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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시인의 그림 ⓷] 문학과 그림이란 두 허파로 살다 … 문학으로 자극, 그림으로 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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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이상면 편집위원(연극영화학 박사)⁄ 2023.05.15 16:48:09

몬타뇰라의 야외에서 그림 그리는 헤세. 1927년경. (출처 = https://de.hessemontagnola.ch/maler)

헤르만 헤세의 그림에 대해 연재하면서 필자는 지난 번(제2회) 기사에서 ‘헤세는 어떻게 그림을 그리게 되었나?’에 대해 썼다. 여기서 헤세가 1910년대 중반(37~39세) 정신적 고통을 심하게 겪을 때 치유를 위해 루체른의 의사 랑(J. B. Lang) 박사의 권유로 1916~17년 꿈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것은 미술 치료(art therapy)의 일환으로 환자가 생각나는 대로 꿈을 그려보며 스스로 무의식 세계에서의 문제와 상처를 알아내고 치유해가는 방법이다.

그런데, 여기에 의문이 남는다. 의사가 “그림을 그려보라”고 한다 해도, 실제로 누구나 그림을 제대로 그리기는 쉽지 않고, 또 쾌유된 후에는 그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 헤세가 치료 이후 많은 그림들(펜화ㆍ수채화)을 지속적으로 그렸고, 또 이 그림들이 오늘날에도 독일과 한국-일본 등지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인지 여전히 궁금하다.

실제로, 헤세는 1910년대 초반 청년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1950년대 노년 시기까지 계속 그리며 많은 양의 그림을 남겼으니(3000점 이상), 랑 박사의 미술 치료는 헤세의 잠재능력을 일깨운 촉매제였던 것 같다. 그러면, 이번 회에서는 헤세가 그림을 그린 이유와 그렇게 그릴 수 있는 능력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헤세와 화가들

사실 헤세는 정신 치료 이전에 이미 그의 나이 20대 초반(1900년대 초) 때부터 미술에 관심을 갖고 공부했으며, 화가들과 교류했다. 또한, 그후 헤세는 화가들뿐만 아니라, 당대의 일러스트 작가, 사진작가, 조각가, 건축가, 음악가들과 어울려 지냈으니, 실로 폭넓은 예술적 감성을 지니고 예술가들과의 교류 폭이 상당히 넓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교류는 헤세가 젊은 시절(22세) 1899년 스위스 바젤로 이사할 때부터 시작되었고, 작가로서 인정받게 되며 1904년 남부 독일 가이엔호펜의 주택으로 이사 간 후 더욱 확대되었다. 그는 특히 화가들과 자주 교류했는데, 1912년 이후 스위스 베른과 1919년 이후 몬타뇰라에 거주하면서 화가들과 교류가 잦았다.

이처럼 헤세는 일생동안 독일과 스위스 출신의 화가들과 서로 왕래하며 가깝게 지내며 ‘그림 그리는 작가’로 살았다. 사실, 스위스에는 바젤, 베른, 취리히를 포함해 독일어 사용 지역이 많아서(약 65%) 헤세는 스위스 화가들과 아무런 지장 없이 소통하며 교류할 수 있었다. 더구나 1933년 히틀러 집권 뒤 독일의 많은 예술가들이 스위스로 피신해, 스위스는 제2차대전 종전 전까지 한동안 망명 예술가들의 집결지가 되었고, 예술적으로 풍부해졌던 배경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헤세는 화가들로부터 그림을 배웠고, 집에 초대하여 식사하며 토론했고, 같이 산책하고 여행을 갔으며, 화가의 집을 넘겨받아 거주하기도 했다. 이렇게 헤세는 화가들과 아주 가깝게 지내며 회화에 대해 배울 기회가 많았다. 또 화가들은 그의 초상화를 그려줬고 사진작가들은 사진을 남겼다. 헤세의 초상화와 사진, 일러스트가 많은 것도 이들 덕분이다.

더구나 헤세가 만난 화가들은 당시 독일과 스위스에서 상당히 이름있는 화가들이었다. 그래서 헤세는 그들과의 대화와 작품 전시를 통해 20세기 초반 이후 현대 회화(모더니즘 미술)에 대한 생생한 지식과 경험을 섭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측면은 헤세의 그림들에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이것은 큰 행운이자 축복이었다.

헤세의 미술 공부와 이탈리아 여행

1899년, 즉 그의 나이 22세 때 헤세는 고향(칼브) 근처 튀빙겐의 서점 도제로 일했다. 뮌헨에 가서 당시의 보수적인 전통 화단에 반하여 혁신적인 주장을 하던 ‘뮌헨 분리파’(Munich Secession)의 전시회를 관람했고, 또 1901년에도 뮌헨의 여러 전시회를 관람했다. 그후에도 헤세는 전시 관람 등의 목적으로 인해 남독의 문화예술 중심지인 뮌헨을 자주 방문했다.

