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5호 김금영⁄ 2023.03.29 14:39:35
배우 톰 크루즈가 10분간 이뤄진 시연을 보자마자 바로 “오케이(OK)” 하며 긍정의 피드백을 줬다. 작품에 있어 특히 까다롭다는 그가 이 짧은 시간에 만족을 표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 영화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가 출연한 영화 ‘탑건: 매버릭’(이하 탑건2)은 지난해 6월 개봉해 국내에서 817만 관객을 동원하며, 톰 크루즈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을 썼다.
이어 올해엔 ‘아바타: 물의 길’(이하 아바타2)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탑건2의 흥행을 넘어섰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첫 외화 작품으로 더 주목받았다. 이 또한 작품 제작 과정에 있어 엄격한 기준으로 유명한 디즈니가 제작했는데, 디즈니도 톰 크루즈처럼 이 기술에 주목했다. 아바타2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데도 이 기술이 도입된 특화관 관람 열풍의 영향이 컸다. 특화관 비중이 아바타2 극장 매출액의 60% 이상을 차지한 것.
현재는 아바타2에 이어 ‘샤잠! 신들의 분노’(이하 샤잠2)도 특화관 상영을 이어가고 있다.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공통적으로 CJ CGV의 ‘스크린X’가 있다.
스크린X는 상영관에서 화면 정면을 넘어 양쪽 벽면까지 3면을 스크린으로 확장한 형태의 다면 특화관이다. CGV는 2013년 스크린X를 론칭하고 38개국에서 350개관, 국내에서 50개관을 운영 중이다. 스크린X는 국내를 넘어 할리우드 거대 제작사가 주목하는 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스크린X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CJ 4D플렉스 스크린X 스튜디오 오윤동 팀장에게 들어봤다.
- 스크린X 팀장으로서 현재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나요?
“저희 팀은 크게 두 가지의 콘텐츠 제작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 제작 완료된 영화의 사이드 윙(양 옆) 화면을 VFX(시각특수효과)기술로 신규 제작하는 업무이고요. 두 번째는 저희 플랫폼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직접 기획, 제작하는 업무입니다.”
- CGV는 모션체어와 특수 환경 장비를 사용한 실감형 상영관 4DX를 비롯해 스크린X 등 기술 특화관 개발을 꾸준히 지속해 왔죠. 스크린X의 론칭 배경은?
“오직 극장에서만 줄 수 있는 차별화된 경험, 새로운 기술을 콘텐츠에 접목해 관객에게 기존에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관람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 흥행작 탑건2는 ‘톰 크루즈도 만족한 스크린X’로도 유명세를 탔는데요. 그간 스크린X로 선보인 대표작들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저희가 본격적으로 영화의 스크린X 버전을 만들기 시작했던 것은 2015년 ‘히말라야’를 제작하면서부터인데요. 그로부터 정말 제작에 대한 많은 고민과 여러 난관들을 거쳤습니다. 수많은 필름 메이커들과 이 산업의 여러 투자, 배급사들과의 긴밀한 협의, 설득의 과정을 통해 지난해 탑건2와 아바타2의 스크린X 버전 성과를 만들어내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지난해 이전에 대중에게 스크린X가 제일 처음 각인됐던 작품은 ‘보헤미안 랩소디’였는데요, 특히 관객이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는 ‘싱어롱’을 즐기며 스크린X 상영관만의 특화된 현장감과 몰입감까지 느낄 수 있었던 장이었습니다. ‘마치 그 시대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직접 당대 퀸의 공연을 즐기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는 피드백들을 들으며 제작자로서 참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 스크린X에 대해 ‘단순히 원본 영상을 늘린 거 아냐?’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구체적인 제작 과정이 궁금합니다.
“많은 대중이 스크린X 제작에 있어서 크게 두 가지의 오해를 하더라고요. 첫 번째는 ‘스크린X는 단순히 중앙 화면을 키워서 늘리는 것 아니냐?’이고, 두 번째는 ‘본편의 제작사가 직접 스크린X의 사이드 윙 영상을 만드는 것 아니야?’입니다.
