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지주가 약 11년 만에 생명보험 시장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총 1조 5493억 원 규모의 대형 인수합병(M&A)을 통해 동양생명과 ABL생명을 자회사로 편입하는 최종 단계에 진입한 것이다. 이번 인수가 최종 성사되면 생명보험업계 판도가 재편되고, 우리금융의 기업 규모도 한층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1조 5493억 규모 빅딜…생보업계 재진출
지난 5월 2일 금융위원회는 정례회의를 열고 우리금융지주의 동양·ABL생명 인수를 조건부로 승인했다. 금융감독원이 우리금융지주의 경영실태평가등급을 3등급으로 하향조정해 자회사 편입승인 기준에 미달했지만, 우리금융지주가 제출한 내부통제 개선계획 등이 차질 없이 이행되면 요건이 충족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앞서 우리금융은 2024년 6월 중국 다자보험그룹과 동양생명(지분 75.34%) 및 ABL생명(지분 100%) 인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협상에 착수했다. 이후 8월 28일 주식매매계약(SPA)을 통해 동양생명 지분을 1조 2840억 원, ABL생명 지분을 2654억 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계약금 1550억 원은 계약 파기 시 몰수되는 조건으로 설정됐다.
2025년 1월 15일 금융위원회에 자회사 편입 승인을 신청했으나, 금융감독원의 2024년 정기 검사에서 약 2300억 원 규모의 부당 대출이 적발되며 경영실태평가 등급이 3등급으로 하락했다. 이는 자회사 편입 요건(2등급 이상)을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금융위는 내부통제 개선과 중장기 자본관리계획 이행을 조건으로 조건부 승인을 의결했다. 최종 인수 절차는 7월 초 주주총회와 인수대금 납입으로 마무리될 예정이다.
동양생명은 2024년 말 기준 자산 34조 5776억 원, 당기순이익 3102억 원을 기록한 중견 생명보험사다. ABL생명은 자산 18조 6651억 원, 당기순이익 1048억 원으로 규모는 작지만 안정적인 보험사로 알려졌다. 두 보험사의 합산 자산은 약 53조 2327억 원으로, 생명보험업계 6위에 해당하며 NH농협생명(5위)과 비슷한 수준이다. 당기순이익 합계 4150억 원은 KB라이프(2694억 원)와 NH농협생명(2461억 원)을 상회한다.
보험업계에서는 우리금융이 조만간 동양생명과 ABL생명을 합병할 것으로 예상한다. 금융지주사들이 인수 후 합병 방식으로 회사 규모를 확대한 사례가 이미 여러번 있었기 때문이다. 신한금융이 신한생명과 오렌지라이프를 합병해 신한라이프를 출범시켰고, KB금융은 KB생명과 푸르덴셜생명을 통합한 KB라이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금융은 이미 ‘우리라이프’, ‘우리금융라이프’ 등의 상표를 출원해 둔 상태로, 이번 금융당국 인수심사 과정에서도 두 보험사를 통합하는 방안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은행 강화’에 방점…중국 자본 철수는 ‘덤’
우리금융이 이번 M&A에 뛰어든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금융은 2014년 우리아비바생명(현 iM라이프)을 DGB금융그룹에 매각한 이후 11년 동안 5대 금융지주(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중 유일하게 생명보험 자회사를 보유하지 않아 비은행 부문 수익 비중이 낮았기 때문이다.
2019년 지주사 전환 이후 우리은행의 당기순이익 비중은 95% 이상으로, 경쟁사 대비 은행 의존도가 높았다. 동양·ABL생명 인수를 통해 우리금융은 비은행 부문 실적 비중을 약 10%가량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생명보험 시장의 높은 성장세도 매력적인 요인이다. 생명보험사는 장기 자금 유입이 안정적이며, 연 5% 내외의 수익률을 제공한다. 우리금융은 이를 활용해 사모신용펀드(PCF)와 글로벌 인프라 자산 등 중위험·중수익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특히 동양생명은 안정적인 수익 창출 능력으로 ‘알짜 매물’로 평가받아온 기업이다.
이번 인수를 통해 중국 자본이 한국 보험 시장에서 철수하게 되는 것은 부수적인 플러스 요인이다. 동양·ABL생명은 중국 안방그룹(다자보험그룹 모회사)이 각각 2015년, 2016년에 인수했으나, 안방그룹 청산 과정에서 매물로 나왔다. 우리금융의 인수는 중국 자본 철수를 가속화하며 국내 금융시장 안정성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가장 큰 강점은 이번 합병을 통해 KB국민, 신한, 하나 등 경쟁 금융그룹과의 체격 차이를 좁힐 수 있다는 점이다. 동양·ABL생명의 합산 자산은 약 53조원대여서, 삼성생명, 교보생명 등 대형 보험사와 경쟁 가능한 기반을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생보업계 재편으로 종합금융그룹 도약 노린다
이번 인수로 인해 생명보험업계는 지각변동이 일어날 전망이다. 동양·ABL생명의 합산 자산은 업계 6위 규모로, 신한라이프(5284억 원)와 당기순이익 격차가 1100억 원에 불과해 경쟁력이 높다.
우리금융은 두 보험사의 규정체계, 재무·회계, 리스크 관리, 전산시스템을 그룹 경영관리체계에 통합해 시너지를 극대화할 계획이다. AI 기반 보험 상품 개발, 계열사 간 크로스셀링, 장기 자산 활용 투자 다변화 등이 기대된다. 비은행 부문 수익 비중 증가로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는 장점도 빼놓을 수 없다.
다만, 풀어야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동양생명(155.52%)과 ABL생명(153.68%)의 지급여력비율(K-ICS)은 금융당국의 권고치(150%)에 근접해 자본확충이 필요하다. 우리금융은 부동산 매각(동양생명 3000억 원, ABL생명 2000억 원)과 내부모형 도입으로 자본비율을 강화할 계획이지만, 추가 자금 투입 시 ‘고가 인수’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내부통제 개선도 핵심 과제다. 우리금융은 1000억 원을 투자해 준법감시와 지배구조를 개혁하고, 2027년까지 CET1(보통주자본비율)을 13%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동양·ABL생명의 인수 및 통합 과정에서 조직문화 충돌, 시스템 통합 지연 등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이미 양사 노조는 고용 승계, 단체협약 유지, 독립 경영 보장을 요구하며 매각 저지 투쟁을 예고한 상태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이번 우리금융의 동양·ABL생명 인수는 비은행 포트폴리오 강화와 종합금융그룹 도약을 위한 임종룡 회장의 전략적 선택”이라며 “풀어야할 과제가 많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우리금융은 한 단계 더 레벨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