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은⁄ 2024.12.24 11:59:34
여기, 전 세계 시장에서 통용되는 하나의 디지털 지갑이 있다. 이 지갑에 현금을 넣으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글로벌 통화 간 전환을 비롯해 외화 결제 및 인출이 실시간으로 가능하다. 외화 환전, 결제 및 인출에 따른 수수료는 없다.
이 지갑과 연결된 ‘트래블로그 카드’는 전 세계 시장에서 현금(체크) 및 신용 결제가 하나의 카드 만으로 가능하다. 앱상에서 내가 원하는 결제 방식만 선택하면 된다. 현금 결제이건 신용 결제이건 결제 이력은 모두 하나의 지갑 속에 자동 기록되며, 여행 이후 기록(Log) 분석 리포트도 발간된다.
무엇보다 이 지갑은 하나은행뿐만 아니라 타사의 모든 계좌가 연동되는 오픈뱅킹 방식을 취했다. 즉, 하나은행의 계좌 없이도 지갑을 만들고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금융사의 수익 성장에서 본질적 요소는 계좌 개설 이력 아닌 고객의 자금이 융통되고 모이도록 하는 기반을 설계하는 것임을 꿰뚫은 전략이다. 그 과정에서 유입되는 고객과 융통된 자금이 금융사 전체의 성장 기반이 될 수 있다.
이는 하나카드가 구축해 온 트래블로그 카드의 운영 방식이다. 트래블로그는 무료 환전 혜택을 넘어 플랫폼 운영의 첫 단추부터 차별화된 전략을 꾀했다. 초기 시장 선점은 ‘환전 수수료 등 3대 수수료 무료’ 정책으로 소비자의 불편 해소를 타겟팅하되, 그 성장 기반은 디지털 네이티브에 따른 차별화에 둔 것이다.
트래블로그의 성공 이후, 하나카드는 견조한 성장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하나카드는 올해 3분기 기준 누적 당기순이익이 1년 전보다 44.5% 증가한 1,844억 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분기 순이익은 678억 원으로 지난해 동기 548억 원 대비 23.7% 늘며, 지난해 3분기부터 올해 3분기까지 5개 분기 연속 전년 대비 실적 성장을 잇고 있다.
혹자는 하나카드 트래블로그의 폭발적 성장 이후 이 성공을 필두로 한 미래 확장성을 묻는다. 특히, 체크카드 중심의 성장으로 회사가 수취하는 결제수수료 수익은 신용카드 등에 비해 낮다는 점 등이 대표적이다. 그 답은 하나카드가 구축해 온 성장 기반의 차별성, 즉 디지털 차별화 전략에서 찾을 수 있다.
트래블로그의 등장 이후 경쟁이 격화되는 트래블카드 시장에서 하나카드의 시장 차별화 전략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김충영 하나카드 트래블로그부 차장에게 들어본다.
- 해외여행 카드의 선두 주자로 '트래블로그' 가입자 수가 700만 명을 돌파했다. 기획자가 평가하는 가파른 성장 동력은 무엇인가?
"트래블로그 카드가 초기 시장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무료 환전(환율 100% 우대), 해외 가맹점 이용 수수료 무료, 해외 ATM 매출 수수료 무료’라는 3대 혜택 덕분이었다. 무료 환전의 경우 당시 어떤 금융사에서도 제공하지 않았던 혜택이었으며, 3대 혜택을 모두 결합한 사례 역시 트래블로그 카드가 최초다.
여기에 트래블로그 카드는 "여행의 경험을 바꾸다"라는 슬로건 아래, 기존 여행 준비 과정에서 유일하게 오프라인에 머물던 환전 프로세스를 디지털화했다. 과거에는 온라인으로 항공에서 액티비티까지 예약을 하더라도, 환전만큼은 은행 방문이나 공항 환전 등 오프라인을 통해 준비해야 했다. 하지만, 트래블로그 서비스 등장 이후 소비자들은 항공 예약부터 환전까지 여행 준비의 모든 과정을 온라인으로 완비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요소들이 경제·여행 관련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서 회자되기 시작하며 트래블로그 카드가 많은 잠재 고객에게 노출되었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바이럴 효과가 발생했다. 여기에 5대 금융그룹을 포함한 많은 카드사들이 유사한 트래블 카드를 출시하며, 관련 시장이 더욱 활성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3대 혜택을 갖춘 트래블 카드의 도입 이후 소비자들의 인식이 변화하며, 해외 결제 시 발생하는 수수료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졌다. 과거에는 해외에서 발생하는 수수료를 당연한 비용으로 받아들였지만, 이제는 이러한 수수료가 상당히 크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특정 카드 혜택을 넘어, 해외 결제 시장의 비용 부담에 있어 새로운 기준을 형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환전 및 결제 서비스와 같은 트래블 카드의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은행과 카드사 등 협업이 필수적인데 하나금융의 그룹사 간 협업 체계는 어떻게 구축됐나?
