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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청년 정치인 백준석 용산구의회 부의장 “새 정부 용산구, 이태원 참사 상처 치유하고 청년·사회 약자 살고 싶은 도시로”

박근혜 탄핵 충격에 대학 강사 자리 버리고 정치 입문… “아빠는 문제 듣고 해결하는 사람” 초등학생 아들 믿음 대로 이태원 상처·도시개발 문제·청년 약자 주거 문제 해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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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안용호⁄ 2025.06.18 09:37:36

부의장의 무거운 책임을 어깨에 지고 있는데도, 백준석 부의장은 늘 대학생처럼 웃는다. 사진=용산구의회

백준석 용산구의회 부의장에게는 ‘청년’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는다. 40세에 정치를 시작해 9년이 지났지만, 외모나 정치 행보에서 여전히 젊은 감각이 살아있다. 부의장의 무거운 책임을 어깨에 지고 있는데도, 백 부의장은 늘 대학생처럼 웃는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 시절 대통령실과 관저가 있던 용산구는 계엄과 탄핵을 거치며 늘 어수선했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용산구는 다시 평온을 되찾은 모습이다. 갈등의 정치 공간에서 사람이 사는 도시로 회복 중인 용산구의 이야기를 ‘청년 정치인’ 백준석 부의장에게서 들었다.

- 우여곡절 끝에 새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구의회 부의장으로서 어떤 기대를 걸고 계시나요?
“ 3년의 세월은 퇴행의 시간이었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민생 회복과 국민 통합이 최우선 과제로 진행돼야 하고요.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인사권이나 예산 독립 같은 지방자치가 자리 잡는 정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우리 구는 이태원 참사의 아픈 상처를 아직 치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가족과 참사로 정신적으로 힘든 분들의 치유와 회복이 필요합니다. 또 진상 규명, 피해자 보상과 함께 상권 회복이 시급합니다.
 

새 정부 후 용산구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백준석 부의장. 사진=용산구의회 

-윤 대통령 재임 기간 대통령실과 관저가 있던 용산구는 여러 제약이 존재했고, 시위로 구민들의 삶도 많이 피폐해졌을 텐데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할까요.

“경호 문제로 인한 용산 공원 개방 문제, 재건축·재개발 고도 제한 등 문제들이 하나둘 해결될 겁니다. 용산의 정체성이 갑자기 행정 도시가 돼버리다 보니 혼란스러웠는데, 다시 용산구의 정체성을 다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개발 위주로 진행되는 도시는 항상 갈등이 심화하고 나중에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우리 용산구는 사람을 중심에 놓고 지속 가능한 개발을 고민해야 합니다. 재개발로 인한 원주민의 재정착 문제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현재 재개발은 원주민들이 거의 재정착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GTX가 들어오면 용산역은 국가대표 역사가 될 거고 용산은 대한민국의 중심 도시가 될 겁니다. 하지만 개발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문화, 복지, 주거, 교통 등이 다양하게 접목된 용산의 정체성을 긴 안목에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지난 5월 희망과 행복의 경로잔치 행사에 참석해 어르신들과 인사하는 백준석 부의장. 사진=용산구의회

-용산구 주거 기본 조례를 대표 발의했습니다. 어떤 취지인가요?
“용산구는 집값이 비싸 주거 진입 장벽이 높습니다. 개발이 진행되면 청년층은 더 진입하기 어려운 구조가 됩니다. 그래서 사회적 약자, 청년·신혼부부 등의 주거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기본적 제도적 틀을 만들어야 해서 조례를 만들었고, 파생 조례와 제도적 장치들을 계속 고민 중입니다. 토론회도 할 예정입니다. 어렵더라도 사회주택이나 임대주택 등 기초 단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만들어 봐야 합니다.”
 

정치 입문 전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도시공학을 가르쳤던 백준석 부의장은 늘 더 나은 도시를 만드는 방법을 꿈꾸고 있다. 사진=용산구의회 

-정치를 하기 전에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경인여대에서 도시공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충격을 받아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대학에서 더 나은 도시를 만드는 방법을 꿈꿨는데, 그 사건이 도화선이 돼 정치에 뛰어들게 됐어요.

결혼한 지 1년 후였는데, 집사람은 당연히 반대했어요. 가장으로서 모든 게 불확실했으니까요. 이재명 대통령 경기도지사 시절 캠프에서 일하면서 정치를 시작했고, 구의원이 되기 전까지 6년 정도 가족들 마음고생시켰죠. 제가 매일 등교시키는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인 데, 아빠는 도로가 패어있거나 주민들 문제가 있으면 고쳐주는 사람으로 알고 있어요. 이제는 가족들도 조금씩 저를 이해하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부의장님이 생각하는 ‘청년 정치’란?
“우리나라는 안타깝게도 청년이 정치권에 들어오기가 너무 힘든 구조입니다. 경제적·시간상으로 제약이 많고 기득권의 벽이 너무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청년 정치라고 하면 무엇보다 도전하는 것이 최우선 아닐까 싶습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의 목소리를 뚜렷이 내는 것이 청년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청년 정치라고 해서 청년의 목소리만 내는 게 아니라 다양한 세대와 다양한 계층, 남녀, 다양한 연령층 등 다양한 목소리가 녹여져야 더 나은 정치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마흔에 정치를 시작해 벌써 마흔아홉이 됐어요. 시작할 때는 청년이 맞았는데 이제는 청년이라 하기에는 좀 나이가 들었죠. 당에서도 이제 만 45세 이하를 청년으로 보니까요. 구의회 동료 의원인 함대건 의원이 민주당 서울시당 청년위원장이 되면서 제게 청년위원회 고문 자리를 주었어요. 그래서 여전히 당에서 청년위원회와 같이 소통하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백준석 부의장은 1년 남은 부의장 임기 기간동안 재개발로 인한 갈등을 최소화하고 용산구의 미래 정체성을 새롭게 만드는 일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용산구의회

-일과가 어떻게 되시나요?
“새벽 네시 반 정도에 일어나요. 원래 저녁형 인간이었는데 구의원이 되면서 새벽형 인간이 됐습니다. 먼저 TV 뉴스를 보면서 용산 지역과 연결되는 것이 있는지 살펴보다가 초등학생 아들을 등교시킨 후 구의회로 출근해서 업무를 시작하죠.

정치 입문을 반대하던 아내도 이제는 조금씩 저를 이해해 주고 있습니다. 아내는 현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죠. 의회 회의 일정에 지역 내 행사와 현장 방문 등이 이어져 좀처럼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없어 미안하고 아쉽습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부의장 임기가 1년밖에 안 남았더라고요. 의장단에 소속된 만큼 일단 여야 관계를 원만하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생각입니다. 예전에는 좀 거칠었다면 부의장이 되면서 좀 더 성숙하고 정치력을 발휘하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 구민을 위해서는 이태원 참사로 인한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을 찾겠습니다. 또한 재개발로 인한 갈등을 최소화하고 이후 용산구의 정체성을 새롭게 만드는 일에 매진하고 싶습니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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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의회  백준석  이태원참사  이재명  용산재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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