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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와인협회 신임회장 김순중 "와인사업으로 이룬 공, 와인산업 위해 쓸 것"

신세계白, 동화면세점 거치며 와인에 정통… 수입사 이끌며 주류수입협회 회장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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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46호 김응구⁄ 2023.04.20 14:48:16

김순중 회장은 지난 1월 26일 한국와인협회의 새로운 수장이 됐다. 현재 임원 구성과 조직 정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김응구 기자

올해를 시작하며 한국와인협회(KWA)의 수장(首長)이 새로 바뀌었다. 1월 26일 오후 서울 광진구의 한 와인 레스토랑에선 협회장 이·취임식이 열렸다. 이날 전임 김준철 회장은 신임 김순중 회장에게 협회 현판을 건네주었다.

대한민국 와인업계를 대변하는 한국와인협회는 2005년 창립했다. 이후 2006년 1월 1일 정식 출범했고, 서한정 초대 회장에 이어 김준철 전임회장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다섯 차례나 연임하며 협회를 이끌었다. 이제 김순중 신임회장은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인 협회를 새롭게 꾸리고 이끌 채비를 하고 있다.

김순중 신임회장은 대한민국의 수입와인 역사와 늘 함께해왔고, 그런 만큼 대내외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스무 해 가까이 이어온 협회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기도 했다. 전임회장들이 어렵게 쌓아온 성(城)을 조금도 망가뜨리지 않고 어떻게 하면 굳건히 더 쌓아 올릴 수 있을지 그는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 회장직 인수인계는 어느 정도 하셨나요? 이·취임식 후 석 달이 지났어도 여전히 바빠 보입니다.
“아직은 정신없어요. 업무 파악도 더 해야 하고요. 시간이 조금 필요할 듯 보입니다. 우선, 임원 구성을 새로 해야 하고 조직 보강도 좀 해야 하죠. 할 게 많은데 막 서두르진 않으려고요. 그래도 김준철 회장님이 여태 잘 이끌어오셨으니 제가 어떻게든 힘이 돼서 올해부터는 한껏 도약하는 협회로 만들어야죠. 단단히 각오하고 있습니다.”

- 와인이나 위스키 등 수입주류 업계에서 현직으로 오래 계셨어요. 특히, 와인과의 인연은 꽤 깊죠. 그래서 해야 할 일이 더 많이 보일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 와인시장은 크게 세 부문으로 나눌 수 있어요. 생산·제조시장, 공급시장, 소비시장이죠. 와인 생산국가는 대개 북위 30~50도, 남위 20~40도에 걸쳐져 있어요. 그 외 지역은 극한지대나 열대지방으로 포도재배와 와인 생산이 어렵죠. 지오그래픽 컨디션(geographic condition·지형여건)이 웬만큼 갖춰진 나라임에도 와인 생산이 어려운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봐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웬만한 나라는 와인을 다 생산해요. 하다못해 중국이나 일본도 와인이 잘 되고 가짓수가 많아요. 우린 ‘3050클럽’, 그러니까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인구 5000만 명 이상인 국가에 일곱 번째로 진입한 나라임에도 와인이 쉽지 않죠. 무엇보다 테루아(terroir) 조건이 취약하다 보니 그래요.”

- 듣기로는 우리도 와인 생산·제조 역사가 짧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기후나 토양 등 테루아의 벽을 넘지는 못하는군요.
“한국에는 일본의 와인 생산·제조기술이 왜정시대(일제강점기) 때 도입됐어요. 명맥을 계속 유지했었죠. 그때 생긴 경북 포항의 미쯔와포도원(三輪葡萄園)이 잘 알려졌고요. 해방 이후에는 두산, 동아제약, 해태 등 대기업들이 와인산업에 뛰어들었어요. 그러다 또 끊겼지만요. 1960년대는 보릿고개를 겪던 시절인데 무슨 와인까지 만들어 마셨겠어요. 이후 한국은 와인을 사서 마시는 나라가 돼버렸죠. 거꾸로 구대륙(프랑스·이탈리아 등)이나 신대륙(미국·호주 등) 나라들은 한국을 황금시장으로 보고 뛰어들기 시작했어요. 현재 충북 영동, 경북 영천, 전북 무주 등에 와이너리가 있고, 모두 한국 와인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아직 국제경쟁력을 갖출 정도의 수준에는 못 미치는 게 사실입니다. 새로운 길을 계속 모색해야 해요. 그 같은 일에 와인협회도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제 목소리를 내고 그래야죠.”

