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6호 김응구⁄ 2024.02.20 17:25:10
정부가 올해부터 ‘기준판매비율’을 국내산 소주에 처음 도입했다. 서민의 술인 소줏값을 조금이나마 내리려는 조치다.
기준판매비율은 개별소비세를 정할 때 적용하는 비율이다. 해당 비율만큼 과세표준(課稅標準)이 내려가 세금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일종의 ‘세금 할인율’인 셈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17일 국산 소주의 기준판매비율을 22.0%로 결정했다. 기존에는 반출가격(제조원가에 판매원가·이윤 등을 포함한 것) 그대로를 과세표준으로 삼아 세금을 매겼지만, 올해부터는 반출가격에 기준판매비율을 곱한 만큼을 뺀 뒤 과세한다.
정부의 이 같은 발표에 따라 국내 소주제조사들은 올해 1월 1일 출고분부터 소주 출고가를 인하했다. 하이트진로는 희석식 소주인 ‘참이슬’과 ‘진로’의 출고가를 기존보다 10.6% 낮췄다. 롯데칠성음료도 ‘처음처럼’과 ‘새로’의 출고가를 이전 대비 각각 4.5%와 2.7% 내렸다. 보해양조 역시 ‘잎새주’와 ‘보해소주’의 출고가를 10.6% 인하했다.
기준판매비율이 커질수록 내야 하는 세금은 줄어들어 소주의 출고가 인하 폭은 커진다. 360㎖ 용량의 ‘참이슬 프레시’를 예로 들어본다. 이 제품의 반출가격은 586원이고, 여기에 각종 세금(주세 72%+교육세 30%+부가가치세 10%)을 부과하면 출고가는 1247원이다. 이 가격에 기준판매비율 22%를 적용하면 반출가격은 457원으로 내려간다. 이것에 각종 세금을 부과하면 출고가는 1115원으로 낮아진다. 기존 가격보다 132원 저렴해진 것이다.
사실, 기준판매비율 도입은 국산 주류와 수입 주류의 형평성 문제가 발단이다. 오랜 시간 역차별 논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산 주류는 반출가격을 과표로 삼아 세금을 매기지만, 수입 주류는 수입 신고가를 과세표준으로 삼아 주세(酒稅)를 부과한다.
소주 출고가 계산법을 알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소주는 제조원가에 판매원가(광고비·인건비)와 이윤을 더한 금액, 즉 반출가격을 과세표준으로 잡는다. 여기에 72%의 주세율을 곱한 뒤, 주세의 30%를 교육세로 또 부과한다. 이 모두를 합친 다음 부가가치세 10%를 부과한 것이 출고가격이다. 소주 한 병의 공장 원가(반출가격)를 548원이라고 치자. 주세는 395원, 교육세는 118원, 부가세는 106원으로, 이를 모두 더하면 총 1167원이다. 소주 한 병에 부과하는 세금이 619원으로 공장 원가보다도 많다.
이에 반해 수입 주류는 판매원가나 이윤을 포함하지 않은 수입 신고가와 관세만을 더한 가격에 주세를 부과하기 때문에 국산 주류보다 과세표준이 상대적으로 낮아진다.
정부와 소주제조사의 조치에 따라 당장 대형마트와 편의점의 소줏값은 병당 최대 200원까지 내려갔다. 참이슬 프레시와 처음처럼은 대형마트에서 1380~1480원, 슈퍼마켓에서 1460~1690원, 편의점에서 1950~2100원에 팔리고 있다.
그러나 서민들이 실제로 느껴야 할 소줏값 인하 효과는 아직 체감 단계에 이르지 못한 듯 보인다. 일선 음식점·주점은 소줏값이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올랐기 때문이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 1월 외식 소줏값은 1년 전보다 4.8%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소주 출고가가 100원 정도 오르면 음식점·주점에서 판매하는 소줏값은 1000원가량 오르는 것과는 다른 행보다. 현재 음식점·주점에서 판매하는 소줏값은 한 병에 5000원에서 6000원 선이다. 서울 강남에는 7000~8000원을 받는 곳도 있다.
음식점·주점도 할 말은 있다. 높은 임대료와 인건비, 식자재 인상 등으로 소줏값을 쉽게 내리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더구나 전체 매출에서 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소줏값 인하는 섣불리 결정할 수 없다고 항변한다.
서울 성북구의 한 음식점 사장은 “소주 출고가가 130원 정도 내렸다고 소줏값을 1000원씩 내릴 순 없는 것 아니냐”며 “어느 식당이든 한 번 올린 소줏값을 쉽게 내리긴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이것까진 일일이 간여할 수 없어 음식점·주점의 자발적 참여 없인 사실상 서민이 체감하는 소줏값 인하는 기대하기 힘든 현실이다.
