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출범을 맞은 식품·유통업계에선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대선 당시 K푸드 수출 확대를 약속하면서 관련 정책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가운데 물가 안정 및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등과 관련, 규제 강화에 대한 우려 또한 나오고 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실효성 없어” vs “골목상권 보호”
정쟁화·여론 변화 따라 급변할 가능성도
초미의 관심사 중 하나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이다. 대형마트의 공휴일 의무휴업은 2011년 12월 도입됐다가 지난해 1월 폐지됐다.
현행 제도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월 2회 의무휴업일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윤석열 정부 당시 대구와 청주를 시작으로 서울 서초구, 동대문구, 부산, 의정부 등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의무 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한 바 있다.
이 가운데 오세희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10인이 지난해 9월 발의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엔 지방자치단체의 자율 결정권을 폐지하고, 반드시 공휴일 중에서 의무휴업일을 지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민주당은 올해 3월 민생연석회의를 열고 민생분야 20대 의제를 발표했는데, 여기에도 해당 의제가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해당 사안을 공약으로 제시하진 않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규제가 강화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 법안은 이미 국회 소위원회를 통과했고 조만간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관련해 시장의 의견은 분분하다. 당초 대형마트 영업 규제는 골목상권을 보호해 상생과 균형 발전 도모 및 유통 생태계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도입됐다.
하지만 유통시장 경쟁구조가 변화하면서 규제의 원전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이어져 왔다.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인해 온라인 소비가 일상화되면서 더 이상 과거의 ‘대형마트 vs 골목상권’ 대립 구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올해 1분기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업태 전체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0.4% 감소한 반면, 온라인 유통 업체의 매출은 16.7% 늘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전통시장, 골목상권이 아닌 온라인 플랫폼의 성장을 도왔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한국경제연구원 분석 결과(2022년 통계 기준)에 따르면 대형마트가 영업하는 일요일에 전통시장의 평균 식료품 구매액은 630만원이었는데, 의무휴업일(일요일) 구매액은 610만원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소비자의 반응도 눈에 띈다. 서울 서초구와 중구, 대구, 청주 등 일부 지자체가 마트 휴업일을 평일로 변경한 결과, 소비자 만족도가 긍정적으로 나타난 것.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평일 휴무에 만족한다’는 응답이 81%에 달했다.
또한 전체 매출의 절반 가까이가 주말과 공휴일에 집중되는 대형마트가 타격을 입으면, 대형마트에 입점한 소상공인 매장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가운데 정부·여당은 아직까지 대형마트 의무휴업과 관련한 논의를 한 적은 없다는 게 민주당의 설명이다.
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SNS에 “전통시장 보호 목적은 공감하지만 실효성 있는 정책 효과보다는 자칫 소비자 불편만 가중시키는 방식으로 추진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대한다”며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는 개선돼야 할 사항이지, 확대하는 건 신중해야 한다. 다양한 생활권 현실과 소비 행태를 정교하게 반영해 실효성과 형평성, 소비자 권익까지 함께 고려해 유통정책이 논의돼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전 의원은 전통시장이 없는 지역이나 평일에 장보기가 어려운 맞벌이 부부와 직장인 1인 가구의 경우, 공휴일에 대형마트가 문을 닫으면 온라인 구매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예시 또한 들었다.
민주당 장철민 의원 또한 자신의 SNS에 “마트는 단지 이익을 내는 공간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생활 인프라”라며 “맞벌이 가정, 1인 가구, 직장인에게 공휴일은 필수 소비시간이다. 휴업이 공익에 부합한다면 불편도 정당화될 수 있지만, 지금은 효과가 불분명하다”며 정책 재검토를 촉구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분위기 속 대형마트 공휴일 의무휴업은 정쟁화나 여론 변화에 따라 급변할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분석이다.
국정 공백 틈 타 도미노 가격 인상 이어져
새 정부, 비상경제점검TF 가동
또 주목받는 건 물가 안정 대책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음료와 가공식품 업체들은 치솟은 원자재 가격과 환율 상승 등을 근거로 줄인상에 나섰다. 특히 12·3 비상계엄 이후 국정 공백 틈을 탄 기습적인 도미노 가격 인상도 이어졌다. 지난 5년간 전체 소비자 물가가 10%대 상승하는 동안 외식 물가는 20% 넘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로 인해 ‘런치플레이션(런치+인플레이션·점심값 상승)’이 심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20년 외식 부문 소비자물가지수를 100으로 했을 때 지난달 지수는 124.56으로 약 25% 뛰었다. 같은 기간 전체 소비자물가지수가 116.27로 약 16% 오른 것과 비교되는 수치다.
39개 외식 품목 중에서 가장 많이 오른 품목은 김밥(38%)과 햄버거(37.2%)였다. 떡볶이(34.7%), 짜장면(33.4%), 생선회(33.3%), 도시락(32.9%), 라면(31.7%), 갈비탕(31.2%) 등 30% 이상 오른 품목도 9개에 달했다.
20% 이상 오른 품목도 짬뽕, 돈가스, 칼국수, 비빔밥, 치킨 등 총 30개에 달하고, 구내식당 식사비도 24%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외식 품목 39개 중 전체 소비자물가지수보다 상승률이 낮은 것은 소주(15.8%), 해물찜(15.3%), 커피(10.4%), 기타음료(7.3%) 등 4개에 불과했다.