- 아까 공급시장을 말씀하셨는데, 이에 대한 문제점도 적지 않죠?
“사실, 가장 시급한 게 공급시장과 소비시장을 건전화시키고 정상화를 이뤄내는 일입니다. 공급시장은 와인을 수입하거나 이를 유통하는 걸 말하잖아요. 이들이 결국에는 와인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거니까, 뭔가 제대로 소비하고 골고루 발전하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해요. 제품을 독식한다거나 브랜드 헌팅을 하고 사람을 교묘히 스카우트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그렇다고 자본주의국가, 자유경쟁 체제에서 무조건 그렇게 해선 안 된다고 말할 순 없어요. 앞서 말했듯이 골고루 발전하는 방향이 무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함께 소통하면서 서서히 바꿔나가야죠. 그러기 위해 협회가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 앞으로 2년간 할 일이 무척 많고 또 성과도 내야겠지만, 재임 기간에 특별히 하고 싶거나 보여주고 싶은 일도 분명 있겠죠?
“올해 5월 23~25일 싱가포르에서 ‘아시아 비넥스포(Vinexpo)’가 열려요. 그다음 10월 6~7일에는 비넥스포지엄(Vinexposium) 기구가 서울 코엑스에서 B2B(기업 간 거래) 행사를 열고요. 그러고 나면 내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비넥스포가 열리고, 2025년에 드디어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입니다. 대개 6월에 열리는데 최근 들어 5월에도 하는 걸 봐선 서울 비넥스포는 5월일지 6월일지 정확하진 않아요. 마침 지난달 29일 서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에서 주한프랑스대사관 내 프로모살롱(Promosalons·프랑스의 주요 전시회 마케팅을 담당하는 조직) 관계자를 만나 이에 관한 얘기를 나눴어요.”

‘비넥스포’는 프랑스 파리에서 1981년 처음 시작한 유명 국제 와인박람회다. 이탈리아 ‘빈이탈리(Vinitaly)’, 독일 ‘프로바인(Prowein)’과 함께 세계 3대 와인박람회로 꼽힌다. 격년제로 열리며, 매 홀수 해에 프랑스에서 개최한다. 아시아는 1998년 홍콩에서 처음 열렸고, 이후 짝수 해마다 열리고 있다. 주류 제조·수입·유통·소매업체와 교육·연구 분야 주류전문가, 언론인 등만 입장하는 비즈니스 중심의 B2B 형태로 진행한다. 이 때문에 일반 관람객은 받지 않는다.

- 서울에서 비넥스포가 성공적으로 열리고 마무리되려면 와인협회 역시 적잖은 역할을 해야 할 것으로 보여요.
“박람회 혹은 전시회가 왜 중요하냐, 이걸 먼저 생각해보면 돼요. 이제 우리는 나무가 아닌 숲을 봐야 할 때이거든요. 와인산업 전체를 봐야지 당장 와인업계의 이익에만 몰두해선 안 돼요. 지금은 수출만 해서 먹고 사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수입도 많이 하고 고용도 많이 일으키고, 그래야 부수(附隨) 업무 효과도 발생하죠. 운송·보관·검사·포장·보험 등 물류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도 먹고살고, 교육·연구하는 사람도 먹고살고, 저널리스트도 먹고사는 그런 구조가 만들어져야 해요. 비넥스포 같은 유명 박람회에는 B2B가 많이 이뤄지고, 또 전 세계 주류시장의 현주소를 정확히 알 수 있죠. 그럼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그에 따라 무얼 해야 하는지 알게 돼요. 가능한 한 많이 보고 많이 느껴야 합니다.”