"'트래블로그'의 환전과 결제 서비스는 하나머니라는 포인트 제도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하나머니는 하나금융그룹의 '하나 멤버스'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이는 2015년 10월 김정태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 재임 시기에 그룹 내 6개 관계사를 통합해 도입한 로열티 프로그램이다. 계열사 간 시너지를 창출하고 고객 혜택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된 이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운영하며 그룹 내 관계사 간 협업 문화가 강화돼 왔다.
이 같은 기반 위에서 약 3~4년 전 하나 멤버스가 '하나머니'로 리뉴얼됐고, ‘여행’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서비스 범위와 접근성을 확대한 결과물이 ‘트래블로그’ 서비스다."
- 금융사가 ‘여행’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하게 된 계기와 그 효과는?
"코로나 이전부터 금융업계의 공통 과제는 MZ세대의 고객화 방안이었다. 초기 하나 멤버스 프로그램 역시 은행 적금, 카드, 여행자 보험 가입 등 금융 서비스 이용 고객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소득과 소비력이 있는 중장년층 남성의 비중이 높았다.
하나카드는 MZ세대 유입을 위해 대학교를 타겟으로 한 학생증 카드나 MZ 적금 및 보험과 같은 금융 상품 중심이 아닌 ‘여행'이라는 친근한 소재를 앞세워 고객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자 했다. 외환 전문 은행과 글로벌 결제망을 갖춘 회사의 차별점 역시 이러한 전략을 뒷받침했다.
여행은 세대를 불문하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다. 이 키워드를 통해 금융이라는 딱딱한 이미지를 여행 콘텐츠로 대체함으로써 경험을 중시하는 MZ세대의 자연스러운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 결과, 트래블로그 서비스 출시 이후 신규 가입 고객 중 20~40대 여성 고객의 비중이 높아지며 고객 구성에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 트래블로그는 2019년 혁신 금융 서비스로 선정된 ‘은행 계좌가 필요 없는 포인트 기반의 체크카드’로 탄생한 서비스다. 현재도 신규 혁신 금융 서비스를 내놓으며 지속적인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데, 무엇이 경쟁사와 차별화되고 있나?
"경쟁사들은 대부분 외화 계좌 기반으로 운영하고 있어 고객이 별도의 외화 계좌를 개설해야 한다. 이 같은 형태는 운영 주체가 은행에 있기 때문에 신상품이나 신규 서비스 도입 등 외부에서 요구하는 변화에 시스템이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려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본다.
트래블로그 서비스는 금융 앱과 별도로 분리된 앱을 구축한 것을 비롯해, 은행 계좌가 필요 없는 포인트 기반의 결제 시스템 등 초기 세팅에서 차이가 있다. 이를 기반으로 운영 효율화와 함께, 신상품 출시나 서비스 고도화에 있어 빠른 대응이 가능하다는 차별점을 갖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트래블로그 카드로 결제 시 앱으로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결제 모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거나, 해외에서 앱을 구동할 경우 데이터 사용을 최소화하며 빠른 대응이 가능하도록 ‘해외여행’ 모드를 도입한 것 등이다.
나아가 트래블로그는 올해 혁신 금융 서비스로 선정된 외화 선물하기 기능을 추가 도입했다. 여행 중 동반자와의 지출을 1/N로 정산할 경우, 원화로 환전 후 송금할 필요 없이 외화로 직접 송금함으로써 환차익 문제를 해결하고 금액을 실시간으로 쉽게 분배할 수 있도록 한 기능이다. 이는 자녀의 단기 어학연수 등 다양한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하나카드는 업계에서 유일하게 각 통화별 외화 보유 한도를 200만 원에서 300만 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트래블로그는 고객이 58종의 통화를 동시에 보유하고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어, 각 통화별로 최대 300만 원을 충전하는 경우 총합 기준 최대 1억 1,400만 원까지 보관하며 전 세계 시장에서 활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카드는 비자(Visa), 마스터(Master), 유니언페이(UPI)를 모두 갖춘 국내 유일의 국제 브랜드 카드 라인업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하나의 디지털 지갑에 모든 카드가 연결되는 개념으로, 각 브랜드별 혜택을 고려해 해외에서 필요에 따라 어떤 카드를 사용하든 결제 금액이 하나의 지갑 내에서 인출 및 통합 관리된다."
트래블로그의 다음 전략은 ‘합리성 쫓는 고객 증대’
여행 너머 해외 결제 시장 넘본다
- 해외 체크카드를 중심으로 성장한 기반을 신용카드 해외 결제나 국내 사용 실적 등으로 확대할 전략은 무엇인가?
"트래블로그 체크카드는 해외 결제 시 발생하는 3대 수수료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며 시장 성장이 가속화됐다. 이렇듯, 합리적 소비를 중시하는 고객을 중심으로 여행 이외의 해외 결제 방식 역시 점진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이를 위해 소비 패턴에 맞춘 라인업 다변화와 서비스 차별화에 집중하고 있다.
