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경제 = 문규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첫 번째 장면
“검사님, 사건과장 전화입니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사건과장이 급하게 필자를 찾았습니다.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전화기를 통해 전하는 내용은 필자가 공판을 담당하는 뇌물수수 사건의 상고제기기간(7일)이 어제 자정까지인데 법원에 상고장이 제출되지 않은 것 같으니 확인해 달라는 취지였습니다. 갑자기 몽둥이로 뒷통수를 얻어맞은 듯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사건은 필자가 춘천지검에 초임 검사로 발령받기 훨씬 전에 선배 검사가 당시 관내 군청 공무원이던 피고인을 직접 인지하여 구속수사 후 기소하였던 중요 사건이었으나 치열한 법정공방 끝에 1심과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춘천지검은 강원도 전역을 관할하는 본청이었으나 관내 지청이었던 원주지청이나 강릉지청보다 검사 숫자가 적은 소규모 검찰청으로서, 평검사가 당시 4명에 불과하였기에 수사 검사 4명 중 말석 검사 2명이 공판 사건을 나누어 담당하고 있었는데 필자가 초임 검사로 발령받은 후 처음 공판 업무를 맡게 되면서 배당받은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죄가 선고되기 전 공판에는 관여한 바가 없었기 때문에 사건의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 사건을 배당받고 제법 두툼한 수사 기록과 공판 기록을 샅샅히 검토해 보았더니 1심과 항소심에서 검찰과 피고인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있었으나 항소심 판결을 뒤엎을만한 결정적인 증거를 찾기가 어려워 상고를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의견을 달아 결재를 올렸더니 부장검사실과 차장검사실의 결재는 통과하였으나 검사장실에서 결재가 반환되었습니다. 잠시 후 검사장님의 호출을 받고 잔뜩 긴장하여 검사장실로 갔더니 예상과는 달리 검사장께서 초임 검사인 필자를 당신 곁에 앉으라고 하신 다음 두꺼운 기록에 군데 군데 표시를 해 둔 곳을 펼치면서 피고인의 진술의 모순점을 당신께서 찾아놓았으니 ‘채증법칙위배로 인한 사실오인’을 이유로 상고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시면서 상고이유서를 잘 작성해 보라며 약 20~30분 동안 자상하게 지도를 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필자는 너무 감복하여 검사장실에서 기록을 받아오면서 상고이유서를 제대로 작성하여 꼭 파기환송을 시켜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다음날 출근과 동시에 여직원에게 “오늘이 상고기간의 마지막 날이니 상고장이 차질없이 접수되도록 사건과의 담당 직원에게 넘겨주라”고 지시한 후 여직원이 상고장을 담당 직원에게 건네주러 가는 것을 확인하고 저는 공판에 참여하기 위해 법정으로 갔습니다.
그날따라 공판 사건의 건수가 많았고 다툼이 많아 저녁 7시가 넘어서야 겨우 재판이 끝났습니다. 검사실로 돌아오니 담당 계장과 여직원은 벌써 퇴근하고 없길래 필자도 퇴근하기 위해 책상 정리를 하고 있는데 당직실에서 “지금 검사장님을 비롯하여 검사들이 인근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으니 회식 장소로 빨리 오라는 전화가 왔다”면서 검사장님의 말씀을 전하길래 부랴부랴 회식 장소로 갔더니 검사장님 이하 검찰청의 모든 검사들이 모여 식사 중이었습니다. 거의 저녁 8시가 다 되어갈 무렵이었는데 검사장께서 말석 검사였던 필자를 특별히 당신의 옆좌석으로 불러 수고했다는 말씀과 함께 술도 한잔 따라주면서 “어제 말했던 그 공무원 사건은 상고장을 제출하였는가?”라고 물으시길래 “오늘이 상고기간 마지막 날이라서 잘 제출하였습니다”라고 말씀드렸고 기분좋게 그날의 회식자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상고장이 제출되지 않았다니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린가요! 사무과장에게 직원을 법원에 보내 경위를 다시 확인해 보라고 한 후 여직원에게 “어제 상고장을 누구에게 갖다주었느냐”고 물었더니 “담당 직원에게 직접 주려고 하였으나 자리를 비워 오래 기다릴 수가 없어 책상 위에 두고 왔다”고 하여 담당 직원을 불러 상고장이 어떻게 되었는지 다시 확인한 바, 자신은 “상고장을 받은 바가 없어 내용을 알지 못한다”면서, 퇴근 때 책상 위에 있던 것을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캐비닛에 넣어두고 퇴근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담당 직원의 캐비닛 속에서 어제 건네주었던 상고장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사건과장에게 전한 후 대책이 있는지 물어보았더니 법원과 상의해 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지 잠시 후 사건과장이 헐레벌떡 달려와 전하는 말은 더욱 필자를 아연실색케 하였습니다. 