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지는 경기 불황과 고물가 속 ‘듀프(dupe)’가 소비자의 주목을 받고 있다. 듀프는 영어 단어 ‘Duplication(복제품)’에서 따온 말로, 고가 브랜드 대신 가성비 대체품을 찾는 소비 트렌드를 뜻한다. 이 듀프가 유통업계의 ‘먹거리’와 ‘꾸밀거리’도 차지했다.
‘편의점 먹거리’ 점령한 듀프 트렌드
최근 유통업계의 대세 키워드 중 하나는 ‘흑백요리사’다. 흑백요리사는 지난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요리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으로, 비영어권 시리즈 부문 3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그 열기는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듀프 트렌드와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흑백요리사가 흥행하자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건 편의점이었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GS25는 넷플릭스와 손잡고 흑백요리사 출연 셰프들과 공식 IP(지식재산권) 컬래버레이션 상품 ‘편수저 시리즈’를 출시했다.
구체적으로 전국에 이모카세(‘이모+오마카세’의 합성어) 열풍을 일으킨 ‘이모카세 1호’ 김미령 셰프의 ‘보쌈 수육’, ‘밑반찬 시리즈’, ‘프렌치토스트 샌드위치’ 등을 선보였다. ‘만찢남’ 조광효 셰프와는 ‘라즈지’와 ‘해물누룽지탕’을, ‘철가방요리사’ 임태훈 셰프와는 ‘마라샹궈’, ‘유산슬밥’ 등 중식 메뉴를 마련했다. 일식 다이닝 네기컴퍼니를 운영하는 ‘일식끝판왕’ 장호준 셰프는 ‘오뎅탕’, ‘소고기 대파 우동’ 등 일식 간편식을 내놓았다. 이후에도 순차적으로 신제품들을 선보였다.
CU는 흑백요리사 출연진인 나폴리 맛피아(권성준 셰프)의 레시피에 기반한 ‘밤 티라미수 컵’을 선보였다. 이마트24 또한 이경재 셰프, 최지형 셰프, 김도형 셰프 등과 협업 상품을 출시했다. 1월 말엔 고석헌 셰프와 손잡고 ▲고씨네고추장찌개정식 ▲고추장크림리조또 ▲양문비프버터치즈버거를 선보였다.
편의점에 이어 외식·식품업계도 관련 제품들을 출시했다. 롯데리아와 맘스터치는 각각 흑백요리사 우승자 권성준 셰프, 준우승자 에드워드 리 셰프와 손을 잡고 컬래버 제품을 출시했다.
흑백요리사 컬래버 제품들은 소비자의 호응을 얻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4분기 GS25의 흑백요리사 협업 상품은 200만 개가 팔렸고, 100억 원 매출 성과를 올렸다. CU가 선보인 밤 티라미수 디저트 2종 또한 누적 판매량 200만 개를 돌파했다. 이마트24가 지난해 이경재 셰프, 최지형 셰프, 김도형 셰프 등 셰프들과 협업해 선보인 상품들은 판매 기간 동안 해당 카테고리에서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다.
롯데리아가 권성준 셰프와 손잡고 1월 선보인 ‘나폴리맛피아 모짜렐라버거’ 2종은 출시 당일에만 목표 판매량의 약 230%를 달성하며 출시 일주일 만에 45만 개가 팔려나갔다. 롯데리아는 출시 후 일주일간 매출 300억 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 증가한 수치라는 설명이다.
맘스터치가 선보인 ‘에드워드 리 버거’ 2종도 흥행 중이다. 맘스터치에 따르면 해당 제품 판매를 진행한 매장의 일 평균 매출은 6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맘스터치는 “예상을 웃도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핵심 재료인 베이컨 잼 생산라인을 풀 가동 중”이라고 밝혔다.
가성비 더불어 셰프 레시피 적극 활용하며 경험 욕구 충족
이 제품들의 인기엔 듀프 트렌드가 잘 맞물렸다는 분석이다. 고물가, 고금리 속 외식 지출에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가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셰프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직접 가보지 않고도 요리를 가성비 있게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컬래버 상품들이 더욱 주목받았다는 것.
