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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현장] 이우환·알렉산더 칼더, 공간서 공명하는 에너지

국제갤러리, 동서양 두 거장 작품 아우르는 전시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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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46호 김금영⁄ 2023.04.20 09:10:47

알렉산더 칼더(왼쪽), 이우환의 작품이 전시된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국제갤러리에 동서양 두 거장의 전시가 나란히 열리고 있다. 알렉산더 칼더와 이우환이 주인공. 각각의 개인전으로 기획됐지만, 작품이 설치된 전시 공간들에 나름의 접점이 생기며 마치 칼더와 이우환이 공명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칼더가 움직이는 조각들로 멈춰있던 공간에 생동감을 부여한다면, 이우환은 사물을 움직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둠으로써 공간에 스며들게 하고,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무한히 형성한다.

공간 부유하며 춤추는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 작품이 전시장 천장에 설치돼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국제갤러리 2관 1층과 3관 공간엔 칼더의 작품이 전시됐다. 칼더가 방대한 양의 작품을 제작하며 왕성하게 활동한 시기인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작품들을 조망한다. 특히 그의 창시작인 ‘모빌(mobile, 움직이는 조각)’을 다양하게 아우른다. 칼더의 새로운 조각법을 모빌이라 명명한 건 마르셀 뒤샹이었다.

칼더의 모빌은 면적으로 봤을 땐 그 크기가 크지 않지만, 존재감이 공간을 꽉 채운다. 모빌이 설치된 곳은 전시장 바닥부터 천장까지, 제한을 받지 않는다. 금속 막대 또는 와이어에 얇은 금속 조각을 매달고, 이 조각이 공기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형태다. 초기엔 모빌에 모터가 달렸었지만, 이내 인위적인 움직임을 없애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모빌을 맡겼다. 예측할 수 없는 이 움직임은 모빌이 추는 하나의 춤이자 예술로 공간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은 금속 막대 또는 와이어에 얇은 금속 조각을 매달고, 이 조각이 공기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형태다. 사진=김금영 기자

모빌이 지닌 의외성도 눈길을 끈다. 모빌은 천천히 움직이다가 때로는 서로 부딪혀 거친 잡음을 내기도, 모빌 뒤쪽에 숨겨져 있던 색을 드러내기도, 회전에 따라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하는데, 이 모든 의외성은 칼더가 의도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무제’(1940), ‘그랜드 피아노, 레드’(1946) 등 금속판과 와이어 등으로 세밀하게 구성된 스탠딩 모빌이 있다. 칼더는 항상 현재 자각할 수 있는, 즉 직관적인 요소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는데, 이런 그의 관심들이 모빌에 투영돼 있다.

이처럼 전시는 칼더 작업에서 ‘제스처’와 ‘직관’이라는 요소가 어떤 방식으로 그 근간을 구축하는지 살펴본다. 또, 곡선 내지는 끊어진 선 등 가장 단순한 형태의 물리적 구현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임과 생동감에 대한 칼더의 비전을 뒷받침하는지 조명한다.

알렉산더 칼더 작업 초기엔 모빌에 모터가 달렸었지만, 이내 인위적인 움직임을 없애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모빌을 맡겼다. 사진=김금영 기자

더 나아가 칼더의 조각은 재료의 물성을 실험하고, 추상적 형태를 그리며 작품이 놓인 공간을 활성화함으로써 해당 공간과 소통한다. 국제갤러리 측은 “시적으로 가볍되 관념적으로는 묵직한 힘으로 근대적 이상으로서의 자유와 지성을 은유한다고 평가받아온 그의 작업은 오늘날에도 전 세계 관객들을 매료시킨다”고 설명했다.

칼더의 모빌은 과슈 작업들과도 공명한다. 이번 전시엔 잉크와 과슈로 작업한 회화도 여러 점 설치됐다. 칼더는 조각과 과슈 작업실을 따로 뒀다고 한다. 하지만 둘을 딱 잘라 경계 지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에너지를 많이 쏟는 조각 작업이 끝나면 과슈 작업실로 넘어가 에너지를 풀어냈다 한다. 조각과 과슈를 통해 칼더는 스스로 에너지의 순환과 조화를 이뤘다.

모빌과 과슈 작업이 함께 설치된 전시장. 사진=김금영 기자

칼더의 과슈 작품은 모빌작업의 개념을 암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컨대 악보를 연상시키는 일련의 검정색 선을 품은 ‘무제’(1963)는 조각 작업을 할 때 그를 스치는 발상들을 미술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나선형과 물결치는 듯한 형태의 구현은 역동적인 모빌의 움직임과 연계된다.

