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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팩트는 됐고 여론을 움직여? 히틀러가 그랬다 … ‘여론조사꽃 15K 조사’ 어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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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최영태⁄ 2025.03.19 12:01:53

인터뷰에서 "다 속였으니 내가 더 똑똑한 것”이라고 자랑한 안병희 씨를 다룬 MBC의 보도 화면. 

탄핵 반대 시위자들이 경찰관에게 “당신 중국인이지? 대답해 봐”라고 묻고, 캡틴 아메리카 분장을 한 채 중국 대사관 침입을 시도했던 안병희(42세) 씨가 “신문도, 정치인도 내가 다 속였으니 내가 더 똑똑한 것”이라고 자랑하는 시대다.

팩트를 찾으려는 노력을 조금만 해도 거짓말에 속지 않을 수 있는데, 무조건 믿고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또 이들의 ‘허구 신뢰’가 여론조사에 반영되니 여론조사가 여론을 만드는 이상한 모양새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묻고 싶다. “거짓이라도 믿는 사람만 많다면, 즉 여론조사에서 앞서면 그 거짓을 진실이라고 앞으로 믿을 것인가?”라고.

폭민 나타난 뒤 히틀러 전체주의 탄생

이상한 사람들이 늘어나는 시대에 한나 아렌트의 전설적인 저서 ‘전체주의의 기원’(1951년)을 읽어봤다. 이 책은 히틀러를 무턱대고 따르다 완전 패망해버린 독일인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했나”를 파고 들여다본 책이다.

유럽에서는 신분 사회가 깨지면서 18세기말~19세기초 이른바 ‘폭민(mob)’이 나타났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국민국가 시대에 ‘계급’이라는 틀에 맞춰 살아가던 평민들은 19세기 후반~20세기 초 계급의 틀도 깨지면서 군중 또는 대중(mass)으로 성격이 바뀐다. 대량 실업 등으로 계급의 정체성도 깨지면서 대중은 개인의 이성적 판단보다는 집단적 감정과 무의식에 의해 움직이는 무리로 바뀐다. 이런 대중, 즉 ‘이성보다 감정에 치우치는’ 사람들을 파고들어 합법적으로 권력을 잡고 유럽을 대학살의 무대로 끌고 들어간 게 히틀러다.

‘전체주의의 기원’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놀라울 정도로 허구적인 이데올로기의 일관성 앞에 굴복한다. 그들이 어리석거나 사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일반적인 불행 속에서 이런 도피가 그들에게 최소한의 자존심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무리 불합리하게 보일지라도, 쉽게 믿을 자세가 되어 있으며, 모든 말은 어찌 되었건 거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특별히 속임을 당해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중략) 자신들을 속인 지도자를 버리는 대신, 대중은 자신들도 그 말이 거짓임을 항상 잘 알고 있고 그렇게 영리하게 사람들을 속이는 수완을 가진 지도자에게 감탄한다고 단언할 것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전체주의의 탄생 과정을 파고들어간 한나 아렌트 저 '전체주의의 기원' 책 표지. 

독일의 대중은 거짓말에 속을 준비가 단단히 돼 있었으며, 그들의 지도자가 거짓말을 한 게 나중에 드러난다 해도 “어차피 정치는 거짓말하는 거야. 거짓말로 속이는 능력도 능력이야”라면서 계속 히틀러를 추종했다는 얘기다다. 거짓말 해도 변함없이 믿는다고? 요즘 일부 한국인들의 모습이다.

‘전체주의의 기원’에는 이런 문구도 나온다.
“처형이 실행되자마자, ‘예언’은 곧 소급력을 가진 알리바이가 된다.”

히틀러는 “사악한 유대인은 멸종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폭민-대중은 이를 믿는다. 정권을 잡은 히틀러는 유대인을 대량 학살한다. 히틀러는 ‘절대로 틀리지 않는 예언자’가 된다. 이를 아렌트는 ‘예언적 과학성의 언어’라고 표현했다. 말하고 실천하니 예언이 적중하지 않을 리 없다. 한국적 폭민의 시대가 무서운 이유다.