먼저, 해외 결제의 합리성 측면에서 국내에서 트래블로그 체크카드로 해외 직구를 이용할 경우, 미리 환전한 금액을 사용해 더 유리한 환율로 결제가 가능하다. 환전 수수료를 비롯해 신용 결제 시 발생하는 약 1.2~1.6%의 해외서비스 수수료도 청구되지 않아 비용 절감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직구 시장에서 300만 원의 명품 가방을 달러로 구매할 경우 환전 수수료와 해외서비스 수수료 등을 감안하면 최소 7만 7,000원가량의 비용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서비스 측면에서는 소비자들이 해외 결제에서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앱에서 버튼 하나로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간의 결제 방식을 전환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하나의 신용카드 내에서 고가 상품 구매나 할부 구매가 필요할 경우 신용카드 모드를 선택하거나, 비용 효율성을 중시하는 경우 체크카드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체크카드 모드에서는 내 지갑 안에 잔액이 없더라도 연동된 은행 계좌의 잔액이 있다면 실시간으로 자동 충전되며, 매매 기준 환율에 따라 무료 환전 결제가 가능하다. 이를 통해 해외 결제 미승인을 방지하는 등 사용자 경험을 개선했다.
나아가 신용카드로 국내 결제에서 적립한 포인트를 환전하여 해외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해 국내 소비 시장을 함께 타겟하기 시작했다. 최근 출시된 트래블로그 카카오페이는 간편 결제와 외환 결제의 장점을 결합한 상품이다. 국내에서는 카카오페이를 통해 간편 결제 서비스를 활용하고, 해외에서는 트래블로그 외환 결제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기획한 상품이다."
- 카드 업계의 외화 결제 및 송금 서비스 확대가 은행의 전통적인 환전 서비스를 대체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에 대한 의견은?
"은행 입장에서는 기존의 환전 고객들이 카드 업계로 넘어가는 것이 아닌지 우려할 수 있다. 하지만 고객 환전 데이터를 분석해 본 결과, 카드사는 은행의 환전 시장을 대체하기보다는 보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전 고객을 시간대별로 분석한 결과, 평일 은행 영업시간 내에 이루어지는 환전 비중은 35% 수준이다. 이에 비해 영업 전인 0시부터 9시까지 환전이 이루어지는 비율은 15%, 영업 종료 후인 4시부터 12시까지는 30%로 나타났다. 또한, 은행이 문을 열지 않는 휴일에 이루어지는 환전은 20%의 비중을 기록했다.
이는 고객들이 은행 영업시간 외에도 다양한 외화 결제 및 송금 요구에 따른 환전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카드 업계는 이 같이 기존의 미비했던 역할을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고객들은 여행을 가기 전뿐만 아니라 현지에서도 환전의 필요성을 느낀다. 카드 업계의 외화 결제 서비스는 이처럼 여행 중에 발생하는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며, 고객의 장기적인 로열티를 증진시킨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평가한다."
- ‘3대 수수료 무료 전략’을 내세운 트래블로그의 주요 수익 창출 모델은 무엇인가?
"하나머니의 누적 환전액이 최근 3조 원을 돌파했다. 회사에 유입돼 누적된 금액은 회사의 성장성을 평가하는 재무적 자산 지표로서 기여하고 있다.
트래블로그 서비스는 가맹점 수취 수수료나 외환 차익 등에 의한 수익 비중은 낮은 편이나, 다양한 연계 서비스와 데이터 활용 전략을 통해 부가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우선 환전 고객 데이터를 바탕으로 여행자 보험과 같은 부가 서비스 매출이 확대되며 그룹사 간 시너지가 확대되고 있다. 트래블로그는 하나손해보험과 협업해 기존보다 저렴한 가격에 보장 범위를 확대한 여행자 보험 상품을 신규 출시했다. 이 상품 판매 이후 6% 미만이었던 하나손보 내 여행자 보험 계약 비중이 현재 4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또한, 최근 하나카드는 각각 파편화돼 있던 여행 관련 서비스를 하나의 생태계로 통합한 '트래블 버킷' 서비스를 선보였다. 이 서비스는 항공, 숙박, 액티비티, 환전 등 여행 준비의 모든 단계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제공하며, 트래블로그 카드를 기반으로 할인 혜택 등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획했다.
이 밖에도 트래블로그는 결제 데이터를 활용해 고객의 여행 패턴과 선호도를 파악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해외에서 자주 방문하는 식당이나 장소를 기반으로 마케팅을 진행하거나, 관련 서비스를 추천하는 등 데이터 중심의 고객 맞춤형 전략을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나카드는 이달 5일, 트래블로그 고객의 빅데이터를 분석해 여행 동선에 따른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고, 여행중에도 24시간 실시간 상담이 가능한 AI 기반 대화형 챗봇 서비스 ‘트래블 챗봇’을 오픈했다.
이처럼 트래블로그 서비스에 최적화 된 하나금융의 디지털 기반과 지속적인 혁신을 거듭하는 운영 모델은 경쟁사와의 격차를 가속화 할 근간이 되고 있다. 하나카드 관계자는 "향후 상담 데이터를 업데이트 하고 여행지별 맞춤 정보를 제공해 해외여행 전문 상담 챗봇으로 다양한 기능을 고도화 하겠다"며, "혁신적인 서비스로 대한민국 대표 해외여행 서비스로 자리매김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