헤세는 스위스 바젤에 살던 시절, 즉 1900년대 전반에 스위스 화가 막스 부허러(Max Bucherer) 등의 아티스트들과 만나기 시작했다. 또 그는 이탈리아를 세 번이나 여행했으며 주된 목적은 미술 공부였다. 그는 1901년(24세) 처음으로 이탈리아 여행을 가서 피렌체, 피사, 볼로냐의 미술관을 둘러보았고, 2년 후(26세) 다시 피렌체와 베니스 등지를 들리며 독일 화가 에른스트 크라이돌프를 만나기도 했다.

헤세는 그후에도 이탈리아에 자주 갔는데, 1906년, 1913년, 1914년에는 아예 독일 화가 프리트 비트만(Fritz Widmann)과 함께 돌아다녔다. 이 무렵의 이탈리아 여행은 헤세에게 미술 공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연구 여행’(study tour)이었다. 비트만은 수채화를 그리는 화가였으니, 이탈리아 여행은 헤세가 미술을 한껏 배우고 접할 수 있는 아주 유익한 기회였다.

헤세가 그린 ‘프리츠 비트만’. 펜과 그라피트, 1919~20년.
(출처 = https://www.hermann-hesse.de/leben-und-werk/malerei/malerfreunde)

가이엔호프 시절: 1904~1912년

1904~1910년 사이에 헤세는 소설 ‘페터 카멘친트’, ‘수레바퀴 아래서’, ‘이 세상’, ‘이웃집’, ‘게르투르트’을 출간하며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1904년(27세)에는 미아와 결혼하면서 독일 남쪽이자 스위스 접경지대의 작은 마을 가이엔호펜의 주택으로 이사했고, 여기서 독일과 스위스의 여러 화가들과 적극 교류하기 시작했다.

가이엔호펜의 헤세 집. 1910년경. 당시 사진 엽서에서. (출처 = https://de.wikipedia.org/wiki/Hermann_Hesse)

이 시기, 1904~1905년에 헤세는 독일 예술가인 오토 블뤼멜(Otto Blümel), 칼 지크(Karl Sieck), 에른스트 뷔르텐베르거(Ernst Würtenberger)를 비롯하여 스위스 화가 알버트 벨티(Albert Welti)와 알게 되었다. 이들은 헤세 집을 종종 방문했는데, 화가 뷔르텐베르거는 헤세에게 초상화를 그려주었다. 아우구스부르크의 그래픽 작가 겸 판화가 오토 블뤼멜은 헤세에게 그림 도구 세트를 선물하고, 여름에는 가이엔호프에 머물며 그림을 그렸으며, 헤세의 소설 ‘게르투르트’(1910)에 표지 도안을 해주기도 했다.

에른스트 뷔르텐베르거의 ‘헤세 초상화’(1905년)
(출처 = https://de.wikipedia.org/wiki/Hermann_Hesse)
오토 블뤼멜의 ‘게트투르트’ 표지 도안(1910년). (출처 = ‘Der Maler H. Hesse’, 50쪽에서)

또한, 1905년 헤세는 스위스 화가 한스 슈투르체네거(Hans Sturzenegger/약칭 슈투르쯔)를 만나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헤세는 그에게서 그림의 기본을 배웠고, 6년 후 1911년에는 함께 인도 여행을 갔다(인도와 실론,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을 방문). 여행 후 슈투르쯔는 안락의자에서 붉은 표지의 책을 읽는 헤세를 ‘파나마 모자를 쓴 헤세’(1912, 유화)라는 제목으로 그렸는데, 헤세는 이 그림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슈투르쯔는 헤세와 계속 친밀하게 교류했다.

인도로 여행을 떠나는 헤세와 슈투르쯔.
(출처 = https://de.wikipedia.org/wiki/Hermann_Hesse)
슈튜르쯔가 그린 ‘파나마 모자를 쓴 헤세’(1912년).

화가와의 교류 외에도 헤세는 가이엔호펜 시절인 30대 초중반 때 헤세는 진보적인 문화예술 잡지에 참여하며 폭넓게 예술인들을 만났다. 그는 1906~1912년 당시의 보수적 문화에 반대하는 문화 잡지 ‘남부 독일’(Süddeutschland)과 이듬해 ‘3월’(März)로 개명된 잡지의 공동 편집자로 활동하며, 당대의 문화예술인들, 잡지 편집인들과 폭넓게 교제했다. 헤세가 소설과 시 쓰는 데만 전념하지 않고, 문학-예술에서 개혁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모더니즘 예술을 이해하고, 주변 예술가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이런 점은 헤세의 문학과 그림에 반영되어 있다.

