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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in] 간질거리는 봄엔 미술관 나들이

우리 동네 미술관은 어디?… 성북구립미술관, 강서 겸재정선미술관, 종로 박노수미술관 등 365일 내내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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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48호 김응구⁄ 2023.05.08 15:08:45

서울에는 생각보다 많은 구립미술관이 있다. 봄바람이 다 가기 전에 얼른 다녀오면 좋겠다. 사진은 겸재정선미술관의 ‘총석정도(叢石亭圖)’ 모습. 북한 지역인 강원도 통천군에서 동해변을 따라 동북쪽으로 7㎞쯤 올라가면 현무암으로 이뤄진 총석정이 나온다. 오랜 풍화작용으로 6~8각형의 기이한 돌기둥 모습을 띠고 있는데, 겸재 정선이 이를 18세기에 그렸다. 사진=김응구 기자

몰라서 못 가면 모를까, 아는 데도 안 가는 건 몹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동네 미술관’ 얘기다.

신문 문화면에는 이틀 삼일이 멀다 하고 미술 기사가 눈에 띈다. 요새 들어 젊은 층의 관심이 높으니 자연 지면 할애가 많아졌다.

세월이 좋아진 건지 아니면 살기 좋아진 건지, 문화예술을 누릴 기회가 무척 많아졌다. 그중 미술 전시회는 규모가 다양하고 그 수도 적지 않다. 어느덧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왔다는 증거다. 전시 수준도 기대 이상이다. 보는 이의 눈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자치구들은 앞다퉈 양질의 전시회를 개최하고자 정보 모으기에 한창이다. 지역주민으로선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봄바람 일렁이는 요맘때, 우리 집과 가까운 미술관을 찾아가 보자. 의미 있는 발걸음이 될 구립(區立)미술관 세 곳을 소개한다.

성북구립미술관은 서울시 자치구 최초로 2009년 세워졌다. 사진=김응구 기자

성북구립미술관서 만나는 윤중식·박수근·이중섭

한양도성(城)의 북(北)쪽인 성북동은 볼거리 참 많은 동네다. 마을 자체가 느릿느릿하니 내 발걸음도 느려진다. 그만큼 볼 것도 많다. 꽃 한 송이, 곤충 한 마리도 쉽게 눈에 들어온다. 성북동은 자연, 유적, 문화재, 오래된 가게, 미술관 등이 많아 ‘지붕 없는 박물관 마을’이라고도 부른다.

돈가스 팬이라면 ‘금왕돈까스’를 모를 리 없다. 그 바로 뒤에 성북구립미술관이 있다. 등지고 오른쪽을 보면 전통한옥 찻집 ‘수연산방’도 보인다. 일제강점기 시절 소설가 상허 이태준(尙虛 李泰俊) 가옥이었다. 이태준은 이곳에서 소설 ‘달밤’을 썼다. 그러고 보니 100걸음도 채 안 되는 거리에서 밥 먹고 차 마시며 미술 전시회까지 볼 수 있다. 더없이 행복하다.

성북구립미술관은 서울시 자치구 최초의 구립미술관이다. 2009년 세워졌다. 이곳은 한국의 근현대 문화예술계를 이끌어온 예술가들의 기획전시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2020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공립미술관 평가인증에서 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언젠가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관내 학생들, 특히 수능 수험생과 그 가족에게 성북동의 스트레스 해소·치유 장소를 소개하며 ‘심우장’, ‘한양도성’, ‘선잠박물관’, ‘한국가구박물관’, ‘우리옛돌박물관’ 등과 함께 성북구립미술관을 추천하기도 했다.

지난달 27일부터 윤중식·박수근·이중섭 작가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화가의 벗: 시대공감’ 전이 열리고 있다. 사진=김응구 기자

이곳은 4월 27일부터 ‘화가의 벗: 시대공감’ 전을 열고 있다.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고 빼놓아서도 안 되는 3인, 윤중식·박수근·이중섭 작가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6월 30일까지. 지난해 3월 윤중식 작가 유족이 성북구립미술관에 기증한 윤중식 컬렉션 500점을 선보인 ‘회향(懷鄕)’ 전(3월 30일~7월 3일)에 이은 두 번째 기획전이다.

