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7호 김응구⁄ 2024.03.11 13:27:15
맥주 거품이 최대한 적게 생기도록 잔을 기울여 받던 때가 있었다. 거품 높이가 2㎝쯤은 돼야 따르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만족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웃음 나는 시절이다.
맥주는 거품이 중요하다. ‘임무’가 막중하기 때문이다. 먼저, ‘방어막’ 역할을 한다. 맥주가 외부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해 맛의 변질을 막는다. 맥주를 마시는 동안 잠시 잠깐이라도 산화(酸化)되지 않게끔 하는 것이다. 또 맥주의 탄산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시간을 지연시킨다. 더불어 맥주마다 특유의 향이 있는데, 이를 계속 가둬두는 역할도 한다.
이른 봄 날씨에 맥주를 찾는 소비자가 점점 늘고 있다. 자연스럽게 맥주 거품에 관심을 갖는 애주가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최근 유튜브나 숏폼 등 소셜미디어(SNS)에는 맥주 거품을 더욱 풍성하게 즐기는 팁이나 맥주 거품으로 유명한 제품을 소개하는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 연남동의 한 맥줏집에서 만난 서도영(22) 씨는 “부드러운 거품을 먼저 접하고 맥주를 마시면 전체적인 풍미가 느껴진다”며 “첫맛부터 끝맛까지 차례로 느낀다고 했을 때 첫맛에 해당하는 맥주 거품은 내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맥주 제조·수입사들 간 거품 경쟁도 본격화하고 있다. 맥주 거품을 강조한 제품을 출시하거나 관련 마케팅을 좀 더 강화하는 추세다. 지난해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도 품귀 현상을 빚었던 일본 아사히의 생맥주 캔은 올해도 한국 시장을 공략한다. 국내 맥주도 가만있지 않는다. 국내 수제맥주 1세대 업체와 ‘1등 맥주’ 회사는 올해 맥주 거품 마케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캔 뚜껑 전체가 열리는 ‘아사히 쇼쿠사이’ 한정 출시
롯데아사히주류는 지난해 ‘광풍’을 일으켰던 ‘아사히 슈퍼드라이 생맥주 캔’의 후속 제품인 ‘아사히 쇼쿠사이(食彩)’를 5일 국내에 한정 수량 출시했다.
아사히 슈퍼드라이 생맥주 캔은 풀오픈탭(캔 뚜껑 전체가 열리는 제품) 방식을 적용해 화제가 됐다. 캔을 따면 부드러운 생맥주 거품이 넘치듯 올라온다. 아사히 쇼쿠사이 역시 캔을 따는 순간 솟아오르는 거품과 향을 즐기는 프리미엄 맥주다. 일본에선 지난해 7월 출시됐다.
9가지 프리미엄 몰트로 양조한 ‘로얄 스타우트’
국내 수제맥주 1세대 카브루는 아홉 가지 프리미엄 몰트(malt)로 양조한 ‘로얄 스타우트’를 지난달 7일 출시했다.
영국의 클래식한 맥주 스타일 중 하나인 스타우트에 홉(hop)과 몰트의 캐릭터를 더욱 강조한 임페리얼 스타우트 타입의 맥주다. 알코올도수는 8도로 비교적 높은 편이다.
제품명 로얄(황실·왕실)에 맞춰 패키지에는 엔틱하고 화려한 분위기의 왕관과 패턴 문양을 입혔다. 전국 GS25 편의점에서 판매한다.
출시 직후 SNS를 중심으로 젊은 세대 사이에서 풍성한 거품 인증샷과 함께 ‘꼭 먹어봐야 하는 편의점 신상 맥주’로 입소문을 타며 흑맥주 마니아들의 관심을 듬뿍 받았다.
카브루 관계자는 “국내 1세대 수제맥주 기업으로서 소비자가 보다 친숙하게 다양한 타입의 맥주를 즐기도록 로얄 스타우트 출시를 기획했다”며 “전통적인 임페리얼 스타우트의 농후한 맛을 선보이고자 기교 없이 아홉 가지 100% 올 몰트만 사용하는 등 레시피 개발에 힘을 쏟았다”고 말했다.
‘환상거품’으로 더욱 부드러워진 ‘한맥’
오비맥주는 ‘한맥’으로 거품 경쟁에 뛰어들었다. 일찍이 한맥을 상징하는 신조어 ‘환상거품’과 ‘대한민국을 더 부드럽게’라는 슬로건도 만들었다. 지난해 8월에는 가수이자 배우인 수지를 광고모델로 선정하고 ‘환상거품’ 캠페인을 함께하고 있다.
한맥은 오비맥주가 한국인의 입맛에 가장 잘 맞는 라거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담아 2021년 선보인 맥주다. 지난해 3월에는 부드러운 거품을 오랫동안 느끼도록 거품 지속력을 대폭 향상시킨 리뉴얼 한맥을 새롭게 선보였다. 오비맥주 측에 따르면 4단계 미세 여과 과정을 통해 부드러움을 방해하는 요소를 걸러내고 최상의 주질(酒質)을 구현해내 부드러운 목 넘김을 극대화했다.
시각과 촉각으로도 부드러움을 강조했다. 병과 캔 제품 패키지 상단에는 흰색 띠를 둘러 부드럽고 풍성한 거품을 표현했다. 라벨 중앙의 엠블럼에는 한옥 창문 모양의 전통 문양을 그려 넣었는데, 이는 ‘부드러운 세계’로 이어주는 창문을 상징한다. 아울러 소비자가 촉각으로도 부드러움을 느끼도록 캔 재질을 매트(mat)한 소재로 변경했다.
오비맥주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스무스 헤드 리추얼’이라는 한맥만의 특별한 음용 방법과 한맥 전용 잔도 새롭게 선보였다. 이 음용법은 거품을 더 봉긋하고 오래 유지되도록 돕는다. 전용 잔은 두 번의 부드러움을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시각부터 부드러움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지난해 가을에는 가상옥외광고(FOOH)로 또 한 번 화제를 모았다. 거대한 오리 모양의 맥주 거품이 맥주 캔을 등에 업고 석촌호수 위를 떠다니거나 광고판에서 맥주 거품이 흘러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한맥의 ‘환상거품’이 서울 곳곳을 덮는 연출로 이색적인 브랜드 경험을 전달했다.
지난해 말에는 한맥의 ‘환상거품’을 전면에 내세운 팝업스토어 ‘거품도원(桃源)’을 운영했다. 11월 6~12일에는 서울 강남 코엑스 메가박스, 17~26일에는 여의도 IFC몰, 이어 12월 1~3일에는 스타필드 하남, 8~10일에는 스타필드 고양에서 진행했다.
인테리어는 무릉도원 콘셉트에 맞게 꾸몄다. 역시나 환상적이고 부드러운 거품에서 힌트를 얻었다. 무엇보다 신전(神殿)을 연상케 하는 감각적인 연출이 돋보였는데, 그에 맞게 몽환적인 구름 포토존이 눈에 먼저 들어오도록 만들었다. 그렇듯 시각과 촉각으로 부드러움을 잔뜩 느끼도록 했다.
팝업스토어에선 한맥 더블 드래프트 생맥주 체험존이 가장 인기였다. 거품 양이 20~30%가량으로 부드러운 한맥 버전, 거품 양을 반으로 늘린 반반 버전, 90%로 대폭 늘려 밀도 높은 거품을 자랑하는 도원 버전 등 다양한 버전을 선보였다.
한맥 브랜드 매니저는 “앞으로도 한맥의 부드러움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선보이면서 소비자와의 접점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