화백자는 동 안료만으로 전면에 그림을 그리거나 채색하는 방식으로 주로 연꽃이나 포도 등을 소재로 사용했는데, ‘백자동화 연화문 팔각병’은 중앙에 연잎을 시원스럽게 그리고, 꽃잎마다 끝부분을 채색해 화려함을 더해 강렬한 안료의 색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고고하게 홀로 서 있는 백자대호. 사진=김금영 기자

마지막으로 4부는 흰 눈같이 맑고 청명하다가 우윳빛 같기도 하고, 푸른빛이 반짝거리는 벽옥 같은 색을 선보이는 순백자의 고요하게 응축된 색을 만나 볼 수 있다.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백자 호’는 눈처럼 흰 빛깔로 단정하고 산뜻한 순백을 보여주고, 조선 후기의 ‘백자양각 연판문 병’은 몸체를 깎아 표현한 3중의 연꽃잎과 음각선으로 표현한 잎맥의 생동감 넘치는 표현이 청초한 색과 하나가 되는 모습을 선보인다.

여러 작은 그릇들이 쇼케이스를 벗어나 격의 없이 큰 테이블 하나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도 눈길을 끈다. 지방에서 만들어진 백자를 모은 것으로, 자유분방한 특징이 있다. 생활용기를 중심으로 제작됐고, 중앙에서 만든 백자의 담백한 흰색과 다르게 회색이 서려 있거나 갈색조를 보이기도 한다. 지방 백자에 담긴 색은 거친 바탕과 수수한 겉모습으로 친근함을 느끼게 하는데, 오늘날의 생활용기로도 손색이 없다.

전시를 담당한 이준광 리움미술관 책임연구원. 사진=김금영 기자

이 친근함 속엔 고풍스러움이 함께 한다. 전시는 고고하게 홀로 서 있는 백자대호로 마무리된다. 이 또한 유리로 막아놓지 않았다. 그 어떤 화려한 장식도, 장치도 없지만 백자대호 하나가 오롯이 주는 압도감은 공간을 가득 채운다.

이 책임연구원은 “최고급 도자부터 지방 서민이 썼던 질박하고 친숙한 도자까지, 각 도자는 각각에 맞는 안료와 구색을 갖추며 항상 본질을 찾아갔다”며 “여전히 오늘날 고미술을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데, 고미술품은 먼 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 생활에서 함께 숨 쉬며 살아왔다. 이런 조선백자의 매력을 이번 전시에서 한껏 가까이 느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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