이번 전시에선 동시대 화가이자 친구였던 윤중식·박수근·이중섭이 작품 초기에 서양화를 받아들이며 시도했던 다양한 조형적 실험들을 볼 수 있다. 아울러 일제강점기 시절과 해방, 6·25전쟁 등 격동과 변화의 근현대사 속에서 그들이 공유했던 시대의 감성과 화풍(畫風), 그리고 예술적 동지로서의 교류 관계도 살필 수 있다. 전시회 이름과 딱 들어맞는 기획이다.

세 작가의 주요 작품과 자료 100여 점이 전시돼 있는데, 별도로 마련한 ‘은지화의 방’이 특히 볼 만하다. 최초로 공개한 윤중식의 은지화 두 점과 이중섭의 은지화 석 점, 박수근의 은지화 한 점(영인본), 그리고 평양·부산 피난 시절과 월남 이후 서울 시절에 세 작가와 깊은 인연을 맺었던 최영림의 은지화·금지화 석 점까지 총 아홉 점을 준비했다. 은지화는 이중섭이 창안한 기법이다. 양담배를 싼 은박 종이에 뾰족한 도구로 드로잉한 그림이다. 은박 위를 긁으면 긁힌 부분은 미세한 음각(陰刻)이 되는데, 그 위에 물감을 바르고 닦으면 파인 부분이 물감으로 메워지면서 독특한 느낌으로 완성된다.

성북구립미술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격동과 변화로 점철된 한국 근현대사를 살면서 공유했던 시대적 감성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이룬 화가들의 열정과 순수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북구립미술관에는 동시대 화가이자 친구였던 윤중식·박수근·이중섭의 주요 작품과 자료 1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사진=김응구 기자

작품 감상에 도움 될까, 작가들도 간략히 소개한다. 먼저, 평안남도 평원 출생인 이중섭(李仲燮·1916~1956)은 어려서부터 그림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다. 평양 공립종로보통학교와 오산학교 졸업 후 일본 유학길에 올라 1936년 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1년 후에는 도쿄문화학원으로 옮겼고, 그곳에서 만난 후배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1921∼2022)와 1945년 결혼했다. 6·25전쟁 때 월남해 부산, 제주, 통영 등을 전전했다. 부산 피난 시절엔 박고석, 한묵, 이봉상과 함께 만든 서양화 단체 ‘기조전(基潮展)’과 ‘신사실파(新事實派)’에 참여했고, 그러는 중 통영·서울·대구에서 개인전도 열었다. 1955년 12월 말부터 1956년 6월 말경에는 박고석·한묵 등과 함께 성북구 정릉에 거주하면서 삽화와 소묘를 포함한 유화를 그렸다. 1956년 서대문 서울적십자병원에서 이중섭이 사망하자, 장례를 치른 박고석과 동료 화가들은 이중섭의 뼛가루 일부를 정릉 청수골 계곡에 뿌렸다.

박수근(朴壽根·1916~1965)은 강원도 양구 출생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했다.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수채화 ‘봄이 오다’로 입선했으며, 이후 본격적으로 화가의 삶을 시작했다. 6·25전쟁 중인 1952년 서울로 올라와 창신동, 전농동 등에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사후에는 부인 김복순과 장남 박성남의 노력으로 해외에 반출된 작품들을 다시 국내로 들여왔다. 2002년에는 고향인 양구군에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이 세워졌다.