영국-프랑스 헷갈리게 만든 히틀러의 '여론 중심주의’

히틀러의 ‘전체주의 독일’의 등장을 바라보면서 영국, 프랑스 같은 ‘비(非)전체주의’ 국가들은 완전 헷갈렸단다. 이상하게 돌아가는 독일에게 영국, 프랑스는 “팩트가 이렇다”고 들이대면서 독일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면서 힘들어할 줄 알았단다. 하지만 히틀러는 팩트 검증은 무시하고 그 시간에 독일 대중을 허구적 이데올로기로 속여 “여론이 이런데 뭔 소리야”라며 대응해 영-불을 허탈하게 만들었다는 게 아렌트의 진단이다.

"속이는 것도 지도자의 능력"이라고 믿었다는 독일 대중을 속여 히틀러가 만든 '히틀러 청년단'.

“팩트는 됐고, 여론만 움직이면 돼”가 히틀러의 작전이었다면, 비슷한 모습이 2025년의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거짓말을 해서 여론조사 수치만 움직일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듯한 행태들이 한국 정치판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명태균 게이트’가 그 증거다.

흔히 여론조사에 대해 ‘국민의 마음을 읽는다’고 하지만, 국민의 그 마음을 만드는 것은 언론이다. 그래서 “여론조사는 언론 보도의 반영일 뿐”이라는 부정적 의견이 있다. 언론이 쓰는 대로 여론은 움직인다는 것이다.

‘언론은 팩트를 쓴다’가 상식이었지만 요즘 많은 한국 언론사들은 그렇지 않다. “돈 되면 쓰고, 안 되면 안 쓴다”가 한국 언론사의 상식이 된 지 오래다. 그래서 히틀러의 작전 그대로 ‘팩트는 됐고, 여론만 움직이면 돼’를 추구하는 언론사가 요즘 늘어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한국의 여론조사 판에 큰 변수가 등장했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운영하는 ‘여론조사 꽃’의 횡포다. 여론조사 꽃은 3월 들어 1만 5000명 이상에게 응답을 받아내는 이른바 ‘15K 조사’를 시작했고, 그 첫 결과가 3월 17일 발표됐다.

'15K 조사'를 자랑하는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유튜브 섬네일. 

그간 엄청나게 발표됐던 한국의 여론조사는 대개 1000명(1K) 응답을 목표로 해 왔다. 리얼미터가 1500명(1.5K) 응답을 받아내 “우리가 표본 숫자가 더 많다”고 자랑해 왔다면, 여론조사 꽃은 그 10배(15K)의 응답을 받아내 물량으로 압도하겠다는 전략이다.

첫 15K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50.0%를 기록해 국민의힘 지지율 39.3%를 10.7%p 격차로 앞섰다.

‘비싼 게 정확’에 대처가능한가

여론조사 꽃이 다른 여론조사보다 10~15배나 더 많든 응답을 받아내 결과를 계속 발표한다면, “팩트는 됐고, 여론만 움직이면 돼”를 추종해왔던 정치권과 언론은 앞으로 어떻게 하려나? 돈을 똑같이 쏟아부어 꽃에 맞서는 여론조사를 해 응대할 것인가?

지난 총선을 앞두고 "4억짜리 여론조사"를 자랑하는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유튜브 섬네일.  

김어준 총수는 여론조사 꽃을 출범시키면서 ‘비싼 게 정확하다’라는 문구를 유행시켰고, 지난 총선에서 여론조사 꽃의 영향력은 “어마무시했다”는 평가가 있다. 12월 3일 내란에서 계엄군이 국회, 선관위와 함께 여론조사 꽃을 찾아가게 만든 이유다.

‘팩트는 됐고, 여론만 움직이면 돼’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히틀러식 작전이다. 과거 소수의 기성 언론만이 여론조사를 발표하던 시대에는 정말로 언론사 마음대로 여론을 손볼 수 있었다. ‘명태균 현상’이다. 그런데 이 바닥에 여론조사 꽃이라는 ‘깡패’가 나타났다. 그래서 ‘정-언 유착’ 또는 ‘검-언 유착’ 세력에게 묻고 싶다. 앞으로 어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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