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9호 김예은⁄ 2023.10.25 16:13:32
다음의 순서에 따라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자.
1. 대지에 일정한 간격으로 여러 개의 말뚝을 박는다.
2. 기둥과 기둥 사이를 노끈으로 연결해 여러 개의 격자를 구획한다.
3. 노끈으로 그려진 직사각형들 안에서 일부 노끈을 잘라내 그 속에서 하나의 직사각형을 제거한다.
위 순서를 따라 글을 읽는다면, 어느샌가 당신의 머릿속에도 노끈으로 구획된 여러 개의 직사각형이 그려질 것이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언어는 한 사람의 머릿속에 그려진 그림을 ‘언어’라는 매개물을 통해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그려내는 수단이라고.
언어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역시 '그림 이론(Picture Theory)'을 통해 ‘그림은 언어로 정확하게 나타낼 수 있는데, 이는 그림과 언어의 구조가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작품이란 특정 객체가 없더라도 언어를 통해 작가가 표현하는 하나의 그림을 머릿속에 담아낼 수 있다면, 예술을 논할 때 반드시 그림이란 물리적 객체가 필요한 것일까? 언어 자체가 그 예술 작품을 대체할 순 없는가?
이러한 사유가 반영된 미술사의 하나의 흐름이 바로 시각 미술과 대비된 ‘개념 미술’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시각적 작품은 예술가의 창조적 발상을 객관적 실체로 표현한 매개물이다. 작가의 머릿속 상상과 그림을 실체화된 형태로 현실 속에 구현해 낸 대상인 것이다. 반면, 개념미술은 특정 작품이라는 매개물보다는 그 작가가 사유하는 창조적 사유, 의미 혹은 개념 그 자체가 작품이 된다는 발상에서 시작됐다.
이러한 개념 미술도 눈에 보이는 작품의 실체성 유무에 따라 여러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특정 개념미술 예술가들은 사유의 물리적 구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작품의 본질인 개념에 주목한 불가시성(invisible)을 주장한다. 반면, 특정 작가들은 눈에 보이는 가시성(visible)을 통해 가시성과 불가시적 요소 사이의 관계를 고찰하고자 하였다.
이 가운데 미국 개념 미술사의 대가로 손꼽히는 로렌스 위너(Lawrence Weiner, 1942-2021)는 가시성을 통해 자신이 고찰한 개념을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였고, 그 가시적 대상으로 ‘언어’에 주목했다. 위너가 바라본 언어는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개념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을 불러일으키는 매개물이었다.
그가 언어 조각의 대가로 알려진 것도 그의 이러한 작품 철학에서 기반한다. "물리적인 형태로 질문을 제시하는 것이 조각을 만드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시각 작품의 실체성을 부정하고 개념이란 불가시적 대상에 주목한 걸까? 이는 언어를 매개로 한 인간 사유의 확장성에 기반한다.
아모레퍼시픽전시관에 위치한 로렌스 위너의 작품 중 암스테르담 스테델릭 미술관의 소장품 ‘세계의 무게가 실려 알려진 운명으로 모여진 흩어진 물질, 첨두’라는 작품이 그 답을 대변한다.
물리적 한계를 넘는 개념 미술의 확장성
해당 작품에는 ‘첨두’로 해석되는 'CUSPED'라는 단어 뒤에 제스처를 표기해 두 구체가 충돌하는 것이 연상되도록 언어와 제스처가 함께 배치되어 있다. 여기서 ‘첨두’라는 단어가 뜻하는 개념은 변화된 경로뿐만 아니라 더 결과적인 전환점, 즉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또는 한 우주에서 다른 우주로 가치 체계의 전이를 일으키는 힘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확장성을 갖는 의미를 하나의 미술 작품 안에 모두 담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만 하나의 단어가 갖는 의미는 이를 내포하고 대변함으로써 확장된 사유를 가능케 한다. 위너는 이렇게 물리학의 법칙을 넘는 상태를 표현하고 성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언어’의 잠재력이라고 판단하고, 언어의 능력에 대한 탐구를 작품에 담았다.
위너는 해당 단어 뒤에 교차점을 가시화하는 제스처를 함께 배치함으로써 문화적 특수성과 다양한 문화 속에 존재하는 가치 체계가 첨두에서 만나는 것을 연상시키도록 유도했다. 이처럼 위너의 작품세계에서 언어의 선정, 그리고 그 설치와 배치는 언어와 사유의 대상을 하나로 묶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자신의 현실과 타인의 현실을 동시성으로 묶는 매개물로 봤다. 그는 자신의 작품 세계가 “나의 현실과 타인의 현실이 같은 시간과 장소에 존재할 수 있고, 그 둘이 (작품을 통해) 서로 부딪칠 때만 드러나기에, 평행적 현실 혹은 대안적 현실이 아니라 동시적 현실을 제시하는 것이다”라는 발언을 통해 작품이 세계에 부여하는 '동시성'에 주목했다.
