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3호 김응구⁄ 2024.11.04 16:52:27
아쎔은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으로 왔다. 물론 공부하기 위해서다. 온 지는 한 달 반 정도다. 고향에 있을 때 K-팝에 빠진 그는 독학으로 한국어를 익혔다. 지금은 한국인과의 대화에 전혀 무리가 없다. 한국에선 친구도 많이 생겼다. 동향(同鄕)의 다리나, 세르비아의 라키도 있다. 셋 모두 동국대생이다. 그리고 같은 취미를 공유한다. K-팝 댄스다.
이들이 지난 10월 16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명동 아트브리즈’를 찾았다. 이날 이곳 5층 댄스 스튜디오에선 K-팝 댄스 강습이 열렸다. 매주 수요일 이 시간이면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 강사 두 명이 외국인 친구들에게 K-팝 댄스를 가르쳐준다. 참가비는 무료.
이날에는 모두 열네 명의 외국인이 참석했다. 처음 몸풀기부터 본격적인 강습, 이어 조별 복습 댄스까지 한 시간 30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생각보다 강습 수준이 높아서 놀랐고, 생각 이상으로 잘 따라 해서 두 번 놀랐다.
강습이 모두 끝난 후 아쎔에게 물었다. “오늘 처음 온 게 맞나요? 생각보다 잘 춰요.” 그는 활짝 웃었다. 이어 빤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어땠어요, 만족하나요?” 아쎔은 한 단어, 한 문장을 또박또박 말했다. “케이팝 커버댄스를 무료로 배울 수 있다고 해서 와봤는데, 진짜 재밌어요. 처음 몸풀기부터 케이팝 댄스까지 아주 디테일하게 가르쳐줘서 대단히 만족했어요.”
고향에 K-팝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냐고 물으니 “엄청 많다”고 했다. 다리나는 옆에서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친구의 말을 거들었다. 이날 유일한 남성 참가자였던 라키 역시 “세르비아에서도 K-팝 열풍이 대단하다”고 말해줬다.
김길성 중구청장은 일본 출장길에서 재미난 경험을 했다. 도심 한가운데 꽤 긴 줄이 늘어서 있어 유심히 살펴봤더니 K-팝 댄스를 배우려는 사람들이란 걸 알았다. 순간, 서울 중구에도 이런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더불어 한국의 대중문화예술을 전 세계인들에게 선보이는 공간이 있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K-컬쳐 복합문화공간 ‘명동 아트브리즈’
‘명동 아트브리즈(ArtBreeze)’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김길성 구청장의 아이디어는 현실이 됐고, 주민과 외국인은 반겼다. 중구의 슬로건인 ‘내편 중구’는 ‘세계편 중구’가 되기 시작했다.
명동 아트브리즈는 주한중국대사관과 한국한성화교소학교 바로 앞, KT 부지 특별계획구역 세부개발계획으로 기부채납 받은 건물을 활용했다. 지하 3층부터 지상 6층까지 연면적 1629.77㎡ 규모로 지난해 11월 28일 문을 열었다.
이곳은 유튜브 스튜디오, 소규모 공연장, 갤러리, 댄스 스튜디오, 강의실 등을 갖춰놓았다. 여기서 민화(民畵), 서예, K-팝 댄스, 요가, 유튜브 강의 등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한다. 1~2층은 휴게 공간으로 적당한 로비와 카페도 있다.
김길성 중구청장은 “해외에서 K-팝, K-드라마, K-영화 등 한국 문화의 관심이 뜨거운 가운데 명동을 방문한 관광객이 관광·쇼핑과 더불어 한국 문화까지 체험하게 됐다”며 “외국인 관광객이 다양한 즐거움을 누리도록 앞으로도 새로운 매력을 더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K-팝 댄스를 소개했지만, 명동 아트브리즈의 유명 메이크업 아티스트 뷰티 특강도 깨나 유명한 프로그램이다. 지역주민과 직장인들에겐 서예, 캘리그라피, 민화, 요가 프로그램도 인기다.
참고로 중구에는 이곳 외에도 K-컬쳐 체험관이 여러 군데 있다. 뷰티 복합문화공간인 ‘뷰티플레이’(명동)와 ‘비더비’(DDP), K-팝 뮤직비디오 연출 등 다양한 콘텐트의 ‘하이커그라운드’(청계천)가 한국의 일상을 즐기려는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명동’으로 K-시리즈 마침표 찍는다
이제 ‘K-시티’를 얘기할 차례다.
명동이 달라진다. ‘국뽕’ 조금 보태서 뉴욕 타임스스퀘어(Times Square)만큼 화려해진다. 어쩜 K-시리즈의 마침표일지도 모른다.
서울의 중심 명동이 ‘명동스퀘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변신한다. 서울의 랜드마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랜드마크로 발돋움할 준비를 마쳤다.
