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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뉴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놀이터 흙내음·차가운 아스팔트 향’ 공존한다

‘구정아-오도라마 시티’ 주제로 ‘한국의 도시, 고향에 얽힌 향의 기억’ 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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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67호 김금영⁄ 2024.03.07 17:28:37

2024년도 베니스비엔날레 제60회 국제미술전 한국관 대표작가로 참여하는 구정아 작가.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공간을 다양한 향(냄새)이 공간을 채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공간에 존재하는 이 향들은 서로 뒤섞여 향긋하기도, 때로는 눈살을 찌푸리게도, 정체를 궁금하게도 할 것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가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제60회 국제미술전’ 한국관의 전시계획안을 발표했다. 한국관은 지난해 3월 선정한 이설희(쿤스트할 오르후스 수석 큐레이터), 야콥 파브리시우스(아트허브 코펜하겐 관장) 예술감독이 전시를 총괄하고, 구정아 작가가 한국관 대표작가로 참여한다.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올해 세계인이 찾아올 한국관 특별전에서 한국의 미술을 세계에 보다 알리는 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특히 이번 전시는 내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건립 30주년을 앞두고 진행되는 특별전으로 기대가 높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은 1995년 카스텔로 공원 내 26번째 건립된 마지막 국가관이다. 정병국 예술위 위원장은 “베니스비엔날레는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비엔날레로, 전 세계 예술인이 많이 참석해 당시대 트렌드를 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며 “1993년 독일관을 통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백남준 선생의 적극적인 노력과 의지로 1995년 한국관이 극적으로 생길 수 있었고, 내년 건립 30주년을 맞는다”고 말했다.

이어 “이 시점에 예술위의 역할을 다시 돌아봤다. 예술인이 좋은 창작품을 많이 만들어낼 수 있도록 지원해 그로 인해 우리 국민이 양질의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예술위의 역할이다. 국가예산을 들여 한국관을 짓고 유지하는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라며 “작가 지원과 더불어 한국의 미술을 세계에 어떻게 알릴지 노력하는 것도 예술위의 주요 의무다. 올해 세계인이 찾아올 한국관 특별전에서도 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관에 작품을 선보이는 구 작가는 드로잉, 회화, 조각, 설치, 시, 소설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며 현실과 비현실,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 너머를 지향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정 위원장은 “경계를 넘어서 미술 지평을 넓혀가는 구 작가의 작업이 베니스비엔날레의 주제와 결부되는 부분이 많았다”며 한국관 작가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향’으로 한국에 대한 이방인의 기억 소환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제18회 국제건축전 한국관에 마련된 '2086 : 우리는 어떻게?'전 현장.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주제어는 ‘이방인’으로, 구 작가는 이를 향으로 접근한다. 2020년 부산비엔날레 때 각각 전시팀장, 감독, 참여작가로 연을 맺은 이설희·야콥 감독, 구 작가의 공통 관심사도 향이었다. 향은 구 작가의 활동 초창기인 1996년 파리 스튜디오의 작은 옷장에 좀약을 배치한 냄새 설치작품 ‘스웨터의 옷장’ 이래 반복적으로 등장해 온 핵심 소재이기도 하다. 이후 구 작가는 도쿄 모리미술관(2003), 카지노 룩셈부르크 미술관(2005), 뉴욕 디아 파운데이션(2010), 런던 채링 크로스 역의 사용 중지된 주빌리 라인 승장강(2016), 지겐 현대미술관(2022) 등의 전시에서 향 경험의 규모를 확장해 왔다.

이설희·야콥 감독은 “향을 주제로 협업한 적도 있을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 그렇기에 일찍이 1990년대 중반부터 ‘향의 선구자’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향에 관한 다양한 작업을 펼쳐온 구 작가의 작업세계에 당연히 끌렸다. 구 작가는 런던 지하철에서 큰 규모의 몰입형 형태로 향을 전시하기도 하고, 때로는 소규모의 공간에서 다채로운 향의 경험을 만들어내기도 했다”며 “향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도, 귀로 들을 수도 없지만, 항상 우리 주위를 감싸고 있다. 숨을 들이켤 때마다 느껴지는 향은 어디서나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2024년도 베니스비엔날레 제60회 국제미술전 한국관 간담회 현장.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 향의 존재감이 각자의 정체성, 기억으로도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예컨대 목욕탕의 냄새를 맡으면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갔던 목욕탕 공간과 그때 느꼈던 기분, 나눴던 대화 등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 기억들은 기억 속 그 존재들에 대해 “행복했다”, “좋았다”, “따뜻했다”, “쓸쓸했다”, “그립다” 등 다양한 정체성을 구축한다.

이설희·야콥 감독은 “우리는 잊고 있던 장소와 시간에 대한 기억을 향으로 소환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선 세계 각지에서 기억하는 향을 매개로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소환한다”며 “공유받은 개개인의 기억을 나눔으로써 다양한 인류를 아우르는 프로젝트를 목표로 한다”고 전시 기획 배경을 설명했다.