사건과장이 담당 직원을 보내 법원과 상의하려 하였더니 당사자인 피고인은 그 전날 법원 민원실 앞에서 자정까지 기다리며 검찰에서 상고장을 제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음 날 아침 일찍 출근과 동시에 법원에 찾아와 ‘판결확정증명원’의 발급을 신청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전혀 없다고 판단하고 부장검사, 차장검사, 검사장께 순차로 자초지종을 보고하였습니다. 부장님과 차장님은 저에게 “검사장께 혼 좀 나겠다”며 위로 겸 질책을 하였고, 검사장님은 아니나 다를까 자신이 필자에게 상고이유서를 잘 작성하라며 기록의 중요한 부분을 표시까지 하여 넘겨주었고, 어제 저녁 회식 자리에서는 상고장을 잘 접수했다는 필자의 보고까지 받은 사건임에도 결과적으로 허위 보고를 한 셈이 된 것에 매우 화를 내시면서 필자를 비롯하여 사건과장, 담당 직원, 저희 검사실 여직원을 모두 한자리에 불러 세워놓고 사고의 책임소재를 밝히기 위하여 한 사람씩 신문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고의 경위가 보고 내용과 같자 저희 검사실 여직원이 상고장을 담당 직원 책상 위에 그냥 두고 왔음에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던 것에 1차 책임이 있고, 담당 직원은 퇴근 시 책상 위를 살펴보지 않고 그대로 캐비닛에 밀어 넣고 퇴근해 버린 것에 2차 책임이 있고, 사건과장은 평소 직원들에게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데 그 책임이 있다고 하시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모든 책임은 검사가 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약간 억울하였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검사장님의 명 판결이었습니다.
초임검사 시절 불변기간의 중요성을 몸으로 겪었던 이 사건 이후 모든 사건에서 불변기간을 꼼꼼하게 챙겼고, 두 번 다시 그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장면
형사소송법 제202조에는 “사법경찰관이 피의자를 구속한 때에는 10일 이내에 피의자를 검사에게 인치하지 아니한 때에는 석방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사법경찰관의 구속 기간은 1차에 한해 최장 10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203조에는 “검사가 피의자를 구속한 때 또는 사법경찰관으로부터 피의자의 인치를 받은 때에는 10일 이내에 공소를 제기하지 아니하면 석방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검사의 구속 기간도 최장 10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검사의 구속 기간에 대해서는 1차에 한하여 연장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두고 있는데 형사소송법 제205조 제1항입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방법원 판사는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수사를 계속함에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한 때에는 10일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한도에서 제203조의 구속 기간의 연장을 1차에 한하여 허가할 수 있다.”
필자가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에 근무하던 1990~1992년 무렵에는 노태우 정권이 민생치안 확립을 명분으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여 구속 피의자가 한 검사실에 사건 수로는 통상 3~5건, 사람 수로는 5~7명 정도로 많은 사건이 배당되었습니다.
그러자 검사실에서는 1차 구속 기간 내에 도저히 수사를 마무리할 수 없어 구속 기간을 연장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경찰에서 송치되어 온 사건들이 짧은 구속 기간 내에 수사를 완벽하게 마무리할 수 없어 억지 자백을 받아 그대로 송치하였으나 검찰에 송치되어 온 이후에는 범행을 부인하여 도저히 1차 구속 기간 동안에 공소유지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수사를 할 수 없거나, 1건의 사건에 구속된 피의자의 숫자가 많아 수사가 부실한 상태로 송치되어 와 이를 보강하기 위해서는 구속 기간을 연장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허다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런 사건에 몰두하다 보면 보통의 평범한 사건도 처리가 지체되어 할 수 없이 구속기간을 연장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피의자의 인권 문제가 이슈로 등장하였고 사명감에 넘치는 특정 판사님들의 경우에는 구속 기간 연장을 허가해 주면서 10일의 구속 기간 연장을 허가하지 않고 어떤 경우에는 7일 또는 5일 심지어 3일간의 구속 기간 연장을 해 주는 경우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러나 검사실에서는 사건에 쫓기다 보니 연장이 허가된 구속 기간이 으레 10일인 것으로 생각하였다가 기소할 때 확인하다 구속 기간이 도과된 것을 발견하고 할 수 없이 구속 피의자를 석방한 경우가 발생하였습니다. 그 사건이 발생한 후 검찰청 차원에서 법원에 강하게 항의하여 검찰의 고충을 토로하였으나 이는 오로지 검찰의 잘못으로 귀결되었고, 그 이후에는 같은 잘못이 되풀이 되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장면
