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근 경제 성장을 얘기하고, 삼성반도체 등 특정 업체에 한해서는 주 52시간 노동제를 일부 ‘사내 합의를 조건으로’ 풀어주는 방안을 언급하며, 또한 주 4.5일 또는 4일제로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방안에 대해 국민의힘 당에서 강한 반발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전 대변인 윤희석 씨(서울대 경영학과, 인디애나대 MBA)가 11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나와 한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는 “우리가 주 4일제를 하면서 성장도 하는 그런 마법을 갖고 있다면 주 3일제는 왜 안 되겠어요? (중략) 제가 경제학, 경영학을 전공하고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런 건 없어요. 우리나라 현실에 우리가 지금 주 5일제 한 것이 2003년 7월 1일이에요. 그리고 20년 정도 지났는데 4.5일 하다가 4일을 한다. 유럽도 아닙니다. 유럽에서도 다시 지금 노동 시간이 늘어나고 있어요. 왜 그러냐, 그렇게 하면 못 사니까요. 그럼 이거를 알고 지금 하시는 말씀이냐. 이거 도대체 연설문 누가 썼는지 그분 좀 오셔서 제가 얘기 좀 하고 싶어요”라고 비판했다.
윤 전 대변인의 발언 중에서 특히 의문시되는 것은 ‘유럽에서도 다시 지금 노동 시간이 늘어나고 있어요. 왜 그러냐, 그렇게 하면 못 사니까요’라는 부분이다.
과연 독일, 프랑스 등 유럽 핵심 국가들의 노동 시간이 최근 증가 추세인지, 그리고 그 원인이 ‘못살게 돼서’인지에 대해서는 팩트체크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유럽 선진국들의 노동 시장에선 전국 단위의 노조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전체 노동자의 노동 시간을 늘리려면 대토론와 투쟁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확인되는 사항은, 최근 유럽 경제는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치고 나가는 미국과 중국을 바라보면서 “우린 어쩌나?” 하는 걱정에 빠져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국가 전체적 차원에서 노동 시간이 늘어나지는 않은 것 같다는 정도다.
독일은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노동 시간을 일하면서도 탄탄한 경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프랑스도 주 35시간 노동제를 계속 시행되고 있다.
단지, 점점 짧아지는 노동 시간에 대한 유럽 주요국 ‘정부들’의 고민은 확인된다. 관련 내용은 권위있는 경제지인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의 고용-노동 전문 기자인 델핀 스트로스가 작년 5월 28일에 쓴 칼럼에서 확인된다.
칼럼의 제목은 “유럽인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일하도록 설득하는 것은 요점을 놓치는 것일 수도 있다. 연구 결과는, 노동력 전체의 축소를 막는 방법으로는 일자리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조금씩 일하도록 돕는 것일 수 있다”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칼럼의 요지는, 최근 유럽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이 계속 크게 줄어드는 양상이기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노동 시간 단축이 노동력 부족을 악화시키고,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키며 성장을 억제하고, 복지 시스템에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를 내놓고 있지만, 그래도 유럽인들은 계속 ‘더 적게 일하면서도 자유 시간을 누리는’ 삶을 원하기 때문에 정책 당국이 노동 시간 전체를 늘리는 데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이다.
윤 전 대변인이 말한 ‘적게 일하면 못살게 된다’는 명제는, 당장 한국의 경험으로 봐도 틀린 말이다. 2003년 7월 1일 5일제를 시행하면서 토요일 노동을 없앤 한국은, 그 이후 지속적으로 못 살게 됐나? IMF 위기라는 굴절은 있었지만, 오히려 한국이 세계의 경제 강국으로 떠오른 것은 그 이후 아닌가?
그리고 오래 일하면 바로 경제 성장이 이뤄진다면, 유럽 국가 중 가장 노동 시간이 긴 그리스가 2010년대에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었고, 폴란드와 헝가리도 긴 노동 시간을 바탕으로 꾸준히 성장하고는 있지만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서는 여전히 생산성이 평균 이하이고(폴란드), 생활수준이 낮은(헝가리)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과거 산업 사회 시절처럼 ‘더 많이, 더 빠르게’ 생산 양식이 지배할 때는 국민이 ‘미친 듯이 일할수록’ 경제 성장에 유리했다는 점은, 일본과 한국의 예를 통해 잘 증명돼 있다.