평남 평양 출생의 윤중식(尹仲植·1913~2012)은 1935년 숭실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 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하며 본격적인 예술 세계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6·25전쟁 때 월남해 부산·대구 등에서 피난 생활을 하다가 휴전하자마자 서울로 상경했다. 1953년 ‘가을풍경’으로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특선을 수상했고, 1956년 ‘교회와 비둘기’로 제8회 한국미협전에서 문교부 장관상을 받았다. 2010년 성북구립미술관 개관전을 비롯해 여러 기획전시에 참여했으며, 2012년 국내 화가 첫 상수(上壽·100세) 전이자 자신의 마지막 개인전인 ‘윤중식’ 전을 열었다. 1963년부터 2012년 작고할 때까지 성북동에 거주했다.

성북구립미술관은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지선버스 1111번이나 2112번을 타고 성북구립미술관(쌍다리) 정류장에서 내리는 방법이 가장 빠르고 편하다. 근처에서 배고픔을 채우고, 다시 한성대역까지 걸어가면 아름답게 오래된 성북동과 성북구를 기분 좋게 느낄 수 있다. 서울 성북구 성북로 134.

겸재정선미술관은 강서구가 2009년 4월 정선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고 진경 문화를 계승·발전시키고자 개관했다. 사진=김응구 기자

진경산수화가 눈에 담기는 겸재정선미술관

봄이 되니 서울식물원은 더욱 바빠졌다. 주말이면 방문객으로 넘쳐난다. 그곳에서 걸어 5분쯤 가면 겸재정선미술관이 보인다. 말 그대로 겸재 정선(謙齋 鄭敾·1676~1759)을 위한 미술관이다. 강서구가 2009년 4월 정선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고 진경(眞景) 문화를 계승·발전시키고자 개관했다. 지금의 장소는 조선시대 양천현아지(陽川縣衙址) 인근이다. ‘현아’는 지금으로 치면 구청이다.

정선은 샛별처럼 빛난 위대한 화가였다. 우리나라 회화 역사상 신라 솔거(率居), 고려 이녕(李寧), 조선 초 안견(安堅)과 더불어 4대 화가로 꼽힌다. 특히, 조선 후기 산수화를 대표하며, 초기 안견과 함께 양대가(兩大家)로 병칭(竝稱)된다.

정선은 쇠락한 사대부 가문 출신이지만 조선은 물론 중국에까지 이름을 널리 알렸다. 산수, 인물, 화훼초충(花卉草蟲), 영모(翎毛) 등 다양한 주제의 그림을 그리며 조선 후기 화단을 선도했다. 특히 금강산과 관동팔경, 영남과 충청도, 한양과 한강을 대상으로 한 진경산수화는 새롭고 독창적인 화풍으로 평가받으며 많은 화가에게 영향을 주었다.

겸재 정선의 작품 중 우리나라에 실재하는 명산승경을 화폭에 담아 그린 ‘진경산수화’가 최고로 꼽힌다. 사진=김응구 기자

정선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건 자연을 대상으로 한 산수화다. 그중 상상해서 그리는 사의(寫意)·관념(觀念) 산수화보다 우리나라에 실재하는 명산승경(名山勝景)을 화폭에 담아 그린 ‘진경(眞景)산수화’가 최고로 꼽힌다. 국보인 ‘금강전도(金剛全圖)’와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는 현재 리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1740~1745년 양천현령(陽川縣令·지금의 강서구청장)으로 있으면서는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 ‘양천팔경첩(陽川八景帖)’ 등 불멸의 걸작을 남겼다. 1759년 84세를 일기로 평생의 화업(畫業)을 마감했다. 현재의 도봉구 쌍문동에 안장했지만, 묘소는 지금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

미술관은 1~3층으로 돼 있다. 1층은 대관용인 기획전시실 두 곳이 있다. 3층은 양천현아 모형도, 카페테리아, 포토존으로 꾸몄다. 겸재 정선의 작품은 2층에 모두 모여있다. 겸재정선기념실과 원화전시실로 나눴다.