형사소송법 제214조의 2 제1항에는 “체포 또는 구속된 피의자 또는 그 변호인, 법정대리인, 배우자, 직계친족, 형제자매나 가족, 동거인 또는 고용주는 관할 법원에 체포 또는 구속의 적부심사를 청구할 수 있다”는 ‘체포와 구속의 적부심사’에 관한 규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형사소송법 제214조의 2 제13항에는 “법원이 수사 관계 서류와 증거물을 접수한 때부터 결정 후 검찰청에 반환한 때까지의 기간은 … (중략) … 형사소송법 제202조(사법경찰관의 구속 기간), 제203조(검사의 구속 기간), 제205조(구속 기간의 연장)의 적용에 있어서는 그 구속 기간에 산입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되어 있어 구속적부심사를 청구한 구속 피의자의 경우 석방될 경우에는 문제가 없겠으나 기각된 경우에는 구속적부심사에 걸린 기간 동안은 구속 기간에 산입되지 않는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1건의 사건에 구속 피의자가 여러 명인 경우 그 중 1명 또는 일부가 구속적부심사를 청구한 경우에 문제가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런 경우 구속 기간의 연장을 신청할 경우 구속적부심사를 청구한 피의자를 중심으로 구속 기간을 계산하면 큰 낭패를 당할 수가 있습니다. 적부심사를 청구한 구속 피의자의 경우에는 적부심사기간이 구속 기간에 산입되지 않아 구속 기간 10일이 도래하지 않았지만 적부심사를 청구하지 않은 구속 피의자의 경우에는 구속 기간이 도과해 버리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역시 남부지청에서 발생했던 사건이고 앞에서 실수를 저질렀던 검사실에서 또 구속 기간 연장을 하는 과정에서 구속 기간이 도래한 것을 발견하고 이번에도 구속 기간 만료로 석방을 해주는 사건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그 검사님은 필자보다 후배이긴 하지만 당시 강력사건을 담당하면서 밀려드는 구속 사건에 치여서 두 번의 실수를 되풀이한 것입니다. 그 사건 직후 차장검사실로부터 향후 구속 기간 연장을 신청할 때는 10일을 꽉 채우지 말고 구속 기간 만료 2~3일 전에 신청하도록 하라는 지시가 하달되었고, 그 검사는 차장검사실에 불려가 호되게 야단을 맞은 후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였는지 얼마 후 사표를 냈습니다.
불변기간을 넘기면 발생하는 결과의 심각성
앞의 3개 사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상고의 제기 기간(7일, 형사소송법 제374조), 검사의 구속 기간(최장 10일), 구속 기간 연장(1차에 한해 최장 10일)은 모두 불변기간입니다. 만약 상고기간 내에 상고를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그것으로 판결이 확정되며, 구속 기간을 도과하거나 허여된 연장 기간 내에 기소하지 못하면 구속 피의자를 바로 석방하여야 합니다.
사례 1에서 보았듯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던 그 공무원은 검찰에서 상고장을 접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즉시 판결확정증명원을 신청하였기에 검찰은 더 이상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보지 못하고 멈출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사례 2, 사례 3에서는 검찰은 구속 기간이 도과된 구속 피의자를 바로 석방할 수밖에 없었고 불구속 상태로 법원에 기소하여 법원의 판결에 의하여 향후 실형을 선고받으면 다시 구속될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 구속 피의자가 악질적인 강력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경우라면 법원에 의해 다시 구속될 때까지 국민들은 불안에 떨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형사사건에서의 불변기간은 매우 중요하고 이를 놓칠 경우 그 결과가 심각할 수 있어 초임 검사 시절 불변기간을 놓친 경우 모든 책임은 검사가 져야 한다고 가르쳐 주신 검사장님의 엄한 질책이 지금도 귓전을 맴돕니다.
필자 소개
법무법인 대륙아주 문규상 변호사는 1978년 서울법대 졸업, 1987년 검사로 임용되어 ‘특수통’으로서, 변인호 주가 조작 및 대형 사기 사건, 고위 공직자 상대 절도범 사건, 부산 다대/만덕 사건, 강호순 연쇄 살인 사건 등을 맡아 성과를 냈고, 2003년의 대선 자금 수사에서도 역할을 했다. 2009~2014년 대우조선해양의 기업윤리경영실장(부사장)을 역임하며 민간 부패에 대한 경험도 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