결론은 둘 다 잘못된 정보고요. 정확히는 본편에 사용한 에셋(Assets, 본편 영화나 VFX에 사용된 재료)을 제작사를 통해 전달받아 직접 저희 VFX기술을 활용해 제작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① 콘텐츠 소싱(수급) ② 스크린X 장면 기획, 제안 ③ 필요 에셋 수급 ④ VFX 제작 ⑤ 제작사 및 배급사 검수 과정을 통해 한편의 스크린X 버전의 영화를 관객에게 선보인다고 보면 됩니다. 저희는 위 과정을 대략 8주 정도의 일정 내에 수행하고 있습니다.”
- 탑건2와 아바타2, 샤잠2 등 화제작들을 모두 스크린X로 선보였습니다. 최근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가수 임영웅의 전국 투어 앵콜 공연 ‘아임 히어로’ 등 공연, 콘서트에도 스크린X를 많이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스크린X로 선보일 작품을 선택할 때 특별한 기준이 있나요?
“관객에게 차별화된 경험을 줄 수 있는 콘텐츠인가를 제일 우선시 합니다. 스크린X가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주된 경험은 ‘몰입감’과 ‘현장감’입니다. 특히 광활한 경관, 빠른 속도감, 무중력, 전쟁, 액션 등 블록버스터 영화의 웅장하고 화려한 장면에서 스크린X의 효과가 더 빛을 발합니다.
공연물의 콘텐츠를 저희가 직접 기획, 제작, 연출하는 이유도 관객에게 일반 상영관에서는 느끼기 힘든 몰입감과 체험감을 주는 데에 공연물이 최적화 돼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공연장 안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피드백을 매 스크린X 버전 공연영화 콘텐츠마다 받고 있습니다.”
- 올해엔 또, 어떤 스크린X 작품들이 예정돼 있나요?
“샤잠2에 이어 당장 ‘던전 앤 드래곤’이 있고요. 4월엔 공연영화로 ‘콜드플레이 뮤직 오브 더 스피어스-라이브 앳 리버 플레이트’를 선보이는데, 스크린X 버전으로 굉장히 잘 나왔습니다. 밴드 콜드플레이의 공연 실황을 담은 영화로, 직접 공연장에서 콜드플레이의 여러 명반을 즐기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 외 하반기 많은 블록버스터 영화의 스크린X 버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과거와 비교해 스크린X 기술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어떤 노하우가 생겼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엔 완성된 영화를 가지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VFX 업체를 전부 찾아가서 ‘이 영화의 양쪽 사이드 영상을 CG로 제작해달라’고 했더니 모두 손사래를 치더라고요. 사실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VFX 작업이었으니까요.
스파이더맨이 도심을 가로지르고, 앤트맨이 커져서 악당들과 싸우고, 온갖 용이 화면 가득 튀어 나오는 영화들은 어마어마한 자본과 시간을 거쳐 탄생한 장면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와 유사한 퀄리티로, 사이드 영상에 본편과 동일하게 화면을 연장해달라고 하니 기가 막혔던 거죠. 불과 7년 전엔 이 요구에 ‘불가능한 미션’이라고 모든 VFX 관계자가 입을 모았습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들도 믿지 못했고요.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저희에게 물음표를 보내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지난해 아바타2를 스크린X로 제작하고 나서 속으로 ‘그래,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2까지 우리가 이 기간에 스크린X로 제작했다면 앞으로 더 이상 못 만들 영화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전 세계에서 스크린X VFX를 할 수 있고, 또 하고 있는 곳은 유일하게 한국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한국에서 개발한 기술이기 때문이지만, 돌이켜보면 영화시장이 발전한 다른 나라의 VFX시장의 논리로는 도달할 수 없는 정말 정밀하면서 한편으로는 많은 노동과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라는 점도 큰 축을 차지합니다.
한국인 특유의 꼼꼼함, 쟁취하고자 하는 도전정신, 새로운 기술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훌륭한 CG아티스트와 슈퍼바이저가 있었기 때문에 현재까지 올 수 있었다고 봅니다. 이미 국내에서는 작지만 스크린X VFX 시장이 형성돼 있고요. 물론 저희 회사 내부에서도 이미 약 30명에 가까운 스크린X VFX 전문팀을 갖추고 있습니다.”
- 과거와 비교해 사람들의 스크린X 이용이 높아진 걸 체감하나요?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을 추구하는 ‘가심비’를 중요시 여기는 소비문화에 걸맞게 특화관에 대한 소비가 많이 늘었습니다.”