관련해 이 대통령은 9일 열린 비상경제점검TF(전담팀) 회의에서 “최근에 물가가 엄청나게 많이 올랐다고 그러더라. 라면 한 개에 2000원 한다는데 진짜냐”며 고물가 문제에 대한 신속, 강력한 대응을 주문했다. 이후 13일 농림축산식품부는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주재로 식품산업협회, 한국외식산업협회 등 업계 및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밥상 물가안정 경청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이 일환으로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농축수산물 할인지원에 460억원을 투입하고, 유류세·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조치 연장에 나섰다. 고등어, 계란 등 최근 가격 급등 품목에는 새로 할당관세를 적용할 방침이다. 이는 이재명 정부의 첫 번째 물가안정 대책이다.
정부는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획재정부 주재로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열고 ‘최근 소비자물가 동향 및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회의엔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참석했다.
정부는 우선 ‘밥상물가’ 안정의 일환으로 6~7월 농·축·수산물 할인 지원에 46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돼지고기, 닭고기 등 주요 소비품목을 최대 40% 할인가에 판매하고, 축산자조금 및 유통업체와 협력해 한우·수입 소고기 할인행사도 진행한다. 수산물을 최대 50% 할인하는 ‘대한민국 수산대전’과 직거래장터 등 특별행사도 수시 지원할 방침이다.
고등어를 포함한 21개 식품에 대한 할당관세도 다음달부터 적용한다. 최근 가격이 오른 고등어는 0%의 할당관세를 12월까지 적용하고, 계란가공품 할당관세 물량은 4000t에서 1만t으로 확대한다. 가공식품의 경우 과일칵테일 등 4개 품목에 최대 20% 할당관세 조치를 올해 말까지 연장한다. 브라질산 닭고기는 오는 21일부터 수입을 재개해 8월 중순부터 첫 물량을 받기로 했다.
시장 단속도 강화한다. 특히 최근 가격 상승세가 두드러진 계란에 대해 정부는 생산자 단체의 산지 가격 고시를 축산물품질평가원으로 일원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과도한 가격 인상을 둘러싼 담합 의혹도 조사에 착수한다.
이처럼 새 정부가 비상경제대응TF를 가동해 먹거리 등 서민 물가 안정화를 핵심 과제로 꼽은 만큼, 당분간 업체들의 가격 인상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K푸드 포함한 K컬처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전쟁’에 시선 쏠려
K푸드 산업화 정책에 대해서는 기대감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이 대통령은 4일 취임선서 이후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K푸드를 포함한 K컬처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적극 육성하겠다”고 공언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당시에도 식품·농업 관련 공약을 통해서 K푸드 수출 확대를 약속한 바 있다. 관련 공약으로 스마트 데이터농업 확산, 푸드테크·그린바이오 산업 육성, R&D(연구개발) 강화 등을 제시했다.
특히 K푸드 수출 확대를 위해서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전쟁’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대응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현재 모든 국가에 보편관세 10%를 부과하고 있으며, 한국에는 25%의 상호관세를 다음달 8일까지 유예한 상태다. 식품 기업들은 수출 지역 다변화 등을 모색할 수는 있지만, 개별 기업 차원에서 미국 관세부과 문제에 현실적인 대응이 어렵기에 범정부 차원의 대응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미국 정부의 고관세 기조 고착화 등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장해 온 K푸드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K푸드는 지난해 처음으로 수출액 70억달러를 돌파했는데 이 기세를 이어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수출실적은 라면이 11억 8632만달러로 전년 대비 17.6% 늘었고 같은 기간 즉석섭취·편의식품과 조미김은 각각 7억 8717만달러, 4억 8914만달러로 25.6%, 22.2%씩 증가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외 사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 정책도 확대돼야 한다는 요청도 나온다. 해외 현지에 공장을 건설해 현지에서 해외 매출을 발생시키는 업체에도 지원책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 대통령은 K푸드 수출액을 100억달러까지 확장한다는 구상이지만, 공약에서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어 정부와 업계 사이 시각 차이를 좁혀가며 구체적인 정책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들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출범 맞물려 대관 조직 대대적 정비 움직임
주요 유통기업들은 상황 주시
새 정부 출범과 맞물려 주요 유통·식품기업들은 대외 소통 창구인 대관 조직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있다. 1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탄핵 정국 와중이던 지난 2월 일찌감치 호남 출신 인사를 대관 총괄 임원(부사장)으로 영입했고, 지난달에는 민주당을 오래 출입한 언론인 출신을 대관 담당 임원(전무)으로 데려왔다. 정치 지형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또한 쿠팡은 대선 약 일주일 전이었던 지난달 26일 기존의 박대준·강한승 각자 대표 체제에서 박대준 단독 대표 체제로 전환했다. 박 대표는 네이버에서 대관 업무를 담당한 경력이 있으며, 을지로위원회 등 정치권과의 네트워크도 폭넓은 편이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 또한 대관 조직 강화 움직임이 보인다. 지난달 초 문재인 정부 청와대 행정관과 민주당 고민정 의원 보좌관을 지낸 인사를 대외협력실장으로 선임했고, 대관 조직 전반의 추가 보강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PC그룹 또한 현재 공석인 국회 대관 담당 전략지원실장을 맡을 인물을 물색하는 등 대관 조직을 재정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 CJ그룹 등 유통·식품을 주력으로 하는 주요 대기업의 경우 아직은 눈에 띄는 대관 쪽 인적 교체나 조직 변화는 없는 상황이다. 현 정부 규제 정책의 방향성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은 만큼 상황을 좀 더 지켜보겠다는 분위기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