베른 시절: 1912~1919년

헤세는 1912년(35세) 스위스 베른으로 이사했고, 그때 세상을 떠난 화가 알버트 벨티의 집에 월세로 들어간다. 그 집은 유명한 예술가의 집답게 멋지게 지어졌고 오늘날에도 외관 변형 없이 남아있다. 필자는 우연히 헤세가 이 집을 그린 그림을 찾아, 그가 정신 치료 이전에도 그림을 그렸음을 알 수 있었다. 이 그림은 집과 주변 담장, 나무들은 펜과 잉크로 그리고, 채색은 수채로 해, 헤세가 이미 아마추어 화가 수준의 실력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헤세의 베른 주택 그림. 1912년, 종이에 펜-잉크-수채. 22.5 x 25cm. (출처 = https://museum.oglethorpe.edu/exhibits/hermann-hesse-house-bern)
헤세 베른 주택의 최근 사진(2013년). (출처 = https://de.wikipedia.org/wiki/Hermann_Hesse)

베른에서 헤세는 스위스 화가들인 쿠노 아미에트(Cuno Amiet), 루이 모알리에(Louis Moilliet) 등을 알게 되었다. 그후 헤세는 유명 화가였던 쿠노 아미에트의 전시회 도록에 서문을 쓰기도 했고, 화가들은 헤세 작품의 표지화를 그리거나 표지 도안을 해주고, 작품 속에 삽화(일러스트)를 그리기도 했다.

헤세가 1916년 루가노에서 정신 치료를 받으며 그림을 그릴 시기에는 그 근처 로카르노의 화가 구스타프 감퍼(Gustav Gamper)로부터 그림을 배웠다. 헤세는 감퍼가 세상을 떠날 때(1948년)까지 교분을 유지하며 수채화를 배웠다. 감퍼는 한 마디로 헤세에게 영향을 많이 받준 ‘수채화 선생’이었다.

이 무렵 1917년 헤세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헤어나오기 시작했다.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림 그리는 것에서 괴로움으로부터 나오는 출구를 발견했다”며 “그림에는 문학이 주지 못하는 위로가 있다”고 말했다.

이제 그림에서 점차 용기를 얻은 그는 자신의 문학 작품에 그림(삽화)을 그리는 시도를 했다. 그 결과 헤세의 그림이 곁들여진 작품집이 동화 ‘험난한 길’(Der schwere Weg, 1919년)과 ‘산책’(Wanderung, 1920년)로 나왔으며, 곧이어 열 편의 시와 그림이 수반된 시화집(詩畫集) ‘화가의 시’(Gedichte des Malers, 1920년)가 출간되었다.

이렇게 당시 헤세는 글과 그림이 어우러지는 방식에 흥미를 갖게 되면서 자신의 이야기에 환상적인 그림들이 곁들여진 ‘그림 동화’라고 할만한 ‘픽토르의 변신’(Piktors Verwandlungen, 1925년)을 출간했다. 국내에서는 헤세의 작품들 가운데 이 책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독일어권에서는 널리 애독된다.

실제로, 헤세가 청년 시절부터 품었던 ‘문학과 미술’의 꿈은 이제 40대 초반에 와서 두 요소가 합쳐진 채로 발현된 것이다. 이후 그 둘은 그의 삶에서 서로 충돌하지 않았다. 그림은 문학에 휴식과 정신적 안정을 주었으며, 문학은 그림에 자극과 상상력을 주었다. 그후 헤세의 인생에서 문학과 미술은 쌍두마차의 두 말 역할을 하며 그의 삶을 이끌었다.

몬타뇰라에서 작가이자 화가로: 1919~1962년

1919년 5월 헤세는 산과 호수가 있는 알프스 남쪽의 산중 마을 몬타뇰라로 이사하고 나서 호젓하고 멋진 풍광에 둘러싸인 이 지역에서 그림 그리기에 한없이 빠져들었다. 당시 헤세는 “스케치하고 그림 그리는 것은 내게 깊은 휴식을 준다”고 하며, 그림에서 정신적 안식을 찾았음을 고백했다.

몬타뇰라에서 안정적으로 작품을 쓰고 그림을 그리던 헤세는 1920~40년대에 더 많은 화가들과 교류하고 지냈다. 이들 중에는 전부터 알던 쿠노 아미에트 외에 쟝 루르가(Jean Lurçat), 에른스트 모르겐탈러(Ernst Morgenthaler), 칼 호퍼(Carl Hofer), 한스 푸르만(Hans Purrmann) 등이 있다.(헤세와 친밀했던 화가들의 이름은 국내 독자들에게 낯설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을 많이 열거하지는 않는다)

헤세는 특히 스위스 화가 모르겐탈러와 가깝게 왕래하면서 1934년 그의 전시회 때 도록의 서문을 썼다. 모르겐탈러는 헤세의 초상화를 그리고, 헤세의 작품들(‘꿈 여행’, 동화 등)에 그림을 그렸다.