중구는 명동을 뒤바꿀 준비를 지난해 6월 시작했다. 같은 달 행정안전부의 ‘제2기 옥외광고물 자유표시구역’ 지정 공모에 통과하면서다. 이어 12월 28일에는 명동이 최종 선정됐다. 무슨 말인지 쉽게 설명해본다. 옥외광고물 자유표시구역에 선정되면 거리 전광판의 모양과 크기를 자유롭게 만들어 설치할 수 있다. 앞으로 명동 일대의 대형전광판, 미디어폴, 팔로잉 미디어에선 매일 밤 빛잔치가 펼쳐지고, 사람들은 이를 보며 환호할 일만 남았다는 얘기다.
지난 5월에는 옥외광고물 자유표시구역의 새 이름으로 ‘명동스퀘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명동스퀘어의 영어단어 맨 앞 ‘M’과 4개의 고유 색인 C(시안), M(마젠타), Y(노랑), K(검정)를 조합한 BI(브랜드 아이덴티티)도 개발했다.
명동스퀘어는 올해부터 2033년까지 10년간 3단계에 걸쳐 건물 LED(발광다이오드) 전광판 16개와 거리 미디어 80기를 설치한다.
중구 관계자는 “명동스퀘어는 옥외광고물 사업의 패러다임을 다시 쓰는 거대한 프로젝트”라며 “10년간 추진할 명동스퀘어 사업이 경제·문화·예술·관광 분야에 미칠 파급효과는 매우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구 측은 10년간 1700억 원을 투자하면 이후 연 500억 원의 수익이 생길 것으로 예측했다. 이 경우 수익 일부는 기금으로 조성하고, 아울러 안전·도로정비·행사·청소 등 명동의 인프라 조성과 상권 활성화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계획이다. 중구는 무엇보다 문화관광에 미칠 효과가 클 것으로 전망했다. 관광 거점인 명동을 시작으로 남대문, 서울역, 남산, ‘힙지로’(힙한 을지로), ‘힙당동’(힙한 신당동),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까지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면 체류 시간은 길어지기 때문이다.
김길성 중구청장은 “명동스퀘어는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명성을 능가하는 압도감과 몰입감으로 전 세계인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등극할 것”이라고 말했다.
12월 31일 새해 카운트다운은 명동에서
올해부터는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도 새해 카운트다운을 한다. 매년 12월 31일에 맞춰 뉴욕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물론, 굳이 가겠다는 걸 억지로 막을 순 없겠다.
올 12월 31일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에선 디지털 사이니지를 활용한 연말 카운트다운 행사가 열린다. ‘K-시티’에 걸맞게 K-팝가수 공연과 2025년 새해 카운트다운을 진행하고, 이는 KBS가 생중계할 예정이다. KBS 유튜브와 KBS 월드채널을 통해서도 전 세계 117개국에 동시 송출한다.
11월 1일 저녁에는 서울중앙우체국 공개공지에서 옥외광고물 자유표시구역 1호인 신세계백화점 본관 전광판을 점등(點燈)했다. 이어 명동스퀘어 소개와 점등 퍼포먼스, 신세계백화점·중구·서울시·국가유산청 미디어 영상을 차례로 보여줬다. 신세계백화점은 농구코트 3개 크기로 조성한 전광판을 통해 매일 새벽 6시부터 자정까지 백화점 테마 영상과 공익광고 등을 상영할 계획이다.
중구는 중구민들에게 명동스퀘어를 알리고자 11월부터 문화해설사가 함께하는 투어도 진행한다. 연말까지 주 2~3회 열리며, 한 회당 1시간가량 걸린다. 이를 통해 제일은행 야간경관, 신세계백화점 본관 대형전광판, 명동 아트브리즈, 롯데영플라자 미디어파사드, 롯데백화점 야간경관 등 주요 조망 장소 5곳을 둘러보며 미리 명동스퀘어와 만난다.
‘K-팝’ ‘K-푸드’ ‘K-드라마’ ‘K-무비’ ‘K-뷰티’ ‘K-패션’… 모두가 ‘수출 역군’이다. 그 와중에 명동은 외국인을 불러들인다. ‘K-시리즈’를 한곳에서 모두 즐길 수 있으니 이만한 곳도 없다.
어쩜 외국인은 대한민국의 첫인상을 명동에서 느낄지도 모르겠다. 외국인 관광객의 77%가 명동을 방문한다니 말이다. 그만큼 명동은 서울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소비 도시다.
첫인상이 좋으면 그 이미지는 오래 간다. 도시의 첫인상이 좋으면 내외국인 관광객은 계속 찾는다. 중구는 판을 크게 벌였다. 이제 잘 만들고 다듬기만 하면 된다. 걱정은 크지 않다. 이게 중구가 가장 잘하는 일이니까. 가장 좋아하는 일이니까.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