소주가 뭐길래… 국내 희석식 소주의 역사
대한민국의 소주는 두 가지다. 하나는 ‘燒酒’, 또 하나는 ‘燒酎’다. ‘燒(소)’는 ‘불태우다’라는 뜻이다. ‘주’의 표기가 다를 뿐이다. 둘 다 ‘술’을 의미하지만, 전자는 증류식 소주이고 후자는 우리가 흔히 마시는 녹색 병 희석식 소주다.
앞서 얘기한 소주는 희석식 소주를 말한다. 이는 주정(酒精), 물, 각종 첨가물(감미료)을 더해 만든다. 주정은 소주를 만드는 식음용 알코올이다. 정확히 말하면 ‘발효주정’이다. 무색·무미·무취의 알코올 성분으로 에탄올(ethanol), 에틸알코올(ethyl alcohol), 그레인알코올(grain alcohol) 등으로도 부른다.
주세법에 따르면 주정은 ‘희석해 음용할 수 있는 에틸알코올을 말하며, 불순물이 포함돼 있어서 직접 음용할 수는 없으나 정제하면 음용할 수 있는 조주정(粗酒精)’을 말한다. 아울러 ‘녹말 또는 당분이 포함된 재료를 발효시켜 알코올분 85도 이상으로 증류한 것’, ‘알코올분이 포함된 재료를 알코올분 85도 이상으로 증류한 것’이기도 하다.
주정의 원료는 전분(澱粉)질과 당(糖)질이 있다. 희석식 소주에 사용하는 주정은 전분질 원료로 만든다. 쌀, 보리, 쌀보리, 밀, 수수, 고구마, 타피오카 등이 있다. 당질 원료는 사탕수수, 사탕무 등이다. 희석식 소주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원료는 타피오카로 85.7%나 차지한다. 타피오카는 열대작물인 카사바의 뿌리에서 채취하며, 베트남·캄보디아·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수입한다.
주정은 전분질 원료를 발효시킨 다음 연속 증류를 통해 얻는다. 증류 과정에선 알코올에 열을 가해 불순물을 제거하고 도수를 96도로 농축시킨다. 이후 물과 혼합해 도수를 95도로 맞춘다. 이를 소주제조사들이 물로 희석하고 첨가제를 넣어 희석식 소주로 만든다.
하이트진로의 전신 진천양조상회가 1924년 출시한 소주 ‘진로’는 알코올도수가 35도였다. 일제강점기 시절이었던 1920년대는 대부분 증류식 소주였다. 이후 1965년 정부가 식량 부족을 해결하고자 양곡관리법을 개정하면서 소주 발효 과정에 곡류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때부터 주정에 물을 섞은 희석식 소주가 만들어졌다.
1965년에는 30도짜리 진로가 출시됐다. 1973년에는 5도를 더 낮춰 25도로 선보였다. 이후 1980년대 들어 소주 소비량이 급증하면서 ‘소주=25도’라는 공식이 자리 잡았다.
소주의 알코올도수는 지금껏 시대의 입맛에 맞춰 계속 내려왔다. 오랜 시간 25도가 유지돼 오다 하이트진로가 1998년 23도짜리 ‘참이슬’을 출시하며 25도 공식도 깨졌다. 이후 지금까지 계속해서 ‘저도(低度) 소주’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2002년 22도짜리 참이슬이 나왔고, 2006년에는 19.8도의 ‘참이슬 후레쉬’도 대중에 선보였다. 때를 같이 해 두산주류(지금의 롯데칠성음료)가 20도짜리 ‘처음처럼’을 출시하며 저도 소주 경쟁은 본격화됐다.
2019년에는 하이트진로가 16.9도 ‘진로 이즈백’을 출시했다. 그러자 롯데칠성음료는 2022년 9월 16도의 제로 슈거 소주 ‘처음처럼 새로’를 새롭게 선보였다. 여기에 더해 대전·충남·세종 지역을 기반으로 한 맥키스컴퍼니가 국내 최저 도수인 14.9도짜리 소주 ‘선양’을 내놓아 화제가 됐다.
원래 소주의 알코올도수가 낮아지면 소주 특유의 쓴맛이 사라지고 물비린내가 난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맥키스컴퍼니 측은 쌀·보리 증류 원액을 첨가해 풍미를 살린 데다, ‘산소 숙성 촉진 공법’으로 소주 본연의 맛을 살렸다고 설명했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