국제갤러리 측은 “칼더의 작품들은 마치 보컬과 각 악기들이 서로 호응하며 상호작용하듯이, 선창과 후창이 이어지는 악구의 반복처럼 일종의 음악적 대화를 만들어낸다”며 “특히 과슈 작품들은 마치 반주로 기능하면서 전시장의 다양한 작업들을 마주하는 관객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조각과 총체적으로 어우러져 공상적이고도 시적인, 풍성한 시각 경험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이우환, 개별적인 물성이 공간에 만드는 수많은 관계의 가능성

본격 전시장에 들어가기에 앞서 마당에 놓인 두꺼운 철판은 이우환이 1968년 이후 현재까지 꾸준히 작업해 온 '관계항(Relatum)' 연작이다. 사진=김금영 기자

오랜만에 국내 전시에 돌아온 이우환. 부산시립미술관의 ‘이우환 공간’ 설립(2015)을 제외하면 국내 관람객이 무려 12년 만에 맞는 개인전이다. 2009년 국제갤러리에서 열렸던 전시에서 조각 위주의 작품을 선보였던 그는 이번 전시에도 조각을 대거 들고 나왔다. 전시는 이우환의 1980년대 작품부터 근작까지 아우르는 조각 6점, 드로잉 4점을 1관, 2관 정원과 2층에 선보인다.

본격 전시장에 들어가기에 앞서 마당에 놓인 두꺼운 철판은 이우환이 1968년 이후 현재까지 꾸준히 작업해 온 ‘관계항(Relatum)’ 연작이다. 자칫 잘못하면 작품인줄 모르고 그냥 지나칠 정도로 외부 공간에 완벽히 스며들었다.

그는 자신의 조각에 관계항이라는 이름을 붙여왔는데, 부제는 거의 달지 않아 확실한 설명, 해석보다는 앞에 놓인 그대로를 스스로 바라보고 생각하기를 바라는 의도가 읽힌다. 관계항 또한 규정지어진 ‘관계’ 대신 관계를 맺는 주체를 뜻하는데, 결국 작품의 개별 요소들이 맥락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유동적 상황에 놓여있음을 암시한다. 이에 따라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무궁무진해진다.

1관에 설치된 신작 '관계항-키스'(2023)는 각각이 사람임을 암시하고 있는 두 개의 돌이 만나 접점을 만들었다. 사진=김금영 기자

특히 이우환은 자신과 타자,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장소가 작품이라 강조했다. 즉, 작품은 외부세계와 자신을 연결 짓는 매개로, 이를 통해 자아와 타자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 예컨대 이우환은 자연을 상징하는 돌, 그리고 산업 사회를 대표하는 강철판을 한 공간에 뒀는데, 관계항으로서 작품의 공간에 직접 개입하게 되는 관람객은, 동시에 두 사물의 대화에 참여한다고 느끼고, 자아와 타자의 공생을 생각하게 된다.

또, 이우환은 사물을 둘 때 여기에 변형을 가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가져왔다. 자연소재인 돌, 그리고 자연에서 왔지만 가공(추상화)된 철 모두 그가 손을 대지 않았다. 이질적으로 보이는 두 소재를 한 공간에 두면 팽팽한 긴장감이 발생할 수 있지만, 반면 둘 사이 다리를 놓을 수도 있음을 관계항을 통해 보여준다.

1관에 설치된 신작 ‘관계항-키스’(2023)는 각각이 사람임을 암시하고 있는 두 개의 돌이 만나 접점을 만들고, 각각의 돌을 둘러싼 두 개의 쇠사슬 또한 포개지면서 교집합의 양상을 만들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빈 캔버스와 돌이 마주보고 있는 '관계항-씸(Seem)'(2009) 작업. 사진=김금영 기자

2관 2층에 전시된 ‘관계항-사운드 실린더’(1996/2023)는 강철로 만든 속이 텅 빈 묵직한 원통과 그에 기대어 놓인 돌로 구성됐다. 원통엔 구명 5개가 뚫려 있는데 새, 비와 천둥, 개울이 흐르는 자연의 소리와 에밀레종의 종소리가 공명하듯 흘러나온다. 이우환은 물질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인공물과 자연석의 개별적인 물성 그대로를 공간에 함께 둠으로써 그들 간의 관계가 발생시키는 파장을 바라보게끔 한다.

빈 캔버스와 돌이 마주보고 있는 ‘관계항-씸(Seem)’(2009) 작업도 설치됐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흰 캔버스 앞에 자리 잡고 침묵을 지키고 있는 돌. 공간은 고요하지만, 캔버스와 돌 사이 대화가 흘러나오는 듯하다.

1관의 안쪽 전시장 한켠에 자리한 '대화'라는 제목의 드로잉 4점은 이우환의 유명한 회화 연작 '대화'를 연상시킨다. 사진=김금영 기자 

조각뿐 아니라 드로잉도 설치된다. 1관의 안쪽 전시장 한켠에 자리한 ‘대화’라는 제목의 드로잉 4점은 이우환의 유명한 회화 연작 ‘대화’를 연상시킨다. 정신과 호흡을 극도로 통제하고 찍어 내린 커다란 점과 자연물을 묘사하는 듯한 제한된 수의 선으로 구성됐는데, 관계항 조각 앞에 섰을 때와 마찬가지로 의도적인 여백과 긴장감이 공존하는 구성 앞에서 관람객은 명상에 잠기게 된다.

국제갤러리 측은 “작품 하나하나가 ‘무한’을 표현하고 있는 메타포인 만큼,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이 하나의 거대 서사이자 이론 그 자체인 이우환의 작품세계를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국제갤러리에서 5월 28일까지.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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