- 비넥스포의 경우 우리도 그간 유치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지 않았나요?
“제가 한국주류수입협회에서 대외업무담당 수석부회장으로 있을 때, 그러니까 2008년부터 아시아 비넥스포를 서울에 유치하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어요. 1998년 홍콩에서 최초로 아시아 비넥스포가 열렸죠. 이후 일본 도쿄에선 2000년과 2002년, 두 번 열렸거든요. 이 박람회를 꼭 유치하고 싶었어요. 우리도 그럴 때가 됐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비넥스포 관계자를 직접 만나 물어봤어요. 왜 한국은 안되느냐고. 그랬더니 아직 와인의 소비나 전시문화가 낙후돼 있어, 전시행사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해요. 국내에서 열린 와인전시회 때 미숙했던 여러 모습을 봤던 거죠. 하지만 이젠 달라요. 음주문화가 많이 바뀌었잖아요. 발전 가능성이 충분해요.”

김순중 신임회장은 직장생활을 할 때도, 개인사업을 할 때도 국내에 프랑스 와인과 이탈리아 와인을 집중적으로 들여왔다. 그 공을 인정받아 프랑스에선 와인 기사 작위를, 이탈리아에선 훈장을 각각 받았다. 사진=김응구 기자

- 꽤 오래전의 얘기겠지만, 처음 와인과의 연은 어떻게 맺어졌나요.
“처음 신세계백화점 기획실에서 5년을 근무했어요. 이후 롯데백화점의 창립 멤버로 잠깐 있었어요. 제가 입사할 때는 롯데백화점이 법인 설립 전이어서 호텔롯데 기획실에서 백화점 탄생의 산파 역할을 했었죠. 이후 1980년 4월에 해외근무를 마치고 경력증명서를 받으러 호텔롯데 인사과를 방문하니 제가 롯데백화점 입사번호 1번 사원이라더군요. 아무튼 롯데백화점은 1976년 3월 2일 입사했는데 그해 8월 14일 관뒀죠.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쌍용그룹 회장이 절 불렀어요. 영문도 모르고 갔죠. 사연을 들어보니 이래요. 그때 가봉 대통령이 방한했어요. 일정 중에 신세계백화점 방문이 있었나 봐요. 이후 가봉의 수도 리브르빌(Libreville)에 이것과 똑같은 백화점을 지어달라고 한 거예요. 처음엔 대우그룹에 맡길 계획이었나 보더라고요. 그런데 대우그룹은 당시 중공업 쪽 진출을 준비하고 있어서 백화점 건설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죠. 이후 쌍용 회장의 후배가 가봉 백화점 프로젝트만 들고 쌍용으로 들어갔어요. 실상은 프로젝트만 있고 이를 추진해야 할 사람은 없었던 거죠.”

- 그 적임자가 회장님이었나요?
“누가 해야 할지 마땅치 않으니 쌍용 회장이 ‘그럼 백화점 빠꼼이를 스카우트해와’ 하고 지시 내린 거죠. 당시만 해도 백화점 기획실에서 장기간 근무했던 사람은 찾기 쉽지 않았거든요. 저한테 제의하면서 월급이 얼마든 열 배를 주겠다고 해요. 그래서 ‘오케이’했죠. 나중에 보니 두 배밖에 안 오른 거예요. 왜 이것밖에 안 올랐냐고 물으니 가봉 현지에서 근무하면 열 배로 올려준다는 얘기였대요. 그래서 갔죠. 3년을 있었어요. 거기서의 별명이 영화 ‘아라비아 로렌스’에 빗댄 ‘코리아 로렌스’였어요.”(웃음)

- 그때가 대략 언제쯤 일인가요.
“가봉으로 갔을 때가 나이 서른이에요. 그땐 가봉뿐만 아니라 주변 아프리카 15개국에 생필품을 공급하기도 했죠. 또 있어요. 당시 가봉의 택시는 대부분 일본 차였는데, 현지 보스의 ‘엄명’을 받고 우리나라 차 ‘포니’를 수출하게도 했죠. 마켓셰어(시장점유율)를 7.5%까지 끌어올리고 들어왔어요. 결과적으론 그때 비즈니스에 눈을 많이 떴습니다. 단순히 업무뿐만 아니라 프랑스어 공부는 물론 폭 넓은 인간관계까지 정말 많이 배웠어요.”