(왼쪽 두 번째부터) 야콥 파브리시우스·이설희 감독, 구정아 작가.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특히 향으로 한국의 초상화를 그리는 대상이 한국인에 한정되지 않고, 전 세계의 이방인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타국에 입양, 이민, 여행을 가는 등의 형태로 전 세계엔 수많은 이방인이 존재한다. 한국관 전시는 향기를 뜻하는 ‘Odor’에 드라마의 ‘rama’를 결합한 ‘오도라마’를 주제로, 향을 통해 이들이 써 내린 한국의 이야기(드라마)를 한 공간에 가득 채운다. 이분법적으로 이방인을 구분짓지 않는 태도는, 경계없이 어디든 자유로이 넘나드는 향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전망이다.

구 작가와 전시팀은 개개인이 가진 ‘한국의 도시, 고향에 얽힌 향의 기억’을 수집하기 위해 온·오프라인을 통해 설문지를 배포했다. 한국 외교부와 재외 한국대사관, 한국계 입양인과 커뮤니티, 세계 각지의 한인, 한인 학교 및 한국계 미국인 협회, 북한에서 태어나 남한에 사는 사람들, 북한 이탈 주민과 그들을 지원하는 재단 및 북한을 방문한 외국인, 서울 외신 기자 클럽 등 여러 기관과 단체가 대상이 됐다. 참여자는 한국인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국적을 가진 외국인과 더불어 남한에 정착한 북한 새터민을 포함한다.

야콥 파브리시우스 감독이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구 작가 또한 특정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작업한다는 점에서 한 명의 이방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방인이라는 개념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오도라마 프로젝트에서 관계를 맺은 외국인은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한국 자화상을 만드는 주최자로서 참가했다. 보통 우리가 1970년대 인식하던 외국인과 현재 외국인의 개념이 다르듯 전 세계가 연결되는 현시대의 한국 자화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건 한국의 위상과 맞들어서도 현실적이라 생각했다”며 “되도록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 올리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 중 선정된 일부 사연들을 공개하기도 했다. 한 참여자는 ‘비 오는 숲 땅의 흙냄새’와 ‘할머니가 모시던 제단 위 향냄새가 절여진 밥 냄새’로 1990년대의 한국을 기억했고, 1970년대 덴마크로 입양된 한 참여자는 “아주 어릴 때 입양돼 한국에 대한 기억이 없지만, 김포국제공항에서 가장 먼저 기억나는 것은 특별한 공기의 향이다. 이 냄새는 여전히 가장 생생한 기억 중 하나로, 그 향과 기억엔 많은 기쁨, 상실감 그리고 설렘과 같은 많은 감정들이 담겨 있다”고 했다.

경계 없이 자유로이 부유하는 향

한국관 전시장 바닥엔 무한대 기호, 뫼비우스 띠 형태로 부유하는 두 개의 나무 설치작품, 향을 퍼뜨리는 디퓨저 조각이 설치된다. 이의 소규모 시범 조각을 간담회에서 공개하기도 했다. 사진=김금영 기자

구 작가와 전시팀은 설문을 통해 모인 600여 편의 사연 중 한국의 시대상을 담은 키워드 20개를 뽑았다. 이들은 “농업시대였던 1960년대엔 ‘소나무’, ‘소금’, ‘흙 내음’ 등 청량한 자연을 상징하는 키워드, 산업화가 진행된 1970~80년대엔 탁하고 둔탁한 느낌의 키워드, 소비의 시대인 1990~2000년대엔 ‘쌀’, ‘공중 목욕탕’, ‘놀이터의 모래 향’ 등 따스하고 정겨운 분위기의 키워드, 사회적 규범 격변의 시대라 불리는 2010~2020년대엔 ‘금속의 향’, ‘아스팔트’, ‘매연’ 등 차가운 느낌의 키워드가 공통적으로 발견됐다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이 키워드를 향으로 구현하기 위해 향수업체 ‘논픽션’과 협업했다. 논픽션은 한국관에 ‘한국의 냄새 풍경’을 조성하는 데 사용할 16개의 향과 하나의 커머셜 향수를 개발하는 역할을 맡았다. 자칫 ‘논픽션 향수 전시장’이 될 수도 있는 우려에 야콥 감독은 “논픽션이 향을 개발했지만, 이미 과거부터 구 작가는 향을 주제로 전 세계 미술관에서 작업을 진행하며 예술적 실천을 이어왔다”며 “작가들이 작업할 때 전문가와 협업하는 것처럼 이번 논픽션과의 작업도 향 관련 전문가와 협업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설희 감독이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삶에 아름다움만 있지 않듯 전시장의 향은 악취까지 포함한다. 이설희 감독은 “영어로는 큰 차이가 없지만, 한국어로는 ‘향’과 ‘냄새’라는 단어의 차이로도 설문 답변이 달라지는 걸 느꼈다. 향이라 하면 주로 아름답고 시적인 기억을 꺼내 드는 경우가 많아 향과 냄새를 구분하지 않고 다양하게 다루며 접근하려 했다”며 “그렇기에 전시장엔 아름답지 않은 향도 혼재한다”고 말했다.