- 2021년 선보였던 영화 ‘귀문’의 경우 작품이 제작된 뒤 스크린X 작업을 진행한 것이 아니라, 기획 단계부터 특화관 상영을 고려하며 촬영한 대표적인 예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런 사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나요?
“올해 이미 개봉한 ‘방탄소년단: 옛 투 컴 인 시네마’,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 등의 콘텐츠는 이미 귀문처럼 저희가 직접 기획, 제작, 촬영해 만든 작품입니다. 지난해에만 약 5편의 콘텐츠를 저희가 기획, 제작했고요, 올해 상기 2편을 제외하고도 다양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현재 제작하고 있습니다.”
- 롯데시네마는 첨단기술을 응집한 스페셜관 ‘수퍼플렉스’, 메가박스는 모든 좌석에 일관된 시청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설계한 ‘돌비시네마’ 등 저마다 특화관을 내세우고 있죠. 스크린X가 이와 비교해 차별화되는 점은 무엇인가요?
“TV를 판매하는 가전사의 다양한 마케팅 포인트 중 최근엔 ‘영상 화질이 4K냐, 8K냐’가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걸로 보이는데요. 4K든, 8K든 상영되는 원본 콘텐츠의 화질이 결국 FHD(2K)면 사실 체험할 수 있는 시각적 경험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더라고요. 결국 좋은 하드웨어는 좋은 소프트웨어가 있어야 빛을 발하는 거죠.
그 관점에서 스크린X와 일반 상영관의 차이는 2K와 4K 정도의 차이가 아닌, 예전 아날로그 송출 방식의 4:3 비율의 화면이 디지털로 전환되며 16:9의 사이즈로 변화된 것과 유사한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패러다임이 바뀐 거죠.
더 많은 정보를 통해 상영관 전체가 스크린으로 덮여 관객에게 일반 영화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차별화된 몰입감을 제공하는 것 즉,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아닌 ‘체험’하게 하는 것이 저희가 관객에게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경험입니다.”
-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할 당시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가 인기를 끌면서 ‘영화관에 위기가 왔다’는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관련해 ‘영화관의 미래는 기술 특별관에 있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코로나19 시기, 특히 가정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OTT 시장이 커지면서 ‘극장의 위기’라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현업에서 특히 콘텐츠를 제작하는 입장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고요.
결국 ‘극장에서 봐야 되는 콘텐츠는 무엇인가?’라는 고민과 같이 지나온 것 같네요. 여기서 저는 ‘공감’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했습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는 단순히 콘텐츠를 감상하는 데에만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극장으로 오는 과정부터 ‘극장에서 누구와 영화를 보는가?’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서 그 감정을 어떻게 향유하는가?’까지 다 집약돼 있다고 봅니다.
즉, 누군가에게 던진 ‘영화 보러 갈래?’ 한 마디엔 여러 의미가 함축돼 있는 거죠. 그런 관점에서 ‘사람들은 결국 영화를 보러 극장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여전히 있습니다. 실제 코로나19 이후 영화시장도 회복되는 추세고요. 다만, 한국 극장 산업에서 비교해 본다면 코로나19 이전만큼 ‘언제’, ‘어떻게’ 회복될 것인가를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특히 저는 ‘어떻게’에 있어서 특화관이 주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봅니다.
아무래도 OTT 콘텐츠에 익숙해진 관객이 굳이 본인의 시간과 비용을 사용할 땐 가심비를 따지게 됩니다. 그 관점에서는 작은 모바일과 가정에서는 절대 즐길 수 없는 특화관 형태로 상영이 집중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아바타2만 보더라도 절반이상의 관객이 특화관으로 영화를 소비했다는 것이 그 방증입니다.
스크린X 특화관은 전 세계에서 어떤 유사한 플랫폼도 없는 오직 스크린X만이 가진 차별화된 상영관입니다. 그 관점에서 많은 필름 메이커들과 산업의 투자, 배급사들이 향후엔 오직 스크린X를 위한, 또 스크린X에 의한 콘텐츠들을 지속적으로 기획, 제작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저 역시 그리 되도록 양질의 콘텐츠를 꾸준히 기획, 제작해서 관객에게 선보일 예정입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