- 그러고는 한국으로 돌아왔을 땐 어디로 가신 거죠?
“다시 백화점으로 돌아갔죠. 1980년부터 1989년까지 근무했어요. 그리고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옮긴 곳이 동화면세점이에요. 1989년 9월 28일이죠. 한 서너 달 있었나? 그룹 회장 지시로 자회사가 수입해놓고 못 판 와인이 다섯 컨테이너가 있는데 이것부터 처분하라고 해요. 그래서 그거 처리하고 다시 온다는 게 그냥 눌러앉은 거죠. 그래도 그 와인들을 석 달 만에 다 팔아치우고 유능한 임원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어요.”

- 와인 다섯 컨테이너 분량을 석 달 만에 다 팔았다고요?
“백화점 업계 마당발이어서 인맥으로 신세계·롯데백화점과 수퍼마켓, CVS(편의점) 등에 팔았어요. 회사 입장에선 앓던 이가 빠진 거죠. 그렇게 그룹에 소문이 나서 다시 면세점으로 컴백이 안됐어요. 그때만 해도 동화면세점 계열사로 동화주류하고 동화종합상사가 있었거든요. 동화주류는 ‘레미 마틴’과 일본 위스키 ‘산토리’, 그리고 와인을 취급했어요. 동화종합상사는 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 패션 브랜드 제품의 수입·판매가 주업무였죠. 저는 당시 프랑스어도 좀 할 줄 알아서 ‘루이비통’, ‘셀린’, ‘페라가모’, ‘샤넬’, ‘에르메스’, ‘구찌’ 등 명품 유치 업무도 맡았어요. 생각해보니 그때가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던 거예요. 아마도 동화면세점에 그대로 있었으면 다른 직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그 두 회사를 맡으면서 이사와 상무로만 10년을 보냈어요. 그러면서 회사를 엄청나게 키웠죠. 1995년에 한국이 와인 100만 케이스를 수입했을 때 그중 11만4000케이스를 제가 수입했었으니까요.”

- 개인 사업은 언제 시작했나요?
“잘 다녔던 동화면세점을 IMF사태 여파로 1998년 10월 31일에 그만뒀어요. 마침 동화면세점을 그만둘 때쯤 일본 산토리와의 인연이 끝났어요. 하지만 산토리 사장이 저와 연을 계속 맺을 수 있도록 배려해줬죠. 실적이 좋았으니까요. 그래서 1999년 1월 선보주류교역을 창업하고 계속해서 산토리와의 연을 이었습니다. 이후 2003년 말부터는 합작 형태로 발전했고, 20년간 회사를 운영하면서 매출을 스무 배 정도 키웠어요. 2015년 대비 2016년 200%, 2016년 대비 2017년 200%, 2017년 대비 2018년 200%씩 계속 성장시켰죠. 그만큼 산토리 제품매출도 엄청나게 끌어올렸어요. 요새 하이볼로 인기 좋은 ‘산토리 가쿠빈(角瓶)’은 제로 상태에서 3만 케이스까지 팔았어요. 츄하이(チュ-ハイ·과일탄산주) 제품인 ‘호로요이(ほろよい)’도 젊은 층에 인기가 좋아 제로 상태에서 25만 케이스까지 팔았고요.”

- 그에 못지않게 와인 판매 실적이 꽤 좋았나 봐요.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인정했을 정도였다면서요?
“처음부터 국내시장에 프랑스 와인과 이탈리아 와인을 중점적으로 공급했어요. 그랬더니 상도 주더라고요. 2000년 일본 도쿄 비넥스포에서 프랑스 메독(Médoc)과 그라브(Graves) 지역의 와인 기사 작위 ‘꼬망드리 뒤 봉땅드 메독 에 데 그라브(Commanderie Du Bontemps de Médoc et des Graves)’를 받았어요. 한국에 프랑스 와인을 널리 알렸다는 건데, 당시 국내에서 제가 프랑스 와인만 10만 케이스 정도 팔았죠. 국내 마켓셰어가 거의 11.5%였어요.”