실제로 이마트24가 선보인 고석현 셰프와의 협업 상품은 2900원~5200원 대로 구성됐다. CU가 선보인 밤 티라미수 컵은 4900원이었고, GS25의 편수저 시리즈도 1만 원이 넘지 않는 합리적인 가격대로 구성됐다. 여기에 추가로 할인 이벤트까지 진행하기도 했다.
맘스터치의 에드워드 리 싸이버거·비프버거 단품은 각각 7800원, 8400원으로, 맘스터치의 대표 버거인 싸이버거 단품 가격(4900원)과 비교해서는 높지만, 특별 컬래버 제품이라는 점과 햄버거 프랜차이즈에서 1인이 평균적으로 주문하는 비용이 1만 700원(2023년, 6개 햄버거 프랜차이즈 브랜드 기준)이라는 점에 비추면 가성비를 갖췄다는 반응이다. 여기에 얼리버드 예약 시 할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또한 단순 가성비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셰프들의 레시피를 적극 활용하며 제품의 품질에 신경 써 듀프 소비자의 대체 경험 욕구도 충족시켰다는 분석이다. GS25가 선보인 편수저 시리즈는 흑백요리사 방송에서 심사위원들로부터 극찬을 받은 메뉴들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맘스터치의 제품은 에드워드 리의 특제 베이컨잼 소스를 제품의 킥(차별점)으로 활용했다. 여기에 에드워드 리 셰프는 국내에 레스토랑을 운영하지 않고 있어 그의 레시피를 간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에 더 많은 발길이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맘스터치 관계자는 “에드워드 리가 운영하는 미국 레스토랑에 직접 가기 어려워 아쉬워했던 고객이 특히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또한 에드워드 리는 이번 협업에 단순 모델로 활동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난 3개월 동안 직접 레시피 개발에 적극 참여했다. 이 또한 여타 컬래버와의 차별점”이라고 부연했다.
이마트24의 경우 고석현 셰프가 운영하는 음식점인 ‘고씨네 고추장찌개’의 대표 메뉴인 ‘고추장찌개’를 편의점의 찌개도시락과 리조또 상품으로 재해석하며 신선함을 더하기도 했다. ‘고씨네고추장찌개정식’은 삼겹살구이와 호박, 양파, 감자로 만든 고추장찌개를 메인으로 3가지 반찬(단무지무침, 어묵볶음, 계란말이)과 밥으로 구성됐다. ‘고추장크림리조또’도 고씨네 고추장찌개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상품이다. 고추장 크림 소스로 만든 리조또에 치즈를 더했는데, 특히 압력솥의 원리를 활용한 파우치 상품으로 만들었다.
‘양문비프버터치즈버거’는 고석현 셰프가 운영하고, 남영동에 위치한 소갈비 음식점인 ‘양문’의 시그니쳐 메뉴인 ‘버터소갈비’를 콘셉트로 해 버거로 만든 상품이다. 이마트24 측은 “협업 상품은 고석현 셰프의 시그니처 메뉴의 맛을 잘 살릴 수 있도록, 고 셰프가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 상품을 직접 맛보며 자문 역할을 담당했다”고 설명했다.
듀프 트렌드와의 시너지 효과를 낸 제품 출시는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10월 중순부터 조광효, 임태훈, 장호준 셰프와 협업한 상품 9종을 순차적으로 공개해 온 GS25는 12월엔 에드워드 리가 결승전에서 선보인 메뉴인 ‘이균 참외미나리주’와 김미령이 레스토랑 미션에서 선보였던 ‘캐비아보다 맛있는 김’을 콘셉트로 한 상품인 ‘이모카세 즉석구이김’을 선보이며 라인업을 추가했다.
맘스터치는 3월 ‘에드워드 리 빅싸이순살’을 출시한다. 에드워드 리의 저서 ‘버번랜드’에도 등장한 그의 비법 소스를 적용한 치킨으로, 이를 통해 기존 버거에서 치킨까지 더 메뉴를 다양하게 선보인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듀프는 하나의 소비문화로 자리 잡고 확산되고 있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협업 형태로 듀프 제품 출시가 활발하게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