먼저, 겸재정선기념실은 정선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시기별로 정리해놨다. 미술관답게 제1폭, 제2폭, 이런 식으로 나눴다. 1폭은 ‘그림에서 일가를 이루다’, 2폭은 ‘그림의 새 지평을 열다: 진경산수화’, 3폭은 ‘사대부의 이상을 그리다: 한양진경산수화’, 4폭은 ‘완숙한 경지에 오르다: 양천과 한강 진경’, 5폭은 ‘마침내 이루다, 득의’로 구성했다. 이 공간에선 정선과 관련된 화가들 작품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겸재정선미술관 원화전시실에는 정선의 원화 12점과 이를 연구하는 데 도움 되는 관련 자료들을 전시해놨다. 사진=김응구 기자

원화전시실에는 정선의 원화(原畫)와 이를 연구하는 데 도움 되는 관련 자료들을 전시해놨다. 현재 소장 중인 원화는 ‘귀거래’ 운무심이출수·무고송이반환·문정부이전로(18세기·견본담채·각 24.5×22.5㎝)를 비롯해 ‘동작진’(18세기·견본담채·21.8×32.3㎝), ‘망부석’(18세기·지본수묵·55.0×38.6㎝), ‘조어’(18세기·지본담채·21.1×27.7㎝), ‘청풍계’(18세기·견본담채·28.4×17.6㎝) 등 12점이다.

9호선 양천향교역 1번 출구로 나오면 어른 걸음으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5호선 발산역 3번 출구로 나와 강서06번 버스를 타고 겸재정선미술관입구에 내려도 된다. 하절기(3~10월)는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 동절기(11~2월)는 오후 5시까지다. 서울 강서구 양천로47길 36.

박노수미술관은 박노수 화백이 40년 가까이 살았던 가옥이었다. 2013년 9월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으로 개관했다. 사진=김응구 기자

서울시 문화재자료 1호 ‘박노수미술관’

종로에 갈 일이 있을 때 박노수미술관을 들르면 참 좋겠다. 비교적 소규모여서 관람하는데 30분에서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이곳은 미술관 이전엔 박노수(朴魯壽·1927~2013) 화백이 1973년부터 2011년까지 40년 가까이 거주했던 가옥이다. 2013년 9월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으로 개관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해마다 기획전시가 열리고 정원음악회, 명사 초청 특강, 어린이 예술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박노수 가옥은 화신백화점과 보화각(지금의 간송미술관)을 설계한 박길룡 건축가가 1937년 지었다. 1층은 온돌과 마루, 2층은 마루방 구조로 돼 있고 벽난로 세 개가 있다. 조선 후기 문신이자 친일파인 윤덕영이 딸을 위해 지었는데, 광복 후 소유주가 수차례 바뀌었다. 1973년 박노수가 사들이면서 증축과 수리를 거쳤다. 1991년에는 역사적·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시 문화재자료 1호로 지정됐다. 2011년 11월, 박노수는 가옥을 포함한 500여 점의 작품과 490여 점의 고가구·고미술을 종로구에 기증했다. 허나, 그는 미술관이 개관하기 전 눈을 감았다.

박노수 화백은 작고하기 전 가옥을 포함한 500여 점의 작품과 490여 점의 고가구·고미술을 종로구에 기증했다. 사진=김응구 기자

박노수는 절제된 색채와 간결한 선묘(線描)로 한국화의 맥을 이으면서도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펼쳤다. 1955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작품 ‘선소운(仙簫韻)’으로 대통령상을 받았다. 이후 28년간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과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교수로 지냈다. 대한민국 미술계에 기여한 공로가 커 1995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도 받았다. 배우 이민정의 외할아버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배우 이병헌의 아내 그 이민정이 맞다.

인왕산 수성동계곡 가는 길에 있는데, 쉽게 가려면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 종로09번 마을버스를 타고 박노수미술관에서 내리면 된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5월엔 휴무일이 많으니 꼭 확인하고 갈 것. 서울 종로구 옥인1길 34.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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