향을 비롯해 한국관 전시장 바닥엔 무한대 기호, 뫼비우스 띠 형태로 부유하는 두 개의 나무 설치작품, 향을 퍼뜨리는 디퓨저 조각이 설치된다. 이런 구성은 구 작가가 1990년대부터 창안, 확장해온 개념인 ‘우스(OUSS)’를 상기시키는 메아리로도 작용한다. 그가 제시하는 우스는 수수께끼 같은 우주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단어나 형태소, 물질이나 마음의 상태, 물질과 비물질의 영역을 뛰어넘어 원하는 모든 것으로 변할 수 있는 만능 존재다. 특정 카테고리에 한정되지 않고 자유로이 경계를 넘나든다는 점에서 향과도 연결된다.

2024년도 베니스비엔날레 제60회 국제미술전 한국관 대표작가로 참여하는 구정아 작가.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처럼 향의 존재감은 방대하지만, 실질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기에 많은 것을 보여주는 시각예술이 주류로 자리 잡은 현실에서 향을 주요 매체로 택했을 때 부담감은 없었을까. 이에 대한 구 작가의 답변이다.

“문화예술계에서는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도 많이 한다. 보편성을 벗어나 하늘이 노랗다거나, 보라색이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일들은 하나의 창조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행동을 작가들은 목숨을 걸고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정 경계가 없는 향이라는 물질을 통해서 우리의 공동 미래가 창조되길 바란다.”

구정아, 'KANSE SpSt'. 향 디퓨저와 센서를 내장한 브론즈 조각, 높이 157cm. 2023-2024. 사진=구정아

한편 베니스비엔날레 제60회 국제미술전은 4월 20일부터 11월 24일까지 베니스 자르디니 및 아르세날레 전시장 등에서 약 7개월간 열린다. 향기 메모리 수집을 통해 수집한 약 600여 편의 이야기는 프리뷰 첫날인 4월 17일 한국관 홈페이지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사연 모집에 참여한 모든 참가자들의 이름은 올해 한국관 전시 도록에 게재될 예정이다.

또한 예술위는 1995년 이후 역대 한국관 미술전시에 참여한 작가 30여 명(팀)의 개별 작업을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총망라한 특별전시 ‘모든 섬은 산이다(Every Island is a Mountain)’를 베니스에 위치한 몰타 기사단 수도원에서 연다.

구정아 작가(맨 오른쪽)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공식 병행전시로 선정된 4개의 전시들도 베니스에서 본전시 기간 동안 열린다. 창설 30주년을 맞는 (재)광주비엔날레(대표이사 박양우)는 베니스 현지에서 30년 역사를 환기하고 광주정신을 조망하며 지속가능한 인류 공동체의 미래를 그려보는 광주비엔날레 30주년 기념 아카이브 특별전 ‘마당-우리가 되는 곳(Madang- Where We Become Us)’을 연다.

유영국미술문화재단(이사장 유진)은 한국 1세대 모더니스트이자 한국 추상 미술의 선구자, 유영국의 특별전 ‘유영국: 무한 세계로의 여정(A Journey to the Infinite: YOO YOUNGKUK)’에서 한국의 자연, 특히 산에 몰두했던 시기인 1960-70년대 작품을 포함한 유화, 판화, 드로잉, 아카이브 자료를 선보인다.

1995년 한국관 개관 기념 행사, '곽훈 겁소리 - 마르코 폴로가 가져오지 못한 것' 퍼포먼스 이미지.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근현대미술연구재단(이사장 박명자) 역시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되는 이성자의 개인전 ‘이성자: 지구 저편으로(Seundja Rhee: Towards the Antipodes)’를 열어, 60년 화업 전반에 걸쳐 동양의 철학적 세계관인 ‘음양오행’의 개념을 뿌리로 삼은 이성자의 대표작 20여 점을 선보인다. 한솔문화재단은 빌모트재단과 함께 이배 작가의 개인전 ‘달집 태우기 ’를 열고, 우리나라 전통의례중 하나인 달집태우기에 대한 이배 작가의 오마주와 탐구를 보여준다.

그 외에도 베니스비엔날레 기간에 이승택(2017), 이강소(2019), 이건용(2022) 등 한국 현대실험미술사의 거장들의 대표작을 소개해 온 갤러리현대는 올해 신성희(1948-2009)의 개인전을 열고 ‘박음 회화(꾸띠하주)’ 연작(1993-97)과 ‘엮음 회화(누아주)’ 연작(1997-2009)을 집중적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또한, 한국과 국제 무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현장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다국적 작가공동체 ‘나인드래곤헤즈(Nine Dragon Heads)’(대표 박병욱, 커미셔너 김찬동)는 베니스비엔날레 기간 중 ‘노마딕 파티(Nomadic Party)’를 주제로 전시와 컨퍼런스를 연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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