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호⁄ 2025.01.20 17:17:37
2025년 준예산 사태를 맞은 서울 서대문구가 어르신일자리, 보훈예우수당, 학교급식, 취약계층 설 명절 지원 등 25개 사업에 298억 원을 우선 집행하기로 했다.
이성헌 서대문구청장은 20일 서울시청 브리핑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주민 복리증진과 피해 최소화를 위해 지방자치법 제122조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부여된 선결처분권을 긴급 시행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선결처분은 지자체장이 지방의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고 우선 시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서대문구는 중단 또는 지연됐던 어르신일자리사업과 동행일자리사업, 지역공동체 일자리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또한 보훈예우수당, 감염병 예방을 위한 예산, 고위험 임산부 의료비, 학교급식 지원을 위한 예산도 집행한다. 아울러 장애인 재활치료, 학교밖청소년 사회진입 및 학업복귀 지원, 위기청소년 생활 및 자립 지원을 위한 예산도 선결 지급한다.
다만 서대문구의회에서 재적의원(15명)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승인을 받지 못하면 선결처분 효력은 그때부터 상실한다.
이와 관련해 서대문구는 구의회가 여소야대(더불어민주당 8명, 국민의힘 5명, 개혁신당 1명, 무소속 1명)인 상황이지만 선결처분 예산이 민생과 직결돼 있고 ‘보훈대상자 설 명절위문금’ 등 설 명절을 앞두고 집행해야 할 예산이 있는 만큼 구의회가 승인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편 서대문구의 준예산 체제는 서대문구의회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당초 구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여야 합의’로 확정했던 ‘2025년도 서대문구 예산안’을 같은 당 김영호 국회의원(서대문을)의 지시에 따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수정동의안을 기습으로 단독 처리(12/20)해 빚어졌다.
2025년 서대문구 예산안은 구의회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거쳐 여야 합의(12/17)로 사실상 확정된 상태였다. 예결위에서 여야 3당 원내대표와 김양희 구의회 의장(더불어민주당)이 참여한 가운데 17일 늦은 밤까지 어렵게 최종 합의안을 도출했으며 본회의(12/20) 의결만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 김영호 국회의원의 지시로 예산 합의안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민생과 무관하다’며 서대문구 미래세대의 역량개발과 지역발전을 위해 필요한 주요 사업을 일괄 삭감한 수정동의안을 절차를 위반한 채 기습 발의하고 더불어민주당 의결로 강행 처리(12/20)했다. 이후 법령을 위반한 이 예산안을 서대문구에 통보(12/23)했다.
서대문구의회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표적 삭감한 사업은 이성헌 구청장이 민선 8기 새롭게 시작해 성과를 내며 여론과 언론의 호평을 받은 ▲내외국인 170만 명이 방문하며 세계적 힐링 명소로 급부상한 ‘카페폭포 한류문화체험관’ 조성 사업비 10억 원 ▲주민 문화 예술 향유를 위한 ‘클래식 공연’ 예산 2억 9천만 원 ▲2024년 4개 전국대회를 모두 석권한 ‘서대문구청 여자농구단’ 운영비 8억 4천8백만 원 ▲홍제홍은역세권 활성화사업 사전 준비 설계용역비 11억 원 ▲직원 기숙사 매입비 14억 5천만 원 등이다. 특히 이들 사업예산을 ‘전액 삭감’한 것에는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읽힌다는 지적이다.
이에 서대문구청은 법령을 위반한 예산안 통보에 대해 즉각 재의 요구(12/24)를 했지만 서대문구의회가 거부함에 따라 2025년도 예산이 지난해 12월 31일까지 성립되지 않았다.
서대문구의회 기본조례 23조에 따르면 구청장이나 구의원 1/3 이상이 요구하면 구의회 임시회를 소집해야 한다. 12월 31일에 서대문구의회 국민의힘 의원 5명이 구의회 임시회 소집을 요구했지만 시행되지 않았다. 구청장 역시 1월 15일에 구의회 임시회 소집을 요구했으나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 같은 과정 속에서 서대문구는 지방자치법 제146조에 의거해 긴급히 준예산을 운영하게 됐다.
하지만 준예산은 전년도 예산 규모에 준해 ▲법령이나 조례에 의하여 설치된 기관 또는 시설의 유지·운영 ▲법령 또는 조례상 지출의무의 이행 ▲이미 예산으로 승인된 사업의 계속 등에 한해서만 집행이 가능해 ‘서대문구의회의 2025년 예산안 재의결’은 미룰 수 없는 시급한 사안이었다.
서대문구가 이달 2일과 8일에도 계속해서 ‘예산안 재의 요구에 대한 재의결을 신속히 처리해 줄 것’을 촉구해 왔지만 구의회 파행이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구는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설 명절과 맞물린 민생 피해 등이 우려되는 가운데 준예산 체제 장기화를 더 이상 놔둘 수 없어 부득이 선결처분을 긴급 시행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조치가 근본적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성헌 서대문구청장은 “주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부득이 선결처분에 이르렀지만 준예산 상황을 조기에 해소하고 민생 예산을 온전히 되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루속히 서대문구의회를 개의해 2025년 예산안을 정상 처리하는 방법뿐”이라며 “구민의 뜻과 여야의 합의를 바탕으로 예산 심의를 재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