- 이탈리아 역시 마찬가지였을 테고요.
“이탈리아 와인으로는 훈장을 받았죠. ‘스텔라 델라 솔리다리에타 이탈리아나(Cavaliere dell' Ordine della Stella della Solidarieta Italiana)’라고, 대통령이 수여하는 훈장이에요. 역시 마찬가지로 이탈리아를 해외에 알리는데 많은 공을 세운 재외 이탈리안이나 외국인에게 줘요. 이탈리아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5년간 해외시장 전체를 분석했더니 와인 성장률은 한국시장이 가장 높았다고 해요. 공을 세운 사람으로 제가 선택됐죠. 한남동 이탈리아대사관에 가서 훈장을 받았는데, 기분 좋아서 며칠 후 그날 자리했던 주한이탈리아 대사 등 대사관 모든 외교관에게 한턱냈죠.”

- 그때의 좋은 기억을 현재에도 이어야 할 텐데요. 업계의 기대도 클 테고요.
“확실히 어깨가 무겁죠. 현역은 떠났지만 어떤 식으로든 국내 와인업계, 더 나아가 주류업계에 도움 될 만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금까지 쭉 와인과 함께했으니까요. 때맞춰 김준철 원장님이 적극 권유했고, 주류수입협회 회장직을 오래 했던 경험이나 대내외적인 이미지를 고려한 끝에 또 다른 시작을 해보자고 결심하고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쉽진 않겠죠. 그래도 언제나처럼 방법을 모색하고, 또 찾으면서 적극적으로 추진할 겁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으니까요. 서두르진 않겠지만 제 소신을 믿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겁니다.”

- 마지막으로 국내 와인시장은 어떻게 전망하는지 궁금합니다.
“1987년이 출발점이라고 봤을 때, 1995년 처음 와인 붐이 일었고 1997년 말 IMF 때는 바닥을 쳤어요. 이후 2003년 와인 붐이 다시 일고 2004년 한·칠레 FTA(자유무역협정)가 시작되면서 와인 수입은 또 늘기 시작했죠. 2008년에는 리먼브러더스 사건 때문에 또다시 바닥을 쳤어요. 그러다가 2012년부터는 조금씩 계속 올랐죠. 이게 뭐냐면, 국내 와인시장은 성장기, 감소기, 회복기에 이어 다시 성장기와 성숙기를 반복한다는 거예요. 이대로 가면 성장하는 일만 남았어요. 그렇게 될 것으로 봐요.”

김순중 신임회장은 이제 20년 가까이 이어온 한국와인협회를 꽃 피우려 준비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그가 해야 할 일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사진=김응구 기자

김순중 회장은 사단법인 한국주류수입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2013년 3월부터 2018년 12월까지의 일이니 기간도 짧지 않다. 그가 여태 말했듯 사업 수완도 남달랐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잘 알았고, 이를 업무와 사업에 적극 활용했다.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 거다. 사업도 단체의 일도. 굵직한 성과를 냈으니 후회도 없다. 모두 후임에게 온전히 잘 넘기기도 했다. 이제 쉬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던 듯싶다. 허나, 제대로 숨을 고르기도 전에 다시 협회 일을 맡았다.

지난해 와인 수입 규모는 CIF 기준 5억8125만 달러, 9리터 케이스 기준 789만 케이스로 집계됐다. 오랜 기간 2억 달러 안팎에 머물다가 펜데믹 초반인 2020년 3억3007억 달러(600만 케이스)를 기록하며 처음 3억 달러를 넘은 데 이어, 2021년에는 5억5980억 달러(850만 케이스)로 처음 5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대로라면 올해는 6억 달러를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와인시장이 커지는 만큼 와인산업에 속한 단체는 해야 할 일이 늘어난다. 생산·제조 측면에서든 공급 측면에서든. 더구나 와인협회는 단체로서의 힘도 키워야 한다. 생각해보니 골치 아픈 일들이다. 그럼에도 꼭 해내야 하는 일들이다. 무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좋은 성과가 기대된다. 김순중 신임회장은 여태 그래왔듯, 모든 순간 최선을 다하며 최대한 노력할 것이다. 와인협회장이 신임이지 그의 와인 인생까지 신임은 아니니까 말이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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