하지만 최근 업무의 추세는 송길영 빅데이터 전문가가 책 ‘시대 예보: 핵개인의 시대’에서 썼듯, “앞으로 일을 잘하는 사람은 일을 열심히 하거나 숙련된 사람이 아니라, AI와 협업하여 일을 없애는 사람”이다.
여기서 ‘일을 없앤다’는 것의 의미는, 과거에는 사람이 직접 힘들여 했던 일들을, AI를 동원해 자동화시키고, 즉 AI에게 전적으로 맡겨 개인의 부담으로부터 없애버리고, 남는 시간에 종전에 없던 새롭고 유익한 일을 개발해내는 것을 말한다.
이런 신세대 능력자에게, 노동 시간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AI가 거의 모든 일을 처리하게 하고, 개인은 일주일에 단 한 시간만 일해도 창의-창조적이라면 막대한 성취를 이뤄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추세는 뛰어난 1%에게는 축복이지만, 평범한 99%에게는 재앙이 될 수 있다. 모든 일을 AI와 로봇이 해버리면, 99%의 지구인은 ‘지구를 떠나는’ 것 말고는 대책이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앞에서 파이낸셜 타임스의 칼럼이 전한 ‘유럽 노동 당국의 걱정’이 바로 이런 것이다. 전체적인 노동 시간의 단축, 즉 99%의 보통 사람들을 포함한 전체 인구의 노동 시간이 줄어드는 추세가 걱정되기에 ‘어떻게 전체 노동 시간을 늘릴까’ 걱정한다는 것이지, “노동 시간을 늘리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걱정한다는 것은 현실과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 같다.
노동 시간과 경제 성장에 대해서는 유럽 선진국의 풍부한 경험들이 이미 있다. “독일의 중소기업들은 경기가 나빠지면 임금 감소 없이 노동 시간을 줄이고 반대로 경기가 좋아지면 임금 상승 없이 노동 시간을 늘리는 ‘노동 시간 계좌제’를 활용해 안정적으로 고숙련 노동력 기반을 유지했고”(최배근 저 ‘어게인 쇼크’ 154쪽에서 인용), 네덜란드는 “주 5일 노동을 4일로 전환할 경우 노동시간은 줄지만 일의 양은 그대로인 경우가 많아서 회사는 같은 임금으로 더 많은 일을 시키는 셈이고, 노동자들은 짧은 시간에 일을 더 집중해서 한다. 회사 전체로 보면 15~20%의 생산성 증대 효과를 봤고, 연장 노동에 대한 초과수당 부담이 없는 것도 기업에 유리했다. 임금 삭감 형 고용 유지”(곽정수 저 ‘재벌들의 밥그릇’ 353쪽에서 인용)라는 효과를 거뒀다.
이런 경험들이 있고, 또 AI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일머리’가 개발되고 있는데, 낡은 명제인 ‘더 오래 일하지 않으면 망한다’를 들고나와, 이재명 대표의 ‘원칙을 지키되 경우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자’는 제안을 궤변인 것처럼 몰아붙이는 방식은, 지나치게 ‘정치적-당파적’ 아닌가.
결론으로, 이 대표의 최근 경제 정책 제안에 대해 “이랬다 저랬다 한다”는 비판에 대해 한 마디 하고 싶다. 이 대표처럼 ‘대동세상, 억강부약’이란 원칙을 확고히 정한 사람은 오히려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예외를 적용하는 데 자유롭다. ‘대동세상, 억강부약’이라는 대원칙에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작은 변칙은 허용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확고한 大원칙 자체가 없는 사람이나 당은, 원칙이 없으니 변칙도 없다. 원칙도 변칙도 없으니 성과 자체가 없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도대체 뭘 하겠다는 당인지 알 수가 없다”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