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4일, 대한민국은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으로 새로운 정치적 전환점을 맞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위헌적 비상계엄 시도와 탄핵, 조기 대선이라는 6개월에 걸친 기나긴 이야기의 마침표였다. 이날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문장을 인용해 이렇게 말했다.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미래의 과거가 되어 내일의 후손들을 구할 차례입니다.”
정치인의 언어는 곧 메시지다. 특히 취임사에서의 인용은 의도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한강의 소설에서 인용한 이 문장은 단순한 문학적 수사가 아니라 2024년 12월 이후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겪은 위기와 회복의 서사를 요약하는 핵심 메시지이자, 향후 국정의 방향을 암시하는 정치적 선언으로 분석된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 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국가 폭력의 트라우마, 그리고 죽은 자들의 침묵 속에 숨겨진 메시지를 다뤘다. 이재명 대통령이 인용한 문장은 이 작품의 주제의식 그 자체다. 1980년 광주의 희생과 저항이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죽어간 수많은 이름없는 시민들의 역사가 현재의 대한민국 헌법제도를 만들어냈으며, 그 제도와 민주시민의 힘이 금번 윤석열의 헌정 중단 시도를 저지했다는 그의 인식을 담고 있다.
윤석열의 갑작스런 12.3 계엄은 많은 이들에게 1979~80년 당시 전두환 신군부 군사쿠데타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지만, 다행히도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계엄에 투입된 군인도, 이를 막으려는 시민, 정치인도 45년전과 달랐다. 그리고, 1987년 6월 항쟁으로 만들어진 새 헌법과 민주공화국의 기본 시스템이 어느 정도 작동했다.
그 결과 헌정 중단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민주 시민들이 빠르게 결집해 국회를 지켜냈고, 국회는 빠른 속도로 계엄 중단을 선언하고, 탄핵소추안을 가결했으며, 헌법재판소는 만장일치로 윤석열의 파면을 결정했다. 이어진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들은 79.4%의 높은 투표율을 보이며, 계엄 지지 세력을 심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했다”고 표현한 것은 바로 이를 적시한 것이다. 과거의 희생이 오늘의 민주주의를 가능케 했다는 의미다.
그는 이어 “이제는 우리가, 미래의 과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문장은 우리가 과거 세대에게 빚을 진 만큼, 우리 세대 역시 책임 있는 정치, 경제, 외교 정책을 통해 미래 세대에게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대한민국을 넘겨줘야 한다는 선언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국제 정세 속에서 계엄 사태까지 발발하면서 대한민국의 미래는 여전히 위태위태한 갈림길에 놓여져 있다. 이런 상황을 슬기롭게 풀어나가지 못한다면 ‘후손을 구하겠다’는 다짐은 공허해진다.
새로운 대통령이 문학을 활용해 자신이 펼칠 정치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능력을 보여준 것은 고무적이다. 다만, 정치가 예술을 인용할 때는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 감성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그 감성에 내포된 이상을 현실로 구현할 수 있는 능력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재명이 ‘죽은 자들’의 이름을 빌린 이상, 그가 앞으로 쓸 역사는 그 문장의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그가 인용한 문장이, 5년 뒤 그의 퇴임사에도 떳떳이 다시 쓰일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지금부터가 진짜 시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