그는 이 동시성의 개념을 “역사의 한 순간을 다른 순간 위에 놓는 것”이라 표현하였고, 이러한 양자 물리학의 개념적 정의를 작품을 통해 수용자와 소통하고자 하였다. 이를 표현한 작품이 바로 ‘시간의 구멍의 가장자리에 조심스럽게 균형 잡힌’이라는 작품이다. 이를 통해 그는 우주 공간에서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연결하는 통로를 의미하는 웜홀을 시간 내에 경험하는 상태를 전시실 내에 언어 작품을 통해 설치함으로써, 언어가 표현하는 상징적 구현의 가능성을 작품에 부여했다.
이때, 사유하는 존재로서 인간은 자신이 경험하고 축적해 온 사고에 기반해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한다. 따라서 특정 언어와 문장을 기반으로 사고하는 대상 역시 모두 같을 수 없다. 글의 서두에서 ‘대지’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누군가는 황량한 흙으로 뒤덮인 땅을, 또 다른 누군가는 푸르름이 무성한 초원을 상상할 것이다.
로렌스 위너가 정의한 예술에서 ‘언어’는 이처럼 인간의 자유로운 사유에 대해 고찰하게 하는 특정 매개물을 통해 인간 사유의 트리거(trigger)로 작용하게 할 뿐, 그 해석의 가능성을 한정된 범위로 특정하지 않았다. ‘조건에 대한 결정은 수용 당시 수용자에게 달려있다’라는 그의 말처럼 현실 속에 구현된 그의 작품은 각각의 작품 속 진술이 가진 가능성과 확장성이 유보된 상태로 남아있도록 했다.
다만 그가 탐구한 세상에 대한 이해, 특히 물리적 시간의 한계를 넘은 동시성을 작품에 담아 현재 이 순간, 작품을 대하는 관람객의 사유와 상상을 통해 확장되도록 했다. 이 때문에 위너의 언어는 항상 상대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규정짓는 문구를 피하고, 명령조 대신 수용자가 무엇을 만들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단어로 그 확장성을 언어 조각을 통해 표현했다.
동시적 현실과 문화의 공존
그는 문화적 맥락, 또는 작품의 장소에 따라 예술은 그 속성과 구성이 변화될 수 있다고 보았다. 문화에 대해 위너는 “예술이 기능하기 위해 자신의 것이 아닌 문화적 맥락에 놓이거나 이동할 때, 예술은 자신이 속한 문화의 구성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예술로서 기능하지 않고 민족지학으로 축소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예술이 담고 있는 다양한 태도, 신념, 가치 구조가 문화적 특수성에 영향을 주지 않고 특정 전통과 엮인 상태로 작용함으로써, 시공간을 뛰어넘는 새로운 동시적 현실을 탐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러한 로렌스 위너의 작품관에 따라 전시관에 한국 고미술 작품을 로렌스 위너의 언어 조각과 함께 배치하였다. 각각의 현실 안에 포함된 두 우주를 평행선에 배치한다는 위너의 관념처럼, 위너의 물질관의 개념적 틀 안에서 한국 고미술에 새로운 의미와 가치가 부여되도록 유도한 것이다.
또한 앞선 위너의 작품 ‘세계의 무게가 실려 알려진 운명으로 모여진 흩어진 물질, 첨두’ 가 내포한 그의 작품관처럼 시공간을 뛰어넘은 두 문명의 문화적 특수성과 각각의 문화 속에 존재하는 가치 체계가 교차하는 모습이 전시 공간 속에 구현되어, 시공간과 물리적 한계를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첨두'의 의미를 고찰해 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위너가 이야기하는 '작품이 내포한 동시적 현실'은 각기 다른 역사와 사회 속에서 존재하는 다양한 가치 체계가 동시적으로 공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특정 하나의 가치 체계가 다른 가치 체계보다 더 유효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의 가치 체계를 동시적으로 배치함으로써 발현되는 제3의 맥락, 그리고 공존을 통한 새로운 관념의 제시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처럼 위너는 한 가지 체계와 다른 체계를 평행선상에 놓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혹은 무엇이 더 옳은지를 가름하는 시도가 아닌, 다른 체계들이 동일 선상에 존재함으로써 발현되는 관념과 이중성을 관람자가 탐구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와 같이 예술은 시공간을 넘어 다양한 관념을 관람자와 소통하고, 물리적 한계를 넘어 깊이 있는 사고의 확장을 유도한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 개념미술이 이 시대에 던지는 탐구 정신과 거시적 관점이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개관 5주년을 맞아 아시아 최초로 개념 미술의 대가 로렌스 위너의 개인전 ‘LAWRENCE WEINER: UNDER THE SUN’을 개최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위너의 작품을 통해 개념 미술의 확장성과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예술의 확장성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세상과 문화,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확장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내년 1월 28일까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진행된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