에른스트 모르겐탈러가 그린 헤세 초상화. 목탄, 1927년. (출처 = https://www.hermann-hesse.de/leben-und-werk/malerei/malerfreunde)

1926년부터 1931년 사이에 헤세는 몬타뇰라와 루가노에서 가까운 취리히에 자주 들렀고 겨울 동안에 거주하기도 했다. 이동안 그는 큰 도시인 취리히에서 스위스 예술가들 외에 독일에서 온 여러 망명 예술인들과 접촉하고 교류했다.(1933~1945년 나치 시대에 헤세의 작품들은 취리히에서 출간되었다)

그러면서 헤세는 1930~1940년대에 루가노와 취리히를 중심으로 스위스 문화예술계의 유명 인사로 활동했다. 취리히에서 특히 스위스 조각가 헤르만 후바허(Hermann Hubacher)와 화가 루이 모일레와 친밀하게 지냈는데, 실지로 몬타뇰라 시절에 그려진 헤세의 온화하고 화사한 색감의 그림들은 루이 모알리에로부터 영향받은 바가 크다.

화가 쿠노 아미에트의 집 정원에서 환담하는 헤세와 화가들. 1947년 5월. 쿠노 아미에트는 좌측에 서있고, 헤세는 정면 창문 아래 앉아 있다. ‘Der Maler H. Hesse’, 54쪽에서.

헤세가 몬타뇰라에서 1931년 세 번째로 결혼한 부인 니논 아우스랜더는 우연치 않게도 오스트리아 빈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사람이었다. 헤어진 첫 번째, 두 번째 부인과는 달리, 니논과는 타계할 때까지 평탄하게 지냈던 것을 볼 때 헤세는 아무래도 미술과 특별하고 불가분의 관계인 듯하다.

니논과 결혼 후 헤세가 1933년에 만난 젊은 화가와의 교류는 아주 유익한 관계로 발전했다. 드레스덴에서 온 군터 뵈머(Gunter Boehmer)라는 청년이었다. 헤세의 문학 작품에 매료된 뵈머는 헤세를 만나러 몬타뇰라로 왔고, 아예 이사와 정착하면서 헤세 등 당대의 작가와 작품들에 관한 그림을 그렸다.

뵈머는 특히 몬타뇰라에서 활동하는 헤세의 여러 모습들을 드로잉 작품으로 남겼다. 또한 헤세의 ‘데미안’, ‘황야의 이리’ 등 작품(주르캄프에서 출간)에 삽화를 그렸다. 훗날 뵈머는 일러스트/그래픽 아티스트로서 문학작가들(토마스 만 등)의 그림과 그들의 작품 삽화로 유명해졌다.

화가 군터 뵈머(왼쪽)와 헤세. 몬타뇰라에서 1934년.
군터 뵈머가 만든 ‘황야의 이리’ 표지. 
뵈머가 그린 ‘황야의 이리’ 속 삽화.

이렇게 헤세의 일생을 화가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그는 젊은 시절부터 여러 화가들과 가깝게 지내며 회화를 배우고 그림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교류는 헤세에게 예술적으로 매우 생산적이었으며, 문학적으로도 자극을 주는 귀한 경험이었다. 그에게서 문학과 미술은 분리될 수 없는 자아의 양면인 것 같고, 어릴 적에 엄격한 신학교를 도망쳐나온 그를 자유롭게 숨쉬게 했던 두 개의 허파였던 것 같다.


헤세는 수려한 풍광의 알프스 남부 지역에 살면서 자연 속으로 들어가 마음껏 그림을 그렸다. 몬타뇰라와 그 주변의 높은 산과 넓은 호수, 언덕과 구부러진 길, 작고 알록달록한 집들, 야자수와 빨간 여름 꽃이 피는 배롱나무들은 모두 그에게 흥미로운 그림 소재였다.

이제 우리 독자들은 헤세가 어떻게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그림 능력이 어디서 나왔는지 충분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다음 회에는 헤세의 몬타뇰라 그림들을 만나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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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Der Maler Hermann Hesse’, Kunstmuseum Bern, 2012.
‘Hermann Hesse. Der Schriftsteller und Zeichner’, Stuttgart/Frankfurt am Main, 2001.
‘Hermann Hesse. Aquarelle und Zeichnungen’, Städtische Galerie Würzburg,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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